소설리스트

54화. (54/132)

54화.

이후 티 파티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다음 간이 살롱이 열릴 곳은 이리스 부인 저택으로 정해졌다.

“다음 모임은 제 저택에서 여는 게 어떨까요? 이번에 새로 들여온 찻잎이 참 괜찮아요.”

“좋지요.”

“그렇게 해요, 이리스 부인.”

자연스럽게 다음을 기약한 손님들을 배웅하고 아가사가 돌아설 때였다.

“마님!”

측근 하녀, 제시가 한 손에 서신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에녹의 편지구나.’

제시가 저렇게 뛰어올 서신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한달음에 도착한 제시가 공손히 서신을 받쳐 올렸다.

“후작님께서 보내신 서신이 도착했어요.”

예상대로 남편의 서신이었다. 익숙한 흰 편지지에는 풀꽃 같은 내음이 스며 있었다.

「보고 싶은 아가사」

진솔한 첫 문장과 함께 강렬한 문장 하나가 아가사의 눈을 사로잡았다.

「……오늘로써 마지막 영지 점령이 끝났습니다. 항복 문서의 서명만 끝나면 마무리만 하고 바로 귀환할 생각입니다……」

“아……!”

약한 탄성에 주변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왜 그러세요, 마님?”

“혹시 주군께 무슨 일이 생기신 겁니까?”

측근 하녀와 호위를 맡은 제1부단장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아가사가 활짝 웃었다.

“영지전이 끝났나 봐. 이제 귀환만 남은 거예요.”

“와, 축하드려요, 마님!”

“축하드립니다, 마님.”

편지를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아가사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에녹이 돌아올 때까지는 조용히 칩거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영지전의 완전한 승리와 에녹의 귀환도 자랑할 겸 겸사겸사 중립 측 인사들의 관찰도 겸해서 크게 파티를 열면 좋을 것 같았다.

“좋은 건 널리 알려야지.”

“그럼요, 마님.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다른 측근 하녀, 마리가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 물론 답장이 먼저였다.

“제시, 답장을 써야겠어.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해서 큰 살롱을 열 거야.”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마님.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이참에 이자벨도 초대해야겠다. 아가사가 웃으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그리하여 가을 사교계를 코앞에 둔 시기.

아라투스의 대단한 승리가 폭풍처럼 수도를 강타했다.

캐든이 끝인 줄 알았으나 무려 노빌리스 혈족 다섯 가문과 계승 서열 2위의 계승권까지 걸렸던 대규모 영지전이었다.

그 모든 것이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마무리 지어졌으니.

이제 귀족들은 아가사 노빌리스가 얼마나 안전해질 것인지, 아라투스 가문에서 얻은 재물은 얼마나 대단할 것인지 등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열린 것이 아가사의 살롱이었다.

-가을 사교계 전에 아가사 노빌리스가 마지막으로 여는 살롱이라더라!

후원의 계절답게 아가사가 준비한 살롱은 신인 화가의 데뷔와 함께하는 정원의 미술 관람회였다.

아가사가 후원한 화가 중에 두각을 나타낸 신인이 있었는데.

아가사 노빌리스가 무려 데뷔전을 열어 주는 신인의 전시회인 만큼 예술에 관심이 많은 귀족들의 시선도 단숨에 쏠리고 있었다.

물론 단연 독보적인 화제는 아라투스 가문의 승전이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가을 사교계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아라투스 후작 부인께 말도 못 붙일 거예요.”

“초대장은 어디까지 돌았나요? 이건 꼭 참석해야 하는데!”

“이번에 아가사 부인께서 전시하실 미술품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저는 신혼 저택이 어떻게 꾸며졌는지 궁금해요. 다들 저택을 꾸밀 때 수도 아라투스 저택과 노빌리스 제2저택을 염두에 두지 않겠어요?”

어느 때보다 폭발적인 관심이 쏠린 이때.

드디어 아가사의 살롱이 열리는 날이 되었다. 초대장을 지닌 이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동행인 한 명을 데려온 상태였다.

보통 동행인은 데뷔하지 못한 어린 자녀나 갓 상경한 친족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이번에 동행한 이들은 전부 수도에 적을 둔 귀족들뿐이었다.

아가사는 웃으며 그들을 맞아들였다.

예기치 못하게 대대적인 거대 살롱으로 변한 것 같았으나 이 또한 그녀가 의도한 것이었으니.

동행인 중에는 네우타의 편으로 돌아섰다 의심되는 중립 가문들, 그중에서도 아드마르 자작 부인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아드마르 부인.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아드마르 자작 부인이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인파가 많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혹 제가 온 게 폐가 되진 않았을지 걱정이네요.”

“그럴 리가요. 친하게 지내요, 부인. 오늘 부인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을 깜빡한 것이 떠올라 도리어 마음이 불편했답니다.”

물론 진짜 깜빡한 것은 아니었다. 깜빡할 만큼 사이가 벌어진 것에 대해 주의를 준 것일 뿐.

아드마르 부인이 재빨리 고개를 조아렸다.

“무슨 말씀이세요. 도리어 자주 찾아뵙지 못한 제 잘못이지요. 환대해 주시니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르겠는걸요.”

“부인도, 참. 들어가 보세요. 많은 분이 오신지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거랍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던 아드마르 자작 부인이 정문을 넘어 아름답게 꾸민 정원으로 입장했다.

지척에 있던 측근들이 은밀한 시선을 보냈다.

-저희가 잘 살피고 있을게요.

그 시선에 티 나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아가사가 화사하게 웃으며 다음 손님을 맞아들였다.

“어서 오세요, 멕켈런 부인, 멕켈런 영애.”

거의 수도의 모든 귀족이 모인 자리였다.

손님과 그에 비견될 수의 동행인을 맞은 아가사는 주최자로서 살롱의 포문을 열었다.

그녀가 단상에 올라서자 저택을 구경하랴, 정원을 구경하랴, 정신이 없던 귀족들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렇게 가을 사교계 전,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제 살롱에 와 주신 손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스스로의 살롱을 마지막 대미라 칭했으나 부정하는 귀족은 없었다.

무려 아가사 노빌리스의 살롱은 그럴 자격이 있었으니.

아가사가 우아하게 웃으며 뒤로 신호를 보냈다.

“제 남편이 연전연승을 하고 있고 곧 귀환할 예정이라 더없이 기쁜 마음이에요. 오늘 오신 여러분도 저와 같이 기쁜 마음으로 살롱을 즐겨 주시면 더없이 좋을 거랍니다.”

딱-

손가락 맞부딪치는 소리에 정원 곳곳에 자리한 미술품 앞을 가리고 있던 흰 천이 일제히 걷혀 올라갔다.

“관람회를 시작하겠어요.”

단상 뒤의 정원에 시선을 주었던 귀족들이 일제히 감탄을 토해 냈다.

키 작은 푸른 수목 사이.

빛이 들어오는 순간을 강렬하게 표현한 유채화 수십 점이 압도적인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섬세하면서도 원색적인 채색.

쨍한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것 같은 다채로움.

“정말 굉장하네요!”

귀족들이 차례로 정원 길에 들어서며 미술품 관람회가 시작되었다.

그사이 텅 빈 터에 카우치 수십 개가 놓였고 낮은 원목 테이블과 와인 버킷이 놓였다.

즉석에서 요리하는 요리장들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마치 연회 같은 모습이 갖춰지고 있었다.

“실수 없도록 잘 살펴봐.”

“예, 마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험이 풍부한 집사장, 알렌이 믿음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미리 미술품을 살피고 골랐던 아가사는 제1부단장, 레온 타크란과 측근 하녀들을 거느리고 정원과 터를 거닐었다.

살롱은 언뜻 보기에는 평화롭고 우아하게 흘러가는 듯했지만.

자세히 보면 이 와중에도 각자의 세력이 붙어 대화하고 대립하고 있었다.

아가사의 눈에 새롭게 띈 사람은 롤트 남작 부인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아드마르 자작 부인과 은근한 시선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롤트 남작 부인이 네우타와 먼 친척이었지.’

중립 가문인 롤트 남작과 결혼한 이후 조용히 지내고 있었지만 결혼 전에는 네우타와 제법 가까웠다 들었다.

롤트 남작 부인의 이름을 머리에 새긴 아가사가 방긋 웃었다.

살롱에 임하면서도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고 있던 그녀의 측근들이 야릇하게 웃으며 부채를 팔랑이고 있었다.

살롱이 끝나고 얼마 뒤.

“마님. 서신이 왔습니다.”

그가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편지가 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이 편지는 벌써 이틀 만에 돌아온 전서구에 묶여 있었다.

‘그만큼 가까이 왔다는 거지.’

아가사는 설레는 마음으로 서신을 개봉했다.

「……황금 들판의 달, 첫째 주 세 번째 날 오전에는 성문 앞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평범하게 오가던 서신의 내용 끝에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있었다.

첫째 주 세 번째 날이라면.

‘……내일이잖아?’

“알렌!”

다급한 부름에 달려온 집사에게 아가사가 소식을 전했다.

“내일 오전에 에녹이 돌아올 거야.”

“드디어 후작님께서 귀환하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마님.”

아가사를 위해 영지전까지 불사한 에녹이었다. 집사장, 알렌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

“이럴 때가 아니야. 연회를 준비해야지. 저택에 고기와 술이 얼마나 있지?”

“……!”

승전 후 귀환한 기사들에게 영주가 넘치도록 베푸는 것이 첫날의 연회였다.

넘쳐 나도록 많은 고기와 술, 그리고 포상까지!

총집사장 인생 23년 만에 찾아온 기사들의 승전 연회에 알렌의 얼굴에 긴장이 차올랐다.

“당장 식재료 창고를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얼른 다른 집사와 부집사까지 소집한 알렌이 서둘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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