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32)

50화.

올해 처음 발발한 영지전인 만큼 어느 때보다 소문이 활발하게 퍼져 나갔다.

곧장 서신을 보내 방문 의사를 밝힌 최측근들이 신혼 저택으로 몰려들었다.

“밤중에 습격을 받으셨다면서요.”

이리스 도뮤니아 후작 부인부터 케이트 에블라인 공작 영애, 바네사 베아트리츠 후작 영애, 실리아 카멜론 백작 부인, 마담 샬레트에 이르기까지.

씻고 한숨 잠들었던 아가사는 지난밤의 흔적을 모두 지운 상태였다.

“보시다시피 저는 괜찮답니다. 그이가 직접 검을 쥐었거든요.”

전쟁 영웅의 무용을 상기시키는 한마디에 측근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보나 부인이 지난밤 한 무리의 불한당들이 무기를 차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했어요.”

“글쎄, 그걸 보곤 밤새 앓았다지 뭔가요.”

아가사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랬어요?”

“네. 그분이 시작한 말이 돌고 돌아 어젯밤에 있었던 습격도 수도에 퍼졌답니다. 어제 폐하께 올라온 영지전 선포 보고와 합쳐져 수도가 아주 떠들썩해요.”

실리아 부인이 저택 내의 엄중한 경계를 둘러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세상에. 전쟁 영웅이신 아라투스 후작님이 계신 곳에 암살자라니요. 암살자를 보낸 자는 해가 아침에 뜨는 것도 모르는 멍청한 작자일 거예요.”

“제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아라투스 기사단이 어떤 기사단인지 정녕 모르는 작자가 있다니!”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겠죠. 욕심에 눈이 멀었으니 사리 분별이 될 리가요.”

아가사는 측근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의연한 표정과 자세를 보여 주었다.

“전 정말 무사하답니다. 어디 한 곳 다치지도 않았고요.”

아가사의 건재함을 두 눈으로 확인한 측근들은 눈에 띄게 안심한 얼굴이었다.

‘하긴, 암살자의 규모가 엄청나다고 소문도 났다던데.’

덕분에 이 많은 암살자를 소리 없이 해치운 아라투스 가문이 이 영지전에서 승리할 거라는 소리가 파다했다.

거기다 아라투스 가문의 무력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까지.

습격을 유도한 것이라느니, 함정이었다느니 소문이 더 커진 것은 덤이었다.

‘정말 덫을 놨던 거라면 이렇게 마음이 복잡하진 않았을 텐데.’

아가사의 생각이 다른 곳을 향한 것을 기민하게 눈치챈 이리스 도뮤니아 후작 부인이 슬쩍,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이만하시길 다행이에요. 곧 다시 살롱을 여실 거지요?”

“그럼요.”

“무사하신 모습을 확인했으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할게요.”

“참, 영지전도 준비하시려면 바쁘실 텐데 저희가 눈치 없이 오래 있었네요.”

“그럴 리가요. 와 줘서 고마웠어요, 여러분. 곧 초대장을 보내 드릴게요.”

손님들을 배웅한 아가사는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측근 하녀를 불러 에녹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직 아라투스 저택에 계시지?”

“예, 마님.”

“필요한 것은 모두 챙겨 드렸고?”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보좌관님을 호출할까요?”

“응. 그게 좋겠다.”

아가사는 집무실에서 제1보좌관, 에셀이 바친 보고서를 읽었다. 노빌리스의 제1행정관, 호세 킨이 올린 서류였다.

소파에 앉아 찬찬히 보급 현황을 읽어 보았다.

“식량은 모두 확인됐고. 말먹이와 갑옷에 바를 기름도 충분히 챙겼네.”

“캐든 영지까지 가는 길목에 협조받을 수 있도록 공문도 보내 놓았습니다.”

“좋아.”

완벽한 일 처리를 보고 나니 아가사는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적어도 물자 때문에 곤란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부족하지 않도록 계속 주시해요.”

“예, 마님.”

아가사는 시각을 확인하고 다시 창가를 올려다봤다. 망설이던 아가사가 지척에 서 있던 제1부단장, 레온 타크란을 불렀다.

“출정식에 내가 배웅을 나가도 괜찮을까요?”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 한마디에 자리에서 일어난 아가사가 마차를 준비하라 명했다.

홀을 나서니 평소보다 네 배로 늘어난 호위 기사가 마차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라투스 저택으로.”

총집사, 알렌이 간밤에 총력을 다해 정리해 둔 정원을 지나 마차가 수도 아라투스 저택으로 향했다.

아가사는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다 바로 곁에서 따라붙고 있는 레온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가면 에녹을 볼 수 있겠죠?”

“늦지 않게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출정은 오늘 밤이었다. 조금 전에 인사는 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

마차가 달리는 동안 앞뒤로 과하다 싶을 만큼 많은 기사들이 사방을 경계해 주변을 차단했다.

노빌리스와 아라투스의 깃발을 발견한 귀족들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도 아라투스 저택에 도착하자 총집사, 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님.”

“그이는?”

“연무장에 계십니다.”

“고마워. 따라오지 않아도 돼.”

아가사는 호위와 측근 하녀만 데리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 들어선 순간 본 것은 고요히 모여 있는 기사들의 뒷모습이었다.

기억 속 연무장의 평소 모습과 달리 간혹 말의 투레질 소리가 들리는 것을 제외하면 지나치게 고요했다.

8열종대로 모여 선 기사들은 모두 날카롭게 벼린 검처럼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레온 경이 조용히 속삭였다.

“주군께서는 앞쪽에 계실 겁니다.”

그 말에 저절로 발이 움직였다. 앞으로 향하는 아가사의 등 뒤로 기사들의 시선이 따라붙고 있었다.

에녹은 제 애마에 올라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아가사가 그를 본 순간 에녹도 그녀를 보았다.

몸을 감싼 쇠 갑옷과 아라투스 가문의 문장이 수놓인 서코트, 손을 빈틈없이 감싼 건틀릿.

남자가 탄 검은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한 연무장에 그가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만 크게 울렸다.

“배웅하러 오신 겁니까.”

아가사는 말을 탄 에녹을 올려다보았다.

“……저를 위한 영지전이잖아요. 그리고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었어요.”

“…….”

남부까지 내려가 치러지는 영지전이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볼 수 없을 터.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그가 말에서 내려섰다. 갑주에서 묵직한 쇳소리가 울렸다.

갑옷을 입은 남자는 평소보다 훨씬 크고 거대해 보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대를 한 번 더 보고 나올 것을 그랬나 봅니다.”

낯선 모습과 평소와 다른 기세에서 전장의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는 위험한 곳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저를 위해서.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그래야 그동안 못 한 연애도 할 수 있잖아요.”

애써 웃으며 건넨 말에 에녹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절대 죽지 않고 돌아와야 할 이유가 생겼군요.”

“믿을게요.”

아가사는 그의 서코트를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수도 바깥까지 배웅하는 건 무리일까요?”

“전쟁 중이니 되도록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 저택 내에서도 호위를 떨어뜨려 놓지 마십시오. 그래야 내가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말없이 코트 자락만 만지작거리는 손을 본 에녹이 천천히 가까워졌다. 아가사는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살짝 맞닿은 갑옷과 등을 감싼 건틀릿의 촉감이 차고 딱딱하다. 다만 입술에 닿은 곳만큼은 뜨겁고 부드러웠다.

아가사는 눈을 감고 그가 주는 온기를 받아들였다.

키스는 짧은 듯 길게 이어졌다. 눈을 뜨자 짙은 회색 눈동자가 한참 동안 아가사의 눈 코 입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다시 가볍게 아가사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걱정하지 않도록 편지하겠습니다.”

“……응. 알겠어요.”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 아라투스 기사단은 수도 내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도 외성 남문을 통과해 출전했다.

목적지는 캐든이었다.

* * *

아라투스 기사단이 향한 곳이 캐든이라는 것과 지난 습격의 배후가 캐든 가문이라는 소문이 온 수도에 떠들썩하게 퍼졌다.

그리고 캐든 영지의 패전이 멀지 않을 거라는 예측도 널리 널리 퍼져 갔다.

어디를 가도 이번 영지전에 대한 소문만 가득한 가운데 아가사는 수도 사교계의 소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남편이 전쟁터로 나가 있으니 굳이 티 파티나 무도회 같은 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아가사는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대신 변함없는 후원과 차질 없는 상단 운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최고 관심사는 에녹이었다.

“행군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나요?”

“로안을 지나고 있습니다.”

“거긴 허허벌판이라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상단에 연락해 들판을 지나면 곧장 보급을 받을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에녹이 어디까지 갔는지, 군의 상태나 보급은 어떠한지 매일 점검하는 것이 하루의 첫 일과였다.

“후작님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그 끝에는 에녹이 보낸 편지가 있었다.

“수고했어요. 나가 보세요.”

아가사는 제1보좌관, 에셀을 밖으로 내보낸 뒤 에녹의 서신을 열었다.

아무런 향도, 장식도 없는 깨끗한 흰 편지지는 에녹이 먼 곳에서 행군 중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괜스레 눈만 깜빡이던 아가사는 지척에 선 제1부단장, 레온 타크란을 발견하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설핏, 젊은 부단장이 미세하게 웃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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