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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207화 (207/208)

207 발버둥

각국의 정찰병들이 확인한바.

언데드 군단은 섬에서부터 출발해 현재 대륙으로 올라왔다.

그들이 지나온 곳은 오직 죽음뿐.

대자연의 생명력도 그들의 흑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지거나 썩어 문드러졌다.

대륙 중앙에 위치한 아사이드.

언데드 군단이 이곳까지 오려면 현재 이동 속도를 생각해 봤을 때 길어야 일주일.

이때 동안 트리스는 각 부서의 부장들을 집무실에 집합시켰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했으니까.

그들을 붙잡고 삼 일 밤낮을 토의해가며 마법사들의 배치와 작전에 대해 토의했다.

이 토의의 맹점은 단연 이것.

군단까지는 잘 물리친다고 가정했을 때 그다음은 어떡하지?

뒤에 젠킨스와 데카드를 죽여버린 탑주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최종 결전은 그와 치러야 할 것이고 그에 대한 정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다행히 젠킨스가 이곳으로 오기 전 섬에서 탑주의 정보를 적어 놓은 수첩이 있었다.

“탑주의 흑무는 마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마나를 잡아먹는다. 그의 앞에선 나의 공간 마법과 데카드의 소환 마법 모두가 힘을 잃고 사라졌다…… 라고, 여기 수첩에 적혀 있습니다.”

“흐음……. 마나를 잡아먹는 다라…….”

“정말 앞이 꽉꽉 막혔군요.”

흐린 안개 속을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과연 이 안개 속 어딘가를 헤쳐나가야 정답이 있을까.

“이 흑무를 파훼해야 탑주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가만히 구석에서 회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엘리스.

그녀는 품속에서 가면 하나를 꺼내 착용했다.

고오오오오-

그녀를 중심으로 바닥에 퍼지기 시작한 가면의 흑무.

“혹시…… 이게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트리스는 기억을 더듬어 데카드를 낚아채 갔던 갈고리를 떠올렸다.

분명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트리스는 그 순간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갈고리를 이루던 흑무와 그것의 느낌은 지금 엘리스의 흑무와 아주 유사했다.

“유적에 갔을 때 흑마법사들이 이 가면에 대해 말했어요. 흑마력을…….”

“띠고 있다고.”

엘리스의 말을 듣던 트리스가 그녀의 말을 이어 마쳤다.

“탑주의 흑무에 흑무로 대항할 수 있다면…….”

이이제이(以夷制夷).

흑무에는 흑무로 맞선다.

“하지만 전 아직 흑무의 컨트롤에 익숙하지 못해요. 탑주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일 게 분명하다고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어떤 마법사도 탑주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엘리스라면 가능해요. 그리고 우리 마법사들은 남은 약점에 집중할 겁니다.”수첩에 적혀 있던 탑주의 약점.

흑무는 한꺼번에 일정량 이상의 마나를 먹지 못한다.

그 이상의 마나는 탑주에게 피해로 돌아가며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우리들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나를 탑주에게 퍼부어야 합니다. 탑주가 엘리스를 인지하지 못하는 게 가장 좋겠죠.”

“알겠습니다.”

“필요한 마도구들은 도움이 된다면 어떤 걸 가져가도 좋습니다. 폭탄들도 전부 가져오세요.”

이때 부장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하지만 부장님. 폭탄 제조는 전시 상황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 것이 마법부의 원칙이라 소량밖에 준비되어있지 않습니다. 공장을 돌린다고 해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만드는 것은…….”

“공장? 그런 게 왜 필요한가.”

밖에서 문을 열고 한 근육질의 남자가 들어왔다.

다부진 목소리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게 하였지만 그를 보려면 상당히 시선을 떨궈야 했다.

켈른은 근육질의 팔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트리스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맡겨주시오. 나와 형제들에게 재료와 장비만 쥐어 준다면 일주일 안에 필요한 만큼 폭탄을 만들어 드리겠소.”

트리스는 아주 살짝 미소 지으며 켈른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괜히 짐만 안겨 드리는군요.”

“허허. 짐은 무슨. 이 전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소.”

“골렘 제조부장.”

“네!”

“지금 당장 드워프들을 데리고 일할 장소를 안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광범위하게 데미지를 입힐 폭탄과 엘리스라는 조커 카드가 준비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잘한 병력 배치뿐.

트리스와 부장들은 다시 토의를 계속해나갔다.

* * *

“저 너머가 아사이드로군.”

“그렇습니다.”

거대한 해골 메머드 위에 올라타 있는 탑주.

메머드 위에는 뼈로 만들어진 옥좌가 그 자태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 위에 고고하게 앉아있는 탑주는 죽음의 군단을 이끄는 수장이란 위치에 아주 걸맞아 보였다.

“앞에 성벽은 어떻게 할까요.”

탑주는 별 감흥 없이 크기만 커다란 성벽을 바라보다가 손을 휘휘 저었다.

저런 건 어차피 방해만 되기 마련.

“알겠습니다.”

눈치 좋게 그의 뜻을 알아챈 제미니는 큰 소리로 외쳤다.

“눈앞에 보이는 건 전부 부숴라!”

와아아아아아-!! 우두두-!!

하위 언데드부터 몬스터 만든 고급 언데드까지.

수십만에 달하는 군단이 돌진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며 지나갔다.

나무는 물론이요, 작은 풀뿌리조차 파내며 그들이 지나간 곳은 쑥대밭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성벽의 차례.

하지만 아사이드는 여타 다른 성들과 달랐다.

위이이잉-! 드르르르르르-!!!!

성벽에서 철커덕! 하고 올라온 마력 벌컨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십 대의 벌컨포가 미친 듯이 총알을 쏴대도 군단의 위세는 아직 줄지 않았다.

“고작 총알? 이게 너희들의 최선이냐?”

탑주의 물음에 답변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커다란 마법진이 떠올랐다.

눈이 멀어 버릴 듯 강한 빛을 띤 마법진에서 새까만 점들이 하나둘 보였다.

그것들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그럴수록 집채만 해지는 점들.

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은 지면에 닿자마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과과과과과광-!!!

대량의 연쇄폭발.

이 공격 하나로 언데드 군단이 대량으로 죽어나갔다.

폭탄의 위력은 코어까지 확실하게 부술 수 있었기에 수복도 불가능했다.

“놀랍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짧은 시간 내에 폭탄을 이렇게나 만들어내다니.”

전쟁 준비가 아니라면 저 정도의 폭탄을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본래라면 이 시간 동안 만들 수가 없는 양.

“됐다. 군단이야 어차피 또 만들면 될 일.”

시체만 있다면 군단이야 몇 번이고 다시 만들 수 있다.”

“본대를 진군시켜라.”

탑주의 뒤에 깔려 있는 언데드 대군의 주력 부대.

저것들 모두 탑주가 심도 있게 만들어낸 언데드로서 내구력이나 공격력이 보통의 언데드를 웃돈다.

우우우웅-

성벽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나오는 기마병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기마병들에게 달려 있는 마크가 전부 제각각이었다.

“항상 적으로 만났었는데 이렇게 싸우게 될 줄은 몰랐소.”

“그러게 말이오.”

“크하하. 살아서 봅시다.”

세 강대국의 기사단장들.

탈리스와 엔티티, 릴리안의 기사단은 마법부의 지원 요청을 받고 바로 달려오는 참이었다.

“돌격해라!!”

기사단장들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전투의 핵심인 마법사들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탑주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기 위해선 저 잡병들은 우리가 해치워야 한다.

“엔티티의 저력을 보여주어라!!”

“탈리스를 위하여!”

“릴리안에 충성을!!”

성문에서 몸을 중갑으로 둘러싼 기사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전투마들은 힘차게 발을 놀리며 돌진했고 그들의 창은 매우 날카로웠다.

챙-! 채챙챙-!!

창과 언데드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사이드에 울려 퍼졌다.

귀를 때리는 파열음.

기사들은 이를 악물어가며 최대한 많은 수의 언데드를 해치웠다.

“모두 심장 쪽에 있는 언데드의 코어를 부숴라!! 이걸 부수지 못하면 놈들은 다시 살아난다!!”

“네!!!”

기사단이 힘차게 대답하고 다시 전투에 열을 올렸다.

언데드와 기사단의 전쟁은 그야말로 박빙.

어느 한쪽의 승리를 점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탑주는 무심하게 전장을 지켜봤고 기사단 또한 탑주에게 관심이 없었다.

기사단은 눈앞에 있는 언데드를 부수는 것에 집중했다.

평생을 연습한 진형은 효율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

창은 계속해서 언데드를 찔렀고 사각지대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반나절 동안 계속된 전투는 결국 기사단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겼다!!”

와아아아아-!!!

기사단은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고 탑주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나쁘지 않은 놈들이야. 내 기사단으로 써도 나쁘지 않겠어.”

탑주의 기다란 로브 자락에서 새하얀 뼈로 이루어진 손이 튀어나왔다.

끝이 안 보이는 흑마력이 움직이고 기사단의 발밑에서 흑색 마법진이 생겨났다.

순간 일대를 덮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

“으으윽……!! 단장님……!!”

“젠장!! 당장 여기를 벗어난다!! 말머리를 돌려라! 어서 성으로 들어가!!”

기사단은 바쁘게 성으로 달려갔지만 탑주는 미소 짓고 있었다.

“늦었어.”

마법진을 딛고 있는 말의 발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났다.

이제 곧 말에 타고 있는 기사들도 똑같이 변하려고 할 때.

슈욱-!!!

기사단이 사라졌다.

“으음?”

마법의 대상이 사라지자 깨져나간 마법진.

그리고 기사단이 사라진 자리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네놈들은…….”

“여기서 이만 멈춰라.”

트리스를 비롯해 세 이종족의 지도자.

퇴마부의 부원들.

각 부서의 부장들.

현 인류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전부 모였다.

모두 7서클에 오른 자들로서 숱한 실전 경험 또한 갖춘 베테랑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들의 희망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면에서 부술 것이다.”

아예 고개를 들 힘조차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저벅- 저벅- 저벅-

탑주가 메머드에서 내려와 흙바닥을 걷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의 존재감이 점점 상상도 할 수 없이 커져갔다.

등에는 땀이 흐르고 입은 바싹바싹 말랐다.

“나의 앞에 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한 무지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희망인가.”

“용기다.”

트리스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양손에 커다란 불길을 일으켰다.

“너에겐 없는 고귀한 것이지.”

“나에겐 없다고……?”

“그래. 너같이 죽음을 피해서 도망친 겁쟁이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하지.”

“크흐흐흐…… 잘도 입을 놀리는구나.”

탑주의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오라.

“어디 너의 혀만큼이나 마법도 따라오는지 보도록 하겠다.”

“옵니다.”

“제가 먼저 나서죠.”

골렘 제조부장이 전투의 시작을 끊었다.

우르르르르-

아공간 주머니에서 쏟아지는 크고 작은 마력 코어.

나오자마자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른 코어는 강력한 인력을 발생.

주변의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끌어왔다.

전쟁으로 인해 생긴 돌 무리나 흙, 강철 파편이 덕지덕지 붙어서 생긴 골렘 부대.

“공격력은 약하지만 한 방 정도는 막아줄 녀석들입니다.”

이런 개활지에서 탑주같이 강한 이를 상대하는 건 불리.

골렘 부장은 방어 수단과 동시에 엄폐물을 만들었다.

“무조건 합동 공격입니다. 개개인의 공격은 어차피 흑무에 먹힐 뿐이에요.”

“그럼 조합대로 가겠습니다. 고드윈!”

“네!”

“우리가 먼저 한다.”

“알겠습니다!”

필립과 고드윈.

둘은 불 속성과 바람 속성을 타고났다.

“불과 바람은 상생의 관계.”

필립은 탑주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내 친우를 죽인 죄는 여기서 치르게 해주마.”

휘오오오오오-

바람에 필립이 점점 떠올랐다.

일행은 잠시 여파를 피해서 따로 자리를 잡았고 고드윈의 몸이 백염에 타오른다.

[필립 오리지널 - 풍도지옥(風途地獄)]

[고드윈 오리지널 - 업화(業火)]

필립의 풍도지옥과 고드윈의 업화가 한데 어우러져 미친 듯한 시너지를 내었다.

서로가 서로의 크기를 키워 주었고 불꽃이 일렁이는 칼바람이 탑주를 덮쳤다.

쿠과과과과과과과과-!!!!

주변의 지형이 바뀔 정도로 엄청난 위력.

바람에 뽑히고 날아간 흙들은 한군데에 쌓여 토산을 만들었다.

촉촉했던 땅은 불길에 바짝 말랐고 쩍쩍 갈라져 숨조차 쉬기 어렵게 했다.

그 재앙의 중심에 선 탑주.

“크크크큭……. 흑무의 약점을 알아낸 모양이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한데?”

“누가 여기서 끝이라고 했느냐.”

[트리스 오리지널 - 슈퍼노바]

새까만 점이 탑주의 앞에서 생겨났다.

이어진 폭발.

쿠우우우우우우-

그러나 소음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우주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침묵을 지킨 폭발은 일행들마저 여파에 휩쓸려 사방으로 날아가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선 신조차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가엾구나. 벌레들이여.”

폭발의 잔재 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고작 7개의 서클로 나에게 대항하려 했다는 것부터 웃기지만 그것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는 것도 웃겼다.”

흙먼지 속에서 걸어 나온 탑주는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부서지고 쪼개져 볼품없어진 오른손.

전에 비해선 놀라운 성과이긴 하지만 한참 모자라다.

‘아직 봉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피해야.’

트리스는 자신의 아공간에 있는 붉은 유물을 바라보았다.

‘이젠 어쩔 수 없어.’

그녀가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꺼내려 했을 때.

올라간 시선에서 저 멀리 토산 위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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