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별은 땅으로 떨어지고
푸스스스스-
주변에 피어오른 흙먼지들이 바닷바람에 날려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보이는 한 로브인의 인형.
로브인은 타들어 가고 찢어져 넝마가 되어버린 자신의 로브를 바라보며 미친 듯이 낄낄거렸다.
“우흐흐흐……!!! 죽을 뻔했구나. 아마 이게 없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지.”
탑주의 손에 들린 기하학적 문양의 큐브.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은 아니 다다를까 유물이었다.
마수들의 합동 오리지널 공격은 순간적으로 흑무가 감당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을 훨씬 넘었다.
하마터면 자신에게까지 피해가 올 뻔했다.
그러나 이 유물의 힘으로 공격을 빨아들였고 결국 살 수 있었다.
물론 유물이 감당하기에도 너무 큰 힘이었기에 지금 유물의 모습은 다 부서져 가고 있었다.
“비록 실패했다고는 하나 나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주다니…… 칭찬해 주마.”
탑주가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으윽…… 젠장…….”
흙먼지가 완전히 걷히자 로브인과 멀지 않은 데서 모습을 드러낸 다섯 마리의 마수.
그들의 몸은 이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해졌다.
“주인님…… 부디……. 살아주십쇼…….”
마지막으로 짹짹이와 마수들은 데카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완전히 사라졌다.
“크흐흐흐……. 허무하도다. 생명이란 이렇게 덧없이 사라지는 법.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내가 더 강하다는 게 이로써 증명되었지.”
탑주의 기감에 순간 찌릿하고 무언가가 잡혔다.
섬의 반대편에서 무언가 거대한 마나의 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호오……. 성공한 건가. 하지만 그 늙은이는 결국 죽겠군.”
허공으로 손을 뻗은 탑주.
그의 손바닥에서 흑무가 갈고리의 모양으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재미난 게 생각난 듯 끌끌 웃던 탑주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스르륵-!!
신호에 맞춰 날아간 갈고리.
“이제 텔레포트를 사용하겠네!”
드디어 이 섬을 빠져나갈 만한 텔레포트를 완성시킨 젠킨스는 결국 이를 발동시켰다.
일행의 발밑이 붉게 물들고 이제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려고 할 때 갈고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이, 이건……!!”
데카드의 발목을 잡아챈 갈고리는 그를 순식간에 마법진에서 빼냈다.
“데카드!!!”
“선배……!!”
갈고리에게 끌려가는 데카드를 구하기 위해 제일 먼저 엘리스와 트리스가 뛰쳐나갔지만, 텔레포트는 그들을 이동시켰다.
슈욱-!
“원래라면 옆에 두고 계속 고문을 해서 정신이 무너지는 걸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갈고리로 끌려가며 데카드가 허공을 나는 와중에도 탑주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데카드는 마나를 폭발시키고 마수들을 소환해 최대한 저항해 보려 했으나 모두 소용없는 짓.
“젠장……!!”
발목이 갈고리에 묶인 채로 허공을 날던 데카드.
“부하들을 따라가거라.”
“소환!!”
데카드가 양손을 펼쳐 마수 하나를 소환할 때 탑주의 오른손에선 흑색 화살이 뭉쳐졌다.
이 화살에는 저주가 고밀도로 담겨있다.
맞는 순간 몸이 썩어들어 가 결국엔 죽음에 이르겠지.
투콰아아앙-!!
로켓처럼 불을 뿜으며 데카드에게 발사된 화살.
“크으윽……!!!”
발목을 묶던 갈고리가 풀리자 데카드는 힘없이 해수면으로 떨어졌다.
풍덩-!
인간 하나가 떨어져봤자 바다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 다시 고요해졌다.
데카드가 일으킨 바다의 파문도 바람 몇 번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죽었군.”
바다에 떨어지기 직전 놈이 가진 마나의 불씨가 꺼진 것을 확인했다.
“만족스러운 유희였어.”
탑주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 부서져 버린 흑탑으로 걸어갔다.
젠킨스에 의해 조각나 버린 언데드들이 바닥에 가득했지만, 이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복.”
그의 한 마디면 코어가 부서지지 않은 언데드들은 파편이 어디에 있든 다시 원상 복구되었다.
“끝났군요.”
“그래. 생각보다 재미있었어.”
탑 안에 있던 제미니는 탑주의 옆을 걸으면서 그를 보좌했다.
제미니는 들고 있던 서류를 고쳐 들고 차례차례 읊어나갔다.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본격적으로 나서실 차례입니다.”
“그래야겠지.”
“네. 그리고 제일 강한 무력 기관인 마법부를 시작으로 대륙 전역의 나라를 집어삼키면 됩니다.”
“쉽구나.”
“계획에 방해될 만한 건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금 섬으로 온 떨거지 중 그 둘이 유일한 장애물이었으나 그들은…….”
“죽었지.”
아주 확실하게.
한 놈은 자신이 직접 죽였고 다른 한 놈은 유물에 모든 생명력이 빨려 죽었을 것이다.
생명력은 한 번 빨린 이상 다시 보충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회생의 가능성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명령을 내려주십쇼.”
책상에 놓인 세계 지도에서 한 지역에 손가락을 댄 탑주.
“아사이드로 간다.”
손가락이 닿은 아사이드의 지도가 흑염에 불타올랐다.
* * *
“데, 데카드가…….”
“다시 가야겠습니다.”
엘리스는 얼이 빠진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트리스는 당장 젠킨스의 집무실을 뛰쳐나가려 했다.
“안 돼요! 총장님! 너희들도 어서 말려봐!”
부원들은 그런 트리스를 뜯어말려야 했다.
그러나 팔을 붙잡고 바짓가랑이까지 질질 끌어보아도 트리스는 계속 전진을 거듭했다.
이제 그녀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
젠킨스가 대가를 지불할 시간이 왔다.
“으윽…….”
털썩-
책상을 짚고 쓰러진 젠킨스.
“장관님!”
필립이 급하게 그를 부축시켜 보려 하지만 젠킨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호전되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킨스는 숨을 쌔액 쌔액 몰아쉬며 트리스에게 손을 뻗었다.
“총장님! 장관님이 부르세요……!”
“…….”
이것만은 무시하지 못한 트리스는 결국 그의 곁으로 왔다.
“트리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살아있어. 분명 그럴 거야…….”
“……그걸 어떻게 압니까.”
“나는 그를 믿으니까……. 자네도 그렇지 않나…….”
순간 트리스는 자신의 분노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불가마 속에 들어있던 뜨거운 강철이 찬물 속에서 식혀지듯 트리스는 다시 차분함을 되찾았다.
“선배는…….”
“자네가 살아있어야 돌아온 그가 슬퍼하지 않지 않겠어……?”
“…….”
젠킨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트리스의 손을 잡았다.
“내 말 잘 듣게. 곧 탑주의 군대가 이곳으로 몰려올 거야. 하지만 나는 도와줄 수가 없어.”
“그, 그럼 저희끼리 어떻게……?”
“이곳 내 방에 보면 최후의 날이라고 적힌 책이 있을 거야…….”
눈이 퍼뜩 뜨인 엘리스가 집무실 벽면에 걸린 책장에서 그가 말한 제목의 책을 꺼내왔다.
“여기 있어요!”
젠킨스는 최후의 날이란 책의 표지를 열고 마지막 페이지를 열었다.
무언가 일련번호 같은 것이 아주 작게 쓰여 있었다.
“이 번호로 마법부의 동력실에 가서 결계 동력원에 입력하면 마법부 전체를 감싸는 결계가 만들어지면서 마법부의 인원 모두에게 메시지가 갈 거야.”정말 말 그대로 최후의 최후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젠킨스에게 후회는 없었다.
굳이 있다면 이렇게 무거운 짐을 선배로서 덜어주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죄책감이 어깨를 무겁게 했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 주게……. 마법부에는 유용한 물건들이 넘치니 그것들을 사용해도 좋아…….”
“하지만 부장관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젠킨스가 트리스의 말을 끊었다.
“부장관은 필요 없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앞으로 자네가 차기 마법부 장관이니까.”
“네……?”
트리스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그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승진 선물로는 딱히 준비한 것이 없구먼…… 미안허이…….”
젠킨스는 조금씩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저항하려 했으나 몸은 좀처럼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제 죽음이 가까워졌다.
입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전 마법부 장관 젠킨스 그레이엄은 숨을 거두었다.
“임종하셨습니다…….”
필립이 나지막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천재란 단어가 아깝지 않았던 모든 마법사의 귀감이 방금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적들이 오기 전에 어서 묻어 드려야죠.”
가만히 젠킨스의 죽음을 지켜보던 키이라가 어두운 낯빛으로 얘기했다.
“가시죠.”
카론이 젠킨스의 주검을 들어 올리고 모두가 그를 따라 내려왔다.
마법부 뒤쪽에 작은 산.
햇볕도 잘 들고 잡초도 별로 많지 않은 곳이다.
생전에는 젠킨스가 자주 산책하러 올라왔던 곳.
“제가 관을 만들어 드릴게요.”
키이라는 자연의 마법으로 주변의 나무들을 떼어내 관 하나를 금방 만들어냈다.
“땅은 제가 파죠.”
땅 속성 마법도 사용할 줄 아는 아스카는 관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빠르게 팠다.
키이라가 만든 관에 젠킨스를 눕히는 카론.
벌써 싸늘해진 시체는 그의 죽음을 실감케 했다.
관의 문을 닫자 구멍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졌다.
“땅을 다시 메꿀게요.”
뚫려 있던 구멍은 천천히 메꿔졌지만, 그의 죽음으로 생긴 공허함은 더욱더 커져가는 것 같았다.
누가 젠킨스를 대신해 이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그의 빈자리가 어색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트리스는 반드시 데카드가 돌아올 때 동안 그 일을 해내 보이겠다며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맹세했다.
“저희도 더 이상 슬퍼할 때가 아닙니다.”
“맞아요. 곧 그 언데드들이 몰려올 거라고요.”
“흑기사는 없어졌지만 그 탑주란 존재가 문제입니다.”
입술을 살짝 깨문 트리스.
“일단 주변국을 비롯해 모든 나라에게 병사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사실상 마법부가 뚫리면 모든 나라가 멸망하니 거절하진 않겠지요.”
“네!”
부원들이 지원 요청을 담당.
나머지는 최후의 결계를 작동시키러 갔다.
“0…… 3…… 1…… 2…… 0…… 6. 전부 입력했어요!”
“작동.”
커다란 레버를 아래 끝까지 당겼다.
철커덩-! 우우우웅-!!
거대한 동력원이 불을 뿜으며 장치가 돌아가고 결계가 마법부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마법부에서 일하는 모든 인원에게 전달된 메시지.
젠킨스가 미리 이런 상황을 대비해 준비한 것으로 마법부의 주요 인력들은 이 메시지의 뜻을 알고 있다.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마법부에 존재하는 모든 부서의 부장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경악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진 몰라도 8서클 대마법사의 죽음이라니.
마법의 길을 걷는 이라면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트리스 아드리안입니다.]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트리스가 마법부의 전역으로 자신의 음성을 내보냈다.
[여러분 모두 마법부 장관, 젠킨스 그레이엄의 임종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그분은 적과 싸우다 치명상을 입으셨고 그 끝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8서클 마법사에게 치명상을 입힌 적?
모두가 허억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트리스의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그 적은 흑마법사들의 수장. 통칭 탑주라고 불리는 자입니다. 탑주는 현재 아사이드로 오고 있고 그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사상 최강의 마법사라고 불리던 젠킨스도 이기지 못한 적.
그 적이 지금 아사이드로 오고 있다.
방송실에 있던 트리스는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을 직원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대충 예상이 갔다.
혼란과 절망, 공포에 휩싸여 있겠지.
[하지만 저희가 가진 마도구들과 여러분들의 힘. 지금껏 쌓아온 지식. 이것들을 합친다면 놈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트리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마지막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젠킨스 전 장관님의 명령에 따라 현 마법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니 정통성의 문제는 나중으로 하고 제 말에 따라주십쇼. 그리고 각 부서의 부장들은 당장 집무실로 오시길 바랍니다.]
딸깍-
마이크를 끈 트리스는 기다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잘하셨어요.”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서 탑주가 오기 전에 병력 배치를 완료해야 해요.”
트리스는 다시 집무실로 서둘러 올라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