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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204화 (204/208)

204 모든 걸 먹어치우는

“푸르르! 이게 끝이더냐!”

고오른은 기사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넣으며 한껏 콧김을 내뱉었다.

인간계에 와선 처음 겪는 고된 전투!

이렇게 땀을 비 오듯 쏟은 건 마수계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그 강대하다던 흑기사의 갑주는 어느새 찌그러지고 움푹 패여 주먹 자국이 형형했다.

“크하하하!”

껄껄 웃으면서 계속 주먹을 내뻗는 고오른.

흑기사는 계속 묵묵히 방어만을 이어가다가 고오른의 주먹이 끊긴 실낱 같은 틈새를 찾았다.

후욱-!!

곧바로 찔러 들어오는 흑검.

“걸려들었구나!”

하지만 오히려 씨익 웃은 고오른은 날아들어 오는 흑기사의 팔을 그대로 꺾어 스스로의 목을 찌르게 했다.

푸욱-!!!

부들거리던 흑기사는 그대로 목에 검이 꽂힌 채 쓰러졌다.

“역시 나도 안 써서 그렇지 머리가 참 좋아! 음!”

딱히 머리가 좋다기보단 수만 년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을 뿐이다.

뭐, 어쨌든 결과는 좋으니까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흐음……. 위층도 슬슬 끝나가나 보군.”

고오른이 흑기사와 싸우고 있을 때 위층에서도 격렬한 흑마력와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필히 다른 마수들도 흑기사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오른의 예상대로 바로 위층의 요르 또한 거의 싸움을 끝내가고 있었다.

“블리자드!”

요르의 손이 합장하듯 모이자 극한의 눈보라가 층을 뒤덮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적-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한 흑기사의 갑주.

그러나 항마력까지 갑옷에 처발랐는지 얼자마자 계속 녹아버리기 일쑤였다.

겉보기에는 흑기사에게 아무런 타격이 없어 보였지만 요르는 웃고 있었다.

“콜 오브 프리즌!”

겉이 안 된다면 안을 얼린다!

요르가 주먹을 꽈악 쥐자 흑기사의 갑주 안으로 파고들었던 냉기가 그대로 부풀어 올랐다.

“하하하핫! 너도 갑옷 안은 별게 없겠지!”

갑옷의 방어력이 아무리 뛰어나 봤자 그 안은 평범하기 마련.

요르는 냉기가 어디든 파고들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흑기사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아직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니 움직임이 봉쇄당한 이때 확실히 끝내놓아야 한다.

검지를 입에 갖다 댄 요르.

그녀는 가볍지만 길게 입김을 불었다.

스아아아아아-

치이이익-

시릴 듯 차가운 입김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비단 추위뿐만이 아니었다.

8서클로 올라서면서 더욱 강력해진 맹독.

닿기만 해도 한 줌의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맹독이 흑기사를 절여나갔다.

“이 정도면 됐겠지?”

갑옷은 아니지만, 그 안쪽 살은 진득하게 녹아 피 웅덩이가 되어버렸으니 이제 안심이다.

“역시 입 냄새 하나는 네가 최고로군!”

이제 막 위층으로 올라온 고오른은 요르의 입김에 죽은 흑기사를 보고 엄지를 세웠다.

“야! 이게 어떻게 입 냄새야!”

“봐라! 네 입 냄새에 저놈이 녹아버렸지 않느냐!”

“이거는 독이야 독! 입 냄새가 아니라고!”

요르가 빽 소리 지르자 고오른은 손을 휘휘 저으며 간단히 무시했다.

“어쨌든 빨리 올라가자. 흑기사를 전부 쓰러뜨리고 어서 마수왕님에게 합류해야 하니.”

둘이 투닥투닥 싸우며 긴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티이라는 흑기사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으으……! 단단하다!”

강체화로 단단해진 주먹은 마구잡이로 흑기사를 두들겨 팼지만 큰 피해는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흑기사 또한 티이라에게 전혀 상처를 내지 못했다.

까아아앙-!!

칼과 피부가 부딪쳤다고는 절대 상상할 수 없을 소리.

마치 티이라가 모루라면 그걸 계속 때리는 흑기사는 망치와도 같아 보였다.

모루와 망치.

이 중에서 먼저 깨지는 것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

콰아아아아앙-!!!

결국 흑기사의 검이 단단한 티이라의 몸을 베지 못하고 완전히 부서져 나갔다.

“하하하핫! 약하다! 약해!”

무기가 사라진 흑기사는 티이라의 공격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고 결국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뭐야? 끝났어?”

“방금 끝났다!”

“또 보니까 신나게 맞았구만.”

“헤헤.”

티이라의 싸움 스타일을 알고 있던 둘은 살짝 멍이 든 티이라의 양팔을 쳐다봤다.

“어쨌든 빨리 레오를 도우러 가자!”

“하아……. 여긴 계단이 뭘 이렇게 많은 거야!”

그냥 마음 같아선 흑탑 자체를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근처에 동료들이 너무 많아 꺼려진다.

마수들은 어쩔 수 없이 계획에도 없는 계단 운동을 하며 레오가 있는 네 번째 층으로 올라갔다.

우다다 하고 달리는 소리가 점점 네 번째 층에 울려 퍼졌다.

“…….”

무표정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던 레오.

그는 살짝 눈을 돌려 계단을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위로 옮겼다.

뻥 하고 뚫려버린 천장.

무슨 이유에서인지 통째로 위층이 사라져버렸다.

카가가가각-!!

잠깐 한눈을 판 틈을 놓치지 않은 흑기사의 검날이 번뜩였다.

금방이라도 레오의 목이 날아갈 듯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으나 정작 본인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

보지도 않고 검을 들어 올린 레오는 매끄러운 검신으로 흑기사의 검을 받아쳐 뒤로 흘려버렸다.

쿠구구구구구궁-

너무 강한 힘이 검에 담겨 있던 탓에 흘리고 흘려도 바닥이 부서질 뻔했다.

하지만 상대가 강할수록 자신도 강해지는 것이 레오의 검술.

레오는 흑기사의 힘에 자신의 힘을 더해 깔끔히 갈무리했다.

그의 광검에 감기는 어마 무시한 검기.

감정 따윈 존재하지 않은 흑기사가 뒤로 주춤거릴 만큼 위협적인 검기다.

“…….”

죽어라.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으나 번쩍이는 금안이 대신 말해 주었다.

촤아아아아아악-!!!

검에서 뻗어 나간 금색의 삭월.

그것은 흑기사를 크게 베어버리고 나아가 층까지 잘라버렸다.

“눈부시다! 레오!”

“그보다 위층 어디 갔어? 마수왕님은 어디 계신 거지?”

“저기 보인다!”

“어디어디!”

레오의 일격으로 훤하게 뚫려버린 벽면 저 너머에서 탑주와 눈이 마주쳐 버린 데카드가 보였다.

* * *

“크헉……!!!”

[주인님!!]

짹짹이가 급하게 탑주와 거리를 벌렸지만 이미 당하고 난 뒤였다.

“자네 괜찮나?!”

“괘, 괜찮습니다. 지속형 저주는 아니에요. 후우……. 후우…….”

“호오……. 우리의 저주에 대해 꽤나 박식한 모양이구나.”

탑주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흑마법사도 아닌 자가 이토록 저주에 대해 꿰뚫고 있다니.

방금 전 손가락의 신호를 알아차린 것도 그렇고 자신의 눈을 매개체로 발동된 저주 또한 알아차렸다.

반응은 살짝 아쉬웠지만.

어쨌든 이 저주가 지속형인지 단발형인지 알아채는 판단력 또한 뛰어나다.

탑주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옥좌의 파편을 잠시 내려다본 후 다시 데카드를 쳐다보았다.

“데카드. 너는 죽이기 너무 아깝구나. 나와 손을 잡지 않으련?”

“개소리 말아라.”

데카드가 단칼에 거절하자 탑주는 팔을 들어 검지로 그를 가리켰다.

“으윽……!”

고작 이런 작은 행동만으로 이 정도의 위압감을 준다고?

꽁꽁 얼어버린 듯 양팔과 다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절하면 죽음뿐이다.”

더 이상 봐주는 건 없다는 건가?

탑주의 어조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사막처럼 건조해졌다.

젠킨스 또한 이 위압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건지 이를 악물며 마나를 내뿜고 있었다.

순식간에 전투 불능 상태가 된 둘.

탑주는 다시 한번 물었다.

“어떠냐, 데카드. 우리가 손을 잡으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발아래 둘 수 있다. 벌레 같은 인간 따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직 강자가 군림하고 강자만을 위한!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흥분에 찬 탑주의 목소리.

그는 침묵하고 있는 데카드를 향해 말을 이었다.

“너도 역겹지 않더냐. 손가락 하나면 죽일 수 있는 벌레들이 앞에서 나대고 귀찮게 굴지. 너와 나의 힘 앞에선 나라도! 그 어떤 시스템도! 마도구도 무용지물인데 말이야.”탑주는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서 내 손을 잡아라. 그럼 너에게 세상을. 아니 모든 것을 주겠다.”

“…….”

뼈로 이루어진 손이 데카드의 눈에 들어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어진 데카드의 화답.

그는 당당하게 중지를 들어 보였다.

“나가 죽어. 이 새끼야.”

“…….”

탑주는 손을 말아 쥐며 다시 거두었다.

“결국 네놈도 멍청한 벌레 중 하나였군.”

그의 손에서 어두운 흑무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짹짹이와 데카드의 머릿속에서 급하게 울려대는 경종.

저걸 정통으로 맞는다면 정말 죽는다.

[주인님. 최대한 벗어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구속력이 너무 강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타이밍을 잘 맞춰서 절 벗으신다면 제가 대신 공격을…….]

“죽어라.”

탑주의 검지로 모인 흑무가 바늘같이 뾰족해졌다.

[주인님……!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저를……!!]

“괜찮아. 짹짹아. 아무래도 지원군이 온 것 같다.”

피슉-!!!

데카드에게 파공음을 내며 날아오는 흑무.

분명 빠른 속도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척까지 다가왔으나 지금 이 남자가 조금 더 빨랐다.

순간 눈이 아파올 만큼 강한 광휘가 퍼져나가고 금발의 남자가 데카드의 앞에 서 있었다.

남자의 손에 들린 흑무는 강한 빛의 힘에 힘을 잃고 사라졌다.

“마수왕님! 저희 왔어요!”

“레오! 잘했다!”

“이놈이 그 해골바가지군요! 당장 부숴버리겠습니다!”

레오를 뒤늦게 따라온 나머지 마수들도 이곳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뭐냐, 네놈들은.”

갑자기 늘어나 버린 벌레들.

하지만 이번 벌레들은 무시할 수 없는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일이 귀찮아졌다.

그리고 하나같이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마나 파동.

아까 코트로 변해 버린 남자와 같은 기운이다.

그렇다면…….

탑주는 잠깐 생각하다가 양손에 흑무를 일으켰다.

“조심해. 저 흑무는 마나를 잡아먹는 특성이 있어서 아까 마수들도…….”

데카드는 여기까지 말했다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부수면 다 똑같기 마련!”

제일 먼저 나선 고오른이 8기통 엔진처럼 마나를 미친 듯이 퍼 날랐다.

[고오른 오리지널 - 화산 대분화]

쿠과과과과과과과과-!!!!

장내에 모든 이가 딛고 있던 바닥이 전부 폭발에 부서지고 그 여파에 젠킨스와 데카드의 몸이 날아갔다.

이대로면 어디 바위에 머리라도 부딪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젠킨스가 나섰다.

“공간 왜곡!”

다행히 그의 빠른 대처로 중심을 잡은 데카드는 뿌옇게 올라온 흙먼지를 헤쳤다.

아직 시야는 흙먼지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마나로 이루어진 육체였나. 대단치도 않은 힘이었군.”

탑주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오고 흙먼지가 점점 거쳐 갔다.

“나의 마나를 먹고 있는 건가……! 크윽…….”

멀쩡히 서 있는 탑주와 무릎 꿇은 고오른.

그의 오른팔은 흑무에 잠식되어 점점 먼지로 변해 가고 있었다.

다른 마법과는 다르게 고오른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그를 이루고 있는 마나의 밀도가 말도 안 되게 높기에 탑주의 흑무조차 한꺼번에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오른!!”

“이, 이게 뭐냐!”

“…….”

마수들이 급하게 그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아직 멀쩡한 한쪽 팔을 들며 고오른이 소리쳤다.

“다가오지 마라!!”

우뚝-

고오른의 함성에 모두 멈춰선 세 마수.

탑주는 낮게 조소했다.

“크흐흐……. 동료들을 살리려고 하는가. 하지만 이미 늦었도다.”

그가 양손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힘껏 들어 올리자 검은 흑무가 모든 마수를 끌어당겼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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