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결전의 섬
데카드는 순간 아차 싶었다.
또 저번처럼 공명 폭발이 일어나려는 건가!
“소……!”
급하게 마수들을 불러 폭발을 막아보려 했으나 타이밍이 살짝 늦어버렸다.
“걱정 말게. 내가 이미 주변 공간을 왜곡시켜 두었으니.”
하지만 다행히 젠킨스가 한발 빠르게 나서 공간을 비틀었기에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데카드는 유심히 유물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폭발이 일어날 뻔했다는 것치곤 너무 안정적인 유물.
“장관님. 공간 왜곡을 한 번 풀어보시겠어요?”
“왜 그런가?”
잠깐 뜸을 들이던 데카드는 곧이어 말했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알겠네. 다만 조심하게.”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마법은 준비해 주세요.”
“물론이네. 그럼 왜곡을 치우도록 하지.”
젠킨스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공간이 다시 제자리를 되찾았다.
다시 한번 파박 하고 튀는 스파크.
“…….”
모두가 숨을 죽이고 유물을 쳐다보았다.
우우우웅-
그러다 갑자기 허공으로 떠오른 유물.
폭발의 징조라고 하기엔 아직 약해서 조금만 더 두고 보았다.
시간이 더 지나자 유물에게서 에너지 기류가 흘러나왔다.
그 기류는 융합되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부들거렸다.
“공간을 왜곡시키겠네.”
너무 위험한 반응에 젠킨스가 나서려 하자 데카드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아직 아닙니다.”
단순한 직감에 불과했지만, 아직 무언가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적중했다.
계속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에너지 기류가 어딘가로 쏘아진 것이다.
슈우욱-!
콰아아아앙-!!
뻗어나간 기류는 젠킨스의 집무실 벽을 부수고 날아갔다.
“저, 저게 어디로 날아가는 거죠?”
“제 예상이지만 아마 마지막 유물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것 같군요.”
“근데 저 방향은…….”
키이라가 뒷말을 흐렸다.
그리고 세계 지도에 집중되는 모두의 시선.
“네. 저희가 가야 할 흑탑이 있는 섬입니다.”
“우, 우연의 일치 아닐까요?”
아스카의 말처럼 굳이 안 해도 될 기우일 수 있다.
“그렇다기엔 방향이 너무 정확해.”
많고 많은 방향 중에 하필 저 섬 쪽으로 정확히 가다니.
이건 뭔가 이상하다.
“결론은 탑주도 유물을 보유 중이란 거군요.”
“그렇지.”
“하아……. 난이도가 훨씬 올라갔네요.”
트리스의 한숨이 방 안에 울려 퍼지고 희망이 한풀 꺾여나갔다.
“그래도 가야만 하네. 우리가 세상의 희망이니까.”
젠킨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직이지.”
“알겠습니다.”
“가보자고요!”
슈욱-!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순식간에 데카드의 개인 섬 바닷가로 온 일행.
저 멀리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트로이카와 산호 성이 보였다.
“저쪽까지 한 번 더 텔레포트를 사용하겠네.”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는 어느새 산호 성 안으로 와 있었다.
안쪽에는 역시 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라이아가 빠르게 바닷물을 바깥으로 빼버려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트로이카. 움직이세요.”
우우우우웅-
낮은 진동 소리로 대답한 트로이카.
그는 바다 위를 빠르게 유영하며 흑탑이 있는 결전의 섬으로 이동했다.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시원한 바닷바람.
마음은 더없이 무거웠지만, 이 바람에 다 털어내 버리고 싶었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데카드.
그의 옆으로 트리스와 엘리스가 다가왔다.
“얼굴에 걱정과 근심이 한가득이에요.”
“맞게 봤네.”
엘리스의 말대로 지금 자신의 마음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도 죽지 않을 겁니다.”
너무 희망에만 차 있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뻔한 거짓말이라도 필요한 때.
데카드는 알게 모르게 씨익 미소 지었다.
나름의 위로가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섬이 보입니다.”
산호성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있던 라이아가 말했다.
점점 밑에 있는 일행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하는 섬의 모습.
“라이아, 키이라. 부탁해.”
“알겠어요!”
“이렇게 최선을 다해 마법을 펼치는 건 오랜만이군요.”
트로이카의 거대한 머리 위로 이동된 라이아와 키이라.
산호 성 바깥으로 나오니 강한 바닷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이제 해볼까요?”
키이라가 묻자 라이아는 자신의 마나를 최대한 일으키는 것으로 대답했다.
“갑니다.”
“네!”
자연에 가장 가까운 종족.
엘프와 나가.
그중에서도 하이 클래스 마법사의 마나가 자연과 동화되기 시작했다.
거칠게 몰아치던 파도가 잠잠해지고.
태양만이 자신을 뽐내던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물들어갔다.
“오오! 자연의 마나가 모이고 있다! 둘에게로!”
“인간계에서 이 정도로 자연 마법을 구사하는 이가 있다니! 이건 놀라운데요?”
마수계에서 뽑아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순수한 마나의 응집.
마수들은 드물게 감탄했다.
그리고 대자연의 마나를 전부 완전 충전한 둘은 단숨에 방출해냈다.
[에이션트 나가 매직 오리지널 - 오케아노스]
[에이션트 엘프 매직 오리지널 - 스톰 브링거]
콰아아아아아아앙-!!!
휘오오오오오-!!!
잠잠하던 바다에서 갑자기 거대한 물의 장벽이 치솟더니 커다란 해일이 되어 섬으로 나아갔다.
먹구름으로 꽉꽉 막혀있던 하늘은 바다에서 와류가 치는 것처럼 소용돌이 모양을 만들어갔다.
그 모양의 중심에서 점점 삐져나오기 시작한 꼬리.
꼬리는 그대로 바다에 강하하며 슈퍼 토네이도를 만들어냈다.
“……거의 재앙이나 다름없군.”
젠킨스는 섬보다 훨씬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해일과 토네이도를 보며 말을 잃었다.
“저희는 여기서 대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콜록……! 섬까지 가서 더 도움을 드리고 싶었는데 저도 많이 늙었네요. 하하…….”
겨우 산호성 안으로 걸어 들어온 둘을 엘리스와 아스카가 급히 부축했다.
“정말 수고했어. 뒤는 우리한테 맡기고 들어가.”
키이라와 라이아는 둘의 부축을 받으며 방을 나갔고 해일과 토네이도는 섬과 가까워졌다.
아니, 가까워지려고 했다.
터어어어어어엉-!!!
두 재앙이 섬에 닿기 전에 거대한 결계가 그것들의 침입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결계는 재앙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자연의 마법도 같이 없어져 버렸다.
“나쁜 상황은 아니네. 결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것을 부쉈으니까.”
“맞습니다. 이제 저들도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았겠죠.”
더 이상 시간 끌 필요 없다.
“장관님. 저희를 저 섬으로 이동시켜주십쇼.”
“꽉 잡게.”
딱히 잡을 거라곤 없었으나 심장이라면 떨어지지 않게 꽉 잡고 있는 중이었다.
슈욱-!!
눈을 감았다 떴을 땐 황량한 섬의 숲으로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맞게 온 것 같군.”
그들이 딛고 있는 땅에서 조금만 턱을 들면 탑주가 있는 흑탑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마치 뼈로 만든 것처럼 하얀 모습은 오히려 백탑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다.
어쨌든 이 얘긴 각설하고 일행은 숲 안을 걸어보았다.
생명력이라곤 없는 듯 하얗게 질려버린 풀들.
나무도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화권!”
그때 갑자기 백염을 불러일으켜 주변을 완전히 태워버린 고드윈.
이미 말라 비틀어져 있는 것들이라 그런지 모두 얼마 안 가 하얀 재로 변해버렸다.
“……왜 그랬어?”
일행 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고드윈을 쳐다보자 그는 멋쩍게 대답했다.
“혹시라도 기습이 있을까 봐…….”
“잘했어.”
시야를 가릴 만한 건 전부 태웠으니 이제 누가 다가오더라도 잘 알 수 있게 됐다.
5분 정도 이젠 평지가 되어버린 숲을 걷고 있을 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하…….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어리석은 놈들.]
“탑주인가.”
[주로 그렇게 부르더군.]
“빨리 나와라. 오늘 너 때문에 잠도 별로 못 잤으니까.”
데카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기에도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
탑주는 미친 듯이 광소했다.
[크하하하하!! 날 웃겨서 죽이려고 했다면 아주 아깝구나. 크흐흐!! 내가 먼저 나가면 모처럼의 유희를 즐길 수 없지 않겠느냐. 이곳 최상층까지 뚫고 와 봐라. 그럼 상대해 주지.]
크아아아아-!! 달그락-! 달그락-!
탑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흑탑에서 물밀듯 터져 나오는 언데드 군대.
“부탁한다. 얘들아.”
“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다치면 안 돼요. 데카드.”
“당연하지.”
작전에서 짰던 대로 언데드 군대는 부원들과 필립, 트리스, 켈른이 맡았다.
데카드와 젠킨스, 아토스, 마수들은 텔레포트를 이용해 바로 흑탑에 진입.
내부에도 이곳을 지키는 언데드 병력을 남겨두었는지 꽤나 강한 위세에 언데드들이 즐비했다.
“여긴 제가 하겠습니다.”
아토스가 양손을 들고 마나를 집중시켰다.
곧장 손바닥으로 모인 마나는 곧 날카로운 바람으로 바뀌었다.
“스톰 커터!”
태풍의 바람처럼 거대한 삭월풍은 순식간에 뻗어 나가 언데드들을 양단하고 도륙 냈다.
“잘했네.”
“이제 라이프 배슬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마수들이 활약을 펼칠 때.
마수들은 바깥으로 힘차게 튀어나왔다.
“으윽……. 근데 마수왕님! 문제가 있다!”
“뭔데?”
“이곳 흑탑 자체에 흑마력 냄새가 너무 진해서 라이프 배슬의 냄새를 못 맡겠어요!”
여기에도 언데드, 저기에도 언데드.
온 사방팔방이 언데드로 둘러싸여 있다.
“확실히 이런 곳에서 냄새로 구별을 해내긴 어렵겠군.”
도움이 못 되자 급격히 시무룩해진 마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마수왕님. 도움이 못 되어 드려서…….”
“아니야. 괜찮아. 너희는 존재 자체만으로 나한테 힘이 되어주거든.”
그 힘은 육체적인 힘이기도 하고 정신적인 힘이기도 하다.
풀이 죽은 마수들을 한꺼번에 힘껏 끌어안은 데카드.
그가 한 번도 한 적 없는 행동에 네 명의 마수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기죽지 말고 날 도와줘.”
“네, 네……!”
“알았다!”
“물론입니다!”
“…….”
마수들의 만족스러운 대답을 뒤로하고 데카드는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둔 계단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추적 방법은 물 건너갔으니 이젠 두 번째밖에 방법이 없을까요?”
데카드의 말에 젠킨스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애초에 라이프 배슬이 어디 있는지. 이 탑에 있긴 한 건지조차 알 수 없으니까.”
“그럼 올라갑시다. 저희가 시간을 끌수록 밖에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져요.”
“저는 여기 남겠습니다. 라이프 배슬이 물 건너간 이상 제가 여기 더 있어도 짐만 되니까요.”
아토스는 쓰게 웃으며 바깥으로 향하는 문으로 걸어갔다.
“저희는 밖에서 언데드들을 상대하고 있을 테니 얼른 끝내고 돌아와. 집행관.”
“걱정 마.”
집행관이라는 직책으로 불리자 데카드는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옛날 생각나네.”
데카드는 구태여 웃음을 지우지 않고 계단을 바라보았다.
“올라가시죠.”
“가지.”
아토스가 나가고 젠킨스와 데카드, 그리고 마수들만이 남게 되었다.
처음 층을 올랐을 때.
그곳엔 거대한 바위처럼 떡하니 중앙을 차지한 해골 갑주의 기사가 있었다.
“흑기사.”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계획대로 흑기사는 마수들이 상대한다.
제일 처음으로 나간 건 가장 호전적인 성격의 고오른.
“맡긴다.”
“편안히 올라가십쇼!”
고오른은 기사를 마주하고 자신에게로 뿜어져 나오는 귀기를 느꼈다.
“크하하. 봐줄 만하구나.”
투지가 끓어오른다.
당장 앞에 있는 흑기사와 자신 중 누가 더 강한지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가 전신을 지배했다.
“붙어보자!!”
고오른의 다리 근육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르며 거대한 힘을 밀어주었다.
콰아아아앙-!!
주먹과 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둘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일격을 내질렀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