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98화 (198/208)

198 두 종족의 지도자

“주인님.”

“왜?”

“심심하십니까?”

갑자기 심심하냐고 묻는 짹짹이

“어.”

사실 부원들도 다 피곤해서 자고 마수들은 지금 밥 먹기 바빠서 할 게 없긴 했다.

“그럼 이걸 보시죠.”

짹짹이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다른 까마귀의 시야와 링크되었다.

데카드의 눈앞으로 루비아의 시내가 펼쳐졌다.

그 안을 채운 사람…… 아니, 엘프와 드워프는 서로 옥신각신 싸우고 있었다.

“……이게 뭐냐?”

“어떤 연유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니다벨리의 켈른과 시르가의 키이라가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군요.”

아무래도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경비병 오기 전에 빨리 가자.”

펄럭-!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 데카드.

그는 빠르게 상공을 날아 인간은 어디 가고 엘프와 드워프로 바글바글한 광장으로 도착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엘프가 숲을 버리다니! 당신들은 분명 흑마법사들의 첩자일 것이오!”

“흥! 그건 저야말로 묻고 싶은데요? 드워프는 한 번 정한 산맥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고 하는데 여길 온 걸 보면 그쪽이야말로 첩자 아니에요?”

“뭐라고?!”

양 진영이 서로를 향한 투기를 드높이고 있을 때 하늘에서 누군가가 떨어졌다.

“그만 싸워요. 둘 다 첩자는 아니니까.”

반가운 얼굴이 등장하자 키이라와 켈른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으응? 당신이 뭔데 우리 귀인을 보고 웃죠?”

“그게 무슨 소리냐! 데카드는 우리 드워프의 친구다!”

둘이 별것도 아닌 이유로 계속 싸우는 게 꼭 아스카와 고드윈을 보는 것만 같다.

“일단 빨리 제 저택으로 가시죠. 이곳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

“알겠소!”

“좋아요!”

대답이 겹치자 또 서로를 불꽃같이 노려본다.

“에휴…….”

데카드는 본능적으로 앞으로가 매우 피곤해지리란 걸 직감했다.

* * *

“어쩔 수 없이 이곳 마당과 정원에서 주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소! 무척 넓어서 전부 굴러다녀도 문제가 없겠구려.”

드워프들은 간이침대들을 펴서 그 위에 누웠고 엘프들은 정원의 풀을 이용해 집을 만들었다.

“참…… 이걸 보면 엘프도 손재주에선 밀리지가 않아.”

그냥 정원의 풀을 몇 번 엮더니 침대와 집을 만드는 솜씨는 한 명의 장인과도 같아 보였다.

“그래서 두 분은 왜 루비아로 오신 겁니까? 아예 이사 오는 거로 결정하신 건가요?”

“그것에는 사연이 있소.”

“맞아요.”

이곳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둘의 생각이 같아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생각뿐만이 아니었다.

“저희는 귀인이 가신 뒤로도 매일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언데드 대군이 몰려오더군요.”

데카드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키이라의 말에 집중했다.

“엘프의 전사들과 저는 최대한 그 습격을 막아보았고 결국 이겨냈습니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지.”

지금까지 자신들이 부수고 자른 언데드들이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며 거대한 마법진을 구축해 냈다.

“그 마법진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켈른과 키이라 둘 다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못할 수가 없지.”

“그것은 재앙 그 자체였으니까요.”

“여기다가 그려주십쇼.”

데카드는 주머니에서 펜과 노트를 꺼내 둘 앞으로 내밀었다.

둘은 어렵지 않게 서로의 기억을 토대로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여기 있소.”

“감사합니다.”

수첩에 그린 마법진은 데카드조차 처음 보는 문양들로 가득 차 있었다.

“뭔가 아시겠습니까? 엘프들의 문헌에서도 그런 모양의 마법진은 없었습니다.”

나름 흑마법의 관한 지식 쪽으론 빠삭하다고 자부했는데 오늘로 그 장점은 내려야겠다.

“전혀 모르겠군요.”

“제가 트리스와 젠킨스에게 보내겠습니다. 그 둘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는 게 좋겠어.”

짹짹이는 수첩을 받아들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얘기를 계속해 보시죠. 그 뒤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사가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후.

그 뒷이야기를 아직 못 들었다.

데카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기다렸는데 둘은 어떤 이유인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그러십니까?”

“하핫…… 미안하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래.”

“저도 이 털북숭이 드워프와 동감입니다.”

“딱히 길게 설명할 것도 없어. 우리는 놈을 공격했지만, 티끌의 상처도 주지 못했고 성은 파괴당했지. 숱한 동족들이 그 기사의 손에 죽었어.”

엘프의 상황도 드워프와 다르지 않았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숲의 마법을 썼는데도 기사에겐 통하지 않더군요.”

키이라는 말 하면서 눈앞에 있던 종이에 무의식적으로 기사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해골 갑주를 입고 보랏빛 귀기를 뿜어내고, 붉은 안광은 소름이 끼친다.

그때 밥을 다 먹은 마수들이 통통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 백화점에 그놈이다!”

“백화점?”

키이라가 그린 기사를 보고 반응한 티이라.

“너 얘 본 적 있어?”

티이라는 커다랗게 고개를 주억였다.

“저번에 말했던 그놈들이 얘다!”

“그 말을 타고 있었다던 기사들?”

“응응!”

마수들이 백화점에서 자신의 선물을 사오고 했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굉장히 악한 기운에 공격도 거의 통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럼 네 명의 해골 기사가 있다는 건데…….

그 언데드들 모두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강함을 갖추었다.

데카드가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그의 팔 위로 탈리스만이 떠올랐다.

“마수왕님! 오른팔이!”

“응?”

고오른의 말에 오른팔로 시선을 내리자 저번에 라이아가 심어주었던 탈리스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

[아아. 마수왕이시여. 제 말이 들리십니까?]

“라이아?”

[네.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뿐이군요.]

“탈리스만에 이런 기능도 있던 거야?”

머릿속에서 울리는 라이아의 목소리에서 죄송함이란 감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죄송합니다.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정말 이 기능을 쓰게 되리라곤 상상치 못했습니다. 제 불찰이니 벌을 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아니…… 뭐, 벌까지야.”

라이아의 오버 반응에 데카드는 되레 머쓱해져 헛기침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크흠…… 그래서 왜 연락한 거야?”

그 뒤로 이어진 이야기는 전에 키이라와 켈른에게서 들은 것과 같았다.

언데드 대군을 무찔렀지만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기사를 막지 못했다는 얘기.

“그래서 지금 어디로 이동 중인데?”

엘프와 드워프의 고향은 움직일 수 없지만 산호성은 트로이카 위에 있는 것이기에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다.

[지금 탈리스 쪽 바다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딱 떠오르는 좋은 장소가 있다.

“라이아. 지금 내가 알려주는 곳으로 가면 섬이 있거든? 거기 주변에 있으면 돼.”

[그곳은 인간들의 땅 아닙니까? 갑자기 저희들이 가면 놀랄 텐데요.]

“괜찮아. 내 땅이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 곧이어 머릿속으로 들리는 라이아의 울음소리.

[흑흑……. 마수왕께서 편히 지낼 보금자리까지 내려주시니……. 이 라이아. 감복했습니다……. 흐흑…….]

“…….”

얘랑은 부담스러워서 뭔 얘기를 못 하겠다.

“어쨌든 거기 가 있어. 앞으로 두 종족이 더 갈 것 같으니까.”

[섬 주변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탈리스만으로 했던 통화가 끊기고 키아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누구랑 대화하신 건가요?”

“나가 여왕.”

그다음 변한 양 지도자의 표정은 꽤나 볼 만했다.

“나, 나가 종족의 여왕이라고요……?!”

“어.”

“그들은 300년 전에 모습을 감춘 걸로 아는데……. 대체 어찌…….”

“처음에는 의뢰 관계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참…….”

마수왕이라는 단어 한 번 꺼냈다가 군신 관계로 뒤바뀌어 버렸다.

“그건 둘째 치고 내일 아침은 다들 일찍 일어나셔야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데카드가 씨익 웃었다.

“임시 거처를 구했으니 당분간은 거기서 생활하셔야 합니다.”

“알겠소.”

“알겠어요.”

짝-

데카드가 짧게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주무시죠. 두 분을 위한 방은 있으니 밖에서 주무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둘은 또 오랜만에 통일된 의견을 보여주었다.

“괜찮소. 부하들과 백성들이 추운 밖에서 자는데 나만 등 따뜻하게 잘 수 없지.”

“뭔가 아까부터 계속 이 드워프와 말이 겹치는 것 같지만, 저 또한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모두 편안한 밤 되시길.”

데카드는 그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근데 마수왕님!”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요르가 말을 걸어왔다.

“왜?”

“저번에 키이라를 만났을 때는 반말로 대하지 않으셨나요? 왜 갑자기 존댓말로 바꾸셨어요?”

딱히 별 이유는 없다.

“켈른에겐 존댓말로 하고 키아라한테만 반말로 대하면 뭔가 이상하잖아. 둘 다 종족을 이끄는 지도자인데.”

이상한 걸로 자존심 세우는 것들은 별로 보기 싫지만 이건 지켜줘야 하는 게 맞다.

아까 보니 서로 아주 날카롭던데 만약 데카드가 키이라에게 반말을 썼으면 그녀가 기분 나빠했을 수도 있다.

둘이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이와 같이 있는 상황이니까.

“그렇군요! 종족들의 이해관계는 복잡하네요.”

“나도 그래.”

데카드 자신도 원래 이런 걸 따지는 성격이 아닌데 오늘은 그냥 자연스럽게 됐다.

“다녀왔습니다.”

“왔어?”

“네. 제일 빠른 택배로 보냈으니 아마 내일쯤이면 마법부로 갈 겁니다.”

어느새 돌아온 짹짹이는 데카드의 옆에 섰다.

“그리고 이것을.”

“뭔데?”

짹짹이가 고급스러운 포장의 봉투를 내밀었다.

“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저택으로 들어오는 저에게 주더군요.”

봉투를 뜯어 그 안을 열어본 데카드.

“흐음……. 황궁의 냄새가 확 나네.”

데카드의 예상대로 내용물의 정체는 황궁에서 날아온 편지였다.

편지에 담긴 뜻은 짧게 요약하면 대충 이런 것들.

-오늘 당신의 집으로 들어간 엘프와 드워프들에 대해 설명하시오.-

“황궁이 그냥 넘어갈 리는 없겠지.”

수백이 넘어가는 엘프와 드워프들이 그것도 전시 상황에 수도로 들이닥쳤다.

황제가 칼을 빼 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

아무래도 데카드를 어느 정도 신뢰하기에 오츠만이 참아주었을 확률이 높다.

“이건……. 아무래도 지금 가야겠다.”

이미 황제의 기분을 거슬렀을 확률이 매우 높았기에 데카드는 짹짹이를 챙겨 입고 황궁으로 날아올랐다.

* * *

황제의 고지서를 내밀자 기사들은 자리를 비켜주었고 황궁의 안까지 프리패스로 들어올 수 있었다.

기사들의 얼굴도 몇 번이나 봤더니 이제는 외울 정도.

데카드는 회의실에 앞으로 와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이렇게 들어가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지.”

똑똑-

문을 두드리자 회의로 시끌시끌하던 장내가 조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인가.”

“데카드 아르마다입니다.”

신하들은 그 이름에 침묵했다.

그 이유는 저번 데카드의 행동 때문이다.

평민 주제에 귀족인 자신들에게 살기를 흩뿌렸던 그 행동.

“들어오게.”

그러나 황제, 오츠만은 거리낌 없이 그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회의장 안으로 들어온 데카드.

[눈빛이 따갑군요.]

저번에 그의 살기로 기절했었던 신하들은 데카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편지를 보고 왔습니다. 폐하.”

“그 이유를 잘 설명해야 할 것이야. 난 지금 화가 살짝 나 있어. 자네가 우리 탈리스에게 해준 것이 무척이나 많기에 내가 지금 참고 있는 걸세.”

“잘 알고 있습니다.”

유적에서 유물을 가져와 그것을 공식적으로 탈리스의 업적으로 만들어주고 흑마법사 퇴치에서 큰 공을 세운 데카드다.

그렇기에 지금 그는 구속의 형태가 아닌 초대의 형태로 황제의 앞에 올 수 있는 것이다.

“그 답이 무척이나 궁금하실 겁니다. 갑자기 수도로 엘프와 드워프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고 그들이 제 집에 와 있으니까요.”

“맞네.”

데카드는 잠시 눈을 감으며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 이유. 내일 이 섬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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