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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97화 (197/208)

197 종족

전쟁

첫 번째 암흑시대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누구일까.

혹자들은 앞다투어 인간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몇천 년의 세월을 걸쳐 이룩한 문명과 도시, 나라를 한순간에 빼앗기고 파괴당했으니 완전하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답 또한 아니다.

암흑시대가 벌어지고 인간은 벼랑에 몰렸으나 멸종까지 가는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했고 가진 힘도 적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인간 이외에 이종족들은?

본래 타고난 힘이 적지 않다고 하나 수가 많지 않다.

암흑시대를 가져온 흑마법사들의 목표는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물의 멸종.

인간이 척살 대상 1위였을 뿐 이종족도 그들에게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첫 번째는 겨우 멸종만을 피해 종족을 번영시켰고 이제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두 번째 멸망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다.

이종족의 대표이자 숲의 수호자, 자연의 친구라 불리는 엘프.

“대자연이 우리와 함께 싸운다!”

“싸워서 지켜내라!!”

그들은 빠른 발놀림과 타고난 마나 제어력, 인간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졌다.

숲에서 엘프와 싸운다는 게 자살 행위라는 건 만인이 아는 지당한 사실.

“할레이 님! 북방으로 언데드들이 결계를 뚫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북쪽은 제가 막을 테니 나머지는 다른 곳을 신경 써 주십쇼.”

“명을 받듭니다!”

엘프 마을의 지도자.

할레이를 주축으로 엘프의 전사들은 한 몸처럼 움직여 언데드들을 막아냈다.

“자연의 격노.”

엘프들 중 가장 뛰어나고 순수한 이만 될 수 있다는 할레이.

그들은 대자연의 의지를 마법으로 변환시켜 적에게 잊을 수 없는 악몽을 선사한다.

쿠구구구구구궁-!!!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던 돌산도 할레이의 마법이 닿자 그대로 무너져 산사태가 일어났다.

그 밑에 있던 언데드들은 당연히 압사.

“이걸로 한숨은 돌렸군요. 당신들도 무사하겠죠?”

레스펄 포레스트의 위치한 엘프 마을의 할레이, 키이라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맑습니다.”

뛰어난 할레이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자연이 감응해 날씨도 바뀔 수 있다는 데 자신은 아닌가 보다.

그때 마을 결계 근처에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이겼다!”

“숲을 지켜냈어!”

언데드들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엘프들이 기뻐하는 함성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자연이시여.”

키이라는 또 한 번 무사히 지나간 위기에 감사하며 기도를 올렸다.

한편 육지에서 이렇게 싸우는 이종족은 비단 엘프뿐만이 아니었다.

수염에는 밥풀이 묻어있고 몸에서는 맥주 냄새가 진동하는 난쟁이 종족.

“네놈의 머리를 모루로 써주지!”

“크하하하! 어이 빈센트! 오늘 끝나고 맥주 한잔하자고!”

“크하학! 이 친구 뭘 좀 아는구만!”

싸우면서도 술 약속을 잡는 이들은 강철의 제왕이라 불리는 드워프다.

자신들이 만든 단단하고 뛰어난 갑주로 중무장한 전사들.

그들은 마치 하나의 움직이는 대포처럼 언데드를 말 그대로 파괴하면서 지나갔다.

“너의 못생긴 얼굴을 보여라!”

나름 갑옷을 갖춰 입은 스켈레톤의 머리를 투구째로 부숴버렸다.

어느새 피와 살점으로 진득해진 드워프의 철퇴와 망치.

“크하하하! 간지럽구나!”

“좀 더 세게 물어봐라!”

드워프들이 만든 갑옷은 그 이음새도 단단하기 그지없어 좀비들이 물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이빨이 부러지면 부러졌지 드워프는 절대 다치지 않았다.

아니, 다칠 수가 없었다.

단단한 갑옷은 때론 무기가 되기 마련.

무기를 휘두르는 것에 질린 드워프는 양 주먹을 말아 쥐고 내질렀다.

콰아아앙-! 쾅-!!

근육으로 이루어진 피스톤이 움직이며 그들의 주먹은 거대한 망치와도 같았다.

“그래! 물러들 가거라! 약해빠진 겁쟁이들아!”

“야! 여기 네 뼈 챙겨가야지! 크하하하!!”

드워프들은 뛰어난 장비를 바탕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고 전투 종족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던 날이었다.

그렇다면 만물의 어머니이자 바다의 지배자라 불리는 나가 종족은?

나가들은 첫 번째 암흑시대가 끝나고도 계속 바다 괴수들과 전쟁을 치러왔었다.

한마디로 이제 싸움과 전쟁에는 도가 터버렸다.

“하던 대로 하자!”

“네!!”

나가 전사들의 힘찬 대답이 들려오고 분대장들은 달려오는 적들을 눈여겨보았다.

어차피 항마력도 없는 수중 언데드.

드라운드와 익사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들은 크라켄과 아귀 고래를 비롯해 악몽 같은 놈들과 싸워왔는데 지금 장난하는 건가?

“고작 저딴 놈들에게 죽으면 나한테 다시 한번 더 뒤진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이제 싸우자!!”

부우우우우우웅-

나팔 소리가 해저를 뒤덮고 나가들은 지느러미를 부드럽게 움직이며 전진해 나갔다.

창과 칼,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귀를 때리고 나가들의 무기는 멈추는 일이 없었다.

“다 썰어버려라!”

연이은 전투로 잘 벼려진 무기와 실력은 이런 언데드들이 버틸 게 못 되었다.

“날아가라!”

거대한 근육질 지느러미가 언데드를 한 번 치자 그대로 튕겨져 나가 볼링공처럼 다른 언데드들을 부숴버렸다.

“스트라이크!”

“그동안 해왔던 거에 비하면 너희는 운동도 안 된다!”

이딴 걸로는 자신들을 죽일 수 없다.

“더 센 놈을 데려오든가 죽든가 하나만 선택해라!”

“그래 도망쳐라! 도망쳐!”

나가들은 후퇴하기 시작하는 언데드들을 한껏 비웃으며 창을 높이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엘프, 드워프, 나가.

이종족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언데드들의 침공을 잘 막아내었다.

아니 잘 막아내었다고 생각했다.

“부, 분대장님! 저기 뭔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병사의 말에 분대장 나가가 고개를 돌리자 정말 그의 말대로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자신들이 부수고 없앴던 언데드들이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으응? 빈센트 저길 봐!”

“할레이님! 동쪽 숲을 보십쇼!”

이 일은 종족을 가리지 않으며 드워프와 엘프에게도 일어났다.

“거대한 흑마력이 느껴지는군.”

“쫄았냐?”

“뒤질래? 닥치고 있어봐.”

드워프들이 투닥거리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 허공에 떠오른 뼈들이 어떤 형상을 갖춰나갔다.

“저, 저건 마법진 아닙니까?”

엘프와 나가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키이라는 잠시 침묵하며 뼈들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마법진을 쳐다보았다.

나가들의 여왕, 라이아 또한 마찬가지.

강철성에서 지켜보고 있는 니다벨리의 군주, 켈른 또한 상황을 알아차렸다.

세 명의 지도자는 모두 같은 판단을 내렸다.

“모두 물러나라!!”

“물러나세요!”

“당장 후퇴해!!”

콰아아아아아앙-!!!

마법진이 완성되고 터져 나오는 폭음.

“뭐, 뭐냐!”

세 이종족

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먹먹한 귀를 막고 있을 때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있었다.

해골 갑주를 갖춰 입은 죽음의 기사.

투구의 틈새에선 깊은 어둠이 흘러나오고 어마무시한 귀기가 느껴진다.

“대체 저 괴물은 무엇이냐. 헤아릴 수 없는 흑마력이 느껴진다.”

라이아는 입술을 깨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바다는 그녀의 의지에 응답하며 꾸물거렸다.

“해신의 창.”

날카로운 하나의 창처럼 꼬아진 파도는 그대로 기사에게 꽂혀 들어갔다.

파아아아악-!!

“좋았어! 여왕님의 공격을 버틴 괴수는 지금까지 단 한 마리도……!”

병사 하나가 탄성을 내지르려던 순간.

먼지가 걷히고 기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이럴 수가!!”

허무하리만치 조금도 다치지 않은 기사는 어깨에 묻은 산호를 툭툭 털어냈다.

“…….”

감히 판단할 수도 없는 방어력.

라이아는 침음을 삼키고 입술을 깨물었다.

“트로이카. 힘을 빌려주십쇼.”

거대 거북 트로이카가 몸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궁-

그것만으로도 해저가 거대한 진동에 파묻히고 물고기들은 저 멀리 도망쳤다.

나가들의 신수, 트로이카의 눈이 기사와 마주치고 둘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결국 벌어지는 트로이카의 입.

거대한 에너지가 트로이카에게 집중되면서 등껍질이 환하게 빛이 났다.

“해신포.”

콰과과과과과과광-!!!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해일이 바다 안에서 일어나며 기사를 휩쓸었다.

거의 자연재해를 맞았다고 해도 무방한 기사는 눈 깜짝할 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멀리 나가떨어졌다.

“죽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아는 그 기사가 아직 살아있다고 확신했다.

“트로이카. 당신이 다칠 정도입니까.”

트로이카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

이것은 라이아에게만 들려왔다.

“해신포를 뚫어내고 트로이카에게 공격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서진 적 없는 트로이카의 등껍질이 살짝 금이 갔다.

“모든 나가는 산호 성으로 돌아오라고 하십쇼. 이동해야겠습니다.”

라이아는 트로이카를 움직여 어딘가로 이동했다.

* * *

“모두 후퇴하라!”

“젠장……!!”

드워프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기사.

대체 그놈에게 몇 명의 동족이 죽었단 말인가.

놈의 칼날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목숨을 잃는 동료들이 넘쳐갔다.

“생존자들은 어서 기계 위에 올라타라!”

비상시에 쓸려고 만들어놓은 텔레포트 기계 위에 니다벨리의 주민들이 먼저 올라탔다.

“왕께서도 어서 타십쇼!”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나도 시간을 벌 것이다.”

드워프들과 켈른은 최대한 기사의 전진을 막아보기 위해 철조망이나 구속구를 아낌없이 던졌으나 통하는 것은 없었다.

“젠장!! 젠장!!”

수백 년 동안 이곳을 선조들께서 지켜오셨는데 나의 대에서 니다벨리가 무너진단 말인가?

켈른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검을 움켜잡았다.

“주민들의 대피가 끝났습니다!”

“알았다. 전 드워프는 갖고 있는 모든 폭탄을 쏟아 붓고 기계에 올라타라!!”

“네!!”

드워프 전사들은 창고에 있던 모든 폭탄류 장비들을 털어 와서 기사에게 쏟아 부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상대가 누구라도 단숨에 뼛가루로 만들 수 있을 화력이었으나 기사에겐 씨알도 통하지 않았다.

“어서 올라타!”

켈른을 마지막으로 기계에 올라탄 드워프들.

“작동!!”

슈욱-!!

모든 드워프들은 결국 니다벨리를 버리고 다른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리고 상황은 엘프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할레이 님! 도저히 저 기사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

키이라 또한 전력을 다해 대자연의 마법을 써보아도 기사의 걸음을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일단 물러나야 합니다.”

“저, 정말 진심이십니까?”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엘프를 데리고 마을을 버립니다.”

“……알겠습니다.”

경비대장, 올렌은 고개를 끄덕이고 전사들을 통솔해 민간인들을 먼저 챙겼다.

“대자연이시여. 부디 저를 벌하시고 엘프를 저버리진 마시옵소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서글프다.

“할레이 님. 모든 엘프들이 마을을 나갔습니다. 이제 움직이시죠.”

“알겠습니다.”

엘프들은 특유의 빠른 기동력을 이용.

숲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갔다.

* * *

루비아의 텔레포트 기계가 갑자기 불을 뿜었다.

갑자기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기계로 전송되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으으윽!”

결국 루비아로 전송되고 튕겨져 나온 드워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목적지에 잘 도착한 것인가?”

“어이 젊은 양반.”

“네, 네?”

텔레포트 담당 마법사를 부른 한 드워프.

“여기가 어디오?”

“루, 루비아 입니다만.”

아주 잘 도착했다.

“이곳에 그가 살고 있다.”

켈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에 왔다.

집이 사라진 지금 친우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심정인 것이다.

“응? 기계가 또……!”

“모두들 비키세요!”

텔레포트 담당 마법사가 아직 기계 위에 올라서 있는 드워프들을 나오게 하자 다시 한번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 할레이 님! 조심하십쇼!”

“알고 있어요. 올렌.”

“으으윽…….”

환한 빛에 눈을 뜨자 엘프들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엘프?”

“드워프?”

키이라와 켈른은 서로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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