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어렵게 찾은 흔적
‘어, 언제 잘린 거지……?!’
레오의 듀렌달이 루이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을 때.
그는 멍하게 풀린 동공으로 앞을 보았다.
아니…… 하늘인가?
눈동자는 푸른 슬레이의 하늘을 담았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있어라. 또 재생하면 잘라버린다.”
“크으윽…….”
두 갈래로 찢어진 입에서 소리가 갈라졌다.
“자! 그러면 이제 즐거운 심문 시간!”
데카드가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자 재미있는 시간이다.
이놈은 꽤나 강한 놈이니 탑주의 비밀이나 힘에 대해 뭔가 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대로 쓰러질……!”
“거야.”
듀렌달이 휙휙 움직일 때마다 루이의 사지가 잘려나갔다.
물론 통각이 무뎌진 흑마법사의 몸이라 비명 따윈 새어나오지 않았다.
데카드는 잠시 광검을 집어넣고 쓰러진 루이와 시선을 맞췄다.
“똑바로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너 같은 괴물을 상대론 힘 조절하는 방법을 모르겠거든.”
“크크크……. 오만하군, 크로우.”
“듣기 좋은 어감이네.”
누가 자신을 이름이 아닌 이명으로 부르는 건 오랜만인 만큼 좋은 느낌이었다.
“탑주라고 불리는 놈, 알지?”
루이는 대답하고 있지 않지만 모를 리가 없다.
흑마법사라고 명찰을 써 붙이는 이들은 대부분 무조건 탑주란 인물을 알고 있다.
“모른다는 듯한 얼굴인데 그럼 다른 것부터 물어보지. 너희의 본거지, 흑탑이란 곳은 어디 있나.”
“그걸 내가 어찌 아나.”
“모르는 게 말이 되냐?”
기본적으로 자신이 어디에서 일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모른다.”
그러나 루이는 퉁명스레 말했다.
[거짓을 말하는 눈이 아닙니다.]
‘아직 못 믿어.’
데카드는 손을 뻗어 마나를 뽑아냈다.
그 마나는 루이의 심장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짓을 판별하기 위해 심장을 사용하려고 했거늘 처음부터 작전이 물거품으로 변해 버렸다.
“난 리빙 언데드다. 심장 따위가 있을 리 없지. 물론 너희 마법사들은 없어선 안 되겠지만. 크하하!”
비웃듯 쪼개는 게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서걱-!!
화풀이로 목을 잘라도 이것은 금방 회복되며 저절로 붙어버렸다.
‘내가 알고 있는 고문법도 이놈에겐 안 먹힌다.’
그것도 혈관이 있어야 하는 고문이다.
근데 이 괴물은 안이 텅 비어 있어 뭘 할 수가 없다.
‘젠장.’
고작 신체 능력 때문에 심문이 이렇게 막힐 줄이야.
“질문 끝났나? 그럼 내 차례로군.”
“개소리 말고 기다려라.”
집행부로 끌고 가기 위해 구속구를 꺼내려는 순간 루이가 입을 열었다.
“너. 혹시 흑마법사가 돼볼 생각 없나?”
뭔가 했더니 역시 개소리였다.
“곱게 죽여줄 순 없겠구나.”
“침착하고 냉철하게 생각해 봐라.”
씨익 웃는 루이.
그는 잘 알고 있다는 듯 턱짓으로 데카드를.
정확히는 그의 심장을 감은 7서클을 가리켰다.
“슬슬 느껴지지 않나?”
데카드는 그가 뭘 말하려는 것인지 또렷하게 감이 왔다.
“벽을 말하는 거냐.”
“그래. 재능의 벽 말이다. 7서클까지 올라왔으면 느낄 텐데?”
그는 손을 뻗으며 말했다.
“자, 이 손을 잡으면 그 벽을 단숨에 깨부숴 주마. 지금의 존재보다 더 나은 것이 되는 거다.”
데카드는 피식 웃었다.
“이해가 느린 놈이네.”
“뭐……?”
루이가 뻗은 손이 흔적도 없이 듀란달에 갈려나갔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쓰레기.”
데카드는 그 벽이란 존재를 인간계에선 맛보지 못했다.
그 참맛은 마수계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매일매일이 그를 시험에 들게 했다.
말로 몇백 년이지 그것을 일로 작게 쪼개보면 정말 무수히 많은 날이다.
“고작 너 따위가 영향을 줄 정도로 그 시간은 작지 않아.”
“그건 네가 이 전능함을 겪어보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몸에 흐르는 이 충족감과 쾌감……!! 탑주께서 너에게 주실 것이다.”
전능함이라는 단어를 외치기엔 지금 놈의 꼴은 꽤나 웃겼다.
“반으로 조각난 주제에 뭔 전능함이야. 너는 뭐가 되었든 쓰레기에 지나지 않아. 예전에 비해 치우기 어려워졌을 뿐.”
말을 끝마친 데카드는 듀란달을 집어넣고 고오른의 건틀릿을 꺼내 들었다.
왼손에만 나타난 건틀릿은 아지랑이를 내뿜으며 뜨겁게 활활 타올랐다.
“불에 전부 타버려도 재생하나 보자고.”
불은 세포의 적.
아무리 통각이 없고 재생을 빠르게 한다고 해도 세포 자체를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건틀릿 끝에 조각된 산양의 코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죽어라.”
“크크큭….….”
화르르르르-
맹렬한 불꽃이 루이를 태우기 시작할 때 주변에 언데드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발악이냐?”
언데드들의 몸에서 흑빛 이 뿜어져 나온다.
뼈 폭발과 시체 폭발.
이 수많은 언데드가 한꺼번에 터진다면….….
“결국 한다는 게 자살 공격이군.”
데카드는 시시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짧게 차며 날개를 쫘악 폈다.
“폭발까지는 많아야 20초.”
[주변에 민간인은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네.”
데카드만 무사히 탈출하면 그만이었고 그건 누워서 떡 먹기만큼 쉬운 일이다.
슈화아아아-!
날아가면 그만이니까.
쿠와아아아앙-!!!
밑에서 들리는 폭음과 잔재가 자신의 발을 간지럽히고 바람에 흩어졌다.
조금만 늦었으면 휘말렸겠지.
[후우…….! 위험했다!]
[저런 폭발계는 위험해요! 난이도에 맞지 않는 강함이라고요!]
폭발류 마법은 그냥 터뜨리면 광범위한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마법이다.
물론 지금의 루이는 실력까지 겹쳐져 충분히 까다로운 상대였으나 마수들의 도움으로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바닥은 완전히 폐허가 됐군요.]
데카드가 날아오른 후 폭발이 일어난 곳은 건물의 잔재조차 남지 않고 전부 타거나 부서졌다.
“잘됐지. 이쪽 건물들은 너무 낡았었어.”
들어보니 로바드는 엄청난 대부호가 됐다고 하던데 그 많은 돈으로 건물 몇 채 짓는 거야 일도 아닐 것이다.
사상자는 없으니 이 정도면 큰 피해도 아니다.
“데, 데카드님……이십니까?”
굳이 이놈한텐 정체를 안 숨겨도 될 것 같아서 데카드는 복면과 까마귀를 벗고 성채로 내려왔다.
로바드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조금 전 폭음이 일어난 장소와 데카드를 어버버거리며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냐고?”
“네, 네……. 어떻게 그 폭발에서…….”
“하늘만 날면 너도 할 수 있어.”
날 수 있기까지는 오래 걸리겠지만 간단한 방법이다.
로바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방으로 들어가자 아무 일 없다는 듯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는 필립이 보였다.
“아주 상전이 따로 없네?”
“어, 왔냐?”
“유언은 그게 끝이야?”
이놈은 절친이 저 대폭발에 휘말렸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슬레이 맛집 지도나 펼쳐보고 있다.
“워워. 진정하라고, 진정. 나는 믿었을 뿐이야. 네가 저딴 거에 죽을 리가 없다는 걸.”
이상한 차원에 빨려 들어가도 사지 멀쩡하게 살아왔는데 고작 저런 폭발에?
필립은 당연히 그를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무사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했으니까.
“하여튼 넌 두고 보자.”
데카드가 침대에 드러눕고 마수들은 다시금 바깥으로 나왔다.
“결국 그 탑주란 놈의 정보는 빼내지 못했군요.”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무제는 어서요!”
요르가 그 사이 방으로 배달 온 캔 요리를 싹싹 긁어먹으며 힘차게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저희가 못 이기는 적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어떻게 들으면 오만해 보이는 말투는 재수 없게 느껴졌으나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렇게 믿었으니까.
“근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너희를 누가 이길지.”
데카드가 서클을 올릴수록 마수들도 그와 함께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저희의 입장에선 본래의 힘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니 마수계에서와 비교하면 지금도 턱없이 약하긴 합니다.”
그렇기에 마수들은 이 과정이 더뎌 보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데카드를 지지하고 따라주었다.
그리고 어차피 두 단계만 넘어가면 9서클.
다른 이들은 이 두 단계가 영원히 닿지 않는 무한의 거리였으나 데카드는 다르다.
“방금 만났던 리빙 언데드. 그 탑주란 놈이 만든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저희가 흑마법사에게서 맡은 냄새 중 가장 독하고 심했습니다.”
탑주가 만든 리빙 언데드인 것은 분명 했으나 데카드는 여기서 하나의 의견을 더 추가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심히 만들었단 생각이 안 들어.”
놈이 만약 그 리빙 언데드를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면 이런 공격에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한 짓은 단번에 재생하지 못하도록 잘게 썬 것밖에 없다.
“겨우 이런 공격에 끝날 거면……. 탑주는 아마 놈을 실험 삼아 내보낸 걸 거야.”
쉽게 말해 견제용.
이쪽의 강함과 상태를 체크해 보려고 내보낸 거다.
“그쪽이 이렇게 나온다면 방법이 있지.”
품에서 뭘 꺼내는 데카드.
“으으……! 그걸 왜 가지고 있냐! 더럽다!”
“지금은 필요한 물건이야.”
그가 꺼낸 건 방금 전 뽑은 루이의 손가락이다.
주변에 폭발이 갑자기 일어나 급한 마음에 뽑았었는데 지금 보면 잘한 행동이다.
“이걸로 놈의 흑마력을 감지해서 역추적을 할 거야.”
흑마력의 역추적은 보통이라면 불가능하지만 데카드에겐 마수들이 있었다.
“너희들의 코가 해결해 주겠지.”
손가락에 담긴 흑마력을 추출해서 보관하면 탑주의 위치가 들통 나는 건 시간문제다.
데카드는 손가락이 손상되지 않도록 얼음 마법으로 감싸 아공간 안에 넣었다.
“이건 마법부에 보내기로 하고. 그럼 이제…….”
자야겠다.
마수들과 필립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데카드는 잠이 들었다.
* * *
“후후…. 리빙 언데드가 죽었군.”
자신이 리빙 언데드로 만들었던 놈의 이름이 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 리빙 언데드가 죽었다는 사실.
크로우가 녀석을 죽였다.
“실험작이긴 하다만 이렇게 힘없이 무너질 줄이야.”
“그 실험체가 너무 쓸모없고 약했습니다.”
늘 탑주 곁을 지키는 남잔 무표정으로 얘기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탑주는 뼈밖에 남지 않는 손가락을 옥좌 위 팔걸이에서 놀리며 생각에 잠겼다.
“크로우가 내 리빙 언데드까지 죽였다……라.”
사실 탑주의 시야와 리빙 언데드의 시야는 이어져 있었다.
그러면서 보게 된 크로우란 마법사의 모습.
놈은 강했지만 딱 갖고 놀 만한 수준이었다.
“처분할까요?”
“아니, 아니. 이 정도 유희는 있어야지.”
탑주는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성대는 물론이고 피부도 없어 들으면 불쾌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익숙한 듯 미소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탑주님의 유희를 방해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두고만 볼 수도 없군요.”
탑주의 고개가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놈을 내버려두라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후후훗……. 저의 계략 따위로 당할 자였으면 애초에 틀려먹은 게지요.”
“크하하하……. 너의 속에는 능구렁이가 몇 마리나 살지 한번 뜯어보고 싶구나.”
“그건 저도 궁금하군요.”
태연하게 받아친 남자는 품에 들고 있던 장기짝을 대륙 지도 어딘가에 두었다.
“이것은 저희 쪽 세력이 점령한 성들입니다.”
그리고 색깔이 다른 말들을 조금씩 더 배치했다.
“또 이건 크로우에게 빼앗긴 성들이죠.”
이미 배치해 놓은 흑색 말 중 몇 개가 밀려나고 그 자리를 흰색 말들이 차지했다.
남자는 말들의 배치를 끝내고 지도 앞으로 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저희는 그저 따를 뿐.”
“나는…….”
탑주가 말을 움직였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