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크로우 VS 리빙 언데드
“진짜 맛있다! 이거 정말 캔 요리 맞냐?”
“위험할 정도로 중독적인 맛이군!”
슬레이식 캔 요리를 먹어본 적 없는 마수들은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마수왕님! 이거 더 없나요?”
한 개로는 모자란지 마수들이 텅텅 빈 캔을 아쉬운 듯 숟가락으로 슥슥 긁었다.
“달라고 하면 줄 것 같긴 한데.”
마수들이 너무 좋아하니 몇 개 더 가져오긴 해야 할 것 같다.
딸랑- 딸랑-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의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누군가 우다다 하고 달리는 소리 또한 같이 들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문밖에서 큰 소리로 외친 깡패.
“어. 별건 아니고 여기 캔 요리 다섯 개만 더 줘라.”
애들이 너무 맛있게 먹으니까 자신도 하나 더 먹어야겠다.
“넵! 알겠습니다!”
깡패가 다시 캔 요리를 만들러 어딘가로 달려가고 데카드는 마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오늘은 더 이상 캔 요리 그만 먹는 거야.”
“히잉……. 알았다.”
“갈 때 싸가는 건 괜찮습니까?”
“…….”
마수들의 간절한 눈빛에 이건 막지 못한 데카드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그건 봐줄게.”
“오예!”
마수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건 고기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덜컥-
“후우……. 드디어 끝났네.”
캔 요리인 줄 알고 문 쪽을 봤지만 들어온 건 필립이었다.
“어디 갔다 오냐?”
“텔레포트 기계 부품 좀 보고 오느라.”
지금 슬레이의 기계는 교체해야 하거나 없어진 부품이 많다.
그것들에 나사 하나하나까지 전부 체크하고 온 필립은 지금 막 마법부에 부품 요청을 보낸 참이었다.
이제 곧 슬레이로 부품이 발송되어 올 것이다.
그다음부턴 세이칼의 독무대.
아직 믿기지 않지만, 그가 호언장담했고 데카드도 이렇게 밀어주니 자신으로선 신뢰할 수밖에 없다.
“밖에 나가서 시비 같은 건 안 걸렸냐?”
“시비?”
필립은 피식하고 웃었다.
“시비는 무슨. 다들 날 보자마자 90도 배꼽 인사를 하더라.”
이미 데카드와 필립이 로바드의 마차를 타고 본진으로 간 건 슬레이에서 유명한 사실이다.
지금 그 둘의 존재는 어떤 동네에서나 큰 화두였고 유명해진지 오래였다.
“그래? 내가 여기 있을 때는 허구한 날 싸움만 났는데.”
“네가 시비를 건 건 아니고?”
“그랬나?”
워낙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데카드가 옛 기억을 되짚어보고 있을 때 방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밖이 왜 이렇게 시끄럽지?”
다시 종을 울리자 아까 캔 요리 주문을 받았던 깡패가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무슨 일 났어? 왜 이렇게 시끄러워?”
“그, 그게 슬레이의 외곽 성벽을 뚫고 들어온 침입자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침입자?”
“별일은 아니니 방에서 편안히 계시면 됩니다!”
콰아아앙-!! 퍼어엉-!!
별 일 아닌 거 맞아?
“마수왕님! 저기서 폭발 소리 들렸다!”
이곳 본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까만 연기와 함께 폭음이 들려왔다.
“어욱……! 냄새!”
창문 가까이 있던 요르가 갑자기 코를 싸매고 후다닥 거기서 멀어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참을 수 없는 악취에 마수들 모두가 데카드의 곁으로 왔다.
“뭔 냄새?”
데카드와 필립은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고 짹짹이가 대신 설명해 주었다.
“흑마력의 냄새입니다. 그것도 지금까지 맡았던 것 중에 가장 진하군요.”
“흑마력? 흑마법사가 여기도 침공했다고?”
지금 흑마법사들의 움직임을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슬레이까지?
이곳은 거의 대륙 외딴곳에 위치한 곳으로 흑마법사들이 최선을 다해 달려와도 꽤나 시간이 걸린다.
“침입자는 한 명 정도인 것 같군요.”
진작에 까마귀를 풀었던 짹짹이는 순식간에 적의 수와 정체를 파악해냈다.
“근데 그 한 명이 무시할 수 없는 강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진 서클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 이상한 일이군요. 뭔가 위험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강함.
그리고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냄새와 언데드에게서 느껴지는 냄새가 동시에 나고 있다.
이것 또한 처음.
“슬레이 애들이 처리할 수 있겠어?”
“절대 무리입니다.”
데카드는 잠깐 고민하다가 아!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지금인가? 짹짹아?”
그는 단번에 데카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 긴합니다.”
“왜? 뭐가 나쁘지 않아?”
필립이 두리번거리며 물어도 데카드는 대답하지 않고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복면을 꺼냈다.
“어디 은행이라도 털러 가게?”
“모르면 닥쳐.”
“아니 그러면 알려주던가.”
“기다려 봐.”
그의 억울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짹짹이가 저번에 시도했던 대로 형태 변형했다.
“오오…… 멋있는데?”
연미복 복장에 그림자 코트는 필립도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멋있었다.
“근데 복면은 왜 쓴 거냐?”
“크로우의 상징이니까!”
“크로우……?”
필립은 알 수 없는 데카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눈동자가 확 커졌다.
“네가 그 영웅이었어?”
“영웅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됐더라고.”
어쨌든 데카드는 이 영웅 놀이에 심취한 상태였다.
이런 가면을 쓴 히어로는 언젠가 꼭 해보고 싶던 것.
마침 이렇게 굴러들어 온 기회를 차 버리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데카드는 창문에 몸을 걸치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
강한 바람이 얼굴을 연신 때렸다.
복면이 없었다면 눈을 못 떴을지도 모른다.
화악-!!
[이대로 침입자가 있는 곳까지 날아가겠습니다.]
짹짹이가 날개를 펼쳐 슬레이의 상공을 날았다.
옛날에도 이렇게 날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상황도 풍경도 많이 달랐다.
[으윽……! 악취가 더 심해져요!]
[…….]
[아악! 여기다 토하지 마라! 레오!]
마수들도 많이 힘들어하니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내야겠다.
“저기다.”
하늘에서도 보였다.
수많은 해골 군대에 둘러싸인 흑색 로브인.
“강하네.”
굳이 다른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 없이 강했다.
[이쪽을 본 것 같군요.]
로브인의 시선이 살짝 위로 당겨졌다.
그의 찌푸려진 미간이 여기에서도 보이는 듯하다.
“내려가기 전에 첫인사나 한번 해줄까?”
[좋은 생각이군요.]
데카드의 양 손바닥에서 그림자가 뭉쳐지더니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폭풍.”
휘이이익-!
카가가가가가각-!!!
빠른 속도로 날아간 그림자 폭풍은 그 경로에 있는 모든 것들을 쓸어버렸다.
해골들은 그것에 휘말려 뼈마디가 전부 부서졌고 좀비들은 다짐 육이 되어 바닥에 흩뿌려졌다.
루이는 그것을 바라만 보다가 입을 열었다.
“뭐 하는 놈이냐.”
“크로우.”
정말 뜻밖인 정체에 루이의 눈이 커졌다가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렸다.
“이거, 이거 나도 모르게 지름길로 와버렸군.”
저 까마귀 날개와 느껴지는 마나의 박력, 위세, 기백.
이 모든 게 저놈이 크로우라고 가리켰다.
“이제 죽어라.”
루이가 양손을 합장하듯 짝 하고 부딪혔다.
우르르르-
부서진 뼈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골렘들을 만들어냈다.
“봐줄 만하네.”
“크크큭……. 미친놈이구나.”
“근데 그런 걸로 되겠어?”
본 골렘을 만들어봤자 자신의 그림자 폭풍을 막지는 못한다.
“당연히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호오…….”
데카드가 작게 감탄했다.
본 골렘이 자신들을 뭉쳐 더욱 커다란 골렘을 만들었다.
거의 웬만한 상가 건물보다 커다래진 본 골렘.
꽤나 박력 있는 모습은 데카드의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근데 말이야.”
데카드의 손에 커다란 양날 도끼가 나타났다.
“이게 끝이라면 넌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썽둥-!! 콰과과과-!!
본 골렘의 허리가 그대로 잘려나가며 상체와 하체가 이 분할돼 버렸다.
그대로 땅에 떨어진 본 골렘의 상체.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루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설마 이 자이언트 본 골렘이 힘 한 번 못 써보고 전투 불능이 될 줄이야.’
“더 보여줄 건 없냐?”
“없긴 왜 없나.”
루이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올라가는 본 골렘의 팔.
퓨슈슈슈슉-!!
그의 팔에서 날카로운 뼈가 솟구치더니 이쪽으로 뱉어냈다.
하지만 그것에 담긴 힘은 약하기 그지없어 이쪽의 높이까지 올라오지도 못했다.
그러나 루이는 입꼬리를 비집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뼈 폭발.”
콰과과과과과과과광-!!!
데카드에게 날아간 모든 뼈들이 폭발하며 하나하나가 수류탄과 같이 날카로운 파편이 튀었다.
[막는다!]
티이라의 강체화가 데카드에게로 옮겨 붙으며 그의 피부가 강철의 강도를 갖게 되었다.
뼈 파편은 피부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건 무슨 마법인가? 강철 속성?”
“지금 속 편하게 질문할 시간이 있어?”
리바이어던이 횡으로 크게 그어졌다.
그와 함께 불어 닥치는 거대한 돌풍.
돌풍은 칼바람이 되어 살갗을 사정없이 난도질한다.
[재생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군요.]
칼바람이 살을 베자마자 곧바로 회복하고 있다.
‘저쪽도 괴물은 괴물이라는 거지.’
“보았나? 네놈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
루이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머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으니까.
“그럼 목을 베면 되겠지.”
문제 해결.
……이라고 여겼지만, 아직 아닌가 보다.
스스스스-
루이의 떨어진 머리가 허공을 부유하더니 다시 목에 붙어버렸다.
“말했잖아. 너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머리를 잘라도 죽지 않는 놈은 처음 봤다.
[주인님. 아까 보셨습니까?]
‘그래, 봤다.’
아까 자신이 목을 잘랐을 때 비틀거리는 목 아래로 녀석의 몸 내부가 보였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더군요.]
데카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의 흑마법.
지금까지 말만 들어왔던 흑마법인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리빙 언데드.”
“크큭, 정답이다. 상으로 이걸 주마.”
바닥에 널려있던 좀비들이 다시 벌떡 얼어서다니 데카드에게 엉겨 붙어 왔다.
“시체 폭발!”
콰아아아아앙-!!
이렇게 초근접에서 벌어진 폭발.
아무리 뼈 폭발을 견뎌낸 피부라도 이건 버티지 못하겠지.
루이가 승리를 확신할 때 흐린 연기 속에서 사람의 신형이 드러났다.
“뭐냐.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솔직히 데카드라도 방금 그 폭발은 위험했다.
그렇기에 이 힘을 사용했다.
[…….]
레오의 무기화.
광뢰검(光雷劒) 듀렌달.
[오오! 레오의 이 모습은 오랜만입니다!]
샛노란 번개와 빛으로 만들어진 날씬한 장검은 휘두를 때마다 뇌광이 뻗어나 왔다.
‘위, 위험하다.’
레오가 나온 그 순간부터 루이의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지금까지 이 힘을 얻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패배감이 마음을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나는 이길 수 있다. 질 만한 요소는 단 하나도 없어!’
다시 한번 시체 폭발을 쓰기 위해 루이가 좀비들을 일으켰다.
“이제 그런 느린 공격은 안 맞아.”
듀란달을 든 데카드의 몸이 빛으로 물들더니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어, 어디 간 거지?’
루이가 고개를 홱홱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고 기감을 넓혀 봐도 데카드가 어디 있는지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침음을 삼킨 루이는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
“좀비들은 내 곁에 오고 해골들은 흩어져 있어라!”
이렇게 되면 놈이 어디에서 나타나든 죽일 수 있을…….
서걱-
깔끔한 절단면이 만들어지며 루이의 몸이 두 쪽으로 쪼개졌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