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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91화 (191/208)

191 새로운 보스

“네가?”

“어.”

필립은 순간 생각에 잠겼다.

‘얘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스타일은 아닌데…….’

그는 절친답게 지금 데카드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데카드의 얼굴은 지금 살짝 졸린 듯한 눈을 빼면 꽤나 진지해 보였다.

“너 걔 이름은 알아?”

“로바드 아니냐?”

“어, 어떻게 알았어?”

보통 갱 보스의 본명은 철저하게 감춰진다.

아니, 본명을 제외하고서라도 거의 모든 정보가 막혀있기 마련이다.

“내가 걔 안다니까.”

“나도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 로바드란 놈도 날 안다고.”

“어……?”

필립은 얼빠진 소리를 내며 되물었다.

“너랑 그 보스랑 원수야?”

“…….”

친구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거야?

왜 다짜고짜 원수 사이로 규정짓는단 말인가.

물론 친구 사이도 아니긴 하지만.

“내 부하야.”

“풉…….”

필립의 비웃음 소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번 건 특히 기분 나빴다.

“웃냐?”

“크흐흡……. 그럼 안 웃겨?”

범죄 도시 슬레이를 완전 통일시킨 갱 보스가 자신의 친구 부하라고 하는 데 안 웃을 사람이 어디 있나.

하지만 데카드의 입가엔 웃음기 하나 없었다.

“그럼 네가 갈래?”

너무 웃어서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낸 필립이 툭 던지듯 물었다.

“뭘 내가 가.”

“슬레이 보스의 얼굴이나 성향도 파악할 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기로 했는데 마법부에선 내가 가기로 했거든.”

“그럼 빨리 꺼지지 왜 이쪽으로 왔냐?”

“너도 데려가려고.”

데카드는 그쪽에서 자의는 아니지만 몇주간 살았던 경험이 있으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사실 말동무가 더 필요했던 건 비밀.

“너 혼자 가라. 난 쉴 거니까.”

“아니야. 너 못 쉬어.”

필립이 데카드의 앞에 문서 하나를 던졌다.

“이게 뭐냐.”

스크롤처럼 잘 말린 문서는 익숙한 끈에 의해 묶여 있었다.

“이거 설마…….”

“어, 그거 맞아. 그러니까 너도 가야 해.”

“시발…….”

욕지거리를 내뱉은 데카드는 간단한 준비를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그가 별 저항 없이 순응한 이유.

필립이 내민 문서의 끈에 젠킨스의 이름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딱 보니까 필립이 자신을 데려가려고 젠킨스에게 부탁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져가지고 저런 애랑 친구가 됐냐.”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데카드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하지 마십쇼.”

아닌데? 못 들었는데?

“빨리 가기나 하자.”

[알겠습니다.]

짹짹이를 어깨에 걸치고 옷을 갈아입은 데카드는 주머니를 품에 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준비를 마쳤다.

편지까지 써서 문에 써 붙인 데카드.

이젠 이게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벌써 다 했냐?”

“그래.”

데카드와 필립은 저택을 벗어나 시내로 나왔다.

싸늘한 도시 분위기가 쓸데없이 어깨를 무겁게 했다.

그때 필립이 뭔가 밝힐 것이 있는 듯 무게를 잡기 시작했다.

“데카드. 할 말이 있다.”

“뭔데.”

“사실 네가 화낼까 봐 여기 시내로 나올 때까지 말 안 했는데 이제는 밝힐 때가 된 것 같아.”

“돈이라도 훔쳤어?”

그런 잡스러운 이유는 당연히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밝혀진다면 필립은 가는 내내 달달 볶아질 것이다.

“보통 도시 간 이동을 할 때는 텔레포트 이동을 하잖아.”

“그렇지.”

그래서 둘은 지금 텔레포트 기계 앞에 와 있다.

“근데 슬레이의 텔레포트 기계 신호는 남겨진 정보가 없어서 육로로 가야 해.”

필립은 말하면서도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곧 날아올 그의 분노를 준비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어쩐지 데카드는 조용하기만 했다.

“화…… 안 났냐?”

결국 필립이 먼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천천히 떠진 눈이 그의 얼굴을 담았다.

화가 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 보이지도 않는.

복잡 미묘한 표정이다.

“뭔 말이라도 해봐! 충격 때문에 말을 잃은 건가?”

“개소리 말고 따라오기나 해.”

데카드는 성큼성큼 기계 위로 올라갔다.

“야! 내 말 들었잖아! 슬레이의 기계 신호는 우리가 모른다니까?”

필립의 말은 대답하는 이가 없어 허공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정작 답해야 할 사람은 기계의 레버를 내리고 본래 담당 마법사가 맞춰야 할 기계 신호를 직접 설정하고 있었다.

“저, 저기 지금 뭐 하시는……!”

놀란 담당 마법사가 급하게 데카드를 말리려고 할 때 필립이 끼어들어 신분증을 꺼냈다.

“공무 집행 중이니 방해하지 마시오.”

“지, 집행부장……!”

대문짝만 하게 써진 집행부장이라는 직함에 담당 마법사는 깜짝 놀라 뒤로 쓰러졌다.

“쟨 무시하고 넌 빨리 올라와.”

“넌 뭘 알고 조작하는 거냐?”

“한 번 해봤어.”

슬레이에 있을 때 세이칼이 가르쳐 줬었다.

이걸 또 여기서 써먹을 줄은 몰랐지만.

“끝났다.”

우우우웅-

신호를 입력받은 기계가 푸른빛과 함께 활발히 돌아갔고 둘은 기계 위에 올라탔다.

“출발한다.”

파밧 하고 바뀐 시야.

눈을 잠깐 깜박하고 떴을 때 둘은 슬레이에 도착해 있었다.

“어우…… 쓰레기 냄새.”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여기선 사람의 살 냄새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니 빨리 익숙해질수록 좋다.

“근데 정말 슬레이에 도착했네?”

“그렇다니까.”

“신호를 외운 거야?”

“그냥 느낌으로 아는 거지.”

자신이 기계도 아니고 신호의 정확한 수열을 기억하진 못한다.

그러나 기억의 주체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돌린다면 일은 훨씬 수월해지기 마련.

“어쨌든 우린 지금 굉장히 유리한 지점에 있어. 이 텔레포트 기계를 사용한 덕분에!”

많은 나라에서 슬레이의 새로운 왕을 보기 위해 사절을 보냈다.

그러나 모두들 슬레이의 기계 신호를 알지 못해 육로를 택했고 가장 가까운 도시도 최소 일주일은 걸리는 거리.

데카드와 필립은 단숨에 이곳 슬레이까지 옴으로써 가장 많은 기회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여기서 할 일이 뭔데. 그것만 마치고 빨리 가자.”

“오케이.”

필립은 젠킨스가 준 명령서를 펼쳐보았다.

“우리가 여기서 할 게 일단 슬레이의 보스와 안정적인 소통망을 열기, 텔레포트 기계 건설, 동태 파악이야.”

모두 보스를 만나야 할 수 있는 일들.

데카드에겐 하품이 나올 정도로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야. 거기 너.”

“으응? 지금 날 부른 거냐?”

길을 지나가던 우락부락한 인상에 남자가 데카드의 시비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 이 못생긴 놈아.”

남자는 허허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주머니에서 너클을 꺼냈다.

역시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게 무법 도시다웠다.

“후회하게 해주지!”

황소처럼 우두두 달려온 남자.

퍼억-! 퍽-! 빡-!

“커헙……!!”

코뼈가 부러졌는지 피가 줄줄 새고 삐뚤어졌다.

“자, 잠깐……! 원하는 게 뭡니까……! 돈이라면 다 주겠소!”

“돈은 필요 없고, 너. 여기 슬레이 보스 아냐?”

슬레이에서 칼 밥을 먹으면서 사는 깡패가 보스를 모를 리 없다.

“아, 알고 있습니다!”

“어디 있는지도 알아?”

“그, 그건....”

이런 조무래기가 그런 어마무시한 정보까지 갖고 있진 않을 것이니 기대조차 안 했다.

“모르면 동네방네 소리만 지르고 다녀. 데카드 아르마다가 왔다고. 너희 친구들도 하면 더 좋고.”

데카드는 주머니에서 은화 몇 개를 꺼내 그에게 쥐어 주었다.

“아, 알겠습니다!”

예상치도 못하게 들어온 큰돈에 남자는 입이 귀에 걸리며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다녔다.

데카드 아르마다가 왔다-!

“……이러면 되는 거야?”

“네가 내 말 들어서 안 좋게 된 적 있어?”

필립은 잠시 눈을 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으나 꼭 꼬투리를 잡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 당시는 안 좋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좋게 끝났다.

“젠장.”

“없지? 그러니까 잠자코 여기 앉아있어. 얼마 안 걸릴 테니까.”

데카드와 필립은 기계 위에 걸터앉아 잠자코 기다렸다.

한 십 분 정도 지났을까?”

우두두두- 히잉-!

“마차 소리?”

데카드는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필립은 천천히 일어서 이쪽으로 오는 무리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마차를 몇 대씩이나 끌고 오는 것이 분명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살짝 긴장해야 할 것 같은데.”

“긴장은 무슨. 비켜 있어.”

잔뜩 힘이 들어간 필립의 어깨를 치우고 데카드는 달려오는 마차 앞으로 갔다.

끼이익-!!

말은 놀라며 급정거하고 모든 그에 맞춰 모든 마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벌컥 열린 중앙 마차의 문.

“무, 문 열어 드리겠습니다.”

“됐고 비켜!”

그 안에서 내린 인물은 황급히 옷을 차려입고 달려나왔다.

“오셨습니까! 헤헤. 오래간만입니다.”

로바드는 아주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악수를 신청했다.

“……어, 그래. 근데 너 정말 로바드 맞냐?”

살은 쫙 빠지고 어째 키도 조금 더 큰 느낌이다.

그는 하핫 하고 웃으며 미소 지었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성공했나 보다.”

“네! 데카드 님이 주신 돈 덕분이죠!”

로바드 뒤에 대기한 갱단 무리들은 모두 하나하나가 사선을 여러 번 뛰어넘어본 전투의 귀재들이다.

“내가 여기 왜 왔냐면 쟤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나 말고 저놈이랑 얘기해.”

“알겠습니다! 그럼 얘기는 저희 본진에서 하시죠! 어서 타십쇼!”

마차에 문까지 열어주는 로바드의 모습에 갱단원들은 경악했다.

대체 저들이 누구길래 5대 갱들을 흡수한 신예 보스가 이렇게까지 굽힌단 말인가.

그렇게 경악의 시선을 받으며 마차에 올라탄 셋.

“처음 뵙겠습니다. 집행부장, 필립입니다.”

“슬레이의 보스. 로바드입니다.”

데카드와 같이 온 인물이니 로바드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정중히 인사했다.

“저희 슬레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필립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쓰레기 도시의 대장이니 대장도 쓰레기일 줄 알았는데 뭐냐, 이 친절함은.

고급 레스토랑도 울고 갈 것 같다.

“이제 곧 도착하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어. 그래.”

이제 막 언제 도착할 거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로바드가 그의 심기를 눈치채고 대답했다.

이런 눈치 하나는 참 세계 최고일 게 분명하다.

“도착했습니다!”

예상보다 금방 도착한 로바드의 본진.

그는 예전에 버려졌던 슬레이의 영지 성을 재건축해 본진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슬레이는 조금이나마 옛날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들어오십쇼.”

로바드의 부하들이 문을 열어주자 성의 내부가 드러났다.

“깔끔하게 잘해놨네.”

“옛날처럼은 못 살겠더라고요. 하핫.”

잠깐 은신처로 썼었던 로바드의 집은 눈뜨고 못 봐줄 정도로 더러웠었다.

“청소는 네가 하냐?”

“부하들이 해줍니다.”

“어쩐지.”

물론 본인이 어느 정도 치우곤 살겠지만 심하게 깨끗했다.

“……야. 갱 보스가 청소를 직접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왜. 할 수도 있지.”

데카드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필립의 모습을 로바드는 눈여겨보았다.

그에 대한 평가를 수정한 것이다.

'흐음…… 저 필립이란 남자는 데카드 님과 친한 것 같군.'

그렇게 성안 로바드의 업무실까지 온 둘은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뭡니까?”

“이거다.”

데카드는 필립이 들고 있던 명령서를 꺼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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