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첫 전투와 첫 패배
“그런데 알고 있느냐?”
루이는 자신을 둘러싼 마도사단을 빙그르르 돌며 쳐다봤다.
“포위는 내가 당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당하고 있음을.”
푸화아악-!
땅에서 해골들의 손이 번쩍 올라왔다.
마도사단의 주위에 둥근 원의 형태로 뻗어 나온 손은 흙을 헤집으며 땅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느새……!”
그러나 루이의 군단은 비단 저것뿐만이 아니었다.
“일어나라.”
묵직한 그의 음성에 답 이라도 하듯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우어어어-!
그와 동시에 땅을 파헤치며 튀어나온 커다란 골렘 한 마리.
인간의 뼈와 살점이 아직도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구토를 일으켰다.
“보, 본 골렘……?”
뼈로 만들 수 있는 흑마법사들의 전용 골렘으로 동시에 루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던 마법이기도 했다.
“어디 덤벼 보거라!”
해골 병사들과 좀비들은 이빨을 딱딱거리며 마도사단에게 돌진했다.
갑자기 뒤바뀐 전황에 모두가 마리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하게 느껴지는 피 맛.
그래도 점점 정신이 맑아지는 게 효과가 있었다.
“1분대는 해골 병사, 2분대는 좀비들을 맡아주세요. 나머지는 저와 본 골렘을 상대합니다.”
“알았어!”
마도사단 모두가 마리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호오…….”
혼란스러웠던 상황도 대강 정리가 되고 도망치는 사람 하나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루이는 그녀의 통솔에 작게 감탄하며 본 골렘을 움직였다.
“맹염의 창!”
“얼음 가시!”
“대지 강타!”
모두가 저마다의 마법을 뽐내며 루이의 군단과 상대해 나갔다.
그러면서 마리의 리더십은 더욱 빛을 발했다.
“각 언데드의 약점에 맞는 마법사들을 배치시켰군.”
좀비는 불에 약하고 언데드는 얼음에 약하다.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이것은 언뜻 보기엔 쉬워 보이나 전혀 그렇지 않다.
“볼수록 괜찮아.”
루이는 자신의 본 골렘을 상대하고 있는 마리를 눈여겨보았다.
“공간 폭발!”
“공간 속성이라……. 희귀한 걸 찾았군.”
공간 속성을 타고난 이들은 찾아보면 적지 않게 있지만 그걸 공격용으로까지 쓸 수 있는 적성자들은 매우 적다.
콰아아앙-!!
서걱-!
그만큼 공격력도 뛰어나 지금 골렘에게 쏟아지는 마법 중 유일하게 마리의 것만이 의미 있는 타격을 주고 있었다.
“공간 절단!”
지금도 둔한 골렘의 약점을 파악해 양팔을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켜 버렸다.
“그러나.”
자신은 호락호락 당해줄 생각이 없다.
루이가 흑마력을 주입시켜 잘렸던 두 개의 팔을 다시 원상복구시켜 붙여버렸다.
“후후후…….”
“젠장……! 다시 붙어버렸어!”
정말 보면 볼수록 엄청난 힘이다.
저 거대한 본 골렘이 시전자의 뜻대로 움직이고 적을 공격한다.
쓰면 쓸수록 루이는 자신의 힘에 취해갔다.
“크하하하! 자랑하던 힘은 이게 끝이더냐! 조금 더 춤춰 보아라!”
본 골렘의 몸에서 날카로운 뼈가 불쑥불쑥 솟아났다.
퓨슈슉-!!
그리고 일제히 발사.
“크으윽……!!”
“끄아악……!!!”
“공간 왜곡!”
예리한 암기같이 뾰족한 뼈는 마리의 빠른 대처로 스치기만 할 뿐 정타는 없었다.
하지만 살짝 스친 것만으로도 안에 담긴 흑마력은 극도의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너, 너무 아파……!!”
귀족가의 자제들이 태어나서 이런 고통을 겪어본 적이 있을까.
뼈에 스친 마도사 중 하나가 체력 포션을 꺼내 들었다.
“아, 안 돼! 그걸 지금 쓰면……!”
마리가 급히 말려보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내가 그걸 보고만 있을 멍청이인 줄 아느냐.”
흑마력을 날카롭게 뭉쳐 침을 만든 루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휙-! 쨍그랑-!
허무하게 깨져버린 포션 시약병.
붉은색의 포션은 애꿎은 땅만 적셔버렸다.
“이, 이런 악마 같은 놈……!!”
포션이 깨져버린 마도사의 힘없는 질타에 루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실전 경험이 너무나 없군. 지금 이 상황에서 악마는 내가 아니라 너다.”
“뭐, 뭐라고?”
“방금 너의 행동으로 팀의 사기는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포션이 허무하게 낭비됐지. 그렇지 않나?”
“그, 그건…….”
마도사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을 때.
루이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케빈! 녀석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
“크큭……! 이미 늦었다. 디사무어!”
스산하고 어두운 연기가 단숨에 뻗어 나가 케빈을 감싸 안았다.
“으으윽…….”
연기가 온몸을 둘러싸자 결국 숨을 참지 못하고 케빈은 연기를 들이마셨다.
“크헉……! 어으윽……!”
“그래. 듬뿍 들이마셔라. 그것이 죽음이다.”
결국 몸에 힘을 잃고 무릎을 꿇은 케빈.
그의 입으로 들어간 연기는 눈과 귀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저리 꺼져!!”
마리가 코에서 피를 흘린 채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터뜨렸다.
“으윽……!”
쿠웅-!!
루이 주변의 공간이 뒤틀리며 그는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졌다.
저주와 흑마법의 주체가 사라지자 해골 병사, 좀비 본 골렘은 힘을 잃고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디사무어에 걸렸던 케빈도 다시금 숨을 쉬었으나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너희는 빨리 케빈을 사제들에게 데려다 줘!”
“으, 응!”
마도사 몇 명이 케빈을 업고 가고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흐흑……! 헨리……! 레스터! 죽지 마……! 크흐흑…….”
마도사단 중 십 분의 일이 사망.
나머지 절반은 중상을 입었다.
“고작……. 한 명의 흑마법사와 싸웠는데……. 이게 맞는 거야...?”
방금 전까지 서로의 무사 기원을 빌어주었던 친구들은 죽었고 남은 이들도 성한 구석이 없었다.
“심지어 그놈은 아직 죽지도 않았어…….”
마리가 공간을 비틀어 아주 먼 곳으로 튕겨버리긴 했지만 머지않아 돌아올 것이다.
정말 아주 약간의 피해조차 주지 못했다.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돌아가자.”
사망자는 수레에 싣고 마도사단은 펑펑 울며 탈리스로 돌아왔다.
* * *
“흐으으…….”
숨을 크게 내쉬며 일어난 데카드.
옆에는 언제나 짹짹이가 있었다.
그는 오늘도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여느 때와 달리 표정이 살짝 미묘했다.
“뭐 큰일 났어?”
“저희한테는 아니지만 큰일은 맞지요. 보시겠습니까?”
아직 눈곱도 안 떼고 글부터 읽으려니까 영 안 내키기는 하다만.
짹짹이의 표정이 달라질 정도이니 궁금하긴 했다.
“어디 보자.”
그가 건넨 신문을 받은 데카드는 가장 먼저 헤드라인을 읽었다.
“끝내 크로우는 나오지 않았다……? 이게 뭐냐?”
“끝까지 읽어보십쇼.”
“알았어.”
초장부터 관심을 확 끄는 제목에 데카드는 조금 더 눈에 힘을 주고 신문을 읽어 내려갔다.
“흑마법사가 루비아 주변에 마을을 습격하면서 계속 크로우와 붙고 싶다며 외쳤지만, 그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선인인 건가. 악인인 건가. 크로우는 결국 끝까지 얼굴을 비추지 않았고 마도사단이 흑마법사와 싸우러 갔으나 십 분의 일이 사망하고 결국 흑마법사를 죽이지 못했다.”기사를 끝까지 읽었을 때 데카드는 살짝 황당했다.
“내가 잠깐 잔 사이에 뭔 일이 벌어진 거야?”
“잠깐은 아니지만 꽤나 많은 일이 일어나긴 했군요.”
그 괴인이 왜 자신을 찾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버려두고 마도사단의 십 분의 일이 사망?
이렇게 밀릴 만큼 그곳에 소속된 마법사들은 약하지 않았다.
기본은 할 줄 아는 애들인데 이렇게 크게 밀렸단 말인가?
“공간 마법으로 멀리 튕겨 버렸다라…….”
기사 뒤편에 적힌 마리의 증언이었다.
“참……. 안 그래도 힘들 텐데 뭘 이런 걸 물어보냐. 기자들은.”
한창 동료들의 죽음으로 가슴이 미어질 게 뻔한데 신문사의 기자들이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짹짹이는 마도사단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저는 괴인이 주인님을 노린다는 게 걱정입니다만.”
“그거? 그게 왜.”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 많이 있었던 일이라 이젠 별 감흥도 없다.
“그리고 나는 살짝 기대도 된다고.”
“괴인과 할 싸움 말입니까?”
“비슷하긴 한데 내가 할 싸움이 아니지.”
데카드 아르마다는 공식적으로 저 괴인과 싸울 생각이 없다.
“내가 아니라 크로우가 저 괴인과 싸워야 해.”
마침 무대도 적절하게 만들어졌으니 자신……. 아니, 크로우가 나설 타이밍이다.
꼬르륵-
“그 전에 밥부터 먹어야겠다.”
“준비하겠습니다.”
아침에 엘리스가 만든 파스타를 다시 뜨겁게 데운 짹짹이는 접시에 담아 거실로 내려온 데카드에게 갖다 주었다.
“엘리스가 만들었어?”
“네. 원래는 많았는데 마수들이 다 먹어버렸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많이 먹을 생각은 없었어.”
데카드가 멍한 눈으로 파스타를 집어 먹고 있을 때 밖에서 부원들과 엘리스가 돌아왔다.
“어? 부장님! 일어나셨다!”
“어어.”
그들에게 대충 인사해 주고 다시 파스타에 집중하려는데 이번엔 요르가 다가왔다.
“마수왕님.”
“왜? 요르?”
뭔가 진지한 그녀의 얼굴에 잠시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제……. 더 이상 유치하게 안 굴게요.”
이게 무슨 소리지?
굳이 데카드가 말로 하지 않아도 이미 표정에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드러났다.
“언제나 마수왕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드리는 역할만으로도 저는 만족해요.”
“응? 뭐…. 그래.”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럼.”
요르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데카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짹짹이를 쳐다봤다.
“왜 저래?”
“저도 모르겠군요.”
짹짹이는 그녀와 오늘 나눈 대화는 화장실의 뚫어놓은 구멍 얘기밖에 없었다.
딱히 그것 때문인 것 같지는 않으나 어쨌든 조금 더 성숙해진 느낌이 든다.
그거 하난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손님이 찾아왔군요.”
“누군데?”
짹짹이가 까마귀로 정문을 바라보았다.
“필립입니다.”
쿵쿵쿵-
데카드의 집 대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는 필립.
그는 당최 나올 생각이 없는 집주인에게 와락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을 꾹 참는 중이었다.
“야! 안 나오면 부순……!”
손에 있던 화염구가 날아가기 전에 대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좀 진작에 열어줄 것이지.”
필립은 풀어헤쳤던 소매를 다시 내리며 정원을 걸었다.
누군가 계속 손질을 해주는 건가?
정원은 깔끔하고 잡초 하나 보기 힘들었다.
“그놈이 이런 걸 할 성격은 아닌데.”
아마 데카드는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필립은 저택의 문을 쾅하고 열었다.
또 문을 두드리고 싶지는 않아 그냥 발로 차서 열었다.
콰앙-!
“……남의 집에 들어오는 데 예의가 없네.”
“문을 30분 동안 두들기고 초인종을 눌렀는데 안 나온 네가 이상한 거겠지.”
“변명 같겠지만 자고 있었어.”
“어련하시겠냐.”
두 절친은 보자마자 서로에게 욕을 박으며 싸워댔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목적은 욕이 아니었기에 필립은 헛기침하며 일 얘기를 꺼냈다.
“너 그거 알아? 슬레이가 통일된 거?”
“무슨 분단 국가냐? 통일이란 말을 쓰게.”
필립은 어이없단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 몇 주나 갇혀있던 놈이. 어쨌든 그곳에 있던 거대 갱들이 신흥 갱에게 전부 무너졌어. 그 범죄 도시가 완전히 한 사람의 손에 들어왔다니까?”데카드는 하품을 길게 늘어뜨렸다.
“지금 사람이 얘기하는데 하품을 하냐?”
“미안, 미안. 방금 일어나서.”
“에효…….”
필립이 아파져 오는 이마를 잡고 있는 사이 데카드가 남은 파스타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 걔 알아. 신흥 갱 보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