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선전 포고
위잉-! 위잉-!
갑자기 수련실이 천장에서 나오는 빨간 조명에 물들며 이상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문을 콰앙 하고 열어젖혔다.
“침입자는 당장 무릎을 꿇…… 헉!”
큰소리를 치려던 마법사가 중앙에 있는 트리스의 얼굴을 보고 숨이 턱 막혔다.
“치, 침입자가 총장님인 겁니까?”
“그럴 리가 있냐!”
멋모르는 후배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후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마법사가 헛기침을 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트리스는 있었던 일을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7서클 마법사들이 힘을 시험하던 도중 우발적으로 생긴 사고였다고.
뒤에 있던 마법사 무리는 7서클이라는 말에 입을 쩍 벌렸다.
“그, 그 7서클 마법사는 대체 누구……?”
같은 마법사로서 꿈의 경지인 7서클에 오른 인간 승리자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싶었다.
“지금 보고 있지 않습니까.”
“보고 있긴 한데 이 중에 누구인지 잘…….”
“보는 그대로입니다. 이들 모두가 7서클이니까요.”
“아아, 그렇…… 네?!”
설명도 끝났으니 이제 더 이상 말씨름할 이유가 없다.
트리스는 그대로 베리어를 넓게 펼쳐 마법사들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또 시험해 보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솔직히 해보고 싶긴 한데 무서워서 안 되겠다.
또 마법 한 번 잘못 날렸다간 저 구멍이 몇 개 더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없으면 이만 내려가죠.”
“그래.”
데카드야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고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 굳이 이런 테스트가 필요 없었다.
“그리고 테스트 방법이 꼭 이런 것만 있는 것도 아니야.”
힘을 시험하는 방법이야 넘쳐난다.
지금 대련실에서 하려고 했던 건 그중 아주 초보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일행은 그렇게 아사이드에서 나가지 않고 잠깐 빈 공터로 방향을 돌렸다.
“여기서 해보자.”
“여, 여기서요?”
이곳은 대련실처럼 항마력은커녕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아까 같은 마법을 여기서 사용하면 공터의 절반이 파괴되어 잿더미로 변하리라.
“시범을 보여줄게.”
힘의 척도를 판별하는 살짝 오래된 방법인데, 데카드가 집행관 시절 때만 해도 곧잘 이용하던 방법이었다.
첫 번째, 자신의 손바닥 위에 마나를 최대한 모은다.
두 번째, 모은 마나를 가지고 매직 애로우 화살 하나를 만든다.
데카드의 손바닥 위에 푸른 화살 하나가 생겨났다.
그러나 모양이 일그러졌다 펴졌다 하는 것이 정상처럼 보이진 않았다.
“너무 많은 마나를 급 낮은 마법에 집중시켜서 매직 애로우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겁니다.”
트리스의 적절한 부연 설명에 부원들은 아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던져보는 거야.”
푸화아아악-!!
매직 애로우가 파공음과 함께 공터의 빈구석으로 날아갔다.
너무 많은 마나를 집어넣은 탓에 날아가면서 내는 소리가 대포와도 같았다.
그렇게 날아간 매직 애로우가 어떤 위력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 와중에.
푝-
화살이 바닥에 힘없이 꽂혔다.
“왜 안 터지는 거죠?”
“일부러 안 터지게 한 거다.”
이 방법으로 마나의 최대 보유량과 응집력, 집중력, 제어력 등등.
다양한 마법사의 덕목들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저도 해볼래요!”
뼈대 있는 마법사 가문의 후손, 아스카는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나도 마나 제어는 자신 있다고!’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그녀는 당당히 오른손 위에 매직 애로우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데카드가 했던 것처럼 마나를 마구 욱여넣었다.
점점 부들거리며 한계점을 맞이한 매직 애로우.
“으앗!”
그러다가 결국 매직 애로우를 끝까지 잡지 못한 채 놓쳐버리고 말았다.
콰아앙-!
날아간 매직 애로우는 허공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귀를 찢는 폭음이 아닌 그냥 딱 매직 애로우의 수준.
그만한 마나를 집어넣어도 매직 애로우가 보여줄 수 있는 위력은 딱 이 정도이니 주변에 피해가 갈 일도 없었다.
“히잉…… 실패했네.”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실패할 줄은 정말 몰랐다.
“고작 매직 애로우라고 얕보면 안 된다고.”
“이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트리스도 손에서 매직 애로우를 갖고 놀다가 이내 터뜨려버렸다.
“그 마법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저도 할 수 있어요?”
이제 막 1서클이 된 엘리스는 갑자기 마법에 눈독을 들였다.
평소라면 딱히 생각 없었겠지만 서클이 생기니 없던 관심도 생겨난 것이다.
“이건 1서클 마법이니까 엘리스도 쓸 수 있을 거야. 이리 와 봐.”
데카드는 엘리스를 곁으로 불렀다.
“마나 룸에 있는 마나가 느껴져?”
“네!”
엘리스는 자신의 뱃속에서 가만히 잠들어있는 마나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걸 여기 손바닥에 집중시켜 봐.”
데카드가 하라는 대로 그녀는 마나를 손바닥에 끌어왔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가기 직전 마나는 모였다가 흐트러지기를 반복했다.
“이, 이게 왜 이러지?”
“아직 컨트롤이 미숙한 거야. 원래 처음에는 잘 안 돼.”
범재는 이 과정에서만 일주일을 소요한다.
데카드와 트리스 같은 천재형은 그 자리에서 깨우쳤지만.
엘리스는 혼자 끙끙거리더니 결국 고개를 저었다.
“역시 마법은 어렵네요. 단검이 훨씬 더 쉬워요.”
“난 그게 더 어려운 것 같던데?”
첫 번째 유물을 찾으러 갔을 때 데카드는 잠깐 엘리스에게 갈까마귀의 단검술을 배운 적이 있다.
‘그때는 무슨 서커스 기술을 배우는 줄 알았어.’
단검이 단검을 맞춰서 표적을 때린다?
이런 개념이 실전에서 사용 가능할지 정말 의문이었는데 자신 옆에 있는 사람은 그걸 숨 쉬듯 했다.
데카드가 엘리스를 가르치고 있을 때 트리스 또한 부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스읍…… 나도 안 되네.”
“거 봐! 어렵지?”
고드윈도 매직 애로우를 유지 하는 데에 실패하고 카론과 벨린다도 번번이 실패했다.
“마나를 뭉친다고 생각하지 말고 쌓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편할 겁니다.”
추상적인 힌트지만 마법사들은 금세 그 뜻을 깨닫고 당장 적용해 보았다.
“으음…… 조금은 더 나아진 것 같은데…….”
“그다음부터는 연습에 연습뿐입니다. 이걸 잘하게 되면 다른 마나 컨트롤이 비약적으로 오르죠.”
“앞으로 맨날 이것만 한다!”
이 수련의 장점은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것.
주변에 사람과 부서질 물건만 없으면 오케이였다.
“그럼 이제 슬슬 가자.”
남의 집에서 한 번 잤을 뿐인데 벌써 집이 그리웠다.
“저는 여기 마법부로 가야 하니 여기서 갈라져야겠군요.”
“수고하고 다음에 보자.”
“선배도 수고하십쇼.”
“안녕히 계세요!”
트리스와 데카드는 서로의 무운을 빌어주고 부원들도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기계 위에 올라탔다.
아사이드에서 루비아까지 도착하고 집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집이다!”
멀쩡히 살아있는 집은 참으로 반가웠다.
“이젠 집을 비울 때마다 걱정돼.”
이미 주소가 드러난 곳이니 언제 습격이나 공격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이 집이 데카드 아르마다의 집이라는 것은 모르지만 어쨌든 위험한 건 변하지 않는다.
“나중에 필립 한 번 찾아가야겠네.”
필립의 집은 주변으로 거대한 항마력 결계가 처져 있다.
그래서 마법으로 공격해 봤자 결계를 뚫을 수 없으니 소용 없었고 설령 뚫는다 해도 습격의 위치를 다 드러내야 한다.
“나도 해달라고 해야지.”
필립의 의견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하며 데카드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 * *
“모두들 모이셨으면 비상 대륙 정상 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중앙에 선 사회자가 단상 위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인 후 회담을 진행했다.
“이번 회담의 목적은 지금 각국을 무차별 테러하고 있는 흑마법사들을 어떻게 대처할지 그 방안을 토론하기 위함입니다. 그럼 탈리스 쪽부터 발언해 주십쇼.”각국의 황제 대신 대리인들이 참석한 이 회담에서 탈리스 역시 대리인을 내보냈다.
탈리스의 대리인은 짧게 목을 풀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저희 탈리스의 수도 루비아가 흑마법사들에게 테러를 당했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일 겁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각국의 왕들은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강국인 탈리스에서 무려 수도가 테러를 당하다니.
흑마법사의 힘이 그 정도란 말인가?
“하나 저희는 뛰어난 대처로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해골 병사를 몰아냈습니다.”
그래도 탈리스는 탈리스였다.
설마 단 한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다니.
“사상자가 없다고는 하지만 테러를 당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 저희 폐하께서는 흑마법사들을 뿌리째 뽑고 싶어 하십니다.”
“탈리스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이 의견에 동조하는 나라는 손을 들어주십쇼.”
각국의 대리인들은 살짝 망설이는 눈치였다.
지금 손을 들면 흑마법사들과 완전히 척을 지겠다는 의미로 중립의 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안 들면?
탈리스를 비롯해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다른 나라들과 등을 돌리게 된다.
“저희 릴리안은 동의합니다.”
“저희 프리카도 동의합니다.”
“멘티티. 동의 표를 던집니다.”
탈리스를 제외하고 대륙의 강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모두 동의했다.
이렇게 된 이상 소국들은 어쩔 수 없다.
“그럼 모두 동의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사회자 옆에서 서기가 내용을 적어 내려가고 있을 때 회의장의 불이 깜빡깜빡거렸다.
“뭐지?”
“정전?”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이 회의장은 각국의 대리인들이 오는 아주 중요한 자리다.
굉장히 튼튼하게 만든 건물인데 전구가 깜빡거릴 리가 없다.
고오오오-
그때 회의장 중앙 바닥에서 까만 점 하나가 생겨났다.
“으으으윽……!! 으아악!!”
그 점을 제일 처음 본 서기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마구 쥐어뜯더니 점이 있는 바닥에 머리를 짓이겼다.
“뭐, 뭐냐!”
서기가 머리를 짓이겨 나온 피는 점에게 흡수되었고 그것은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어느새 서기를 잡아먹듯 자신의 안으로 삼킨 점은 중앙 바닥을 다 채웠다.
더 이상 점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크기.
“경비병!”
상황이 심각해짐을 느낀 이들이 급히 바깥에 대고 소리쳤다.
쿠웅-!
문을 열고 들어온 창칼을 든 기사들.
“당장 나를 지……!”
그러나 기사들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핏자국이 형형한 갑옷에선 썩은 내가 진동했고 투구 안에는 하얀 백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걱-!!
순식간에 잘린 대리인의 목.
“허헉……!!”
다른 대리인들이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회의장의 문을 전부 해골 병사들이 통제했다.
[모두 조용.]
해골 기사가 불쾌한 목소리로 좌중의 혼란을 제압했다.
그러고는 단상 앞에 있던 사회자를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사회자는 해골 병사들 앞에 떨어졌다.
“사, 살려주시오……!!”
사회자는 손발이 닳도록 빌어보았으나 해골 병사는 이빨을 딱딱거리며 그의 목에 녹슨 검을 들이댔다.
그리고 기사를 바라보는 병사들.
[먹어라.]
“끄아아아악!!”
기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병사들은 검을 집어던지고 이빨을 사용해 사회자를 물어뜯었다.
살점이 뭉텅이로 잘려나가고 결국 죽어버린 사회자.
“우,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 건가.”
대리인 한 명이 용기를 내어 기사에게 물었다.
[우린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선전 포고를 하러 왔을 뿐.]
“선전 포고……?”
기사의 안광이 새빨갛게 변하더니 기괴하게 몸을 비틀어대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갑자기 바뀐 기사의 행동.
[이곳에 모든 나라의 대리인이 모인 건가? 좋아, 좋아.]
목소리도 변한 것이 아까보다 더 듣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기색은 더욱더 흉포하고 위험해졌으며 대리인들은 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이런 풍부한 반응에 기사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좌중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흑탑의 탑주.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하노라.]
그리고 조용히 뒷말을 읊조렸다.
[제2의 암흑시대가 왔음을.]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