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7서클 돌입
“근데 짹짹이 님은 서클을 만드실 줄 아시나요?”
“물론이다.”
“그럼 믿고 맡길게요!”
엘리스는 다시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가부좌를 틀었다.
하지만 여기서 짹짹이는 두 가지의 거짓말을 했다.
‘솔직히 서클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감은 잡힌다.’
첫 번째로 그는 서클을 만들 줄 모른다.
그저 옆에서 데카드가 하던 것을 어깨너머로 지켜본 결과 그 방법을 감으로나마 알게 되었을 뿐.
이론을 아주 잘 아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 방법이 인간에게도 통할지 모르겠군.’
짹짹이가 친 두 번째 거짓말은 지금부터 사용할 이 방법이 인간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본디 이 방법은 다친 마수들을 빠르게 회복시키기 위해 사용하는데 그 과정이 서클을 감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시작해 주세요. 짹짹이 님.”
“알겠다.”
“후우…….”
이런 사실들을 모른 채 엘리스는 심호흡하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너는 자의로 마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마나를 소량 넣어주도록 하겠다.”
수욱-
짹짹이의 마나가 엘리스의 몸으로 들어오고 그가 말했다.
“마나가 사라지지 않도록 몸에서 회전시켜라.”
마나는 몸속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두면 기화해서 사라지기 마련.
회로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
‘마, 마나가 내 뜻대로 움직이고 있어……!’
짹짹이가 통제권을 넘겨준 마나를 엘리스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잘하는군.”
마나를 움직이기는커녕 느끼는 데만 해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출발이 좋다.
“이제 마나 룸을 만들 것이다.”
마나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나 룸.
이것이 클수록 담고 있는 마나의 양도 많아지지만, 너무 크면 마나의 질이 떨어진다.
넓지도 작지도 않은 황금 비율이 중요하다.
“…….”
이 부분은 짹짹이도 눈을 감고 집중 상태에 들어갔다.
혼자서 마나 룸을 만드려고 하면 실수가 잦겠으나 이 까마귀는 다르다.
‘이거다.’
본능적으로 딱 안정적이고 적당한 크기에서 마나 룸의 부풀림을 멈췄다.
“느껴지나?”
‘네.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아요.’
움직이면 안 되니 엘리스는 마음속으로나마 대답했다.
“마나 룸도 다 만들어졌으니 이제 서클을 만들 차례다.”
지금부턴 엘리스도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데카드가 서클을 올릴 때마다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 참기는 자신 있는 종목이다.
암살단에서 다양한 고문으로 내성을 올린 자신은 참을 수 있을…….
“끝났다.”
“네……?”
“서클이 느껴지나?”
엘리스는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런다고 딱히 서클이 만져지진 않았으나 평소와 느낌이 달랐다.
“뭔가가 있어요.”
자신의 심장을 감은 하나의 서클.
“다행히 성공했군.”
“네?”
왜인지 이마에 비지땀을 닦으며 안심해 하던 짹짹이는 추궁하는 듯한 눈빛에 엘리스를 피해서 다시 벤치로 갔다.
“이제 너도 마법사다.”
1서클의 마법 새내기, 엘리스는 한껏 밝아진 얼굴로 부원들과 데카드에게 자랑할 생각에 싱글벙글 벤치에 앉았다.
* * *
부원들은 오랜만에 하는 서클 올리기에 긴장이 앞섰다.
“힘내자!”
아스카는 자신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었고.
“아스카도 하는데 나도 해야지.”
고드윈은 경쟁심 아닌 경쟁심으로 임했다.
벨린다는 자신의 벼락을 한 번 손으로 쓸어보고 구석에 올려둔 후 명상 자세를 잡았다.
“강해진다.”
주문과도 같은 말을 자신에게 건 카론.
그는 강한 의지 하나로 여기까지 왔기에 이번 일 또한 자신 있었다.
한편 그는 이미 마법진을 발동시키고 시작한 상태였다.
“크윽……!!”
서클을 너무 많이 올려봐서 더 이상 마음의 준비는 필요 없었다.
다섯이 앉은 마법진이 불을 뿜어내고 그들 모두가 7서클 돌입에 시작했다.
“시작했다.”
“뭐가요?”
바깥에 앉아있던 짹짹이와 엘리스.
“서클 올리기 말이다.”
마나의 먼 친척에 가까운 짹짹이는 공기 중의 흐름이 달라진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크흡……!!”
“으윽…….”
“크악…….”
여러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걸 막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거의 고문실과 같아 보이는 고통 참는 소리에 엘리스는 순간 자신이 이상한 곳에 들어왔나 하는 착각이 들었다.
“비명을 지르면 집중이 깨지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혼자서 포장도로를 걷는 이가 있었다.
‘여기서 마나를 살살 돌려주고…….’
마법진의 효과로 서클을 올릴 동안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데카드.
그는 아주 순조롭게 마나를 돌리고 몸의 기관들을 차례차례 부숴나가고 있었다.
이제 이 짓거리도 여러 번 하니까 요령이 생긴다.
‘제일 약한 지반을 부수면 알아서 무너지게 되어있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마나로 기관들을 무너뜨릴 때 주먹구구식으로 마나를 밀어붙인다.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렇게 지반을 때려주면…….’
건물처럼 알아서 중심을 잃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괜히 서클 올리는 게 몸을 철거시키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지.’
그렇게 데카드는 부원들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몸의 기관들을 전부 부쉈다.
이제는 심장에 서클을 감을 차례.
일곱 번째의 고리가 심장에 천천히 감겼다.
“후우.......”
동시에 회복되기 시작하는 기관들.
바다의 탈리스만 덕분인가?
‘평소보다 회복력이 엄청 빠르네.’
마법진과 탈리스만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했던 서클 올리기 중에 가장 편안했다.
“으윽…….”
마법진의 불이 꺼지자 찾아오기 시작한 고통.
그러나 탈리스만이 그 고통을 줄여주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프긴 하지만 견딜 만한 고통에 데카드는 천천히 마법진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데카드!”
“오래 기다렸…….”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미간을 좁혔다.
“저 뭐 달라진 거 없어요?”
달라진 거야 많긴 하지만 그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서클을 만든 거야?”
“네! 저도 이제 마법사예요!”
“짹짹이가 도와줬어?”
엘리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러나 데카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얘는 서클 만드는 법 모르는데?”
“흠흠……. 그건 둘째 치고 몸은 어떠십니까.”
짹짹이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
“아주 좋아.”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너희들이 정말 이곳에 올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엄청 해두라고.”
짹짹이와의 얘기는 여기서 멈추고 데카드는 엘리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 마법사가 됐네.”
“신기하죠!”
그래, 그녀의 말대로 신기하긴 하다.
“근데 왜 갑자기 마법사가 되기로 한 거야?”
엘리스는 해맑게 웃었다.
“몸을 지킬 수 있는 칼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그리고 저란 칼날이 더욱더 날카로워져야 데카드를 지킬 수 있으니까요.”
그 리치라는 해골에게서 데카드를 지키려면 이런 미약한 힘이라도 끌어 모아야 했다.
데카드는 쓰게 웃었다.
자신을 위해 몸을 내던지겠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만 같아서.
“끝났나 봅니다.”
그때 짹짹이가 마법진이 있는 방들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데카드는 벤치에서 일어서 부원들을 맞을 준비를 끝냈다.
쿠웅-!
짜기라도 한 듯 방의 문들이 동시에 열리고 그 안에서 좀비 네 마리가 기어 나왔다.
볼 살이 쏙 들어가고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있는 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다들 성공했네.”
몰골만 보면 실패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성공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서클을 올리는 행동은 몸에 에너지를 대량으로 뺏어간다.
그렇기에 서클을 올리고 나면 충분한 에너지 섭취가 필수다.
[문이 열립니다.]
다시 지하 2층 서고에 온 데카드와 부원들.
그곳에선 열심히 책을 분류 중인 마수들과 젠킨스, 트리스가 보였다.
“마수왕님! 할 일 다 끝났냐?”
“그래. 이제 올라섰다.”
그의 심장에서 7개의 서클이 활발하게 돌아갔다.
“축하하네. 퇴마부장.”
“수고하셨어요. 선배.”
“수고는 나보다 둘이 더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온 트리스의 피부는 창백해져서 슬슬 실핏줄이 보여 갔다.
“분류는 다 끝나셨어요?”
“이제 막 끝난 참이네. 이제 여기서 리치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가야지.”
책의 권수는 확실히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많은 양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조금만 쉬도록 하지, 총장. 내일 다시 와서 하세나.”
“알겠습니다.”
트리스는 비틀거리며 책 사이를 기어 나왔다.
마수들도 다시 데카드의 안으로 들어왔고 젠킨스는 다시 장관실로 트리스를 포함한 일행은 식당으로 갔다.
그들이 간 식당은 햄버거와 피자를 파는 패스트 푸드점.
워낙 배가 고파서 느릿느릿하게 나오는 음식들을 기다려 줄 인내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음식 나왔습니다!”
인당 세트 메뉴 두 개씩은 시킨 일행의 식탁에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어째 7서클로 올라선 기쁨보다 지금 이 햄버거를 물어뜯는 기분이 더 좋다.
감자튀김을 한 움큼 집어 입안에 털어 넣은 아스카.
그런 그녀를 질린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고드윈이 아스카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돼지도 너보단 안 먹겠다.”
아스카는 일절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고드윈 분량의 감자튀김까지 다 먹어치웠다.
“…….”
괜히 말 한 번 붙였다가 감자튀김만 뺏겼다.
“그래서 다들 7서클이 된 감상은?”
부원들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남들이 보기엔 빈약한 대답이었으나 데카드에겐 이것만으로도 충분.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데카드는 다 알 수 있었다.
“이거 먹고 바로 시험해 보자.”
* * *
이곳은 마법부의 대련실.
아직 업무시간이라 마법부의 인원들이 없어 이곳은 텅 빈 상태였다.
“아마 지금까지와는 힘의 차원이 다를 겁니다. 그러니 마나를 적당히 끌어다 쓰십쇼.”
처음 강한 힘을 휘두르면 이게 강한 줄 몰라 마구 쓰게 된다.
“적당하게만 할게요.”
첫 타자는 고드윈.
원래도 뛰어난 파괴력을 가진 그의 백염이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화권!”
그의 기본 기술인 화권.
백염을 전방으로 강하게 내뿜는 파괴적인 기술이다.
고드윈은 여느 때처럼 오른손을 들고 그 위에 백염을 뭉쳤다.
화르르륵-
“어우, 뜨거워.”
순간 백염을 다루는 자신이 뜨겁다고 느낄 정도로 백염의 열은 대단했다.
“옷이…….”
트리스는 자신의 옷자락을 들어보았다.
조금씩 녹기 시작한 옷은 뚝뚝 끊어지기 시작했다.
“아이스 링크.”
그러기 전에 이 주변을 냉각화시켰으니 옷이 다 녹아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시작할게요!”
“그래.”
고드윈은 뒤로 주먹을 쭉 빼고 그대로 내질렀다.
“화권!”
꽈아아아아아앙-!!
그대로 뻗어 나간 눈꽃 같은 화염은 마법부 대련실의 벽에 부딪혔다.
“괜찮습니다. 항마력이 두껍게 발린 벽이라 무너질 일은…….”
꾸르르릉-!!
휘이이잉-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법부의 벽이 무너지고 커다란 구멍이 뚫려 찬바람이 안으로 숭숭 들어왔다.
되레 뻘쭘해진 고드윈은 말없이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알던 백염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느낌.
이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강자의 힘.
“그게 7서클이야.”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