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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80화 (180/208)

180 나가의 힘

“그, 그게 사실이냐! 거짓말이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어라!”

거짓말이라니.

그렇게 취급하면 자신의 1000년이 울어버린다.

“진짜입니다. 증거라도 보여 드릴까요?”

“……보여 봐라.”

라이아는 정말 꼭 확인이 필요하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나와 봐.”

자신이 마수계의 왕, 마수왕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

바로 이것이다.

“당연히 이분은 마수왕님이시다!”

“어딜 물고기의 여왕 따위가!”

“…….”

“그래서 오늘 먹나? 문어 숙회?”

짹짹이를 제외하고 가장 오랫동안 마수계에서 군림했던 네 명의 지배자.

그러나 라이아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이 나오는 건 특이한 일이지만 이게 어떻게 증거가 되지?”

그건 이들의 정체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얘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마수가 사람으로 변한 것이죠.”

“마수가 사람으로……?”

“흥! 그 증거를 보여 주마!”

요르가 힘찬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마나를 전부 개방했고 다른 마수들도 개방을 시작했다.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은 순수한 마나.

마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함이 산호성을 가득 채웠다.

우우우웅-

마수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나에 산호성을 짊어진 트로이카도 기분 좋은 공명음을 내었다.

“어떠냐! 믿겠냐!”

티아라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뻥뻥 말했다.

“마, 마수왕님! 얘 운다!”

그러나 티이라는 당황했다.

자신의 말을 들은 라이아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으니까.

“왜 우십니까……?”

데카드도 이 여왕님이 왜 우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여, 여왕님!”

주변의 병사들은 갑자기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자 화들짝 놀라며 가까이 오려고 했다.

그러나 번쩍 올라가는 라이아의 손.

여왕의 대기 명령에 병사들은 다시 제자리를 지켰다.

“이 마나는……. 분명 인간계의 것이 아닙니다.”

울음이 멈추고 라이아는 숨을 가다듬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와 같이 따라온 여왕의 존대.

“당연하다! 마수계의 것이니까!”

고오른이 자신감 있게 큰 소리로 얘기했다.

“맞지요. 마수계의 것입니다. 당신들은 필시 마수계 네 명의 지배자일 테고요.”

라이아는 옆에 있는 레오부터 끝 쪽에 있는 요르까지 순서대로 눈을 맞춰가며 얘기했다.

“서쪽 평원의 금사자, 동쪽 화산의 적산양, 남쪽 산맥의 거룡, 북쪽 설원의 백사. 모두 당신들입니다.”

“맞다!”

“옛날에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고!”

“그리고 당신들을 이끄는 인간이 바로 데카드 아르마다고요.”

마수들이 이것까지 긍정하자 이제 더 이상 라이아에겐 망설일 게 없었다.

라이아의 다리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인어의 꼬리 대신 사람의 다리가 생겨났다.

갑자기 여왕에게 다리가 생겨났다고 놀랄 틈도 없이 더욱더 놀라운 일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말씀을 편하게 하시옵소서. 마수계의 왕이시여.”

다리를 만들어낸 라이아는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감히 데카드의 얼굴을 올려다보지도 못했다.

마치 황제 앞에 선 다른 백성들이 그러하듯.

“얘 갑자기 왜 이러냐?”

나한테 묻는다고 답이 나오진 않는다.

“하핫! 마수왕의 앞인데 당연한 반응이다! 지금까지의 인간들이 너무 개념이 없었던 거야!”

고오른은 드디어 예의를 차릴 줄 아는 놈을 만났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데카드는 사실 좀 얼떨떨했다.

마수계라는 한 차원의 왕이라는 것은 분명 대단한 사실이었으나 그 지위를 이렇게 인정받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막상 받아보니까 기분은 좋네. 황제는 매일 이런 기분이려나?’

황제를 생각하다 보니 그가 했던 자신에게 했던 대사들이 몇 개 떠올랐다.

“큼큼. 그만 고개를 들어라.”

그의 말투를 따라하며 라이아에게 말하자 그녀는 데카드의 말에 순종했다.

고개를 들어 올린 라이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눈에선 무한한 존경심과 신뢰감이 뚝뚝 묻어나왔다.

“근데 부장님. 이 여왕님보다 주변을 둘러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스카가 그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귓속말을 해왔다.

“주변?”

데카드가 잠깐 시선을 때 주변을 둘러보자 전쟁에서 돌아온 수만의 나가 병사들과 원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친위대.

그들 모두가 자신에게 지느러미를 굽히며 무릎 꿇고 있었다.

“당신께서 원하시던 나가의 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저의 종족을 어떻게 하실지는 모두 당신의 선택입니다.”

“아니 아니. 나한테 왜 이러는지 먼저 설명을 해줘.”

나가의 힘이고 나발이고 데카드는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설명해 드리도록 하죠. 절 따라와주십쇼.”

라이아는 공손하게 일어나 산호성의 어딘가로 일행을 안내했다.

산호성의 서고.

이곳에는 고대에서부터 쌓인 문헌과 자료들이 넘쳐난다.

아마 트리스에겐 환상의 공간일 것이다.

“마수왕님께선 아마 모종의 이유로 마수계에 들어가셨을 겁니다.”

“맞다.”

미궁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공간 이상 때문에 의도치 않게 마수계로 빨려 들어갔었지.

“저희 나가는 사실 원래 이 세계의 살던 종족이 아닙니다.”

“그럼 뭔데?”

“저희의 본래 세계는 마수왕님이 계셨던 곳.”

내가 있었던 곳?

데카드는 물음표를 띄웠다.

“바로 마수계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가 종족의 기원.

이들의 고향이 마수계였다고?

“마수왕님이 공간 이상 때문에 마수계에 갔던 것처럼 저희 종족의 조상 또한 공간 이상으로 인간계에 왔습니다.”

나가의 조상이 떨어진 곳은 바다.

바다에 떨어진 조상은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자손 또한 낳았다.

그렇게 번영과 진화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나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잠깐, 잠깐. 그럼 너희들의 조상이 마수였다는 거네?”

“맞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희도 엄연한 마수. 그러니 마수들의 왕이신 당신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충격에 충격이다.

‘따지고 보자면 나쁜 일은 전혀 아니지.’

부하도 늘었고 나가 종족을 다루기에도 더 편해졌으니까.

데카드가 그렇게 납득하는 사이 라이아는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뭐 해?”

보석이 알알이 박힌 푸른색 팔찌가 그녀의 손 위에서 변형을 거듭하다 본래 크기보다 조금 더 커졌다.

“이 팔찌를 받아주십쇼.”

“이게 뭔데?”

겉보기엔 비싸지만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치장품 같았다.

“트로이카를 조종하고 소통할 수 있는 팔찌입니다. 나가를 이끈다는 표식이기도 하지요.”

라이아는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데카드에게 양손으로 팔찌를 내밀었다.

거대 거북인 트로이카와 연결된 팔찌.

이 팔찌만 있으면 신수의 힘을 휘두를 수 있다.

“아니. 이건 받지 않을게.”

그러나 데카드는 거절.

“어,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혹 제가 맘에 들지 않아서 그러신 거라면 당장 목을 베시옵소서.”

“아니 내가 네 목을 왜 베냐. 그게 아니라 이건 나보단 너한테 더 잘 어울린다는 뜻이야.”

“그, 그게 무슨…….”

데카드는 한숨을 쉬며 양손 위에 놓인 팔찌를 다시 라이아의 손목에 걸어주었다.

“나가들을 이끄는 건 나 같은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다. 나하곤 어울리지 않지. 그러니 너는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잘 이끌어주고 나에게 힘이 되어주어라.”짐짓 무게를 잡고 눈에는 힘을 주며 얘기하자 라이아는 또다시 핑 하고 눈물이 돌았다.

“마수왕의 명을 받들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그래, 그래. 몸까지 받칠 필요는 없고 열심히 해라.”

힘내라는 의미로 라이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려주자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럼 팔찌 대신 이거라도 꼭 받아주십쇼.”

“뭔데 또?”

이번에는 라이아가 자신이 끼고 있던 목걸이에 손을 댔다.

“나는 그런 장신구 필요 없다니…….”

“이 목걸이를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이 안에 보관돼 있는 것이지요.”

“목걸이 안에?”

이 목걸이는 일종의 아공간 주머니 같은 것으로 안에 여러 물건을 보관할 수 있다.

라이아가 목걸이 안에서 꺼낸 것은 전 세계의 모든 세력이 애타게 찾고 있는 마지막 태고의 보물.

“유, 유물이에요!”

“…….”

고드윈이 소리친 것처럼 이 정사각형 모양, 기하학적 무늬, 심상치 않은 기운.

이것은 분명 유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유물과 다르게 정신적인 공격을 일절 하지 않고 얌전하게 있었다.

“이것을 쥐고도 아무렇지 않은 거야?”

“네. 무슨 일이 있어야 하나요?”

사실 있으면 안 되지만 없는 것도 이상하다.

이것을 만진 이들은 대부분 미치거나 유물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게 되는데 라이아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이건 고맙게 받을게.”

유물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아아……! 감사합니다.”

데카드가 유물은 별 말하지 않고 받자 라이아는 크게 기뻐했다.

설마 유물을 이런 데서 얻을 줄이야.

라이아가 준 유물은 데카드의 손에 들어와도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이 유물을 사용해 본 적 있어?”

데카드의 말에 라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따로 사용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 보물이 알아서 힘을 발산했거든요.”

“어떤 힘이었는데?”

“일종의…… 치유력 같았습니다.”

아주 오래전 바다 깊은 곳에 박혀있는 이것을 발견했을 때.

그 주위는 이미 오래전에 멸종되거나 사라진 식물과 물고기들로 넘쳐났다.

“보물을 오염이 심한 바다에 갖다 놓으면 한 달 이내로 그 바다는 그 어디보다 깨끗한 청정 구역이 됐지요.”

“치유의 힘이라.”

그동안 밝혀진 유물의 힘을 보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며 조화로운 부분들이 있다.

어떤 유물은 생명력을 뺏어가며 힘을 주지만 이 유물은 되레 생명력을 준다.

만약 이 유물을 모두 모은 자가 힘을 남발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좋아. 그러면 우린 이제 떠나볼게.”

“벌써 가시는 겁니까?”

라이아가 아쉬운 눈치로 얘기하자 데카드는 그 눈을 애써 피했다.

‘눈이 너무 또랑또랑해서 보기가 부담스럽네.’

이 눈을 계속 보고 얘기하다간 거부하지 못하고 여기 눌러 살 것 같다.

“우린 할 일도 마쳤고 슬슬 돌아가야지.”

“오랜만에 산호성에서 연회를 열려고 합니다. 저희 병사들도 인간 영웅들의 모습을 너무나 보고 싶어 하는데 얼굴이라도 비춰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으으…….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라.”

나가 특유의 큰 눈이 계속 이쪽을 바라보았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쉽게 지나칠 수 없게 하는 그 불쌍하고 애절한 눈빛.

“하아……. 알았다. 알았어.”

“알겠습니다. 그럼 연회를 금방 준비할 터이니 방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라이아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일행은 어느새 산호성 귀빈실 안에 도착해 있었다.

“밥이다! 밥!”

“뭔가 비린내는 날 것 같지만 기대되는군요!”

“…….”

마수들은 그냥 별 생각 없이 밥 먹을 생각에 기뻐했고 부원들은 공짜로 얻은 유물에 기뻐했다.

“역시! 열심히 사니까 이런 복도 들어오네요!”

“다행히 유물도 저희가 손에 넣었으니 상황이 조금은 더 유리해졌습니다.”

상황이 유리해졌다?

그 말에 데카드는 살짝 회의적이었다.

물론 상황은 좋아졌으나 그 탑주라는 인물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아직 모르지.”

데카드는 안심하지 않았다.

마지막 유물이 그 탑주란 자에게 들어갔을지도 모르고 아직 자신도 원래의 힘을 되찾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탑주란 자에 대해선 트리스가 대응책을 만들고 있으니 조금은 걱정을 내려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려나.”

데카드는 침대에 누워 마지아 섬 쪽을 바라보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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