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살아있는 해골
“일주일쯤 전에 있었던 일이지.”
암살자는 휘하에 아무런 부하도 없이 홀몸으로 흑마법사의 성지, 흑탑에 갔었다.
어떻게 갔는지에 대한 건 말할 게 없다.
“그저 스크롤을 찢으니까 탑 앞에 와 있더군.”
“탑이라……. 계속 말해 봐.”
탑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말라비틀어진 거목들과 하얗게 변해 버린 잡초들뿐이었다.
땅도 조금씩 갈라져 있는 게 어딘가 병든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흑마법사들이 날 데려갔다. 탑의 위치가 들킬까 걱정하는 눈치였지.”
필립은 그의 말을 경청하며 노트에 받아 적었다.
“탑 안은 별게 없더군.”
그저 실험 도구처럼 보이는 시약병이나 제조기들이 벽면에 가득 차 있었다.
조용하긴 또 얼마나 조용했던가.
간혹 가다가 흑마법사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이 흑탑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탑은 꽤나 높았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했지. 대충 10층은 돼 보였어.”
“10층. 알았어.”
“흑마법사들은 날 그들의 군주 앞에 세웠다. 일명 탑주라고 불리는 놈이었지.”
“탑주?”
암살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그 탑주란 인물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별 더러운 광경은 다 봤을 일류 암살자가 이런 말을 꺼냈다.
“뭔데 그래?”
“탑주는 다른 흑마법사들처럼 새까만 로브 차림이었다. 그러나 얼굴은 후드로 가렸고 손 또한 로브 자락 안에 감춰둔 모습이었지.”
여기까지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정체를 숨기려는 거야 피차 마찬가지인 직업이니까.
그러나 이다음 일어난 일에 암살자는 경악했다.
“그가 말을 하더군.”
옥좌에 앉은 탑주는 이렇게 말했다.
“동맹의 사절이 이렇게 먼 걸음 했는데 나도 성의를 보여야겠지.”
“……!!”
그가 후드를 내리자 새하얀 백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눈이 있어야 할 곳은 텅 비어 어두운 심연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왜 그런가? 내 모습이 어딘가 이상해 보이나?”
그럼 정상이란 말인가?
“사람이 아니라 해골바가지라고?”
“……그래.”
“흑마법사가 해골을 쓰는 거야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그 해골이 흑마법사인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켈레톤 메이지라는 이름의 스켈레톤이 존재하긴 했어도 그것은 엄연한 주종관계에 묶여있는 해골.
그게 아니라면…… 흑마법사 자신이 죽음을 뛰어넘게 해주는 흑마법 최고의 경지.
“설마…….”
필립의 머릿속에 금단의 마법 하나가 떠올랐다.
리치[lich]
라이프 배슬이라는 여벌 목숨을 만들어 죽음을 극복한 자를 지칭한다.
“놈이 조종당하는 느낌은 안 들었나?”
“조종……? 그게 누구한테 조종당하는 것이라면 그 조종자는 진작에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오.”
“그럼 결국 리치라는 건데…….”
리치는 문헌이나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신화급 존재다.
성공만 한다면 영생은 물론이고 마법적 능력도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됐는데?”
암살자는 다시 끙끙거리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 뒤부터는 별 게 없었소. 다시 후드를 쓰며 우리 단장한테 안부나 전해달라고 했지.”
“싱거운 놈이네.”
“크흐흐……. 직접 본다면 그런 말 못할 거요.”
“지금 말한 게 끝인가?”
암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도 수긍하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에게 다가왔다.
“무, 무슨 짓이오?”
“쉿.”
필립의 손가락이 암살자의 이마를 톡 하고 건드렸다.
후욱-
그의 마나 일부분이 암살자의 몸을 돌아다니다 심장 부분에서 멈춰 섰다.
조금씩 심장을 감싸 안아가는 마나.
“자, 다시 물어볼게. 정말 더 말할 거 없어?”
“그렇소.”
암살자는 또렷한 눈동자와 표정으로 필립을 쳐다봤다.
“그런데 심장은 왜 빨리 뛸까?”
아무리 뛰어난 암살자라도 심장 박동까지 제어할 수는 없는 법.
필립이 감아놓은 마나가 빨라진 박동을 잡아낸 것이다.
그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또 거짓말하면 국물도 없다.”
“알았소…….이젠 더 이상 숨기지도 못하겠군.”
묵비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젠 말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우리 단장에게 보내는 서신 하나가 있었소. 나는 돌아가면서 그걸 전달해야 했지. 탑주는 서신을 즉석에서 썼는데…….”
“그걸 봤구나?”
“맞소.”
수첩에 적을 준비를 마친 필립은 빠르게 손짓하며 그를 재촉했다.
“손 움직임을 미루어보아 생각한 것이니 너무 신용하지는 마시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말하기나 해.”
한숨을 푹 내쉰 암살자가 이제 입을 열려는 순간.
그의 목에서 새까만 촉수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푸확-!!
동시에 머리가 터져나간 암살자.
“이건 또 뭐야.”
필립은 당황하지 않고 양손에서 불길을 뿜어내 암살자와 통째로 촉수를 불태워 죽였다.
조금 저항하던 촉수는 결국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촉……수? 이게 왜 사람 몸에서…….”
이미 죽어버린 암살자를 발로 툭툭 건드려 보았으나 당연히 미동도 없었다.
“일종의 저주 같군. 신종 저주.”
저주를 건 상대의 몸에서 촉수가 솟아나오고 극도의 폭력성을 보인다.
노트에 마지막 정보를 끄적인 필립은 흐음 하고 숨을 내뱉었다.
“정보를 말하면 죽이게 설정해 두었어.”
이런 시간차 저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 7서클 이상의 흑마법사.
그것도 일류 암살자가 모르게 저주를 박아 넣으려면 빠르고 은밀해야 한다.
“그 탑주란 놈의 짓이겠지.”
“아, 안에 무슨 일 있습니까?”
심문실 안에서 들린 큰소리에 몇몇 집행관이 쿵쿵 문을 두드렸다.
“호들갑 떨지 마라! 나 멀쩡하니까.”
암살자들은 전부 죽어버렸지만, 자신은 멀쩡하다.
뒷정리는 집행관들에게 맡기고 필립은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
까악-
그를 발견한 까마귀는 근처로 내려와 발을 까딱거렸다.
아마도 알아낸 정보를 내놓으라는 말 같은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
“하여튼 주인이나 마수나 똑같은 놈들만 모였네. 가서 전해 줘.”
까마귀에게 정보가 적힌 수첩을 부리에 물려주었다.
입이 꽉 찼지만, 다시 힘차게 날아오른 까마귀는 저택으로 움직였다.
훨훨 날아가자 얼마 안 있어 커다란 집 하나가 나타났다.
“으응? 저기 데카드의 까마귀예요!”
창문으로 들어온 까마귀 한 마리가 책상에 탁 하고 내려앉았다.
“입에 뭘 물고 있군요.”
“읽어봐라.”
어느새 옆에 앉아있던 짹짹이가 턱짓으로 수첩을 가리켰다.
“네!”
데카드는 현재 소파에서 잠들었고 그의 안에 있는 마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데카드보다 먼저 수첩을 열어보게 된 트리스와 엘리스.
“리치……? 이게 뭐지?”
마법적 지식이 부족한 엘리스는 수첩에 적힌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트리스……?”
하지만 엘리스의 중얼거림을 들은 트리스의 낯빛은 한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들으면 안 될 것을 들어버린 듯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손은 천천히 엘리스가 잡고 있는 수첩을 잡았다.
“제가 좀 보겠습니다…….”
“네, 뭐.”
아직 상황의 심각함을 알지 못한 엘리스는 소파 등받이에 편하게 등을 기댔다.
“…….”
수첩을 받아 들은 트리스의 눈은 빠르게 수첩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곳엔 아까 엘리스가 읽었던 단어.
리치가 아주 커다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짹짹이 님. 이 수첩이 대체 뭐죠……?”
“필립이 숙소를 습격했던 암살자를 심문하면서 얻어낸 정보들이다.”
“그럼 이게 전부 다 사실…….”
계속 나오는 리치라는 단어에 엘리스가 물었다.
“리치가 도대체 뭔데요?”
트리스는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리치는 흑마법사의 끝이라고 불리는 형태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리치는 혼자서 만 구의 시체를 다스릴 수 있고 그 근처에만 가도 생명력이 흡수된다고 전해집니다.”
“괴물이네요.”
정말로 말세에나 나올 법한 괴물 그 자체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은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갈까마귀가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입술에서 피가 날 것처럼 강하게 깨문 엘리스는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아주 갈 때까지 갔네요. 내가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터무니없는 곳이 아니었는데.”
갈까마귀라는 이름이 주는 자존심과 전통성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대체 어떤 협상 카드를 내밀어야 갈까마귀 단장이 수락한단 말인가.
엘리스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두 곳이 손을 잡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리치 쪽이 더 문제입니다.”
탑주란 이름의 리치.
“이자를 쓰러뜨려야 끝이 나겠네요.”
“저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표정이 어두워진 트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마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선배에겐 미안하다고 전해 주십쇼.”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당장 리치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어두어야만 훗날 있을 전투에서 희망이 보인다.
정말 리치의 힘이 전설에 나오는 그 정도라면…….
‘세상은 그놈에게 멸망할 거야.’
* * *
“하암…….”
어제 어떤 일들이 밝혀졌는지도 모른 채 데카드는 기지개를 쭉 켜며 일어났다.
그의 앞에 놓여있는 물 한 잔과 필립의 수첩.
“짹짹아. 고마워.”
물은 당연히 짹짹이가 올려놓은 것일 테고 수첩에는 필립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디 한번 볼까.”
이제 곧 부원들을 데리고 바다로 나가야 하기에 남은 시간은 지금뿐이다.
데카드는 소파에 누운 채로 수첩을 한 장 한 장 넘겨겼다.
그러다 눈에 띈 한 단어.
“…….”
그 또한 트리스처럼 급격히 말을 잃어갔다.
“내가 잘못 봤나?”
분명 똑바로 봤음에도 자신을 의심하며 눈을 비볐다.
그러나 다시 보고 또 다시 봐도 데카드가 본 단어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야. 필립 이 새끼가 잘못 듣고 잘못 쓴 거야. 음. 그렇고말고.”
데카드는 그렇게 믿고 싶었으나 그게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아…….”
속에 있던 답답함과 의문스러움이 전부 이 한숨에 담겨 밖으로 터져 나왔다.
리치? 정말 리치라고?
리치가 뭔지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일어나셨군요. 트리스는 먼저 마탑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 이 수첩을 봤으면 여기 있을 때가 아니란 걸 알았겠지.”
간단한 아침밥을 해온 짹짹이는 그의 앞에 접시와 수저를 놓았다.
“아침 드시고 곧바로 바다에 나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지금은 눈앞에 닥친 바다 괴물들이 더 중요하다.
지금 리치에 대해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건 전혀 없다.
걱정거리만 늘어날 뿐.
“애들은 어디 있어?”
“방에서 준비 중입니다.”
그는 접시에 담긴 달걀 오믈렛을 후루룩 입안에 털어 넣고는 말했다.
“이제 출발한다고 전해.”
* * *
나가들이 준 잠수복의 수가 모자라 데카드가 먼저 가서 여왕에게 더 받아왔다.
잠수복을 착용하고 산호성에 도착한 부원들.
“와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처음 봐요!”
“굉장히 반짝거리는군요.”
“눈만 아픈데.”
저마다의 감상을 내뱉으며 퇴마부는 산호 성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정말 하루 만에 왔구나. 한데 정말 이 정도 인원으로 저 괴물들을 상대하겠다는 말이냐?”
“정확히는 여기서 다섯 명이 더 추가됩니다.”
“그들은 어디 있느냐?”
데카드는 자신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자신의 안쪽을.
“제 안에 있습니다.”
여왕은 미친놈 보는 듯한 표정으로 잠시 데카드를 바라보곤 벽을 열어주었다.
벽 바깥에는 저번에 봤던 괴물들이 바닥에 잔뜩 깔려있었다.
“어디 한 번 해보아라.”
“좋습니다.”
여섯 명의 인간이 산호 성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