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바다의 전투 종족
“그건 또 뭡니까?”
자신도 얼마 전까진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이런. 이걸 모른다니.”
“……?”
본인도 몰랐으면서 한껏 아는 척하는 데카드.
“이건 나가족의 보물이야!”
“나가족이요?”
“그 바다 종족
말입니까?”
동화에 나오는 인어의 모티브로 알려진 나가는 호전적이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는 이들이다.
“꽤나 흥미롭군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물건에 트리스는 흥미롭다는 듯 나팔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뭔가 빛나 보이긴 해요.”
태양 빛에 나팔이 비칠 때마다 그 속과 겉에 붙어있는 모래들이 알알하게 빛났다.
엘리스는 왠지 가까운 곳에 떨어져 있는 바다가 눈에 밟혔다.
직감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기 바다로 나가보는 건 어때요?”
“바다? 아아……! 혹시!”
엘리스의 생각을 눈치챈 데카드가 바닷가로 달려갔다.
“무슨 생각인지 알겠습니다.”
트리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가설을 인정해 주었다.
멀지 않은 해안가라 금방 도착한 셋.
[여기서 뭘 하시려고요?]
요르의 물음에는 이제 행동으로 답할 차례다.
그의 손에 들린 소라 나팔.
데카드는 나팔을 입에 대고 크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부우우우-
항구에서 들리는 뱃고동 소리처럼 깊고 묵직한 나팔의 소리가 바다로 울려 퍼져 나갔다.
“소리가 아름다워요!”
“이 정도면 보물이라 할 만하군요.”
가만히 눈을 감고 이 소리를 들으면 자신이 바다에 나온 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다.
그때 수면 위로 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뭔가 큰 게 온다.”
데카드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바다가 쑤욱 범위를 넓히더니 셋을 잡고 안으로 끌어당겼다.
“으윽! 뭐, 뭐죠?”
“아무래도 나가족의 초대 같군요.”
이곳은 바다 안임에도 그들을 둘러싼 공기 방울이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점점 바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세 명.
이제 태양도 이곳까지 빛을 뿌리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방울 안에 있는 세 명에겐 아침처럼 밝게 보였다.
“와아……!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요?”
“아마 아니었을걸?”
산호들이 형형 색깔의 빛을 뽐내며 어두운 바닷속을 환히 비춰주었다.
루비나 사파이어같이 아름다운 색깔의 산호들.
그 위를 헤엄치는 물고기 떼는 진풍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기 상어도 있어요!”
수족관에 온 아이처럼 신나하던 엘리스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렇게 신기해?”
“네! 마법 같은 일이잖아요!”
“마법 같은 일이라....”
작게 중얼거린 트리스도 이 마법 같은 일에 젖어들며 방울 바깥을 계속 바라보았다.
셋이 감탄에 마지않을 때 마수들 또한 입을 헤하고 벌렸다.
[엄청 많다! 생선!]
[저 무리는 구이로 하고 저 무리는 찜으로 먹고 싶습니다!]
[…….]
[바다가 이렇게 낭만 있는 곳인 줄 처음 알았어요!]
물고기 떼에 군침을 흘리는 마수들도 있었고 산호들이 주는 분위기에 취하는 마수도 있었다.
[주인님. 저기 무언가가 보입니다.]
짹짹이가 가리킨 곳에서 밝게 빛나는 무언가.
“산호로 만든 성…… 인가?”
“그런 것 같은데요?”
밝게 빛나는 산호들로 지은 나가 종족의 성.
마치 바닷속에 태양이 있는 것처럼 주변이 환해졌다.
공기 방울은 성에 가까워지자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성문 앞에 멈춰 섰다.
끼익-
거품을 일으키며 열리는 산호 성문.
“저기 나가들이에요!”
성벽 위에는 날카로운 삼지창을 든 나가 병사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거품 밖으로는 못 나가나?”
“……나가면 죽을 것 같습니다만.”
방울이 계속 공기를 넣어주기 망정이지 잘못하다간 익사한다.
또 이곳은 꽤나 깊은 해저.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수압은 진작에 넘어선 지 오래다.
“성 안은 더 아름다워요!”
그렇게 성 안으로 들어온 셋은 종족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건축물에 감탄했다.
“점점 성 깊숙이 들어가는군.”
그러다 마주친 나가들은 신기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곤 했다.
왠지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이나 엘프 마을, 드워프 마을에서도 겪어봤다.
“슬슬 도착했나 보네.”
이 커다란 문 뒤에서 강대한 자연의 마나가 느껴졌다.
쿠웅-
문이 열리고 데카드의 예상대로 왕관을 쓴 나가족의 여왕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의 나가 병사들은 이쪽을 경계했다.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노려보지 맙시다.”
데카드가 이렇게 외치자 나가 여왕은 훗 하고 웃었다.
“그대 같은 마법사가 고작 익사로 죽지는 않을 터.”
“그쪽도 마법사입니까?”
“하하핫.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예절 따윈 없구나.”
왕족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 건 데카드가 이상한 축에 속한 거다.
하지만 졸지에 인간은 예의 없는 종족이 됐다.
“왜 그대들을 이리로 불렀는지 궁금할 터이다.”
솔직히 이건 납치에 가까웠으나 데카드는 굳이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그렇습니다. 나가의 여왕이시여. 하나 제가 생각하기엔 이 나팔이 목적 같은데 아니신지요.”
트리스가 나름 구색을 갖춰 대답하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영 글러 먹은 놈들만 있는 건 아니었군. 맞다. 본인의 목적은 그 나팔이지. 그 나팔은 우리 종족의 보물. 그대들 같은 인간이 갖고 있을 게 아니다.”
“흐음…… 그렇군요.”
데카드는 손에서 나팔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탁 하고 쥐었다.
“……그건 장난감이 아니다. 그렇게 조심성 없이 만질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여왕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꽤나 좋은 반응에 그는 머릿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드리도록 하지요.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그렇습니다.”
여왕은 코웃음 치며 주변 병사들한테 손짓했다.
스르릉-
검과 창이 방울 안에 있는 셋을 노렸다.
“내 손짓 한 번이면 너희들은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
“여왕님께선 이 나팔을 잃으시겠지요. 여기 있는 이들 중 조금이라도 누군가 움직이면 제가 부숴버릴 겁니다.”
“뭐, 뭐라? 그게 어떤 물건인 줄은 알고 지껄이는……!”
지직-
나팔에서 들리는 금 가는 소리.
순식간에 여왕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알았다! 그러니 부수지만 말아다오!”
대담하고 외줄을 타는 듯한 그의 협상에 곁에 있던 둘은 물속임에도 머리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저의 조건을 들어보시겠습니까?”
“……말해 봐라.”
데카드는 나팔과 함께 다른 손을 내밀며 까딱거렸다.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아, 나가라 인간의 수신호는 못 알아듣나?
“물물교환입니다. 이 나팔과 나가족의 무언가를 교환하시지요.”
“괜찮은 방법이구나.”
여왕은 생각보다 터무니없지는 않은 요구 조건에 입을 열었다.
“무엇을 원하느냐. 돈과 보물이라면 썩어 넘칠 만큼 있도다.”
바다에서 난파된 보물선이나 상선들이 가라앉으면 그건 누구의 것일까.
바로 나가들의 것이 된다.
그렇게 쌓인 재물은 산만큼 쌓여있다.
하지만 데카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희는 황금 따윌 원하지 않습니다.”
다른 인간들이라면 환장을 하고 달려들었을지 모르나 이쪽은 아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나가 종족의 힘입니다.”
“우리의…… 힘?”
“그렇습니다.”
알 수 없는 데카드의 말에 여왕이 미간을 좁혔다.
“제대로 설명하거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곧 제2의 암흑시대가 옵니다.”
암흑시대라는 말에 웅성거리는 나가들.
한 손을 들어 올린 여왕은 단번에 주변의 소란을 일축시켰다.
그러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가운 표정으로 방울에 다가왔다.
“앞으로는 할 말을 천천히 골라가면서 해야 할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 잘난 혀가 너의 목을 죄일 거다.”
“충고는 감사합니다만 사실입니다. 당신들이 도망쳤던 암흑시대가 다시 도래한다는 말입니다.”
“도망? 하!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여왕은 방울에서 살짝 멀어져 양손으로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진동하기 시작하는 산호 성.
“움직여라. 트로이카.”
우우우우우웅-
거대한 공명이 성을 한차례 진동시키고 곧이어 뭔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속이라 그런 부유감은 언제든지 들 수 있지만 이건 조금 다르다.
성 자체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인간들은 그렇게 알고 있구나. 우리가 도망쳤다고.”
여왕은 뒤돌아 있는 상태로 짐짓 중얼거리더니 한 손으로 벽면을 쓸었다.
커다란 벽은 작은 산호들로 분해되며 그쪽의 바다가 전부 눈에 들어왔다.
“저곳을 보아라.”
“저건…… 바다의 괴수들?”
“어, 엄청 많아요.”
과거에서 트리스와 엘리스를 습격했던 아귀 고래부터 시작해 다양한 괴물들이 나가 병사와 싸우고 있었다.
“저들은 암흑시대 때부터 갑자기 흉포해지기 시작하더니 물고기와 그 밖의 생명체들을 필요 이상으로 먹기 시작했다.”
그러니 생태계는 파괴되고 먹이사슬이 무너졌다.
이 멸망에 가까운 현상을 막기 위해 나가 종족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너희 인간의 암흑시대는 끝이 났어도 괴물들의 머릿속에 박힌 마기는 빠지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종족은 처음보다 개체수가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알았다면 됐다.”
작게 변해 있던 산호들은 다시 뭉쳐져 벽을 이루었다.
“다시 말해 보아라. 우리의 힘이 어쨌다는 거냐.”
“다가올 제2의 암흑시대에서 힘을 빌려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여왕은 차갑게 대꾸했다.
“방금 전 광경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데카드의 생각도 지금의 나가 종족은 괴물들의 공세를 버티는 것이 고작인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들에게까지 도움을 줄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럼 저 괴물들만 다 치워버린다면 인간과 동맹을 하시겠습니까?”
여왕은 그의 말에 비웃음 섞인 조소를 보였다.
“만약 그래만 준다면 동맹은 물론이고 모든 바다의 나가들이 전투에 참여하겠다.”
“좋습니다. 저 괴물들. 저희가 처리하죠.”
“데카드……! 어쩌려고요……!”
“기다려봐. 다 생각이 있어.”
데카드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나가 여왕은 흠 하고 그를 뜯어보았다.
6서클의 마법사.
낮은 것은 아니었으나 절대적 강자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강함이다.
‘옆에 있는 인간 여자는 괜찮은 것 같다만…….’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어떻게 네놈이 저 괴물들을 이길 수 있다는 거지? 너희 인간의 마법은 괴물들의 항마력 앞에서 매우 약해질 텐데.”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저번 크라켄 떼만 보아도 마탑 교수들의 공격이 전부 무력화될 정도로 항마력의 힘은 강했다.
“그건 영업 비밀이니 알려 드릴 수 없지요. 어쨌든 저의 조건을 받아들이실 겁니까?”
터무니없어 보이는 남자지만 받아들여서 이쪽에 손해 볼 건 없다.
“좋다. 받아들이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가서 그걸 가져와라.”
여왕이 말한 ‘그것’을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창고에서 꺼내왔다.
“이게 무엇입니까?”
손바닥만 한 크기에 둥근 원판은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옷 어딘가에 붙여 보거라.”
일단 여왕이 하라는 대로 원판을 가슴 쪽에 붙였다.
그럼에도 딱히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셋 모두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여왕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뿅-
거품 터지는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방울.
‘……!’
순식간에 입으로 밀고 들어오는 물에 당황할 틈도 없이 원판에서 나온 얇은 막이 몸을 감쌌다.
“그것은 잠수복이다. 이런 심해에서 그대들 같은 인간이 유용하게 쓸 수 있겠지.”
“감사합니다.”
방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움직이기 편해지고 숨도 마음대로 쉴 수 있게 됐다.
“바로 싸우러 갈 건가?”
데카드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준비 시간이 필요합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