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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73화 (173/208)

173 미궁 덕후

솔직히 조금 껄끄럽다.

이 당시 데카드와 레지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 목을 베어 죽인 상대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상상치도 못했다.

[그냥 때리고 뺏을까요?]

[솔직히 그놈은 그래도 싸다!]

[…….]

[오랜만에 옳은 말을 하는군! 지금 죽여 버려도 시원찮을 놈입니다!]

마수들은 레지를 굉장히 혐오했다.

왜냐면 데카드를 저주에 빠뜨려 하마터면 죽음에 이르게 할 뻔한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내가 알아서 해볼게.”

미래의 자신을 죽일 뻔했다고 과거의 레지를 죽도록 패고 싶진 않았다.

“내가 기억하던 레지와 미래의 진저백은 아예 다른 사람이거든.”

자신을 진저백이라 소개한 레지를 보고 단번에 못 알아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람이 내뿜는 분위기라는 게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레지는 어떻게 찾으실 겁니까? 마수들을 못 쓰면 추적이 어려워질 텐데요.]

“예상가는 곳이 있어.”

옛 마탑에 오니 오래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기억 중에는 레지에 관련된 것도 있었다.

그는 별명이 레이더였을 만큼 탐지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정말 이런 데에 있을까요?]

“믿어봐.”

데카드는 미개발 지역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그러자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는 탐지기의 소리.

삑- 삑-

이 근처에 있다.

놀래켜 줄 생각은 없으니 데카드는 자신의 존재감을 풀어헤쳤다.

“데, 데카드?”

그러자 숲 저편에서 화들짝 놀란 레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지? 여기서 뭐 해?”

데카드는 여기서 우연히 레지를 본 척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황한 레지는 들고 있던 탐지기를 급하게 뒤로 숨겼다.

“탐지기는 왜 들고 있는 건데?”

물론 그 큰 탐지기가 다 숨겨질 순 없었다.

“이, 이거? 그냥 뭐 어디 동전 떨어진 거 없나 해서…….”

지금 레지가 들고 있는 건 금속 탐지기가 아니라 마나 탐지기다.

어쭙잖은 변명에 데카드가 미간을 좁히자 레지는 급하게 눈을 피했다.

[뭔가 미래와는 많이 다르다?]

‘그래. 내가 기억하는 레지는 이랬다고.’

3학년 후반에 들어서는 자신을 이기기 위해 온갖 부정행위를 저질렀어도 지금은 순박한 시골 청년이다.

“뭐 찾고 있었는데? 내가 도와줄게.”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선뜻 이런 소리가 나와 버렸다.

“정말……? 너는 이런 거 관심 없지 않아?”

“오늘만큼은 관심을 가져보려고.”

“그, 그럼 이리 와봐.”

레지는 탐지기의 신호를 보여주며 말했다.

“내가 추적을 뭐로 해놨냐면 가장 최근 발견된 미궁의 마나로 설정해 놨어. 너도 알다시피 미궁은 고유 마나가 비슷비슷하잖아?”

덕후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처럼 레지는 숨도 안 쉬고 미궁에 대해 설명했다.

“미궁을 찾아서 마탑에 보고하면 특별 점수도 얻을 수 있어!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도 미궁을 무척 좋아하고.”

미궁은 어둡고 축축하며 몬스터들이 넘치도록 있는 곳이다.

특이하게 레지는 그런 미궁의 특징을 좋아했다.

“그래서 미궁은 잘 보이는 것 같아?”

레지가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아니…… 너무 꼭꼭 숨어 있어서 이 탐지기를 들고 와도 힘들더라.”

그때 미궁이란 단어를 골똘히 생각하던 데카드의 머릿속으로 한 장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내가 지나가다가 미궁인지 아닌지 헷갈렸던 곳이 있는데. 거긴 어때?”

“정말? 당장 가보자!”

“날 따라와.”

레지는 뛸 듯이 기뻐하며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방방 뛰었다.

텐션이 화산처럼 터져나간 레지를 데리고 온 곳은 넓은 호수.

이곳은 저번에 마수들과 함께 왔었던 드라운드의 미궁이다.

“여긴 그냥 호수 아니야?”

“맞는데 저기 밑바닥을 잘 봐봐.”

역시 이때도 미궁은 존재했던 것인지 호수 바닥에 자리 잡은 미궁 입구가 눈에 띄었다.

“어어……? 입구다! 미궁 맞네! 고마워, 데카드!”

기쁜 마음을 주체 못하던 레지가 데카드를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원래 마수왕님은 남자들이 터치하는 거 굉장히 싫어하시는데……?]

[제가 죽일까요?]

“미, 미안! 내가 너무 신났나 봐.”

마수들의 살기를 데카드의 살기라 착각한 레지는 황급히 그와 떨어졌다.

“아니야! 나도 신나서 그랬어.”

“그, 그래?”

신나서 살기를 내뿜는 사람은 평생 보지 못했으나 레지는 미궁이 눈앞에 있다는 고조감에 그냥 넘어갔다.

“그럼 이제 마탑에 보고하러 가자!”

원래대로라면 데카드도 알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자신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생을 망친 이 남자를 이대로 보내기엔 찝찝했다.

뭔가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를 바꾸는 것 같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우리가 클리어해 보는 건 어때?”

“미궁을…… 우리가……?”

데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솔직히 우리 정도면 모자란 전력은 아니라고 생각해.”

자신이야 말할 것도 없고 레지 또한 높은 천재성으로 후에 마탑 교수까지 한 뛰어난 마법사다.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어……! 좋아! 우리 해보자!”

“그럼 바로 들어가자.”

미래에서 했던 대로 데카드는 마수들이 만든 공기 방울 안에 몸을 집어넣었다.

“그게 소환 마법이구나! 진짜 신기하다!”

아직 학기 초라 데카드의 소환 마법을 제대로 본 적 없던 레지는 깔끔한 그의 마법에 감탄했다.

“너도 이리 들어와.”

“응!”

레지도 공기 방울 안에 들어오고 그렇게 두 남자는 호수 밑바닥을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

[마수왕님! 근데 어떡하냐? 쟤가 뒤통수 치면?]

[맞습니다! 저놈은 미래에 마수왕님을 죽이려고 했다고요!]

‘그건 미래에 일이야. 지금의 쟤는 완전히 다른 놈이지.’

미래에는 복수의 화신이어도 지금은 미궁을 좋아하는 덕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현재는 학기 초.

아직 레지와 제대로 맞붙은 적이 없어 앙금이 쌓일 시기도 아니었다.

“우와! 여기 미궁이구나!”

입구에 도착해 공기 방울에서 나온 레지가 처음으로 미궁을 보았다.

“미궁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처음 들어와 본 거야?”

“응…… 뭔가 혼자 들어가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거든.”

미궁에 대한 정보도 모르는데 혼자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

그런 면에서 레지는 똑똑하게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미래의 데카드가 한 번 클리어했던 곳.

위험도는 물론이고 세세한 함정조차 전부 머릿속에 있었다.

“머리 조심.”

지금도 레지의 몸을 눌러 그의 목을 꿰뚫을 뻔한 화살을 피하게 해주었다.

“와아……. 함정이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방금 함정에 죽을 뻔해 놓고 이 미궁 덕후는 그게 제일 먼저 궁금한가 보다.

“그냥 눈에 띄었어.”

“역시 대단해! 이게 흑마법사와 싸우던 전투 마법사의 힘인가?”

“뭘 또 그렇게까지 띄워 줄 것까지야.”

위선이나 거짓말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이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마음에 데카드는 진저백과 레지가 아예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어야 미래의 진저백이 되는 거지?’

자신이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했었나?

‘그런 기억은 없는데.’

데카드가 그를 빤히 보며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시선을 느낀 레지도 그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어두운 미궁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왜 그래?”

“그냥. 지금 많이 봐두려고.”

미래로 돌아가면 레지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렇기에 데카드는 이 순박했던 인간을 기억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보았다.

“그리고 이제 전투 준비해.”

“모, 몬스터야?”

“그런 느낌이 들어.”

사실 느낌이 아니라 경험에 의한 판단이었으나 레지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우어어어-

몇 걸음 더 걸어가자 정말 그의 말대로 드라운드 무리가 튀어나왔다.

“저, 저게 몬스터! 내가 상대해 봐도 될까?”

“마음대로.”

데카드야 딱히 상관없어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이스 해머!”

레지의 장기, 얼음 조형 마법이다.

빠르게 얼음을 특정 모양으로 만들어 내 다양한 대처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마법진에서 거대한 얼음 망치가 튀어나오고 그것이 드라운드를 무차별적으로 내리찍었다.

푸욱-! 찍-!

뛰어난 목수처럼 레지는 드라운드를 못 박듯이) 벽면에 박아 넣었다.

[봐, 봐줄 만하네요!]

[맞습니다! 영 힘 없게 생겨서 믿음이 안 갔는데 이 정도면 훌륭하군요!]

‘그러고 보니 이때는 얼음 속성이 주 속성이었지.’

미래에선 번개 속성으로 갈아탔었지만 여태까지만 해도 레지는 얼음 속성의 적성자였다.

미래의 레지가 무리하게 속성을 바꾼 이유도 단연 데카드 때문.

결투 때마다 그가 번개 속성에서 그나마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스 캐논! 아이스 대거!”

지금은 얼음으로 드라운드를 사정없이 패고 있지만.

“오랜만에 땀도 빼고 좋다!”

“그러냐.”

혼자서도 잘 싸워서 거의 산책하듯이 미궁을 걷고 있던 데카드는 하품이 살짝 나오려 했다.

그렇게 보스 방까지 순식간에 도착.

“여긴 왜 이렇게 넓지?”

레지의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조심해. 쟤는 꽤나 강하니까.”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조심해야겠다.”

왕좌에서 드라운드 킹이 걸어 나오고 그때처럼 수십 마리의 드라운드가 그들을 감쌌다.

“내가 광역 마법으로 이놈들을 처리할 테니까 네가 저 보스를 맡아줄래? 지금 남은 마나가 간당간당하거든.”

“아, 그래.”

혼자 너무 신나게 미궁을 돌아다니길래 이런 점을 까먹고 있었다.

그 사이 레지는 마법을 완성해 바닥에 양손을 짚은 상태.

“눈보라.”

마법 영창이 끝나자 드라운드들의 어깨나 머리 위로 눈송이가 하나둘 떨어졌다.

우어어-!?

휘오오오오-!!

드라운드들이 피할 틈도 없이 눈송이는 폭설로 변했고 그들의 축축한 몸은 금방 얼어붙었다.

“이제 남은 걸 부탁해. 아으…… 힘들어…….”

레지가 바닥에 주저앉고 이제 데카드와 드라운드 킹만 남았다.

‘가자, 고오른.’

저딴 몬스터 상대하느라 시간을 길게 쓰고 싶진 않다.

고오른의 건틀릿이 왼손에 빠른 속도로 장착되었다.

[준비 다 됐습니다!]

쿠우웅-!! 콰아아아앙-!!

날듯이 드라운드 킹에게 점프한 데카드는 거칠 것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킹 또한 들고 있던 삼지창으로 방어해 보려고 했으나 무기와 함께 상체가 날아가 버렸다.

단 1초.

데카드가 킹을 상대한 시간이었다.

“벌써 끝났어?”

“어.”

한 번의 폭음 이후로 장내가 조용해지자 레지가 기운 빠진 몸을 이끌고 엉거주춤 일어나려 했다.

“내 손 잡아.”

그에게 손을 내민 데카드.

“고마워!”

레지는 미소 지으며 그의 손을 잡고 단숨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그는 보스 방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아마 보스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고 있는 듯했다.

“이거 찾아?”

물론 데카드는 보상의 위치를 알고 있어 옥좌 뒤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어! 맞아!”

“이리 와. 같이 열어보자.”

데카드는 이 안에 뭐가 나올지 알고 있어 딱히 기대감이 없었다.

그러나 레지는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올 정도로 기대감이 가득해 있었다.

녹슨 상자의 걸이를 풀고 레지가 상자를 열려다가 데카드의 눈치를 보았다.

“네가 열어.”

“고, 고마워. 그럼 연다!”

끼익-

상자가 열리고 안에서 나온 건 아니다 다를까 아름다운 소라 나팔이었다.

“이, 이건……!!”

소라 나팔을 들어 올리는 레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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