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탑주의 야심
과거로 가는 차원문을 향해 네 명의 사람이 몸을 던졌을 때.
현재에선 흑마법사들의 테러가 잦게 일어나고 있었다.
“크하하! 전부 쓸어버려라!”
흑마법사 몇 명만 모여도 그들이 조종할 수 있는 언데드의 수는 굉장히 많기에 마을 하나 정돈 손쉽게 부술 수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좋아! 살려주지.”
자신 앞에서 벌벌 떠는 한 주민을 야비한 눈으로 쳐다본 흑마법사는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도망쳐!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주민은 풀린 다리에 억지로 힘을 줘가며 미친 듯이 마을 밖, 숲으로 뛰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난 보내준다고 했지만, 좀비들은 네가 맛있어 보였나 봐? 어쩔 수 없네.”
“크큭…… 이런 사이코패스 놈.”
마을의 정리가 끝난 흑마법사들은 서로 모여 죽은 이들을 언데드로 일으켰다.
“좋아! 다음 마을로 어서 가자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된다.”
“오늘 할당량이 얼마지?”
탑주라는 존재가 준 일일 임무.
5개의 마을을 습격해서 인간들을 언데드로 만들기.
이런 임무는 비단 대륙뿐만이 아닌 세상 곳곳에 있는 흑마법사들에게 내려졌다.
그 말의 뜻은 이런 습격이 세계 전체에서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는 뜻이다.
“흐음…….”
흑탑에서 세계 지도를 펼치며 고민하는 한 남자.
“탑주님. 흑마법사들이 마을을 성공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언데드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요.”
“그런 졸개들도 잘만 굴리면 나름 쓸 만해지지.”
세계 지도에 그려진 강대국들과 조그마한 소국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옆에 있던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그의 의중을 눈치채며 물었다.
“이제 군단을 일으키길 생각이십니까?”
그는 작은 동물의 두개골들을 손안에서 굴리며 생각했다.
“…….”
하지만 이내 답을 찾은 듯 고개를 살짝 저은 탑주.
“아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혹시 그때가 언제인지를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탑주의 찌릿한 눈빛이 남자를 관통했다.
그의 손이 무언가를 잡는 듯한 제스처를 하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우웅-
그에 따라 거짓말같이 남자의 몸도 허공으로 떠올랐다.
“오직 나만이 그 시기와 때를 알 수 있다. 네놈이 다른 흑마법사들보다 조금 낫다는 것은 인정하나 기어오르지 말거라.”
점점 조여 오는 탑주의 구속에 몸이 터져나가는 느낌을 느낀 남자는 콜록콜록 하며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꺼져라.”
어지간히 유망한 인재인지 탑주는 남자를 죽이지 않았다.
평소의 성격대로라면 죽이고 스켈레톤 군대에 넣어버렸을 텐데 말이다.
남자가 나간 방에 혼자 남은 탑주는 세계 지도 한 구석에 손가락을 올렸다.
스륵-
손이 앞으로 나가면서 풀린 로브 자락은 처음으로 그의 피부를 보여주었다.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하얀 뼈.
피부 따윈 없었다.
살아있는 스켈레톤처럼 뼈만 있을 뿐.
그 새하얀 손가락이 짚은 곳.
“먼저 무역을 막는다.”
그 손가락을 기점으로 세계지도가 새까만 불에 타들어 가며 이내 지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가 갈 터이니.”
* * *
“흐음…… 여기가 맞는 걸까요?”
“그런 것 같은데…….”
숲에서 벗어나 또 반나절을 걷자 아름다운 해안가가 나왔다.
“둘은 아무래도 다른 대륙에 있거나 섬에 있는 것 같군요.”
점이 바다 너머를 가리키고 있다.
그럼 둘은 이 망망대해를 건너야 한다는 소리다.
“저는 이딴 바닷물 무섭지 않아요. 데카드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건 트리스 또한 마찬가지.
그녀는 벌써 커팅 마법으로 근처 나무들을 썽둥썽둥 자르고 있었다.
이제는 트리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 같다.
“도와드릴게요.”
엘리스도 나무껍질을 벗겨 그것을 줄처럼 사용해 자른 나무 기둥들을 서로 엮었다.
“감사합니다.”
마법과 가면의 완력을 사용해 단단하게 엮인 나무들.
그렇게 만들어진 뗏목을 물에 띄우자 둥둥 잘 떠다녔다.
“타시죠.”
“네!”
일부러 기둥을 큼지막하게 잘라 커다랗게 만든 뗏목은 두 사람이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속력을 내겠습니다.”
트리스의 양손이 바다로 들어가고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더블 스크류.”
바람 계열 마법인 더블 스크류는 이런 물속에서 사용하면 물보라를 일으키는데, 모터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이다.
우우우웅-!!
역시 예상대로 커다란 속력을 내며 전진하는 뗏목.
손재주와 마법.
이 두 가지로 성능 좋은 보트가 탄생했다.
“대단하네요.”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둘은 바다로 나와 얼굴을 때리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따뜻한 햇볕은 정신을 맑게 해주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는 치킨이 생각나게 했다.
“육포 드실래요?”
엘리스의 주머니에서 꺼내진 육포 봉지.
“주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여기요.”
과거에 온 이후부터는 급한 마음에 아무것도 먹지 않아 사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였다.
질겅질겅 씹히는 질긴 육포는 그걸 달래줄 것이다.
“근데 궁금한 게 생겼어요.”
“뭡니까?”
“바다에는 위험한 괴물이 없나요?”
트리스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육지보다 훨씬 위험한 괴물들이 도사릴 겁니다. 바다는 육지보다 훨씬 넓으니까요.”
“예를 들면요?”
나열할 수 있는 것이야 무척 많다.
일단 가장 유명한 크라켄부터 시작해 거대한 몸집의 아귀 고래, 자이언트 알바트로스 등등.
몸집도 괴물같이 크면서 항마력까지 둘러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롭다.
지금은 그런 것과 마주치질 않기 바라며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어? 저기 웬 기포가 올라오는데요?”
“…….”
하지만 그 바람과는 다르게 세상은 쉽게 둘을 보내주지 않았다.
퍼어어어어어엉-!!
수면 위를 뚫고 올라오는 거대한 흑색의 몸체.
무지막지한 지느러미는 한 번의 휘저음으로 몇 백 미터를 나아가게 해준다.
바닷사람의 공포.
아귀 고래다.
“어디든 꽉 붙잡으십쇼.”
“어딜요?”
“그랜드 스크류.”
아까의 더블 스크류보다 훨씬 높은 추진력을 가진 그랜드 스크류가 모터를 대신했다.
푸화아아악-!!
거의 수면 위를 날아가듯 빠르게 전진하는 뗏목.
엘리스는 아까 묶은 나무줄기를 꽈악 잡았고 트리스도 몸을 바짝 낮춘 채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쫓아오고 있습니다.”
“이 속도를요?!”
지금 뗏목의 속도는 솔직히 뗏목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건 인간들의 기준.
아귀 고래는 지느러미를 부드럽게 움직이며 이쪽을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
“일단 점까지 달려가고는 있습니다만.”
아직도 육지는 보이지 않는다.
육지에 도달하기 전에 이 고래한테 잡혀 먹히는 것이 더 빠르겠다.
“아무래도 공격을 해야겠습니다.”
저 덩치에 마법이 먹힐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해봐야 한다.
“제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바람 소리에 묻히기에 십상이라 엘리스가 소리를 질러가며 물었다.
“앞을 잘 봐주십쇼.”
“네! 알겠어요!”
왠지 모르지만 트리스는 조용조용히 말하는데 그 말이 머릿속으로 다 들어왔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고개를 더 숙여주십쇼.”
뗏목과 거의 한 몸이 된 엘리스를 뒤로하고 트리스는 조금씩 일어섰다.
그러자 점점 보이는 아귀 고래.
물 아래에서 헤엄치며 오고 있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이때 선배라면 조금 더 수월하게 대처했을 텐데.”
그는 마수로 공수일체를 보여주었겠지만, 자신은 그딴 거 모른다.
“어스퀘이크.”
어스퀘이크가 만들어내는 지진파가 수면 아래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 아귀 고래를 때렸다.
우웅- 우웅- 우웅-
갑자기 몸 전체를 흔드는 듯한 강한 진동에 아귀 고래는 뇌가 전부 터지는 듯한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바다로 들어간 지진파는 해일을 몰고 오기 마련.
바다 안에서 일어난 해일이 아귀 고래의 몸을 사정없이 강타할 것이다.
그러면 이미 흔들린 뇌는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기절한다.
“하아……. 하아…….”
마나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써 어지럼증이 왔다.
“괘, 괜찮으세요?”
“아귀 고래가 기절했으니 지금 어서 가야 합니다.”
트리스는 엘리스의 손길을 밀어내고 스크류 마법의 출력을 높였다.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조금만 자면 금방 회복될 겁니다.”
“여기서 주무세요.”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엘리스가 딱딱한 뗏목 바닥 위에 두꺼운 모포를 깔아주었다.
“그럼 조금만 실례하겠습니다.”
엘리스는 주변 경계를 하고, 트리스는 눈을 감은 지 몇 초 만에 잠이 들었다.
* * *
“츄릅……. 아, 잘 잤네.”
[이럴 거면 수업은 왜 들으신 겁니까?]
[벌써 종도 쳐서 학생들도 다 나갔어요!]
‘그냥 옛 추억도 한 번 살려볼 겸 온 거야.’
입 밖으로 나온 침을 빠르게 삼킨 데카드는 자리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으윽……!”
뼈가 우두둑거리며 풀리는 시원한 느낌과 함께 굳은 몸이 풀렸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데카드 학생.”
“아, 예.”
종이 쳐도 아직까지 강의실에 남아있었는지 교수가 데카드에게로 다가왔다.
“자네는 이 마탑의 3학년이야. 내 말이 맞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네의 출석률은 정말 놀랍도록 저조하지. 오늘 강의를 들으러 온 게 신기할 정도로.”
과거의 자신이 뿌린 업보라 이 부분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네. 자네가 흑마법사와 맞서 싸우느라 임무에 지쳤다는 것을. 그래서 한편으로는 자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데카드는 아무 말 않고 교수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오늘 하게 됐군. 정말 고맙네.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줘서.”
“…….”
교수는 데카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딘가로 올라갔다.
[그래도 마수왕님이 완전 밉상은 아니었나 봐요? 저런 말도 해주고.]
[…….]
[뭔가 처음이다! 저런 말 해준 사람!]
티이라의 말처럼 데카드는 따로 저런 말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감사 인사야 데카드가 의뢰를 완벽하게 끝냈을 때 그 의뢰인에게서야 몇 번 들어봤지.
“조금 감동이네. 근데 이 말을 내가 들으면 안 되잖아.”
다음에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면 꼭 말해 줘야겠다.
너의 그 행동은 헛된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창고 층으로 내려가 마나 탐지기를 가져와야 한다.
“그게 아직도 있으려나 모르겠네.”
옛날엔 그 탐지기를 가지고 많이도 놀았었다.
[문이 열립니다.]
빠르게 창고 층으로 도착한 데카드는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마나 탐지기 빌리러 왔습니다.”
“마나 탐지기요?”
고개를 들어 힐끔 데카드를 올려다본 직원의 낯빛이 순간 새하얘졌다.
“데, 데카드 아르마다?”
사람 얼굴을 보고 그렇게 놀라면 실례라고.
다른 사람이 보면 무슨 귀신이라도 본 줄 알겠다.
“마, 마나 탐지기는 다른 분이 방금 가져가셔서 지금은 없습니다!”
하필 자신보다 먼저 온 이가 있었다.
“그게 누군데요?”
“레지 학생입니다!”
여기서 그 이름이 들릴 줄은 몰랐는데?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