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70화 (170/208)

170 미래에서 온 자들

과거의 데카드는 하염없이 바다만 볼 뿐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감은 진작에 눈치 차렸을 텐데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데카드.”

자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퍽 이상한 일이다.

“……?”

그러나 효과는 확실했다.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목소리에 과거의 데카드가 급하게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본 것이다.

“놀랐냐?”

“…….”

과거의 데카드는 아직 상황파악이 필요한 듯 데카드를 노려만 볼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누구냐.”

많은 궁금증이 함축된 이 말.

하지만 이 질문은 대답하기 너무 쉽다.

“난 너야.”

과거의 데카드에게서 살기가 풀풀 올라왔다.

필시 누군가의 장난이거나 흑마법상의 저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쪽에 전투 의지는 없다.

“너무 인상 쓰지 말고 내 얘기를 들어봐.”

데카드는 양팔을 위로 들고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 오지 마라.”

“내가 누구 말을 듣는 타입은 아니라.”

경고를 깔끔히 무시하고 데카드는 그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도 바다를 보러 오냐?”

“아직도……?”

마치 자신을 잘 아는 듯한 말투에 과거의 데카드는 어이없어했다.

네가 뭔데?

라는 눈빛이 가득가득 담겨 이쪽의 뒤통수를 찌릿하게 만들었다.

“바다를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지. 파도 소리는 듣기 좋고 까끌까끌한 모래사장은 감촉이 좋으니까.”

“…….”

과거의 데카드가 바다를 보러 갔던 이유다.

임무에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저주로 오염될 것 같은 정신을 정화 받기 위해서.

이렇게 거대한 자연은 저주로 인한 정신적 오염을 낫게 해주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데카드는 바다에 자주 왔었다.

말 그대로의 힐링을 즐기려고.

“갈수록 의심이 드는군.”

“그렇겠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이가 나타나 미래에서 온 너라고 소개한다면 누구라도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아까 그 백발 여자와 관련이 있나?”

“그래.”

“어쩐지. 처음 보는 얼굴이다 했어.”

수많은 1학년 학생들의 얼굴을 다 외우고 다니진 않지만 오고 가면서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백발은 한 번 봐도 기억했을 만큼 인상이 깊은 색깔이다.

“그럼 너도 이 팔찌가 목적이겠군.”

역시 나답게 감이 날카로웠다.

“그것도 정답이야.”

“도대체 이 팔찌가 뭔데 그러지? 엄청난 보물이라도 되나?”

미래에 비하면 아직 변변찮은 마도구도 없던 이 시절.

자신의 눈에는 그냥 예쁜 은색 팔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데카드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물건이다.

“미래로 돌아가려면 그게 필요하다.”

“호오……. 그런가. 그렇다면 그냥 주기엔 너무 아까운걸? 무려 미래로 갈 수 있다는 팔찌인데.”

또, 또 인성 나온다.

데카드는 한숨 쉬며 협상에 들어갔다.

“뭘 원해?”

“미래에 대한 정보.”

“좋아. 받아들이지.”

이쪽이 인성이라면 나도 인성이다.

미래에 정보라고 적당히 둘러대면 과거의 내가 어찌 안단 말인가.

“하지만. 네가 거짓말을 할 수 있으니까 마나에 대고 맹세해라.”

“…….”

마나에 대한 맹세.

이건 마법사의 존엄과 긍지를 건다는 맹세로 이 맹세를 어길 시 앞으로 평생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

마나의 이름에 먹칠을 했으니까.

“좋아. 하지만 너도 해야 해. 내가 성실히 답했는데 네가 안 줄 수도 있으니까.”

“점점 네가 나라는 게 믿어지는데? 예리하군.”

둘은 자신의 심장 위에 손을 올리고 맹세를 시작했다.

“나는 데카드의 질문에 진실로만 답할 것을 맹세합니다.”

“나는 데카드가 질문을 진실하게 답하면 팔찌를 돌려줄 것을 맹세합니다.”

서로의 몸에서 순간 밝은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맹세가 성립됨을 알려준 것이다.

이름이 같아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이제 둘 다 벗어날 수 없다.

“시작하기에 전에 자리를 좀 바꿀까?”

원래라면 왜 바꿔야 하냐고 물어보겠지만, 이번엔 데카드도 수긍했다.

“파도가 시끄럽긴 했어.”

“하하핫. 정확해.”

입꼬리를 올린 과거의 데카드와 현재의 데카드는 아무도 없는 해안가를 걷기 시작했다.

“질문은 세 가지. 더 이상은 나도 해줄 수 없어.”

과거의 데카드는 뭔가 아쉬운 듯 표정을 구겼으나 이 정돈 양보해 줄 만하다.

“받아들이지.”

“좋아. 그럼 첫 번째 질문을 해봐.”

미래에서 온 누군가가 당신에게 미래의 대한 정보를 세 가지 알려준다면 당신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

돈? 권력의 이동? 보물의 위치?

무엇인지 몰라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고심하던 과거의 데카드는 첫 번째 질문을 했다.

“치킨은 미래에도 있나?”

“…….”

아무리 자신이라지만 좀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다.

사실 좀이 아니라 많이.

“아직도 있고 아주 잘 팔린다.”

“다행이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거든.”

“그럼 두 번째 질문은 피자가 미래에도 존재하는지냐?”

“아쉽게도 그건 아니야.”

다시 고민에 들어간 과거의 데카드.

그는 질문권을 거의 한 번 날려 먹은 것과 다름없음에도 별로 아까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내 두 번째 질문은 이거다. 미래에 난 행복하냐?”

전에 비하면 나름 가치 있는 질문이고 동시에 어려운 질문이다.

“행복하냐라…….”

답변자가 질문자 본인이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질문.

데카드는 살짝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에게 대답해주었다.

“행복하려고 노력 중이지.”

“지금과 별 다를 바 없다는 거네.”

“슬프지만 맞아.”

둘의 얼굴 위로 쓴웃음이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신중하게 말해.”

그래도 미래의 정보인데 너무 허투루 쓰는 것 같아 이쪽에서 경고까지 해줬다.

하지만 이 혼돈스러운 놈은 여전히 장난기가 보였다.

“좋아. 내 마지막 질문이야.”

걸음을 멈춰선 과거의 데카드.

“암흑시대는 언제 끝이 나지? 바꿔 말하자면……. 끝나긴 하는 건가?”

암흑시대는 길었다.

거진 3세기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이어졌으니까.

그동안 흑마법사가 아닌 인간의 개체 수는 정말 많이 줄어들었고 이종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

과거의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이 질문을 했을지 상상이 갔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망망대해에서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겠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존재하긴 하는 건지.

언제까지 나아가야 하는 건지 끊임없이 의심했다.

“반드시 끝난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

지금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 하나뿐.

“그런가.”

둘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가 다시 흩어졌다.

스륵-

손목에서 빠져나오는 은색 팔찌.

“받아라.”

“고맙다.”

“고맙긴. 맹세를 지킨 것뿐이야.”

“아, 그리고 말이야.”

데카드는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수업 빠지지 말고 잘 듣고 교수들이랑 싸우지 말고 친구 좀 만들어.”

“어째 총장이랑 똑같은 소리만 하네.”

“네가 나였어도 똑같이 말했을 거야.”

과거의 데카드는 피식 웃으며 다시 노을이 지는 수평선을 바라봤다.

“이미 같은 사람인데 뭘.”

성공적으로 팔찌를 얻은 데카드는 다시 동료에게로 돌아갔다.

* * *

“트리스……? 근처에 있어요?”

“네. 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이 떨어진 곳은 어느 커다란 숲 나무 위였다.

“이런 곳에 떨어질 줄은 몰랐네요.”

나뭇가지 위에 옷이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감입니다.”

“어서 내려가요.”

엘리스는 가면을 꺼내 쓰고 단검으로 가지를 잘라 바닥까지 안전하게 착지했다.

“커팅.”

트리스도 마법을 사용해서 부드럽게 내려왔다.

“아까 위에서 봤는데 선배와 집행부장의 팔찌는 서쪽에 신호가 잡혔습니다.”

“길은 정해졌네요.”

“그렇습니다.”

둘은 방금 비가 왔는지 축축하고 질퍽한 숲을 걸으며 얘기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감이 오세요?”

“어떤 숲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시대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젠킨스가 준 검은색 팔찌.

팔찌에서 초록빛으로 지금의 연도를 알려주고 있었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부터 진작에 확인한 트리스의 표정은 지금까지 굳어있었다.

“어떤 시대인데요?”

“암흑시대라고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설마…… 지금이 그때라고요?”

“네. 맞습니다.”

한 마디로 매우 위험한 시대.

엘리스는 자신의 걱정보단 어딘가에 있을 데카드가 더 걱정되었다.

“제가 어릴 때 암흑시대가 끝나 자세히는 모르나 굉장히 암울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책으로만 알고 있어요.”

“듣기에는 몬스터도 엄청 많아서 이런 야생에선 하루가 멀다고 튀어나온다던데…….”

꾸어어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숲 어딘가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의 주인은 오랜만에 맡는 인간 냄새에 군침을 흘리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맡길게요, 트리스!”

“……어째 선배와 점점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 물들었다고 중얼거린 트리스는 오른손에 불길을 뿜어냈다.

축축한 주변을 뜨겁게 달군 불꽃은 곧 커다란 구의 형태로 변해갔다.

초록빛 거구의 몬스터는 그것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늦었다.

화르르르-! 콰아앙-!!

화염구를 직격으로 맞은 몬스터는 온몸이 터져나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몬스터가 오기 전에 빨리 가요!”

“알겠습니다.”

그러나 폭음을 들은 몬스터들은 이미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옆에서 와요!”

“봤습니다.”

“오른쪽은 제가 맡을게요!”

이젠 사방에서 밀려오는 몬스터 떼를 양방으로 나눠 죽여 나갔다.

가면을 쓴 엘리스는 단검에 흑무를 둘러 절삭력과 공격력을 높였다.

“죽어!”

서걱-! 서걱-!

살이 베이는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들은 숭덩숭덩 잘려나갔다.

“버프를 걸어 드리죠.”

거기다 트리스의 헤이스트와 스트렝스까지 받으면 금상첨화.

엘리스는 거의 날다시피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화염의 비.”

물론 트리스의 지원 사격도 만만치 않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화염 폭격은 어디로 피하든 공격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결국 그대로 타죽은 몬스터의 잔당들.

“저희 꽤나 잘 맞는데요?”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군요.”

어차피 지금 의지할 건 서로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안 맞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선배와의 거리가 꽤나 멀군요.”

“그러게요. 계속 뛰고 걸었는데 점이 가까워질 생각을 안 해요.”

또 다른 팔찌의 위치를 알려주는 흑색 팔찌의 점은 서쪽만을 가리킬 뿐 무언가 변할 기색이 없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네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흰 이 기분 나쁜 숲에서 자야 하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바람을 막아줄 텐트도 없고 따뜻한 침낭도 없다.

“구시대적 방법을 써야겠네요.”

“이곳이 구시대긴 합니다만.”

엘리스는 단검을 들고 흑무를 덮은 후 주변의 커다란 나무를 썽둥 잘라버렸다.

우우웅- 텅-!

바닥으로 곧장 쓰러진 나무.

나무 기둥을 몇 번 더 자르고 가지를 쳐 지붕으로 쓸 잎을 구한 엘리스는 그 위를 덮어버렸다.

“이러면 오늘 하루는 문제없을 거예요.”

“암살단에서 이런 것도 가르쳐줍니까?”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나무 은신처지만 만들다 보니 생각보다 커졌다.

“은신처 제작 말고도 알려주는 건 엄청 다양해요. 모두 암살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말이죠.”

처음 교양 수업이나 춤추는 법을 배웠을 땐 어안이 벙벙했다.

“이리 들어오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트리스가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가지를 헤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아늑하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려고 할 때 하늘에서 우수수 빗방울이 떨어졌다.

“불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조금만 부탁할게요.”

엘리스는 그대로 등을 눕혀 잠이 들었고 과거의 첫날은 피곤하게 지나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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