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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69화 (169/208)

169 같이 과거로

“퇴마부장이 여자 복은 참 많군.”

젠킨스는 엘리스를 보자마자 대뜸 이런 말을 했다.

그가 뜬금없이 이 말을 던진 이유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살벌해서다.

만약 데카드가 죽었다고 알려준다면 서슴없이 자신을 찌를 기세였다.

“일단 진정하고 내 얘기를 들어보게.”

“데카드 어디 있어요.”

잠깐 고민하던 젠킨스는 한숨을 푸욱 늘어놓으며 결국 사실대로 얘기했다.

“과거로…… 갔다고요?”

쉽사리 믿기지 않는 말이었으나 이 마법부 장관이란 사람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말 터무니없다.

그와 세상 곳곳을 여행해 보고 그러면서 기괴한 것도 많이 봤지만 이젠 하다 하다 과거로 간단 말인가.

“저도 갈래요.”

“으음…….”

트리스나 엘리스나 둘 다 똑같은 반응이었다.

“내 설명을 제대로 듣긴 한 건가? 그곳은…….”

“네. 아주 잘 들었어요. 자칫하다간 공간의 미아가 돼버려서 죽을 때까지 갇힐 수 있다는 말.”

“그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할 것 아닌가. 그는 살아있어. 그리고 반드시 현세로 오게 할 것이네.”

엘리스는 지금 문제가 벌어졌다는 보관소 방향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지금 모든 업무를 제쳐놓고 저 유물에만 매달리고 있네.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게.”

지금 젠킨스의 걸레짝이 된 로브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하루 종일 공간과 씨름하고 정신을 잃기를 반복했다.

방금도 쓰러져서 누가 병원실까지 옮겨줬다가 다시 나온 것이다.

“…….”

그러나 이런 그의 간절함이 담긴 부탁에도 고개를 엘리스는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머리로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이고 얼마나 타당한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나 마음은 계속 보관소로 당장 달려가라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분명 한 몸에 있는 것들이지만 둘은 항상 따로 놀기 바빴다.

“마법부에 방을 주겠네. 그곳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게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곧바로 알려주지.”

“……알겠습니다.”

엘리스는 겨우 머리의 말을 들으며 젠킨스가 일러준 방, 문 앞에 도착했다.

덜컥-

그녀가 문을 열려는 순간 그보다 더 빨리 옆방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오는 익숙한 얼굴의 붉은 머리 여자.

“트리스…?”

“엘리스?”

둘 다 네가 왜 여기 있어라는 표정이 되어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두 명다 얼마 안 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둘에겐 공통점 아닌 공통점이 있으니까.

“그쪽도 데카드 때문에 왔군요.”

“트리스도 마찬가지겠네요.”

둘은 예전처럼 한 방에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데카드가 갔다는 과거로 따라가려 했는데 장관님이 막더군요.”

“저도요.”

“그래서 여기 계속 있을 겁니까?”

“네……?”

트리스는 다 안다는 듯이 엘리스를 쳐다보았다.

“엘리스의 눈빛. 여기서 보관소까지의 루트를 찾고 있지 않습니까.”

“........”

역시 이 여자는 속일 수가 없다.

엘리스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그것은 무언의 긍정이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창문을 번쩍 연 트리스.

“마법을 사용하면 장관님에게 들키게 됩니다.”

“그럼 육체적인 힘만 사용하면 된다는 얘기군요.”

“역시 이해가 빠릅니다.”

“작전이 있으세요?”

트리스는 창문으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다가 여기서 보관소가 있는 층까지를 내려다보았다.

보관소는 4층에 있고 지금 이곳은 35층이다.

꽤나 차이가 있는 거리.

“그 가면. 가면의 마력은 일반 마법사가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을 이용하면 가능합니다.”

“그럼 바로 가시죠.”

문으로 나가려는 엘리스를 트리스가 막았다.

“……왜 그러세요?”

“그곳은 루트가 아닙니다.”

“네?”

현재 보관소에는 젠킨스가 있고 그 말의 뜻은 정면으로 가면 무조건 걸리게 된다는 뜻.

그러니 뒷문을 사용해야 옳다.

“그 뒷문은 바로 이쪽입니다.”

트리스가 검지로 창문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트리스도 정상은 아니네요.”

“그걸 이제야 아셨습니까?”

엘리스는 말없이 가면을 쓰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업히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위로 트리스가 올라왔다.

“그럼 갑니다. 손으로 다리는 못 잡아드리니까 팔 힘으로 버티셔야 해요.”

스트렝스를 사용하면 강력해진 완력으로 버티는 게 수월해지지만 마나가 노출되는 순간 게임 아웃이다.

자신의 힘으로 붙잡는 수밖에 없다.

엘리스가 서슴없이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틈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믿겠습니다.”

“믿으세요.”

가면의 힘이 더해졌다고는 하나 높은 건물을 유리창 사이의 틈 하나만 잡고 이동하는 건 고역이다.

조금씩, 조금씩 한 층 한 층.

엘리스는 천천히 틈을 잡아나가며 건물을 내려갔다.

“…….”

트리스 또한 오직 팔 근력 하나로 엘리스에게 착 붙어있었다.

휘이이잉-

작은 돌풍이라도 불면 틈에 끼워 넣은 손가락이 떨어질 것 같아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할 수만 있다면 바람을 막아주고 싶습니다.”

“저도요.”

“그 흑무를 사용하면 안 됩니까?”

가면의 흑무는 물리력이 있어 넓혀 펴본다면 바람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눈에 띄어서 안 돼요.”

아래에서 봤을 때 지금은 건물에 작은 점 같은 것이 붙어있는 걸로 보이는 게 고작이나 흑무를 사용하면 너무 티가 난다.

트리스는 수긍하였지만 역시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거칠었다.

절반 정도 건물을 내려왔을 때 트리스의 팔이 신호를 보냈다.

“슬슬 팔이 아파옵니다.”

“아직 반밖에 안 왔어요. 조금 더 참으셔야 해요.”

그렇게 두 층을 더 내려왔을 때 귀에서 트리스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인이 사람 하나에 매달려 건물을 내려오고 있는데 이 정도면 많이 버티긴 했다.

잠시 내려가는 것을 멈춘 엘리스.

“빨리 가주십쇼. 오래 못 버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멈춘 거니까 조금만 조용히 해봐요.”

“설마 제가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저 믿는다고 했죠?”

트리스가 내려가기 전에 했던 말.

그녀는 갑자기 그 순간이 후회스러워졌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팔에 힘 꽉 주세요.”

틈 사이에 손가락을 떼자 엘리스의 몸이 미끄러지듯 건물을 타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욱-!!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풍이 얼굴을 때리고 또 때렸지만 눈 하나 깜빡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것이다.

‘지금!’

엘리스의 동공이 확대되며 일순간 가면의 힘을 전부 오른손에 집어넣었다.

쿠웅-!

한 번의 손짓으로 그 자리에 딱 멈춘 엘리스의 몸.

반동으로 튕겨져 나갈 뻔한 트리스까지 잡아내자 보관소까지 도착했다.

“…….”

트리스는 정말 오랜만에 비명이 나올 뻔한 걸 겨우 눌러 담았다.

“창문을 열게요.”

흑무가 엘리스의 검지에 집중되어 아주 예리한 칼날의 형태를 갖춰 나갔다.

손가락은 보관소의 유리창을 잘라내었다.

깨지지 않게 바닥에 잘 내려놓은 후 안쪽까지 침입에 성공했다.

“쉿.”

이 보관소 안에는 젠킨스가 있다.

아무리 육체는 일반인과 같다고 하나 대륙의 유일무이 8서클 마법사.

‘절대 방심해선 안 될 사람입니다.’

요동치는 마력으로 보아 유물의 공간 뒤틀림은 보관소 중앙에 있었다.

‘저쪽에 있습니다.’

‘알겠어요.’

서로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둘은 천천히 보관소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곧 꿈틀거리는 것 같은 마력의 소리와 유물, 어질러진 주변과 함께 있는 젠킨스가 보였다.

둘은 상자 뒤에 숨어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아니로군.”

그는 무언가를 실험 중인 듯 계속 공간 앞에서 수식을 정리 중이었다.

새롭게 만든 수식으로 마법을 사용할 때면 어지럽혀져 있던 공간이 제자리를 되찾는 듯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거기 있지 말고 이리 나오게.”

다시 수식을 재정립하던 젠킨스가 고개도 들지 않고 숨어있는 둘을 불렀다.

‘어, 어떻게……!’

‘마나도 전부 숨겼는데.’

7서클 마법사가 자신의 마나를 완전히 감추고 갈까마귀의 일류 암살자가 기척을 지워도 젠킨스는 알아차렸다.

“이리 나오라니까. 아가씨 두 명 모두.”

이젠 더 이상 숨는 것도 의미가 없어 엘리스와 트리스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난 공간 마법사야. 그리고 자네들은 여기 보관소라는 ‘공간’ 안에 와있지.”

“보관소에 들어왔을 때부터군요.”

젠킨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참으로 허무한 결과였다.

“그보다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건가? 문은 마법사들이 막고 있었을 텐데.”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공간 구석에서 갑자기 둘의 신호가 밀려오자 자신답지 않게 당황했었다.

“밖에서 유리창을 뚫고 들어왔어요.”

“허허허. 그건 생각지도 못했군. 건물을 타고 내려올 줄이야.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겠어.”

둘의 집념에 너털웃음을 터뜨린 젠킨스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방까지 가는 공간이 뚫렸고 그곳에서 검은색 팔찌 두 개를 더 꺼내왔다.

“이건 아직 실험 단계를 거치지 못한 팔찌들이야.”

갑자기 젠킨스가 팔찌를 건네주자 둘은 당황해 하며 손을 내밀었다.

“저, 저희를 내쫓지 않으실 건가요?”

“말했지 않은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그럼……!”

“자네들을 보내주겠네.”

젠킨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팔찌에 대한 설명을 짧게 시작했다.

“그 팔찌는 자네들이 공간 미아가 되지 않게 도와주고 그들에게 준 팔찌를 추적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어있지.”

다시 한번 젠킨스의 손이 뻗어지자 훅하고 열리는 푸른 포탈.

“이곳으로 들어가면 되네. 내가 조정할 수 있는 건 그가 간 공간과 똑같은 시간으로 맞추는 것이 끝이었네. 안으로 가면 전혀 다른 곳에서 눈이 떠질 거야.”

“감사합니다.”

“꼭 무사히 돌아오게. 내가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트리스와 엘리스는 결연한 표정으로 팔찌를 착용하고 포탈 안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 * *

한편 마탑의 어느 가게 지붕 위에서 데카드와 필립은 작전 회의 중이었다.

“……진짜 그렇게 하겠다고?”

“사실대로 얘기하는 거지.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야.”

“아까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르를 대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과거의 나는 생각보다 더 이상하고 오만한 놈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서 보니 정말 이런 미친놈이 없었다.

“분명 요르를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큰 행동을 보이지 않았던 거야.”

“뭔 자신감이야?

여러 번 말하지만 그건 자신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는 따라오지 말고 남은 팔찌를 찾아.”

[저희는요?]

“너희들도 남아서 필립을 도와줘.”

[…….]

[히이잉…….]

아쉬워하는 마수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결정은 번복하지 않는다.

이제 슬슬 수업을 알리는 종이 친다.

하지만 데카드는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항상 가는 장소가 있었다.

“갔다 온다.”

마수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종이 울렸다.

딩동댕동-

아직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이 급하게 마탑으로 들어가자 다시 텅 비게 된 마지아 도시의 거리.

데카드는 거리로 나와 그 장소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짹짹이가 있다면 날아갔겠지만, 지금은 온전한 혼자다.

“감회가 새롭네.”

의도치 않게 마탑 전속 용병이 됐을 때도 왔던 마탑이었으나 지금 이곳과는 모습이 확연하게 다르다.

자신이 기억하는 그때의 그 마탑.

그중에서도 오직 자신만 안다고 자부하는 곳이 있었다.

“이쯤이었을 텐데.”

도시 구석진 곳.

인적이 드문 미개발 지역으로 들어서면 곧장 해안가로 나오는 길이 있다.

철썩철썩-

귓가에 이명처럼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함께 모래사장에 앉은 과거의 자신이 보였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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