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풀려난 유물
고오오오-
야유와 질타로 시끄럽던 알현실이 데카드의 살기가 지나가자 공동묘지처럼 싸늘해졌다.
순식간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
몇몇 심약한 대신들은 이 살기가 주는 공포를 견뎌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
황제는 굳은 표정으로 앞에 있는 데카드를 바라볼 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꿇었던 무릎을 펴 그대로 알현실을 나갔다.
[마수왕님……? 괜찮냐……?]
[네 눈에는 괜찮아 보이냐! 마수왕님! 얼른 집에 가서 쉬세요.]
[…….]
[아니면 제가 저놈들을 당장 반으로 접어버리겠습니다!]
마수들이 들고 일어나며 저마다 위로를 해주었으나 타오르기 시작한 분노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예민해졌나.’
예지몽을 꾼 뒤로부터 자신의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귀족들의 막말에 똑같이 대처해 버렸다.
“집에나 가자.”
황궁에서 나가는 길.
아까 데카드의 말을 들은 황제가 그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누구 하나 붙잡는 이 없었다.
길 한 번 헤매지 않고 황궁을 나갔다.
바깥은 해도 잠을 자려는 듯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엘리스는 집에 있나?’
[부원들의 숙소에 같이 있습니다.]
‘알았어.’
엘리스는 거기서 놀게 두고 자신은 화풀이나 하러 가야겠다.
집에 도착한 데카드.
‘살아있지?’
[물 정돈 줘야 원활한 대화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집 다락방에는 완벽한 화풀이 대상이 현재 묶여있는 중이다.
끼익-
다락방의 문을 열자 화들짝 놀라며 암살자가 벽에 등을 기댔다.
“나, 나한테 원하는 게 뭐냐…….”
며칠 동안 물이나 음식을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목소리가 가뭄이 온 땅처럼 쩍쩍 갈라졌다.
“일단 이거나 마셔라.”
생수 한 병을 암살자에게 던지자 그는 입으로 받는 기예를 선보였다.
손이 묶여있는 상태라 이빨로 뚜껑을 따고 입안에 물을 털어 넣는 모습은 꽤나 안쓰러웠다.
“야. 너 갈까마귀에서 온 놈이지.”
“콜록……!! 콜록……!”
뭔가 정곡을 찔렀는지 물을 먹던 암살자는 사례에 들려 생수병을 떨어뜨렸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이 반응만 봐도 갈까마귀 암살자인 것은 확실하다.
데카드는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너 포함해서 우릴 노리는 놈들이 총 몇이지?”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하느냐!”
“……내가 지금 기분이 좀 안 좋아. 그러니까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빨리 대답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암살자는 코웃음 쳤다.
“나는 세상 온갖 고문에 단련돼 있다. 그리고 곧 내 동료가 구하러 올 터! 빌어야 하는 건 네놈이다!”
데카드는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평범하게 말로 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요르. 힘을 빌려 줘.’
[네! 물론이죠!]
요르의 마나가 검지 끝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한 점에 마나가 계속 모이자 그것은 곧 밝게 빛났다.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나 암살자는 그것을 보고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건 독 속성의 마나야.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하지만 죽지는 않아! 온몸이 바늘에 찔리는 느낌일걸?]
그의 손가락이 암살자의 이마와 톡 하고 부딪쳤다.
후욱-
단숨에 밀려들어 간 요르의 마나.
처음에는 별 타격이나 고통이 없어 암살자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으윽…….”
[슬슬 느낌이 오나?]
“크아아악……!! 크흑……!!!”
바늘 구덩이에 몸이 던져져 그 위를 구르는 것 같은 고통.
치사율은 0%에 수렴하지만, 고통은 최상위급이다.
“그럼 내일 보자.”
이 상태로 24시간 푹 익혀두면 그 다음 날은 뭐든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나도 이것까지 쓰고 싶진 않았다고.”
원래라면 차분히 말로 풀어가면서 뼈만 몇 군데 부러뜨렸겠으나 오늘은 말했다시피 기분이 나쁜 날이다.
데카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침대에 몸을 눕혔다.
마수들은 안에서 나와 그의 옆에서 같이 잠이 들었다.
* * *
“그거 조심히 옮겨야 한댔어. 괜히 건들지 말고 가자.”
“나도 알고 있어. 짜샤.”
마법부의 마법사들은 정기적인 마도구 보관소의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마도구는 예민한 것들이 태반이라 이렇게 손으로 직접 닦아주지 않으면 금방 망가져 버린다.
마법사들이 그렇게 점점 중심부로 가까워졌다.
“야. 여기부턴 들어가면 안 되잖아.”
“그렇지.”
마법사들이 멈춰선 곳은 빨간 선이 칠해진 일명 코드 레드 구역.
“이 뒤엔 뭐가 있을까?”
소문으로는 엄청나게 위험한 마도구, 금서들로 가득 차있다고 했다.
정신력이 낮은 이들은 그 물건들의 기백에도 정신을 잃는다.
“스읍…….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은데…….”
“미쳤냐?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저기 청소나 마저 하고 있어.”
동료는 보관소 근처 화장실로 냅다 뛰어가고 그 사이 마법사는 레드 구역을 들여다보았다.
결계에 막혀 이렇게 보는 것만 가능할 뿐 실제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쑤욱-
결계에 막히지 않고 통과되는 손.
“이, 이게 뭐지?”
원래라면 당연히 결계가 막아줘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의 몸이 결계를 뚫어내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으로 울리는 목소리.
-이쪽으로 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이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네…….”
동공에 힘이 풀린 마법사는 그대로 결계를 뚫고 레드 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결계는 다시 원래의 힘을 되찾았다.
이어서 더 강해지는 유물의 흡입력.
“…….”
남자는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자신을 부르는 대상을 향해 걸어갔다.
우우우웅-
곧 낮은 진동을 내며 온갖 경비 마법과 결계에 둘러싸인 유물이 등장했다.
마법사가 다가올수록 유물은 더욱 요사스러운 붉은빛을 내뿜었다.
“내 거야…….”
위험-! 위험-!
코드 레드-! 침입자 발생-!
그사이 보관소를 넘어 마법부 전체로 방송되기 시작한 침입자 알림.
하지만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물을 향해 마법사는 손을 뻗었다.
유물을 보호하고 있던 결계는 앞선 것과 마찬가지로 마법사를 막지 못했다.
“…….”
마법사의 양손에 턱 하고 잡힌 유물.
“히히히……. 이젠 아무도 못 뺏어…….”
그와 만난 유물은 완전히 자신의 힘을 발휘해 나갔다.
자신을 묶고 있던 모든 사슬을 끊어버리고 마법사의 마나를 진탕 가져와 힘을 충전시켰다.
“야, 이 새끼야! 그거 당장 내려놔!”
먹고 있던 밥도 던져버리고 허겁지겁 달려온 경비 마법사들이 유물을 손에 든 마법사를 보고 소리쳤다.
-저들을 죽여.-
유물이 시키는 대로.
마법사는 단순한 매직 볼트 하나를 경비 마법사에게 날렸다.
쿠과과과과과-!!
하지만 그것이 가져온 위력은 단순한 매직 볼트가 아니었다.
유물의 힘으로 더욱 강력해진 마법은 경비 마법사의 배를 뚫어 즉사시켰다.
“아무도 내 건 못 가져가…….”
“젠장……!!”
옆에서 동료가 죽는 것을 무능력하게 지켜만 봐야 했던 경비 마법사.
그는 증원 요청을 위해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너도 죽어…….”
초급 마법인 파이어 볼.
원래는 농구공만 한 크기였을 파이어 볼이 갑자기 집채만 해지며 경비 마법사를 덮쳤다.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산 채로 타죽은 경비 마법사는 수정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위이이잉-
그러나 수정구는 정상으로 작동했다.
주변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울리기 시작한 증원 요청.
이 소식은 젠킨스에게까지 알려졌다.
“유물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군.”
“어떻게 할까요?”
비서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레드 구역을 감시하는 카메라 수정구를 그에게 내밀었다.
“아주 불안정하고 흉포하고……. 소유자의 생명력을 갉아먹어서 힘을 내는 건가.”
붉게 빛나는 유물은 사용자의 마나와 더불어 시체의 마나까지 빨아먹고 있었다.
마나가 힘의 원동력인 것일까.
그것 말고는 다른 것에 딱히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내가 직접 가겠네. 다른 마법사들이 주변에 오지 못하도록 통제해 주게.”
“알겠습니다.”
업무시간에 즐기는 산책 시간에 젠킨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관소까지 곧장 내려갔다.
[문이 열립니다.]
보관소 주변에는 마법사들이 몰려 있었다.
증원 요청을 보고 이리 달려 나온 것이리라.
“모두들 물러서게.”
“자, 장관님!”
“장관님이 오실 것까진 없습니다!”
“아니네. 이건 내가 해야 해.”
아까 카메라로 보아하니 유물은 마나를 많이 빨아먹으면 먹을수록 더 큰 힘을 내는 듯했다.
그러니 다른 마법사들이 어중간하게 처리하려고 하면 오히려 유물의 힘이 더 강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하는 게 옳지.”
젠킨스는 텔레포트를 사용.
순식간에 코드 레드 구역까지 도착했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와아……. 기계랑 정확한 좌표값도 없이 텔레포트를 써버리시네.”
“저게 공간 속성이구나.”
공간 속성을 타고난 젠킨스는 이렇게 마음대로 텔레포트를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젠킨스를 본 유물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다시 잠들 시간이다.”
“…….”
무지막지한 강함.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을 것 같은 저 마나.
최상의 육체다.
유물은 마법사의 손에서 떨어져 젠킨스에게로 날아갔다.
-날 소유해라. 그렇게 된다면 넌 최강의 힘을…….-
“필요 없네.”
공간 왜곡이 겹겹으로 쌓여가며 유물이 공간의 뒤틀림 속에 갇혀버렸다.
어째서?
라고 묻고 싶은 것이 유물에게서 느껴져 왔다.
“힘은 누군가 주는 것이 아니네. 손에 넣는 것이지. 이제 그럼 다시…….”
쿠오오오오오-!!
마지막 발악인 걸까?
유물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붉은빛을 한계치까지 발산해 냈다.
“과연 태고의 보물이군.”
젠킨스는 자신의 오른 손목을 왼손으로 꽉 잡은 후 공간의 억제력을 늘려나갔다.
“으윽…….”
젠킨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유물은 그의 구속을 뚫고 자신이 모은 붉은 힘을 광선의 형태로 쏘아 보냈다.
붉은 광선은 보관소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쏘아졌고.
방향을 본 젠킨스의 얼굴이 점점 썩어 들어갔다.
“노린 것이냐?”
이제서 말을 걸어 봐도 유물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광선이 날아간 곳은 보관소의 또 다른 유물이 있는 곳.
콰아아아아앙-!!
굉음을 낸 유물은 갑자기 푸르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멋대로 힘을 발산해 냈다.
“공간이…….”
공간 속성의 마법사로서 나름 이 공간에 대해선 많이 알고 있다 자부했는데 오늘 그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졌다.
파란 유물의 주변으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며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일이 더럽게도 꼬였군.”
일단 힘을 잃은 붉은 유물을 공간에 가둔 채 젠킨스는 텔레포트로 보관소를 빠져나왔다.
“자, 장관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설명하자면 기네. 하지만 곧 해결될 것이니 이만 물러들 가게.”
그의 말을 일단 믿을 수밖에 없는 마법사들은 다들 자신의 할 일을 하러 다시 움직였다.
“이거 어떡한다.”
마법사들이 사라지자 그는 방금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정리해 보았다.
“붉은 유물이 푸른 유물에게 힘을 넘겨주자 그 유물이 자신의 힘을 발휘한 건가.”
붉은 유물의 힘은 어느 정도 밝혀졌다.
하지만 푸른 유물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못하는지 아직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
“거기 누구 있나.”
젠킨스는 수정구를 꺼내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장관님.
“지금 당장 퇴마부장과 집행부장을 불러주게.”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