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생포한 악당들
“모, 모두 후퇴해라!”
흑마법사 한 명이 이렇게 외치자 그 휘하에 있던 제자들도 발에 불이 나도록 도망치기 시작했다.
신이 난 엘리스 조는 그 모습을 보며 한껏 비웃었다.
“깔깔! 도망가는 꼴 하고는!”
“이놈들아! 어딜 가느냐!”
“여러분!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어서 저들을 생포해야 돼요.”
엘리스의 말에 마도사들은 모두 순한 양이 되며 헤실헤실 웃었다.
“허허헛! 당연하죠!”
“당장 구속 마법을 사용하겠습니다!”
마도사들은 양손을 공기를 압축하듯 강하게 모으더니 단숨에 뻗었다.
촤아아악-!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기다란 사슬.
사슬들은 휘리릭 바람 소리를 내며 흑마법사를 한꺼번에 묶어버렸다.
“스, 스승님!”
“난 괜찮으니 어서 도망치거라!”
흑마법사는 잡았으나 그 제자들이 아직 살아있다.
“저들은 제가 처리하죠.”
엘리스는 품에서 가면을 꺼내 착용했다.
순식간에 자리 잡는 흑색의 운무.
그녀의 각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제자들의 앞까지 도착했다.
“헉! 어느새!”
“잘 가세요.”
딱히 이들을 위해 슬퍼해 줄 의리는 없었기에 그녀의 단검은 자비가 없었다.
춤추듯 움직이는 두 개의 단검.
“미쳤다 미쳤어.”
“사람 죽이는 것도 저렇게 예쁘냐.”
마도사들은 감탄에 마지않으며 대단한 뮤지컬이라도 한 편 본 것처럼 갈채를 보냈다.
“…….”
엘리스의 귀는 그녀가 물만 마셔도 내지르는 마도사들의 탄성에 식을 줄 몰랐다.
“그럼 저희는 이제 귀환합니까?”
“네.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다른 팀들도 다 끝냈겠죠?”
부원들이 간 방향을 한 번씩 쳐다보며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하고 있을 거예요.”
데카드도 그렇겠죠?
* * *
“커헉!!”
“우, 우리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뭐 이유가 별게 있나?”
데카드가 소환한 마수.
우드 몽키 100마리가 우르르 몰려다니며 흑마법사들을 덩굴로 칭칭 묶고 있었다.
한 놈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듯 철저하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아주 강하게 묶은 우드 몽키들은 할 일을 다 하고 이만 사라졌다.
“수고했어.”
우끼끼-!
100마리가 한꺼번에 목소리를 내니 다 부서진 은신처가 웅웅 울렸다.
펑 하고 사라진 우드 몽키들.
“흥흥.”
데카드는 콧소리를 내며 자신이 잡은 흑마법사들의 수를 세고 있었다.
“여섯 명이라…… 너희 중에 쓸모 있는 놈들은 얼마나 될까?”
“그,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럼 지금 한 번 물어볼까?”
포박당한 여섯 명을 모아놓고 데카드는 큼큼 목을 풀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여기서 ‘그분’이 뭔지 알거나 자신이 또 다른 은신처를 알고 있다. 거수.”
“우, 우리들이 동료를 팔 성 싶으냐!”
나름 진지하게 던진 말이건만 그는 피식하고 웃었다.
“배신? 그거 너희가 가장 잘하는 거잖아.”
지금은 이렇게 영원히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낼지 몰라도 조금만 살기 편해지면 바로 친구의 등을 찌를 놈들이다.
“어쨌든 내가 했던 물음에 대답해. 아는 사람?”
아무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알고 있으나 비밀 유지를 위해 입을 꾹 닫는 것이 아닌 정말 모르는 듯한 눈치다.
“너희들 레벨 대에선 알 수가 없나? 하여튼 쓸모가 없어요.”
개인적인 질문도 끝났으니 이제 흑마법사들을 끌고 가려는 순간.
[주인님. 제 까마귀가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뭐라는데?”
[평원으로 흑마법사가 도망쳤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군요.]
“까마귀를 풀어야겠네.”
한 명이라도 놓쳐선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음 습격 때 차질이 생기리라.
까악- 까악-
파랗기만 했던 하늘이 까마귀 떼가 지나가자 햇빛이 일순간 가려졌다.
“되게 많네.”
[서클이 올랐으니까요.]
저 정도 까마귀 양이면 전쟁으로 죽은 수많은 시체도 하루아침에 뼈만 남을 것이다.
[찾았습니다.]
“빠르네?”
[까마귀들의 수가 는 만큼 감지 범위도 늘었습니다.]
갑자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까마귀 떼를 본 흑마법사는 기겁하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평원에서는 말만큼 좋은 이동수단이 없지만, 날짐승보다 빠를 순 없었다.
“으아아아악!”
까마귀들에게 잡혀 베이스캠프로 끌고 가지는 흑마법사의 비명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우리도 이제 돌아가 볼까?”
[이들도 까마귀들에게 실어 보낼까요?]
“좋은 생각이야.”
구속당한 여섯 명의 흑마법사도 까마귀들이 들고 베이스캠프까지 배달해주었다.
그 신속 정확한 배달에 베이스캠프는 삽시간에 검은 로브인들로 꽉 차보였다.
“허허…… 이게 무슨.”
자신이 집행관이었던 시절에도 이렇게 많은 수의 흑마법사가 한 번에 생포된 건 본 적이 없었다.
“와아……. 이게 그 용병들의 대장님이 생포하신 겁니까?”
“겁나 많네.”
데카드가 데려온 흑마법사만 해도 벌써 베이스캠프의 마당을 꽉 채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우리 조는 생포 못 했는데 이 정도면 안심이네.”
“그러게 말이야.”
“솔직히 생포 같은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심장이 엄청 빨리 뛰어서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하겠더라.”
“나는 화살 맞고 죽을 뻔했다니까?”
마도사들이 첫 전투에 대한 서로의 소감을 나누던 사이 먼저 도착한 아스카와 고드윈을 비롯해.
엘리스와 벨린다까지 이제 막 캠프로 들어왔다.
“무사했구나! 언니!”
“당연하지.”
다들 처음 떠났을 때와 행색이 다를 바 없던 것에 비해 고드윈은 뭔가 옷이 너덜너덜해 보였다.
“넌 왜 그러냐?”
“……말도 말아라. 진짜.”
“뭔 일 있었어?”
고드윈이 맡았던 조의 마도사들은 성격도 유약한 면이 많았다.
전투가 주는 공포에 취해 마법 한 번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었다.
“와아…… 진짜?”
“그렇다니까. 후우…….”
결국 고드윈이 백염으로 한 번에 일망타진해서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어! 데카드!”
고드윈의 한숨이 이어지는 동안 지금 캠프로 온 데카드가 보였다.
엘리스가 뛰쳐나가며 해맑게 웃었다.
“다친 데는 없으세요?”
“이런 데서 내가 다치겠어?”
“헤헷. 그건 그렇죠.”
콧소리 섞인 웃음을 내보이던 엘리스는 캠프 중앙에 묶인 채로 쓰러져 있는 흑마법사들을 가리켰다.
“저거 다 데카드가 잡은 거예요?”
“한 놈은 벨린다 조거고 나머진 내꺼.”
그녀가 고개를 주억이고 있을 때 단상 위로 다시 한번 아토스가 올라섰다.
“오늘 모두 수고 많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마도사들이 한꺼번에 소리쳤다.
“으으 귀야.”
데카드가 귀를 후비적거리고 있는 사이 아토스의 연설은 이어졌다.
“귀관들 모두 첫 전투임에도 다치지 않았으니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해선 아니 된다. 귀관 중에는 조장의 힘에 기댄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몇몇 마도사들이 뜨끔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랬던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해라. 조장들이 언제까지 귀관들 옆에 붙어있을 순 없지. 모두 정진하고 또 정진해라.”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어진 마도사들의 커다란 대답.
“그럼 귀환한다!”
베이스캠프를 모두 회수하고 올 때 들지 못했던 황궁의 깃발을 이제야 손에 들 수 있었다.
황궁의 깃발을 드는 기수 역할은 마도사들 중에서 가장 강한 마리가 맡았다.
“제, 제가 정말……. 이걸 들어도 될까요?”
“당연하다. 너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기수는 그 깃발을 상징하는 자.
당연히 충분한 자격과 명예도 있어야 한다.
하물며 황실의 깃발은?
이름난 기사들도 황제의 깃발에는 손도 못 댔다.
“와아…….”
마리는 곧 울 것같이 감격한 표정으로 깃발을 받아들었다.
버프 마법사들의 헤이스트 맥시멈이 발동되고 마리는 당당하게 깃발을 든 채 질주했다.
* * *
[근데 마수왕님?]
‘왜?’
루비아로 한창 돌아가던 도중 티이라가 말을 걸어왔다.
[저번에 잡은 암살자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거?’
며칠 전 잡게 된 관음증 환자.
아무래도 암살자 같은데 개중에서도 갈까마귀의 냄새가 난다.
이제는 하도 많이 부딪쳐봐서 몇 번 합만 나누어도 갈까마귀 암살자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쯤 깼으려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포박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꾸물거리고만 있군요.]
‘도망치려고 하면 죽인다고 전해줘.’
다락방 안에 있던 감시용 까마귀는 암살자의 앞으로 가 발톱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순간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떠는 암살자.
‘돌아가면 그놈 심문부터 해야겠어.’
[그건 저한테 맡겨주십쇼!]
데카드는 고오른의 자신감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는 죽일 것 같아서 안 돼. 그냥 내가 할 거야.’
[그럼 도와드리겠습니다!]
‘……왜 심문에 그런 열정을 보이는 거야?’
[마수왕님 하시는 거 볼 때마다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불안한데…….
기껏 잡은 상대가 픽 하고 죽어버릴 것 같다.
[정 불안하시면 저희들도 같이 할까요?]
음……. 더 불안한데?
[그래! 우리가 도와주겠다!]
데카드의 동의와는 상관없이 결국 심문에 마수들까지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
그 사이 일행은 루비아에 도착하고 황궁 안으로 들어왔다.
“그럼 나와 데카드는 폐하에게 보고하고 올 테니 마음껏 쉬게.”
“부장님! 저희도 이만 들어가 볼게요!”
“그래.”
엘리스와 부원들은 숙소로 이동하고 마도사들은 기숙사로 움직였다.
“그럼 우리도 가세나.”
“그래.”
알현실까지 올라온 아토스와 데카드.
아토스는 들어가기 전 몇 번 목을 대차게 풀어주었다.
“크흠! 크흐흠……!! 흠흠.”
“……목 나가겠다.”
“그래도 발성이 중요하기에 어쩔 수 없네.”
끼익-
문이 열리고 그 안에는 신하들과 회의를 진행하던 황제가 중앙에 앉아있었다.
“벌써 갔다 온 건가?”
“여기 이 용병의 활약 덕분에 귀환이 빨랐습니다.”
기껏 설치한 베이스캠프를 써보지도 못하고 당일 날 귀환했으니 원정에서 이 정도 속도면 정말 빨랐다.
“그렇군. 결과는 어떻지?”
황제의 물음에 아토스는 자신 있게 보고를 시작했다.
“발견한 여섯 개의 은신처를 모두 파괴하고 총 일곱 명의 흑마법사를 사로잡았습니다!”
“으음! 대단하군! 수고했소. 마도사단장.”
“아닙니다! 폐하.”
황제의 고개가 옆쪽으로 돌아가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용병도 수고했다.”
데카드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였다.
왜냐하면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이제 보상으로 넘어갈 차례인데……. 아토스는 그만 나가도 좋다.”
“알겠습니다, 폐하.”
보고를 마친 아토스는 알현실을 나가고 아직 볼 일이 있는 데카드만 남게 되었다.
“내가 저번에 약속했던 보상들 말이네. 아무래도 나 혼자 추진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는 항목이 하나 있네.”
“그게 무엇입니까?”
“자네도 짐작 가는 게 있지 않은가.”
“…….”
황제의 말대로 살짝 걸릴 것으로 보이는 보상이 눈에 띄긴 했었다.
그것은 바로 신분 상승.
“평민의 신분에서 바로 귀족이 되는 이 보상은 난 찬성했지만, 신료들이 하도 반대를 해서 말이야.”
신료들이라 하면 바로 옆에 있는 이 귀족
신하들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딱 보니 자신을 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다.
고작 흑마법사 몇 명 잡았다고 감히 네가 귀족으로 올라서냐는 뉘앙스의 눈빛.
아주 불쾌하기 짝이 없다.
“괜찮습니다. 저도 기대하지 않았으니. 귀족들이 원래 그렇지요.”
데카드의 말에 발끈한 몇몇 귀족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라! 감히 평민의 마법사 따위가! 여기서 당장 네놈의 목을 쳐도 시원치 않다!”
“대신의 말이 옳소! 네놈의 그 동료까지 전부 가죽을 벗겨……!!”
쿠우우웅-!!
무릎 꿇은 데카드에게서 아주 잠깐이지만 형용할 수 없는 살기가 나왔고 그 살기가 알현실을 덮쳤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