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반격
이곳은 루비스트 평원.
그중에서도 퇴마부와 황실의 공조가 이루어지는 베이스캠프다.
캠프 안 아토스의 개인 막사에서 데카드와 그가 지도를 보며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그러니까 이쪽에 세 개가 있다는 거고…….”
“저쪽에도 세 개가 있소.”
루비스트 평원이 넓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흑마법사들의 은신처가 매우 많았다.
밝혀진 것만 해도 여섯 개.
“한 개씩 안전하게 잡는다고 생각하면 다른 놈들을 놓칠 것 같은데.”
아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병력의 분배가 필연적으로 필요할 것 같소.”
흑마법사들의 은신처가 각각 떨어져 있는 지금 포위망을 펼치거나 일망타진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물고기들이 많으면 어부를 늘리면 될 일.
데카드는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눈에 띄는 것을 발견했다.
“근데 이놈들…….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에 서로 은신처를 만들었어.”
그 말에 진의를 파악한 아토스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 그럼 놈들이 지금 무리를 이루었다는 것이요?”
“요즘 흑마법사들은 예전과 달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동료를 만들어 함께 행동한다. 아마 저들도 비슷한 부류겠지.”
유념하겠다는 듯 아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을 공격하면 이 애매한 거리 때문에 들켜서 나머지가 도망가 버리니……. 동시 공격을 하는 게 최선이네.”
“동의하오.”
“그럼 어떻게 애들을 나눌지 정해 보자.”
“사실 조금 생각해 둔 게 있소.”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아토스는 미리 마도사단의 병력만을 가지고 짜둔 분배조가 있었다.
“보여줘 봐.”
“여기 있소.”
스크롤에 적힌 네 개의 조는 공수의 밸런스가 잘 맞는 게 머리 좀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긴 한데 급습해야 할 은신처가 여섯 개이니 조를 더 만들어야 되겠어.”
“그래야겠구려.”
데카드는 아토스의 책상에 올려진 깃펜을 뽑아들더니 부원들의 이름을 분배조에 각각 적어 넣었다.
부원들은 이미 개개인이 무척이나 강하다.
이렇게 분배조에 한 명씩 넣어두면 그들의 구심점 역할을 잘해낼 것이다.
퇴마부에 있는 마법사 네 명은 분배조로 가고 그러면서 각 조에 빠지게 된 이들은 또 다른 조를 이루었다.
“새로 생긴 조의 대장은 엘리스가 하자.”
“애들이 많이 따르겠군.”
저번에 보니 엘리스에게 마도사단의 남자들이 열광을 하던데 그녀의 말이라면 지옥에라도 들어갈 기세였다.
“마지막 남은 은신처 한 개는 어떻게 할 것이오?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이 은신처가 가장 커다랗소.”
“내가 해야지.”
“괜찮겠소? 혼자서?”
“내가 누구더냐.”
데카드는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며 거만하게 자신을 검지로 가리켰다.
순간 아토스의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옛날 데카드의 이명들.
‘전무후무의 집행관, 전설의 집행관, 흑마법사들의 사신, 죽음을 죽이는 자…….’
기억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아마 훨씬 더 많았을 거다.
“가서 싹 쓸어버리고 올게.”
표정만 보면 오만함에 가득 차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믿음이 가는지 모르겠다.
“그럼 자리가 다 갖춰지면 신호탄을…….”
“아니야. 그건 너무 티가 나잖아. 나한테 좋은 연락책이 있어.”
데카드의 코트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쑤욱 튀어나와 그의 팔 위로 올라왔다.
“까마귀……?”
* * *
“자! 오늘은 어제 일러준 대로 각각 조를 만들어 급습을 진행할 것이다!”
“네!”
마도사단이 입을 모아 힘차게 대답했다.
“그전에 앞서 각 조의 조장을 소개하겠다. 올라오시오.”
조장으로는 퇴마부의 데카드를 제외한 다섯이 아토스가 올라간 단상 위에 섰다.
단상 위로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부원들.
“결정에는 불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불만 없습니다!”
“아주 만족합니다!”
엘리스의 조가 된 마도사들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아냈다.
“그럼 모두 제자리로!”
조장들이 받은 지도에는 자신들이 가야 할 흑마법사들의 은신처가 표시되어 있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제일 가까운 순서대로 아스카, 벨린다, 카론, 고드윈의 조가 은신처로 움직였다.
“으으! 기대돼서 몸이 떨려!”
“괜한 짓 하다가 다치지 마라!”
“흥! 너나 잘해!”
고드윈과 아스카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몸조심해라.”
“너도.”
카론과 벨린다 또한 짧은 안부 인사를 마치고 중간에서 갈라졌다.
엘리스 조와 데카드가 갈 목적지는 끝까지 길이 겹쳐 가장 오랫동안 같이 달릴 수 있었다.
‘마, 말해야 하는데…….’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계속 그의 옆에서 우물쭈물하는 엘리스.
“뭐 할 말 있어?”
하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근처를 쭈뼛거리는 것이 안쓰러워 데카드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그제야 엘리스는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
“모, 몸조심하시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 주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나오는 갈림길을 타고 도망치듯 멀어져갔다.
“엘리스도.”
대답을 받아줘야 할 상대가 저 멀리 떠나버리긴 했어도 데카드는 꿋꿋이 말을 마쳤다.
한편 캠프에 남아 전체적인 상황 통제에 나선 아토스는 까마귀를 통해 정보들을 전달받았다.
-모든 조가 위치에 도착.-
볼수록 신통방통한 이 까마귀는 평원 바닥에 글씨를 써서 방금 들어온 정보를 빠르게 알려주었다.
“그럼 시작할 때가 됐군. 흑마법사 놈들이 놀라는 얼굴은 언제 봐도 재밌는데 그걸 못 보게 됐다니 아쉬워. 그럼 시작해 볼까?”
아토스의 말은 각 조로 전파되었고 평원 각지에서 마법의 폭격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제일 먼저 아스카의 조.
아스카는 공격형 마도사들과 함께 합동 마법을 펼쳐 은신처의 뚜껑을 날려버렸다.
콰아아아아앙-!!
“와아! 합동 마법도 할 줄 아시네요!”
“당연하지!”
동료들과 합을 맞춰보는 훈련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합동 마법까지도 익히게 됐다.
본래의 마법보다 훨씬 강한 합동 마법.
그것은 은신처의 입구는 물론이요, 안쪽의 흑마법사들까지 통구이로 만들어버렸다.
“하핫! 맛이 어떠냐!”
“우리의 승리다!”
처음 흑마법사와 싸워보고 또 이겨본 마도사들은 승리의 기쁨에 취해 방방 뛰고 기쁨으로 차올랐다.
“아직 방심하지 마!”
슈욱-!! 쩌저적-!
흑색의 화살이 한 마도사의 심장을 노렸으나 바닥에서 뻗친 아스카의 얼음이 한 수 더 빨랐다.
화살을 단숨에 얼리고 아직 숨이 붙은 흑마법사까지 얼음 가시로 처리했다.
처음으로 죽을 뻔한 마도사는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가, 감사합니다…….”
“죽을 뻔했잖아!”
면목없다는 듯 마도사는 얼굴을 푹 떨궜다.
“놈들은 영악하고 잔인해. 너희들이 가장 방심한 순간을 노릴 거야!”
“아, 알겠습니다.”
넘어진 마도사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준 아스카는 은신처를 가리키며 다시 밝게 웃었다.
“그럼 안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자! 혹시 전리품이 있을 수도 있다고!”
“넵!”
* * *
“으악! 트랩을 밟으면 어떡해!”
“미, 미안!”
“지금은 남 탓할 때가 아니다! 곧 스켈레톤이 몰려올 거다.”
카론의 조에 있던 마도사 한 명이 실수로 흑마법사의 트랩을 건든 바람에 상황이 어려워졌다.
“거기 덫!”
“으윽!”
한 걸음마다 놓인 함정의 함정.
조금만 방심하다간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크크큭! 감히 내 은신처를 습격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구나.”
웅웅 울려대는 목소리.
철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리는 듣기가 거북했다.
“모습을 숨기지 말고 얼른 나와라!”
“혈기가 넘치는 놈들이군. 너희는 가죽을 벗겨 실험체로 써주지.”
흑마법사 대신 이빨을 딱딱거리며 밖으로 나온 스켈레톤.
그들은 강철 방패와 무기를 들고 휘두르며 위협을 해댔다.
마도사들은 긴장할지언정 겁먹지 않았다.
그러기엔 지금까지 아토스가 진행해 왔던 훈련이 너무나 힘들고 고됐다.
“이런 해골바가지는 우습다고!”
마도사 중 하나가 허공을 손날로 가르자 칼바람이 휘몰아치며 해골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아, 아닛!”
당황하는 흑마법사의 목소리.
카론의 귀가 쫑긋거렸다.
“거기 있었군.”
강체화를 사용하고 벌새와 같이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가속했다.
“허억!”
푸화아아악-!!
망치로 머리를 깨부수듯.
흑마법사의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머리가 터져나갔다.
“이렇게 흑마법사는 본인이 직접 싸우지 않는다. 본체를 처단하지 않으면 아까 그 해골들이 훨씬 더 많이 나왔겠지.”
“그, 그렇군요!”
“근데 여기 숨어있던 흑마법사를 어떻게 찾아내신 겁니까? 흑마력은 원래 저희가 느낄 수 없는 건데……?”
그 이유에 대해선 카론 본인도 몰랐다.
오랫동안 이어진 실험으로 자신만의 육감이 생긴 건지 정신을 집중하면 무언가 직감이 울렸다.
저쪽에 흑마력이 느껴진다고.
아직까지 이 직감은 틀린 적이 없다.
“감이다.”
“아아…….”
그저 감이라는 단순한 소리에도 마도사들은 감명을 받았다.
“다른 쪽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카론은 여기서 가장 가까운 벨린다가 간 은신처 쪽을 쳐다보았다.
슈웅-! 후웅-!
벨린다의 조는 운이 안 좋은 것일까 꽤나 까다로운 상대를 만났다.
그것은 바로 키메라.
“키메라가 여기서 왜 나와!”
“낸들 아냐!”
시체를 이어 붙여 만든 흑마법 생명체로 더 강한 시체를 붙일수록 힘이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뭔가 사람 같은 건 없어?”
“느껴지지 않아! 그리고 이제 마나도 바닥이란 말이야!”
마리와 같은 조가 된 벨린다는 그녀의 힘을 이용해 공간의 마나를 펼쳐 흑마법사를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실패.
키메라만 더욱 날뛸 뿐 녀석을 조종 중인 본체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 괴물부터 죽인다!”
벨린다의 벼락이 번개의 전광을 내뿜으며 타올랐다.
“이 한 방으로 목을 떨군다……!”
공격력은 충분할지 몰랐으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렇다고 참격의 형태로 공격하기에는 저 키메라가 쓸데없이 빠르고 감이 좋았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놈이다.
‘어떻게 하지? 놈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벨린다가 생각에 잠긴 사이 마도사들의 베리어가 하나둘 파괴되기 시작했다.
“벨린다!”
갑자기 그녀를 향해 소리 지른 마리.
“나한테 참격을 쏴!”
“뭐……?”
“빨리! 시간 없어!”
아직 본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일단 믿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방금 충전을 끝낸 최대출력의 참격을 그대로 마리에게 날려버렸다.
슈화아아아악-!!!
자신에게 날아오는 참격을 결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리.
마리는 양손을 뻗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공간 왜곡.”
쩌어어엉-!
참격이 그대로 사라지며 키메라의 목에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로 부드럽게 잘려나간 목은 투둑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겼다!”
“흑마법사를 잡을 때까지는 이긴 게 아니야.”
설레발치는 마도사를 제지시킨 벨린다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가까이 있을 텐데……!!’
벨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가까운 하늘을 날던 까마귀를 불렀다.
“짹짹이 님! 도와주세요!”
“갑자기 뭐 하는 거야?”
갑자기 하늘에다 대고 이상한 이름을 불러대는 벨린다를 마도사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을 때.
까마귀가 그 부름에 응답했다.
벨린다의 팔에 턱 하고 안착한 까마귀.
“짹짹이 님. 이 주변에 흑마법사가 숨어있어요. 까마귀들을 풀어서 찾아주세요.”
까악- 까악-
알았다고 대답한 걸까?
까마귀는 하늘을 날아 데카드에게로 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