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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62화 (162/208)

162 루비스트 평원

버프 마법을 사용해 발에서 땀이 나도록 뛰고 있는 마도사단과 부원들.

마법 덕분에 딱히 힘이 들진 않았으나 머릿속에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근데 저희 왜 텔레포트를 쓰지 않는 건가요?”

보통 임무를 나가게 되면 텔레포트 기계를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해서 이렇게 육로를 이용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는 루비스트 평원에는 텔레포트 기계가 없고 또 기계를 이용할 만큼 먼 곳이 아니거든.”

“아아! 그렇군요.”

아스카의 말에 대답해 준 데카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렸을 때 아토스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후욱-!

그와 동시에 버프 마법사들이 발동한 헤이스트 맥시멈의 효과가 사라졌다.

“엇? 갑자기 느려졌네.”

아토스는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파란색 유리병을 꺼내 들더니 버프 마법사들에게 나눠주었다.

“여기서 잠깐 휴식한다!”

평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직 꽤나 거리가 남아있어 버프 마법사들의 마나가 바닥나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 번씩 휴식을 취해줌으로써 마나를 회복하고 숨 돌릴 틈을 줘야 한다.

“저 파란 물은 뭐지?”

고드윈과 아스카, 벨린다는 저 파란 유리병을 처음 보았다.

“마나 포션이란거다.”

“카론! 너 저거 뭔지 알아?”

“물론이다.”

애초에 실험으로 탄생한 마법사가 연금술 포션에 대해 모를 리가 없다.

“마나 포션이 뭐 하는 건데?”

“마나 포션은 원래라면 시간이 지나야 채워지는 마나를 단시간 만에 금방 회복시켜 주는 포션을 말한단다.”

“와앗!”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린 익숙지 않은 목소리에 아스카가 화들짝 놀라 고양이처럼 몸을 튕기며 멀어졌다.

“자네들도 몇 개 받을 텐가?”

이 포션의 쓸모에 대해선 데카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부원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자신이 나서 아토스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 줬어야지.”

“하하……. 워낙 경황이 없었네.”

뭔가 불량 학생이 모범생의 금품을 갈취하는 것 같은 그림이긴 했으나 이건 엄연한 도구 분배다.

[마수왕님! 옛날 버릇 나온다!]

[이걸 전문 용어로 삥 뜯기라고 했었죠?]

마수들이 뭐라 하든 데카드는 꿋꿋이 주머니를 뒤져 마나 포션 3개, 체력 포션 3개를 챙겼다.

“그 빨간 거는 뭐예요?”

“뭐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

“헤헷. 잘 몰라서.”

“괜찮아. 아스카. 무지는 부끄러운 게 아니랬어.”

고드윈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위로가 아닌 기폭제로 아스카에게 다가왔다.

“그럼 너는 저게 뭔지 아냐?”

대답이 안 나오면 죽일 거라는 듯 아스카의 오른손에서 시린 냉기가 넘실거렸다.

“체, 체력 포션이니까……. 아마 다쳤을 때 먹는 거지 않을까?”

“하핫. 비슷하지만 틀렸네.”

“아악!!”

틀렸다는 아토스의 한 마디로 고드윈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이건 먹는 용도가 아닌 상처에 붓는 용도로 만들어졌어.”

“굉장히 유용하네요!”

방금까지 사람을 얼음 동상으로 만든 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발랄한 목소리였다.

“아스카 말대로 되게 쓸모가 많은 거니까 몇 개씩 챙겨 놔.”

데카드에게서 각자 필요할 것 같은 포션을 분배받은 부원들.

“근데 이런 포션은 마도구 상점에서 못 본 것 같은데?”

“맞아. 마도구 상점에서 포션을 파는 건 불법이거든.”

포션은 오직 마법부의 포션 제조부만이 제작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포션은 마법부가 인정한 공식 기관에만 유통.

개인이 사업을 목적으로 사고파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나도 불법만 아니었다면 집 안에 양껏 쟁여놓았을 거야.”

부원들은 오랜만에 보는 데카드의 준법정신에 입을 모아 수군거렸다.

“나만 속으로 부장님이 포션 밀수할 것 같다고 생각했냐?”

“너도?”

“크흠……. 사실 나도다.”

데카드가 들었으면 억울해했을 말들을 남발한 부원들은 그 본인이 아닌 아토스에게 딱 하고 들켰다.

“자네들의 대장이 겉보기에는 생 양아치여도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달려가고 민간인을 구조했던 집행관이었어.”

“정말요?”

“그럼. 나하고 저 친구가 동기였거든.”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 봐서는 절대 동기처럼 보이지 않았으나 실제로 저 둘은 동기가 맞았다.

그렇다면 알게 모르게 베일의 가려진 데카드의 과거를 이 사람은 알지도 모른다고 부원들은 생각했다.

“데카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저희한테 조금만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토스는 살짝 고민하다가 잠깐 멀리 떨어져 있던 데카드를 쳐다보았다.

“본인도 없는데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조금 찔리긴 하지만……. 나쁜 얘기도 아니니 괜찮겠지.”

“당연하죠!”

“어서 얘기해 주세요.”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그는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얘기는 나중에.”

“아아!”

기대만 잔뜩 하게 해놓고 빠져버리는 아토스의 잔인한 행동에 부원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

잠깐 동안 엘리스는 살심까지 품은 듯 은연중에 나오는 살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기세를 아토스는 부드럽게 받아넘기며 속삭였다.

“나중에 야영할 때 가끔씩 알려주도록 하지.”

“꼭이에요!”

“그래, 그래.”

이제 출발할 시간이 되었고 데카드도 부원들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뭔 얘기 했어?”

“아무 얘기 안 했어요!”

정말 아무 얘기 안 했다.

뭔 얘기를 시작하려고도 전에 아토스가 끊어버렸으니까.

마나를 다시 완벽하게 채운 버프 마법사들은 다시 한번 헤이스트 맥시멈을 발동.

양 진영은 화살같이 루비스트 평원을 향해 뻗어 나갔다.

* * *

루비스트 평원.

중앙 대륙에서 가장 넓은 평원이자 많은 유목민이 살고 있다 알려진 곳.

아직 유목민들 간에는 서로의 재물을 빼앗기 위한 약탈이나 소규모 전투가 밥 먹듯 이루어지고 있다.

이방인이라서 다를 건 없다.

이 평원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항상 약탈자들을 조심해야 하지만…….

턱-

“이 깃발 하나로 그런 건 필요가 없게 되지.”

탈리스 황실의 깃발.

이 깃발을 약탈자들이 보면 급하게 말고삐를 당겨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야단이 날 것이다.

“뭐 하는 거냐?”

“응? 깃발을 설치했네만. 이곳이 이제 베이스캠프 아닌가.”

“그건 맞는데 깃발은 왜 꽂는 거냐고. 여기 정복하러 왔어?”

베이스캠프의 지붕 위에 황실 깃발을 올리는 마도사를 보며 데카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건 약탈자를 방지하기 위함이자 황실의 권위를…….”

“황실의 권위고 나발이고. 너 여기 올 때 뭐라고 했어. 조용하게 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

“맞네. 실제로 우리는 조용하게 왔고.”

진영을 보는 사람이 없도록 아토스는 일부러 험한 산길을 선택해 이곳까지 왔다.

중간 중간 휴식 때도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은 데카드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엘리트였다.

“근데 지금 이걸 설치하면 그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된다고. 저 깃발을 누구라도 보게 되는 순간, 이 평원에 소문이 쫙 퍼질걸? 황실이 이곳에 왔다고.”아토스는 반박하지 못하고 깃발과 평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지금 고민할 때가 아니다? 지금 이 평원에 온 이상. 너는 궁정 마도사단장이 아니라 한 명의 집행관이야. 생각을 똑바로 하라고.”

짝-!!

자신의 뺨을 손으로 강하게 후려친 아토스.

얼마나 세게 쳤는지 벌겋게 부어오른 볼에서 빨간 손자국이 남았다.

“날 일깨워 줘서 고맙네. 잠시 판단이 흐려졌어.”

“이제라도 알면 됐어.”

“깃발은 넣어 두거라. 나중에 흑마법사의 수급을 취하면 그때 들어 올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깃발을 올리려던 마도사는 다시 고이 접어 고급스러운 상자 안에 보관했다.

“룬 마법을 설치해라!”

“넵!”

아토스의 지위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마도사들.

우웅-!

마도사들은 캠프 주변에 마나 분필로 기하학적인 문자를 그려 넣었다.

이것은 룬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특별한 마법의 힘을 담은 고대 문자다.

“이렇게 하면 모습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지.”

지금 설치한 룬의 이름은 은폐의 룬.

“설정한 범위만큼 존재감을 흐릿하게 해주는 건가.”

“역시 바로 맞췄네.”

“우리가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흑마법사를 잡았던 걸까요?”

벨린다는 평원 바닥에 그려진 룬 문자를 보며 감탄했다.

“그럴 수도 있지.”

실제로 퇴마부는 흑마법사를 잡으러 갈 때 이런 룬 마법이나 포션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었다.

오직 실력 하나로 모든 위협을 깨부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너희들의 그 사선을 넘나들었던 경험. 그것은 이런 편리한 도구 따위로는 전혀 얻을 수 없어.”

처음 데카드를 만나기 전 부원들은 실전 경험이 없는 온실 속 화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을 보라.

그 어떤 집단에게도 밀리지 않는 최강의 마법사들이 탄생했다.

“데카드의 말이 맞네. 나도 마음 같아선 옛날 방식으로 룬이고 포션이고 다 없앤 다음에 맨몸으로 적들과 부딪치게 하고 싶어.”

“쟤들을? 그럼 난리 날걸.”

그 후폭풍이 무엇일지 데카드는 전부 예상이 갔다.

“저들은 모두 이름난 가문의 자제들. 조금이라도 다치게 됐다간 마도사단에 들어오는 압력이 장난 아닐세.”

퇴마부야 뚜렷한 목적성에 의해 모인 이들이고 비밀 부서이기에 다치고 죽는다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온실 속 화초를 더욱 애지중지 키워야 지금의 마도사들이 나온다.

힘든 훈련으로 어느 정도 그 모습이 지워졌다고는 하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멘탈도 약하겠네.”

“후우…… 그 문제도 사실 걱정이긴 하네.”

흑마법사의 저주를 견디려면 멘탈.

즉 정신력이 무척이나 강하고 단단해야 했다.

데카드는 오랜 흑마법사와의 싸움으로 단련이 된 경우고 아토스는 오랜 연륜으로 익숙해진 경우다.

“애들 관리 잘해라. 나는 우리 애들 보는 걸로도 바빠.”

“크흠……. 저번에 보니까 다들 잘하던데 우리 마도사들도 한 번씩 봐주게.”

데카드는 듣는 둥 마는 둥 빈 허공을 쳐다봤다.

“그래도 항상 신경 쓰고 있는 거 알고 있네.”

“쳇.”

“한 시간 뒤에 회의할 생각이니 늦지 말게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니 이런 게 불편하다.

내 생각을 쓸데없이 잘 읽고 또 파악해 버린다.

[마수왕님 같은 분을 뭐라고 했었는데…… 그게 뭐였지?]

[모른다! 나 책 안 읽었다!]

[으음! 나도 모르겠군!]

[…….]

[츤데레다.]

이중에서 가장 독서량이 많은 짹짹이가 넌지시 답을 알려주었다.

[아! 맞아! 츤데레!]

‘……누가 츤데레야. 그런 소리 할 거면 조용히 하고 있어.’

[어엇? 마수왕님 부끄러워한다!]

티이라의 말처럼 데카드의 귀가 전보다 빨개지고 있었다.

급히 마음을 다스려 혈색을 되찾았지만 이미 다 들통 나버린 뒤였다.

[헤헷! 마수왕님의 새로운 모습, 발견!]

오늘따라 참 되는 게 없다.

“하아…….”

한숨 한 번으로 이 심정을 밖으로 쏟아내 버리고 데카드는 자신과 부원들 쪽의 캠프로 갔다.

안에서는 이미 짐 풀기가 한창이었다.

데카드는 캠프 안에 간이침대를 몇 번 눌러보더니 투덜거렸다.

“등 배겨서 잠이 안 올 것 같은데.”

“부장님은 잘 주무실 것 같은데…….”

벨린다의 조용한 의견 표출은 데카드의 귀에 닿지 못하고 중간에서 흩어졌다.

“한 시간 뒤에 깨워줘.”

“네!”

아까 등 배긴다는 사람은 어디로 떠났는지 베개에 머리 대고 십 초도 안 돼서 새근새근 잠자는 소리가 들려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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