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증명의 시간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야. 너희 궁정 마도사단. 우리 퇴마…… 아니 용병들. 누가 더 강한지 시험해 보자고.”
어느 순간 데카드는 존댓말에서 반말로 말투를 바꿔버렸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만약 한다면 그 시험은 어떻게 할 텐가?”
“어떻게 하긴. 당연히 대련이지.”
“그 말 진심인가?”
자신들 측에 별다른 어드밴티지를 줄 수 없는 대련을?
아토스는 데카드가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너희 쪽 마도사들을 이기면 작전은 처음부터 우리랑 다시 짠다. 하지만 우리 쪽이 지게 되면 깔끔하게 군말 없이 따르지.”
“흐음…….”
아토스는 하얀 눈이 내린 듯한 긴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긴 숨을 내뱉었다.
자신으로선 나쁠 게 전혀 없는 제안이다.
이런 용병들에게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아온 궁정 마도사들이 질 리가 없질 않은가.
“좋네. 대신 데카드 자네는 그 결투에 끼지 말아주게.”
“당연하지.”
아토스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이걸로 질 수 있는 작은 가능성도 없어졌다.
“나를 따라오게.”
아토스를 따라간 곳은 지금 한창 훈련 중인 마도사들이 모여 있는 항마 훈련장이다.
이곳은 강한 마법을 사용해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항마 처리를 두껍게 해둔 훈련장 겸 대련장이다.
즉, 이곳에선 힘의 제한을 둘 필요 없이 마음껏 싸워도 된다는 얘기.
“집합.”
아토스가 들어와서 작게 읊조리자 모두들 행동을 멈추고 일렬로 모여 섰다.
“꽤나 기합이 들어갔는데?”
잘 훈련된 군대를 보는 것 같은 모습에 데카드는 살짝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설의 집행관의 인정에 아토스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자신을 발견했다.
“크흠……. 일단 너희들에게 소개할 사람들이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들이 앞으로 공조를 진행할 마법부의 용병들이다.”
정적.
보통 이 타이밍에 박수가 나와야 하나 누구 하나 손을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필히 용병이라는 신분을 깔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릴 너무 환영해 주는데?”
“그런 건가요?”
그 모습에 되레 아토스가 뻘쭘해져서 헛기침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크흠……. 공조에 앞서서 친목도 도모하고 얼굴과 실력도 익힐 겸, 서로 대련을 해보도록 하겠다.”
“.......”
마도사들의 표정에서 짐짓 자신감이 느껴지는 조소가 나타났다.
감히 너희가 우리를?
이라는 분위기가 칼날로 만들어져 쿡쿡 부원들을 찔러왔다.
“우리 쪽은 이렇게 네 명이 나간다!”
엘리스를 제외한 마법사 네 명이 퇴마부에서 나오고.
마도사단에선 아토스가 임의로 네 명을 뽑았다.
“잘 부탁해!”
“…….”
첫 선수로 나간 아스카가 해맑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상대 마도사는 그 손을 보고 피식 웃고는 대련을 위해 거리를 벌렸다.
아스카는 철저한 무시에 쳇 하고 혀를 차며 자신도 거리를 벌렸다.
“재수 없어.”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아스카.
아무래도 이번 대련에 전력으로 임해야 할 이유가 방금 생긴 것 같다.
저 재수탱이 낯짝을 정면으로 부숴 주리라.
“야! 죽이면 안 돼!”
“알아!”
아스카의 살기를 은연중에 눈치챈 고드윈이 그녀를 제지했다.
아토스가 심판을 보고 마도사와 아스카는 서로 마법을 쓸 준비를 끝냈다.
“그럼…… 시작!”
아스카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부딪치기로 마음먹었다.
쩌저저적-
그녀의 주위로 바닥이 삽시간에 얼어붙으며 날카로운 얼음 가시가 마도사를 향해 뻗어 나갔다.
“……!!”
방심하고 있던 마도사는 기겁하며 급하게 거리를 벌렸지만, 그곳엔 이미 아스카의 마법이 준비된 후였다.
“체인 블라스터!”
마법진에서 발사된 체인은 원을 그리며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했다.
순식간에 마도사의 발을 묶어버린 체인.
“크윽……!!”
기동력을 빼앗겨버린 마도사는 볼품없이 바닥으로 머리를 곤두박질쳤고 승패는 결정 났다.
상대의 목을 꿰뚫을 것 같은 얼음 가시는 자신을 더욱더 예리하게 세웠다.
“그만! 승부는 났네!”
“쳇!”
아토스가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찌를 심산이었는지 아스카는 가시를 거두어들였다.
죽다 살아난 마도사는 숨만 껄떡거렸고 그 모습을 직관한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건 아토스도 마찬가지.
‘아무리 우리 쪽이 방심했다고는 하나 이런 차이를 보일 줄이야……. 데카드. 너 못지않게 동료도 괴물급이라는 건가.’
데카드는 흐뭇하게 웃으며 돌아온 아스카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잘했어! 아스카!”
“당연하죠!”
“좀 치네?”
이에 질 수 없다는 듯 다음 선수로는 고드윈이 나섰다.
아스카의 상대로 나왔던 마도사는 추한 뒷모습을 보이며 들어가고 저쪽에서도 새로운 마도사가 나왔다.
“이번에는 실력 좀 보자.”
고드윈이 툭 던진 말에 상대 마도사는 얼굴을 붉히며 방금 져버린 마도사를 찌릿 하고 노려봤다.
“시작!”
아토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법을 펼치기 시작하는 마도사.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고 침착하고 빠르게 마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마도사의 몸에서 불꽃이 피어올랐고 훈련장의 온도가 점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불 속성이라……. 대진 운이 안 좋네.”
‘저쪽도 얼음 속성인가?’
데카드가 중얼거린 혼잣말을 아토스가 듣고 생각했다.
얼음 속성은 불 속성에 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다.
데카드 쪽의 마법사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자신들 쪽의 마법을 지켜보고만 있다.
‘멘탈이 나가버린 것인가?’
전부 출중한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조금 전 나온 이가 그 넷 중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였던 것 같다.
“플레임 스타!”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듯.
훈련장의 천장에서 펼쳐진 마법진이 뜨거운 불덩이를 떨어뜨렸다.
쿠구구구구구-!!
그 웅장한 모습에 고드윈이 얼이 빠진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크하하! 잘 가라!”
저걸 아무 방어 없이 맞으면 마법사라고 해도 죽을 수밖에 없기에 아토스는 자신의 마나룸을 열었다.
그러나 갑자기 누군가에게 잡힌 뒷덜미.
“가만히 있고 보기나 해라.”
“하, 하지만 자네 동료가……!”
“닥치고 봐.”
불덩이는 결국 고드윈을 직격으로 맞히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맹렬한 불길이 후폭풍처럼 터져 나와 고드윈을 산 채로 활활 태웠고 이쪽까지도 불똥이 튈만큼 위력이 엄청났다.
“끝났군.”
아토스가 이렇게 생각하고 고드윈에게 불덩이를 날린 마도사도 그렇게 생각했다.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고 자신을 칭찬하며 마도사가 등을 돌린 그때.
불길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미지근하네.”
“……!!!!”
순간 등줄기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에 마도사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불길 안에서 조금씩 보이는 사람의 모습.
“내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불은 겨우 이따위 온도가 아니었다고.”
“어, 어떻게……!”
아토스가 벌떡 일어나 불길에서 아무런 상처 없이 걸어 나오는 고드윈을 눈에 담았다.
“불 속성으로 나한테 피해를 줄 순 없어.”
대진 운이 안 좋은 것은 마도사였다.
화르륵-!
고드윈의 오른손이 백염에 휩싸였다.
정말 주먹 크기만 한 불꽃에 불과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아까 불덩이가 올려두었던 훈련장 온도를 두 세배는 더 올려버렸다.
“야! 덥잖아!”
“알아서 해!”
아스카를 향해 한 번 왁 하고 소리 지르고 백염이 담긴 주먹을 한껏 뒤로 뺐다.
“그럼 눈 똑바로 쳐들고 봐라.”
고드윈의 주먹이 앞으로 빠르게 뻗어져 나간 그 순간.
콰과과과과과-!!
훈련장의 바닥을 전부 갈아엎어 버리며 백염이 파도처럼 나아가 마도사를 덮쳤다.
“으아아아악……!!!”
곧 온몸의 세포가 달궈질 생각에 마도사는 헤픈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대련에서 상대를 죽이는 것은 매너에 어긋난다.
마도사에게 닿기 직전 쫘악 갈라지며 모습을 감춰버린 백염.
“흐윽……! 흑……!”
털썩 하고 무릎 꿇은 마도사.
그의 바지는 이미 축축해진 지 오래다.
혼자 일어설 힘도 없는지 계속 그 자리에만 앉아있는 마도사를 다른 동료들이 부축해서 옮겨주었다.
“쉬운데?”
어깨에 묻은 그을음을 톡톡 털며 고드윈은 멋지게 돌아왔다.
“다음은 나다.”
카론이 장갑의 조임 새를 꽈악 잡아당기며 전의를 불태웠고 다음 차례의 마도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앞에 두 명이 너무 처참하게 당해 싸울 마음보단 두려움이 먼저 드는 것이다.
“흐음…….”
데카드는 그 모습들을 말없이 지켜봤다.
“카론! 본때를 보여줘!”
“……그건 이미 너희들이 다 보여준 것 같다만.”
자신은 특별한 실력 행사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것이다.
나의 장점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나도 상대의 그런 점을 봐야겠지.’
아토스가 시작 구호를 내리기 전 카론은 상대 마도사를 유심히 관찰했다.
조금씩 떨리는 손.
이마에 맺힌 구슬땀.
바짝 마른입.
“긴장하지 마라.”
“네……?”
“나는 뒤쪽에 있는 놈들같이 힘만 무식하게 센 놈들이 아니다.”
그 말에 발끈한 고드윈과 아스카.
“힘만 세다니!”
“아니 그것보다 왜 나를 이 고릴라하고 같이 묶는 거야!”
“고릴라? 오늘 네가 죽고 싶구나?”
“아악! 사람 살려!”
또 훈련장 구석에서 서로에게 주먹과 손바닥을 날리며 싸우고 있는 둘을 마도사들이 보며 웅성거렸다.
“쟤네는 신경 쓰지 말고 시작해라.”
“크흠…… 알겠네. 그럼 시작!”
카론은 선공을 양보하려는 생각인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주먹만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에너지 볼!”
푸른 색깔의 입자가 허공에서 뭉쳐지기 시작하며 곧이어 커다란 공의 모습으로 변했다.
빠르게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에너지 볼.
짧은 시간 안에 다섯 개의 에너지 볼이 만들어졌다.
‘실력은 확실하네.’
이전에 나온 마도사들도 비록 부원들에게 영혼 끝까지 털리긴 했으나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강체화.”
카론은 티이라의 비전인 강체화를 사용.
자신의 전신을 강철보다 더욱더 딱딱하게 만들었다.
“호오…… 강체화를 벌써 저렇게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건가?”
데카드가 순수하게 감탄하는 사이 카론은 마도사에게 정면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공격할 테면 해보라는 듯 그는 산책하듯이 훈련장을 걸었다.
“치잇……! 무시하지 마!”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행동에 마도사는 분개하며 만들어둔 에너지 볼을 전부 날렸다.
카론은 손도 까딱하지 않으며 에너지 볼을 고스란히 맞았다.
퍼어어어엉-!
에너지가 가득 담긴 구체는 성인 남성 정돈 멀리 있는 벽 끝까지 날려버릴 힘이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는 카론.
“…….”
평온한 표정으로 계속 걷기만 할 뿐이었다.
“젠장!!”
마도사는 어금니를 꽈악 깨물며 뒤이어 후속타로 준비한 에너지 볼 네 개를 전부 때려 박았다.
퍼어어어엉-! 퍼어엉-!
퍼엉-! 퍼어어엉-!
조금의 흔들림도.
미약한 피해도 주지 못한 에너지 볼.
“이게 다인가?”
그의 방어력에 비하면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에너지 볼의 위력에 마도사는 전의를 상실했다.
털썩-
무릎 꿇은 마도사.
“수고했다.”
카론은 이 한 마디를 던져주곤 절대 멈출 수 없을 것 같던 걸음을 돌려 부원들에게로 돌아왔다.
“이렇게도 이기네?”
“그러게 말이야.”
“아무것도 안 하고 걷기만 했는데 이겼어!”
카론의 승리법은 같은 팀이 보기에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 상대방이었던 마도사들은 얼마나 더 어이가 없겠는가.
“저거 용병들 맞아?”
“우리 시험하는 거 아니야? 저 사람들은 사실 마탑 3학년들이고.”
“오오. 일리 있어.”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도중 벨린다가 벼락을 허리에 동여매고 훈련장으로 나왔다.
“마지막은 마리가 해라.”
원래 나오려던 마도사가 아니라 아토스는 다른 마도사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래도 네가 아니면 이들을 상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 급이 다른 것 같은 마나가 엿보이는 젊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괜찮겠지?”
아토스는 데카드에게 양해를 구했고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겠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