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55화 (155/208)

155 목표가 없는 추적

“여, 여기가 맞나?”

한 풋내기 집행관이 양손 가득 커다란 상자를 들고 한 주소로 걸어가고 있다.

루비아로 발령 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아 거의 모든 길이 초행길인 이 집행관.

그는 어리숙하게 여러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종이에 적힌 주소를 찾았다.

“괘, 괜히 한다고 했다……!”

집행부장님이 특별히 내린 지시라고 하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손을 들었건만 이런 일인 줄 알았으면 안 했다.

“이 집이네. 엄청 크다.”

집행부 건물보단 아니지만 거의 그 정도 크기의 집은 아래에서 보았을 때 꽤나 위용이 넘쳤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청초한 미모의 보랏빛 머리 여자가 나왔다.

살짝 젖은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미묘한 샴푸 향.

“헙……!”

이런 집에서 이런 느낌의 여자가 나올 줄 모른 집행관은 숨이 순간 턱 막혔다.

“누구세요?”

아스카는 처음 보는 이가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는 모습에 처음엔 배달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짓고 있는 표정을 보니 그건 또 아닌가 보다.

“저기요? 제 말 안 들리세요?”

“…….”

계속 멍만 때리는 남자의 눈앞에 손을 왔다갔다 해보았으나 그는 반응이 없었다.

“이건 저희 주려고 가져오신 거죠? 제가 그러면 받아갈게요?”

남자의 손에 들린 상자를 받아들고 아스카는 숙소의 문을 쾅 하고 닫았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집행관은 다시 문을 쿵쿵쿵 두드렸다.

“왜 또요!”

다시 한번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온 아스카.

남자는 그녀의 미모를 보고 또 말을 잃을 뻔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제 이름은 펠리라고 합니다.”

“전 아스카예요.”

“또 집행부의 집행관이고요.”

“아, 네.”

갑자기 늘어놓는 자기소개에 아스카는 이게 뭔 상황인가 싶었다.

“할 말 없으시면 저 들어가 봐도 될까요?”

“자, 잠깐만!”

닫히려는 문을 거의 몸을 박다시피 들이대 막은 남자는 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급하게 적기 시작했다.

찌익-

수첩의 종이를 뜯고 조심스럽게 내미는 남자.

“이거 받아주실래요?”

“뭐, 네.”

딱히 받는다고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니 아스카는 그 종이를 건네받았다.

그것에 뛸 듯이 기뻐한 남자.

“그럼 안녕히 계세요!”

“……?”

남자는 신나게 숙소의 정원을 벗어나고 아스카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며 받은 종이를 펴보았다.

펴진 종이에는 그의 고유 마나 번호가 적혀있었다.

마나 번호는 개인의 마나 파장을 번호로 치환시킨 것.

이 번호를 마도 전화기에 입력하면 그 사람과 원거리에서 대화할 수 있다.

“뭐지?”

“뭐가?”

조그마한 종이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숙소 안으로 들어온 아스카에게 고드윈이 다가왔다.

그녀가 들고 있는 종이를 슬쩍 보자 그곳에 적힌 마나 번호가 보였다.

“뭐냐? 마나 번호 아니야?”

“나도 몰라? 어떤 남자가 주고 갔어.”

“저 상자 배달 온 남자가?”

상자 속에는 그간 집행부가 모은 흑마법사들의 흔적이 전부 담겨있었다.

이제 자신들보단 데카드가 더 필요해질 테니 필립이 보내준 것이다.

“너 뭐, 그 남자한테 주먹이라도 날렸냐? 그렇지 않고선 남자가 너한테 번호를 줄 리가 없는데.”

“……그 주먹을 너한테 날려줄까?”

“뭐 왔어?”

둘이 또 티격태격 싸우려고 할 때 위층에서 소란을 듣고 데카드와 나머지 부원들이 내려왔다.

“집행부장님이 보내신 것 같은데요?”

“필립이?”

“네. 여기 이름하고 편지가 있어요.”

상자를 열자 그 안에 있던 대량의 서류 더미와 작은 편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편지를 집어 데카드에게 건넨 고오른.

“얘가 편지도 쓸 줄 아네.”

[마수왕님도 쓰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못할 거 있나?]

잠깐 티이라의 팩트 폭력은 무시하고 데카드는 반으로 접힌 편지를 펼쳐보았다.

-데카드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그동안 우리가 모아왔던 흑마법사들의 정보를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 황궁이랑 일하게 될 텐데 걔들 앞에선 그 뻣뻣한 고개 좀 숙이고 살아라.

아무리 네가 대단하더라도 상대는 탈리스의 황제야.

그럼 나중에 무사히 보자.

-필립-

‘새끼가…… 누가 누굴 걱정해.’

받은 편지를 꼬깃꼬깃 접어서 쓰레기통에 던진 데카드는 상자를 들고 책상에 올려놓았다.

쿠웅-

이 무겁고 둔중한 소리만 들어보아도 이게 얼마나 무거운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상자 안에 든 서류 중에는 사람들의 입소문도 적혀있고 정확도가 높은 목격담도 적혀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상태.

“뭐 해야 할진 다들 알겠지?”

“후우…… 그럼요.”

“앞으로 몇 시간은 못 일어나겠네.”

이 수많은 정보 더미들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것이 첫 번째.

그 분류한 정보 중 정확도를 가리는 것이 두 번째.

그리고 가장 확실한 정보들을 몇 가지 뽑아 개인적으로 조금 더 파고드는 것이 세 번째다.

“자! 시작이 반이라고 빨리하고 저녁 먹자!”

“네!”

“알겠습니다.”

서류 더미들을 책상에 쏟아버리고 부원들과 데카드는 손에 짚이는 대로 정리와 분류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소문은 소문대로.

목격담은 목격담대로.

[마수왕님! 힘내라!]

[저희는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응? 무슨 소리야. 너희도 얼른 나와.’

일손을 늘리기 위해 마수들까지 소환.

다섯 마리의 지배자 마수는 괜히 말 걸었다며 투덜투덜 부원들 사이사이에 앉았다.

띵동-

그때 한 번 더 울리는 벨소리.

“내가 나갈게.”

설마 그렇진 않겠지만, 또 테러일 수 있으니 데카드가 한껏 마나를 끌어 올리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밖에서 들리는 한 사람의 인기척.

“안녕하십니까? 저는 황제 폐하의 신하, 루페라고 합니다.”

다행히 테러범은 아니었다.

현관 밖에 서 있던 인물은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신사였다.

가슴팍에는 자랑스러운 듯 한껏 올려 찬 황궁의 마크가 박혀있었다.

“데카드 아르마다입니다.”

둘은 악수를 한 번 나누고 루페가 집 주변을 둘러보며 얘기를 꺼냈다.

“먼저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황제 폐하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십쇼.”

“크흠……,”

그 전에 데카드가 무언가 할 게 있다는 듯 루페가 헛기침으로 눈치를 주었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루페가 뭘 말하는 것인지 눈치챘다.

“쯧.”

내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데카드는 한쪽 무릎을 꿇고 루페를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여깄습니다.”

그제서야 주어지는 황제의 서찰.

“이곳에 앞으로 데카드 씨와 팀원 분들이 해야 할 일이 적혀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서찰만을 전해주고 그대로 집을 빠져나간 루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황궁을 향해 걸어갔다.

데카드는 그 자리에서 서찰을 뜯어보았다.

찌익-

“오늘따라 편지를 많이 받네.”

친구의 편지는 기대라도 됐는데 이건 아니꼽기만 하다.

다른 사람이라면 탈리스 황제가 친필로 써져 줬다는 편지이니 가문의 영광이라며 코팅이라도 했을지 모르나 그는 아니었다.

누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잘 못 참는 성격의 소유자라 이런 성향의 편지는 싫다.

나는 그대를 기억한다.

저번에 우리 틴젤을 재미있게 놀아주었던 용병이지.

한낱 용병이 어째서 집행부를 대신해 흑마법사 소탕을 맡게 되었는지 자세한 건 묻지 않겠네.

마법부 장관도 입장 표명을 거부할 뿐 자네들을 부정하는 눈치는 아니었으니 말이야.

내일 오전 12시에 팀원들과 입궁하도록 하게.

그러면 우리 쪽 궁정 마도사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야.

“나를 기억한다라……”

이게 좋은 쪽으로 작용할지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크게 사고 친 기억은 없으니 아마 괜찮을 거다.

“그 황녀님만 안 만나면 좋겠네.”

또 놀아달라고 떼쓰면 자신은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마수왕님! 일 끝났으면 다시 이쪽으로 와라! 할 일 태산이다!”

“쓰읍…… 들켰네.”

조금 더 오래 있다 갈려고 했는데 마수들이 또 귀신같이 알아챘다.

“나 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 마수왕님!”

“미안, 미안.”

다시 자리에 앉아서 서류들을 정리하려고 하자 이미 부원들과 마수들이 꽤나 많이 해놓았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일은 없겠는데? 하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순간 어디선가 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알았어, 알았어. 하면 되잖아.”

“주인님의 그런 뭐든 귀찮아하는 버릇은 고쳐야 합니다.”

“예이 예이.”

데카드는 대충 대답하고 다시 설렁설렁 정리해 나갔다.

* * *

루비아의 안으로 들어올 때 텔레포트 기계가 아니라 성문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꽤나 드물다.

유동 인구가 워낙 많기에 성문 쪽도 붐비는 것 같으나 텔레포트 기계 이용량이 훨씬 많다.

그런데 지금 언뜻 보면 평범한 상단 같은 무리가 성문을 통해 루비아로 들어왔다.

“루비아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불편하시겠지만 후드를 걷어주십쇼.”

“꼭 걷어야 합니까?”

“요즘 아시잖습니까. 최근 테러 때문에 검사가 더 심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 벗어주십쇼.”

원래 정식 등록이 된 상단은 이렇게 검사를 빡빡하게 할 필요가 없지만, 테러로 인해 모두들 경계심이 극에 달했다.

결국 한숨을 쉬며 후드를 벗은 다섯 명.

순둥순둥하게 생긴 얼굴은 칼 한 번 잡아봤을 것 같지 않은 전형적인 상인의 얼굴이다.

“통과. 들어가십쇼.”

“예. 그럼 수고하세요.”

마차와 함께 다섯 명이 성문을 통과했다.

“젠장. 그 더러운 시체 놈들 때문에 괜히 우리만 힘들어졌어.”

“쉿. 말조심해. 이젠 우리와 동맹을 맺은 놈들이라고.”

“난 평소에 그놈들하고 상종도 안 하는데. 이게 무슨 꼴이람.”

다섯 명의 남자는 전부 암살자다.

그것도 갈까마귀 암살단의 일류 암살자.

이들은 정보 수집에 능하고 이들 10명이 모이면 작은 성 하나는 바로 함락시킬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다.

“그래서 그놈들 초상화 좀 다시 보여줘 봐. 빨리 찾고 떠버리게.”

“여깄다.”

초상화 네 개를 받은 암살자는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여자들 쪽은 굉장히 매력적인데?”

“그건 나도 느꼈다.”

“하하핫.”

암살자들이 모두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눈에 띄는 외모나 머리색을 가질수록 추적이나 정보 수집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초상화의 안에 있는 넷은 모두 개성 덩어리.

이런 도시에 던져놓아도 단번에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도 오래간만이네.”

“루비아로 임무가 나는 건 적으니까.”

공식적으로는 상단 건물이지만 비공식적으론 암살자들의 은신처.

이곳에 마차를 넣어놓고 그들은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이 넷이 어디에 사는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맞아. 그래야 잠복을 하든 추적을 하든 할 것 같군.”

“근데 최근 루비아의 소문을 들어보면 꽤나 오랫동안 불이 꺼져있던 대저택들에 누가 들어왔다는 얘기가 있어.”

암살자 중 하나가 고개를 돌리며 방금 그 얘기를 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게 뭐? 특별한 일이야?”

“내 생각엔 그렇게 개성 넘치는 놈들이 평범한 집에 살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최근 행적이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 같군.”

루비아 태생은 아니고 이곳에서 오래 살지도 않았다는 점은 대저택들에 불이 들어왔다는 그 시점과 미묘하게 맞물렸다.

“그럼 그 집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시작해 보자고.”

“마지막엔 암살이야?”

“그렇지 않겠어?”

“오케이. 오랜만에 재미 좀 보겠네.”

어둠의 암살자들은 비릿한 미소를 입에 머금으며 루비아의 대저택으로 움직였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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