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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54화 (154/208)

154 황궁과 손을 잡다

어제 그 난리가 난 것치곤 루비아에 꽤나 밝은 아침이 찾아왔다.

황명을 수행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찍 벗어난 아토스.

그는 로브를 정갈하게 차려입고 자신의 수행원 두 명과 함께 루비아로 나갔다.

히이잉-

바깥에는 아토스를 태우기 위한 마차가 준비돼 있었다.

“여기 타십쇼.”

마부가 조심스레 마차의 문을 열었고 아토스는 가뿐하게 올라탔다.

곧이어 마차가 다그닥 다그닥 소리를 내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흐음…….”

바깥을 보니 루비아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지금은 모두가 행동을 시작하는 9시.

자신이 만나야 하는 인물도 지금쯤 집행부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놈과도 오래간만이군.”

몇 년 전, 승진 시험 때 이후론 전혀 마주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딱히 보고 싶진 않았으나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긴 했다.

“이제 곧 집행부에 도착합니다.”

“알았다.”

아토스는 이동 중에 읽던 책을 집어넣고 옛 친우를 만날 준비를 했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네.”

팁으로 은화 몇 개를 건네주자 마부의 입이 헤벌쭉 벌어지며 넙죽 받았다.

아토스는 마차에서 내려 오랜만에 와보는 집행부의 건물을 쭈욱 둘러보았다.

외관은 전과 달라졌으나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곳임은 변하지 않았다.

“들어가자꾸나.”

아토스는 수행원들과 함께 집행부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수습 집행관들을 비롯한 여러 집행관이 자신의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중, 안으로 들어온 아토스에게 한 집행관이 다가왔다.

“아…… 토스…… 선배님?”

“오랜만이네. 헤칸.”

헤칸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손등으로 눈 주변을 비볐다.

“원래라면 올 일이 없었을 텐데 일 때문에 왔네.”

“어떤 일이십니까?”

“지금 필립 있나?”

아토스가 찾고 있는 필립은 현재 최상층, 자신의 방에서 나름 한가한 오후를 보내는 중이었다.

중간 중간 커피도 타 먹고 바깥 풍경도 볼 수 있는 날은 흔치 않다.

그때 아래층에서 심상치 않은 마나가 느껴졌다.

“…….”

이 마나는 자신이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람의 마나.

“아토스가 왔군.”

점점 가까워지는 마나.

필립은 자세를 정갈히 하고 오랜만에 보는 옛 경쟁자를 볼 준비를 끝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예상했던 대로 아토스가 들어왔다.

“여긴 어쩐 일인가?”

“놀러 온 것은 아니니 걱정 말게.”

아토스는 책상 위에 올려진 집행부장의 명패를 보고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이내 풀었다.

“앉아도 되겠나?”

“그러게.”

자리에 앉은 아토스는 들고 온 가방을 열고 서류 몇 장을 꺼냈다.

서류에 찍힌 황제의 인장.

그것을 본 필립은 빨리 끝나진 않겠다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며 일어났다.

“커피 마실 텐가?”

“부탁하네.”

필립은 이 어색한 침묵과 함께 얘기를 나눠가야 할 자신을 위해 커피를 탔다.

그러나 아토스는 여전히 무표정.

그는 전에 있던 일을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걸까?

궁금하지만 대놓고 물어볼 순 없다.

“옛날 일은 옛날 일이네. 자네가 나보다 더 뛰어났기에 그 자리에 앉았을 뿐. 다른 건 없어.”

필립의 마음을 꿰뚫어 본 건지 아토스가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옛날 젊었을 적엔 집행관이었던 아토스.

그는 이 집행부 안에서도 에이스였고 그에 반해 필립은 평범하디 평범한 집행관이었다.

하지만 필립의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아토스와 필립은 집행부장 자리를 놓고 승진 시험을 벌였었다.

결과는 필립의 승리.

아토스는 그날로 집행부에서 짐을 챙겨 궁정 마도사로 들어가 버렸다.

“황궁에서 마도사장이 되었다는 소리는 들었네. 늦었지만 축하하네.”

“고마워.”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건가?”

따뜻한 커피를 건네주며 필립도 아토스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대답하기 전, 받은 커피를 한 입 쭉 들이켠 아토스는 가져온 서류를 펼쳐 보였다.

“예상은 했다만, 역시 흑마법사였군.”

아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어제 루비아에서 테러가 벌어졌네. 해서 황제 폐하께서는 그 테러의 원흉인 흑마법사를 뿌리 뽑으려고 하신다. 그 과정에서 자네들 집행부가 필요해. 물론 집행부에 돌아가는 이익도 적지 않을 거야.”

“무슨 이야기인지는 아주 잘 알겠고 내 생각은 긍정적이네.”

“그럼 거래 성립인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진 거래에 아토스가 속으로 활짝 웃으려던 찰나 필립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하지만 흑마법사 소탕은 더이상 집행부가 관여할 수 없어.”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집행부가 흑마법사 소탕에 관여할 수 없다니!”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 중 한 가지.

집행부는 흑마법사를 잡는 일을 주로 한다.

이 상식을 그것도 집행부장이 전면에서 깨부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네. 이 일은 마법부에 문의해 보게. 그럼 장관님이 자네에게 직접 답해 주실 거야.”

“허어…… 이게 대체 무슨…….”

“자네가 떠나 있는 사이 이곳은 많이 바뀌었어.”

전혀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 속에서 아토스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안마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제 집 안방 드나들 듯 말이다.

“여어! 필립! 나 왔……!”

안에 필립 말고 누군가 한 명 더 있는 것까진 신경 쓰지 않았는지 들어온 데카드의 표정에서 당황함이 물씬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더 당황하고 놀란 한 사람.

“데, 데, 데카드 아르마다??!!”

아토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들고 있던 커피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와장창-!

커피 잔은 그대로 깨지고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이 바닥을 엎었다.

“응? 너는 누구냐?”

자신을 아는 눈치에 데카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토스를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는 한데 늘 그렇듯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이거 피곤하게 됐군.”

필립은 필연적으로 설명할 게 많아졌다는 생각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너……! 실종됐다더니 어떻게 여기에……?! 그리고 얼굴이 전혀 변하지 않았어……!”

“맞아. 변하진 않았지. 내가 좀 심하게 동안이라.”

천 살을 넘게 먹고 이 정도 얼굴이면 동안은 맞다.

“내, 내가 누군지 정녕 모르겠나?”

[이 할배, 뭐냐?]

[강한 마법사로군!]

[…….]

[마수왕님! 이 할아범, 아세요?]

“진짜 모르겠는데.”

데카드가 잠깐 눈을 돌려 필립을 쳐다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 말곤 별다른 표시가 없었다.

“누군데?”

“아토스! 정말 기억 안 나는가?!”

“아오, 시끄러워. 고막 떨어지겠네. 아토스라고?”

데카드는 기억의 파노라마를 들춰보다가 드디어 기억났는지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 기억났어! 그 귀찮게 굴던 집행관!”

“맞네! 맞아! 내가 그 아토스란 말일세!”

“근데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그 질문을 하고 싶은 건 아토스 쪽이었다.

한창 집행관으로 이름을 날리고 차기 집행부장으로 유력했던 데카드.

그가 마탑의 홈커밍 데이에서 갑자기 외딴 차원으로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언제 돌아온 건가?”

“좀 됐지?”

벌써 인간계에 들어온 지도 반년이 다 돼가는 것 같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둘이 무슨 얘기 중이었는데? 둘이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잖아. 아, 말년에는 다시 친해진 건가?”

“말년이라니!”

듣고 있던 필립이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찔렸는지 다른 건 놀려도 그냥 넘어가는 필립이 이번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뭘 또 화내고 그래. 이거 가지고 얘기하는 중이었어?”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들춰보던 데카드는 흑마법사 소탕 작전이라는 제목을 보고 흥미가 돋았다.

“역시 어제의 테러로 황제가 화가 많이 나긴 났나 보네.”

“황제라니! 폐하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옆에 있던 아토스가 호칭의 정정을 요구했으나 그런 걸 신경 쓸 데카드가 아니었다.

그는 아토스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며 서류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집행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은신처를 발견 즉시 황궁의 병력들이 그곳을 쓸어버린다라…… 단순한 옛날 방식이네.”

옛날에도 많이 쓰던 공조 방법이다.

물론 그때는 흑마법사가 은신처를 사용할 필요 없이 날뛰던 암흑시대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럼 자네는 더 좋은 방법이라도 알고 있다는 건가?”

“이것보단 좋지 않겠어?”

데카드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아토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 데카드 아르마다로군. 저 한 마디도 안 지는 성격으로 보나 말투로 보나.”

“나도 처음엔 헷갈렸는데 저 분위기는 저놈 말곤 뿜어낼 수가 없지.”

그냥 허술하게 퍼져있는 듯 보이나 사실상 거의 전장에 온 듯한 수준으로 마나를 긴장시켜놓는다.

언제나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예열해 두는 것이다.

서클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런 부분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너 6서클 됐더라?”

“얼마 안 됐어.”

“미친 천재 놈.”

둘의 얘기를 혼자만 알아듣지 못하고 있던 아토스가 말을 더듬으며 끼어들었다.

“자, 잠깐! 데카드는 원래 7서클 아니었나? 어떻게 서클이…….”

“더 낮아졌냐고? 사정이 있다.”

그렇다고 그 사정을 다 말해 주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럴 의리도 없다.

서류를 끝까지 다 읽은 데카드는 아토스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꺾었다.

“이거 필립한테 까였지?”

“그, 그렇네.”

“네가 깐 이유는 아마 ‘그것’ 때문일 테고.”

“맞아.”

데카드는 씨익 웃으며 서류의 싸인 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뭐, 뭐 하는 짓인가!”

“원래 이 일은 내 소관이거든. 공식으로나 비공식으로나.”

사인을 마친 데카드는 서류를 다시 아토스의 품에 고이 넣어주었다.

“황제에게 전해. 우리 퇴마부가 이 일을 맡겠다고.”

“퇴…… 마부?”

알 수 없고 이해 안 되는 것투성이였던 이번 거래.

그 이해 안 되는 것에 절반을 차지한 주 원인은 쓸데없이 밝게 웃으며 방을 나갔다.

정말 자기 말만 하고 빠지는 게 가짜는 아니다.

“정말 이대로 하면 되는 건가……?”

“믿어보게. 저 천둥벌거숭이를. 단 한 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놈이잖은가.”

“허어…….”

아토스는 필립의 사인 대신 데카드의 사인이 적힌 서류를 품에 안으며 황궁으로 돌아갔다.

* * *

“얘들아! 기쁜 소식하고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엘리스를 비롯해 모든 부원이 모여 있는 숙소로 돌아온 데카드.

그는 방긋방긋 웃으며 두 가지 소식을 들고 왔다.

“으음…… 좋은 소식 먼저 들을게요!”

아스카가 제일 먼저 의견을 냈고 데카드는 그녀의 의견대로 좋은 소식을 먼저 말했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흑마법사를 잡기 위해 황궁과 손을 잡았다는 거야!”

“……이게 좋은 소식입니까?”

결국 일하러 가야 한다는 말이 어느새 좋은 소식으로 포장되었다.

“그럼 나쁜 소식은 뭔가요?”

“흑마법사들이 어디 있는지 전혀 몰라! 그래서 이제부터 조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

부원들의 야근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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