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맘에 들은 선물
“빨리 뛰어!”
이쪽으로 갑자기 몰려든 기사들과 경비병들의 눈을 요리조리 피하며 마수들은 골목길을 통해 이동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공간 주머니가 없어 가져온 모든 물건을 직접 손으로 옮겨야 했다.
“야! 넌 뭐 이렇게 큰 침대를 샀어!”
거의 골목길 넓이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은 크기에 마수들의 발이 침대에 채였다.
“그러는 너는 옷을 왜 그렇게 많이 샀느냐!”
“흥! 모르면 빠져! 우리 마수왕님이 입으실 거거든?”
선물에 대해 마수들끼리 서로 디스전을 벌이고 있을 때 티이라가 끼어들었다.
“헤헷! 내 선물이 가장 좋다!”
“…….”
그리고 조용히 끼어드는 레오.
그가 들고 있는 상자에는 카지노 칩이 가득 담겨있었다.
“……결국 가져왔군.”
상자 안쪽을 본 짹짹이는 아파져 오는 이마를 붙잡으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너는 음식만 샀잖아! 그건 먹으면 없어진다고!”
“아니다! 우리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티격태격 네 선물보다 내 선물이 좋다고 언쟁을 벌이는 사이 데카드의 집에 도착했다.
“그럼 마수왕님에게 골라 달라 하자고! 누구의 선물이 가장 좋은지!”
“좋다!”
“원하던 바다!”
“…….”
각자 자신의 선물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는 마수들은 대문을 간단히 뛰어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마수왕님! 저희 왔어요!”
“어어! 왔구…….”
데카드는 정문으로 들어온 마수들을 마중 나가려다가 양손에 가득 쌓인 물건들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뒤따라오는 짹짹이를 슬쩍 쳐다보았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떤 선물인지 한 번 볼까?”
“네!”
먼저 제일 커다란 고오른의 선물이 눈에 띄었다.
그가 가져온 쿼드라플 킹사이즈 침대는 거실의 한쪽을 차지하고도 남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이걸 들고 달려온 고오른이 대단하게 보일 정도.
“뭔가 엄청 편하긴 하네.”
이 정도 크기면 마수들이 전부 누워도 문제없고 아무리 잠버릇이 심한 사람이라도 이 침대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은 요르의 선물이네?”
침대에 가득 쌓인 옷은 다 입어보기가 두려워졌다.
“전부 마수왕님과 어울릴 만한 것들로 사왔어요!”
“고마워, 요르.”
요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자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내 거다!”
티이라가 가져온 선물은 전부 음식들.
왕의 식탁에나 올라갈 법한 고급 식재료도 있는 반면 배고픈 새벽 때 편하게 뜯어먹을 수 있는 간식도 있었다.
“다 맛있는 거다!”
“고, 고마워.”
이것들은 빨리 냉장고에 넣어둬야겠다.
음식들을 냉장고에 밀어 넣고 이제 마지막 선물인 레오의 것이 남았다.
“자, 우리 레오는 어떤 선물을 가져왔을까?”
그의 눈에서 엿보이는 자신만만함은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화악-
레오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 그 안을 가득 채운 형형 색깔의 칩들이 보였다.
“이거……. 카지노 칩 아니야?”
칩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데카드가 다시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는 당연히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일단 고마워.”
“…….”
세계 최고의 도박꾼도 하루에 이만한 칩을 손에 넣어보진 못했을 것이다.
선물을 모두 받은 데카드에게 마수들이 기대감 넘치는 눈빛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누구의 선물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걸 꼭 정해야 해?”
“물론이다!”
마수들의 성화에 못 이겨 데카드는 결국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엄청 큰 침대, 수많은 옷, 온갖 식재료 그리고 카지노 칩.
이렇게 놓고 보니 서로 비슷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이 중에서 골라야만 했다.
“나는…….”
꿀꺽-
마수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을 때.
그의 입이 열렸다.
“고오른의 선물이 제일 좋아 보이는데?”
“크하하하!! 역시! 안목이 있으십니다!”
결국 승리한 고오른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기쁨을 만끽했다.
“흥!”
인정할 수 없는지 휙 돌아서 토라진 요르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 옆에는 아까부터 앉아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엘리스가 있었다.
그녀는 시무룩해진 요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뭐 하느냐?”
요르가 묻자 엘리스는 배시시 웃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시, 실망은 무슨! 그리고 내가 인간 따위한테 위로받을 것 같으냐!”
요르는 톡 하고 쏘아붙이며 엘리스의 반대 소파로 가 앉았다.
티이라는 딱히 별생각 없는 듯 아까 자신이 사온 음식 중 과자 봉지를 뜯으며 소파에 눕다시피 등을 기댔다.
“요르! 엘리스 너무 미워하지 마라!”
“쳇! 네가 뭔 상관이야!”
빽 하고 소리 지른 요르는 다 싫다는 듯 뒤로 누워버렸다.
“저 백사가 말은 저렇게 해도 속은 순하다!”
“하하핫. 반전이네요!”
“야, 이……!”
요르는 또 욕 한 바가지를 날려주려다가 힘만 뺄 걸 알았기에 그냥 그만두었다.
한편 데카드가 자신의 손에 가득 들린 카지노 칩 처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짹짹이가 다가왔다.
“그리고 주인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짹짹이는 아까 백화점에서 있었던 테러에 관해 얘기했다.
수많은 해골 병사.
말을 탄 심상치 않은 기운의 해골 기사들.
그리고 수정구에서 나타난 흑색 로브인.
“…….”
짹짹이의 말을 들을수록 데카드의 표정은 시시각각 안 좋아졌다.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데카드는 한숨을 푸욱 쉬며 말했다.
“하아…… 결국, 예지몽이었나 보네.”
“예지…… 몽…… 말씀이십니까?”
“그래.”
데카드가 꿈으로 꿨던 그 순간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또 지금이 첫인사라고 말한 로브인.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테러가 더 있을 것이다.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테러를 벌였다라…….”
탈리스는 누가 뭐라 해도 강대국.
그런 나라의 앞마당에서 버젓이 이런 행각을 저지르는데 보고만 있을 탈리스가 아니었다.
“지금쯤 황궁은 엄청 뜨겁겠는데?”
* * *
황궁의 회의장.
황제가 단상 위 옥좌에 앉아있고 그 양옆으로 탈리스의 신하들이 쭉 늘어서 있다.
“이건 명백한 선전포고입니다! 저희도 대응해야지요!”
“그 적이 누구인 줄 알고요? 적도 모르는데 어떻게 군사를 일으킵니까!”
서로의 의견을 치열하게 펼치는 신하들 사이에서 젊은 황제는 지끈거리는 머리에 이마를 매만졌다.
회의장에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주먹다짐이라도 할 기세다.
“모두 조용.”
황제의 한마디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회의장.
“지금 그대들의 의견은 강력하게 맞대응하자와 확실하게 적의 위치를 찾을 때까지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된다. 이 두 가지요. 맞소?”
“그렇사옵니다! 폐하! 어서 결단을 내려주십쇼!”
현 탈리스의 황제, 오츠만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꾸욱 다물었다.
조용한 저녁 때 다른 곳도 아니고 수도가 테러를 당했다.
자신도 마음만은 물론 범인을 찾아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었으나 그 적이 누군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후우…….”
고뇌가 섞인 한숨이 터져 나올 때, 문 밖에서 기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궁정 마도사장께서 회의에 들어오고 싶으시답니다.”
“들여라.”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 황궁의 마도사장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예의를 갖추었다.
“폐하를 뵙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가, 마도사장.”
“소신.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해보게.”
마도사장, 아토스는 큼큼거리며 목을 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백화점 안에 있었던 시민들에게 방금 정보를 전해 받은바. 범인은 흑마법사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흐, 흑마법사?!”
“그들이 또 어째서!”
흑마법사라는 말에 회의장은 다시 불같이 뜨거워졌다.
그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인 모습에 오츠만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
콰앙-!
그대로 옥좌를 내리쳤다.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신하들.
“계속 말해 보시게.”
“감사합니다, 폐하. 만물 백화점을 습격한 이들은 해골 병사들로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흑마법의 결과물입니다.”
“백성들은 얼마나 죽은 겐가.”
“그게…….”
이 부분에서 아토스는 왜인지 망설이며 답을 하지 못했다.
그에 더 불안해진 오츠만은 손에 질끈 난 땀을 닦아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들린 의외의 대답.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뭐라……?”
“사망자는 물론이고 부상자도 경미한 것을 빼면 중상자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능한가?”
아토스는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누군가 백성들을 지켜주기라도 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곳에 있던 백성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길 무슨 정의의 사도들이 자신들을 지켜줬다고…….”
갈수록 의문점만 남는 것 같은 회의에 오츠만은 이쯤에서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 우리 탈리스는 흑마법사를 나라의 적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심판하겠소. 주변국들에도 압력을 넣어 그 더러운 놈들을 대륙 공적으로 올리시오.”
“명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흑마법사들의 은거지를 파악하고 그곳에 마법사단과 기사단을 보내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신하들이 한꺼번에 대답하고 오츠만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궁정 마도사장만 빼고 나머지 신료들은 나가시오.”
신하들이 회의장 바깥으로 우르르 빠져나가고 아토스만 그 중앙에서 우두커니 무릎을 꿇은 채로 있었다.
“아토스. 내가 왜 그대를 남겼는지 아시겠소.”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것이 맞을 것이오.”
순간 아토스의 표정이 벌레를 씹은 듯 썩어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대밖에 없으니 이해해 주길 바라오.”
“물론입니다.”
“내일 수행원과 함께 집행부로 가 주시오. 우리끼리는 흑마법사를 완전 소탕하기가 어렵소.”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서 쉬게.”
아토스는 허리를 꾸벅 숙이곤 회의장을 나갔다.
그는 오랜만에 집행부로가 오랜 라이벌 겸 원수를 볼 생각에 양손이 다 떨리는 듯했다.
“필립…….”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미간이 꿈틀거렸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 위해 아토스는 달밤의 황궁을 빠르게 움직였다.
* * *
T3T
“……그래서. 이 넷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네, 동맹자여.]
동맹자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언가 꺼림칙한 듯 갈까마귀 암살단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기미를 눈치챈 탑주.
[이 관계가 석연찮은가 보군.]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동맹은 이미 맺었지.”
[후후훗…….]
단장은 탑주에게 쏠린 신경을 돌려 방금 받아든 네 명의 얼굴이 담긴 종이를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어디선가 정보로나 사진으로나 본적이 있을까 해서 뚫어지라 쳐다보았으나 완전한 초면.
“전혀 본 적 없는 얼굴들인데.”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저 넷이 적지만 나의 군사를 부수고 공들여 만든 흑기사들까지 부술 뻔했다.]
“강하군.”
저번 동맹 자리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본 탑주의 군대.
그 해골 병사들은 강했다.
물리적으로는 일반 병사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었으나 제일 큰 장점은 바로 두려움이 없다는 것.
오직 명령만 생각하고 복종하며 움직인다.
이것은 전장에서 커다란 메리트.
“알았다. 이 넷은 우리 암살단이 중점적으로 조사해 보지.”
[고맙군. 동맹자. 아, 그리고 약속한 해골들은 내일 보내주겠다.]
“알았다.”
[그럼.]
탑주가 먼저 수정구의 연결을 끊자 그의 형상이 사라지며 다시 단장만이 방에 남게 되었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찾으셨습니까!”
빠릿빠릿한 암살자가 절도 있게 들어와 단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사진 속 넷을 아주 자세하게 알아 와라.”
“알겠습니다!”
사진을 받아든 암살자는 레이븐 어딘가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