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51화 (151/208)

151 네 가지 경우

요르의 경우.

그녀는 제일 먼저 옷 코너로 움직였다.

“마수왕님이 몇 벌 안 되는 옷을 돌려 입고 빨래하는 모습이 얼마나 슬펐는지……! 크흑……!”

이제부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옷 코너 중에서 제일 앞에 있는 것은 잠옷이었다.

“오오! 엄청 부들거리네?”

요르가 신기한 듯 수면 바지를 주물럭거리고 있자 이때다 싶어 달려온 한 사람.

“이 옷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산 넘고 물 건너 먼 타지에 사는 장인 한 땀 한 땀…….”

“담아 줘!”

직원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아도 이 잠옷이 좋은 물건이란 건 알 것 같다.

자신의 왕에게 감히 안 좋은 것을 드릴 순 없으니 자신이 고른 물건은 전부 상등품이어야 한다.

제일 먼저 수면 바지 세트를 포장 받고 계산은 뒤로 미루었다.

“다음은 뭘 살까?”

백화점이 너무 넓어 이렇게 돌아보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힘차게 걸으며 옷 코너를 둘러보던 와중에 요르는 자신의 직감을 자극하는 곳을 찾아냈다.

“와아…….”

그곳은 정장 코너.

기사의 갑옷처럼 깔끔하게 떨어진 옷 선들과 각 잡힌 주름.

이게 뭐 하는 옷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절제된 멋이란 게 흘러넘쳤다.

“이걸 마수왕님이 입으면…… 추릅…….”

순간 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침을 재빨리 삼킨 요르는 정장 코너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뭐가 좋고 안 좋은지는 잘 모른다.

하여 그녀의 판단 기준은 오로지 멋.

그렇게 눈이 빠져라 코너를 돌아다니고 있으나 원하는 걸 찾기란 요원해 보였다.

“이럴 때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는데…….”

요르는 잠시 골똘히 머리를 굴려보다가 퍼뜩 그자들의 이름을 떠올려냈다.

“직원! 도와줘!”

백화점의 모르는 게 없는 히어로.

직원이 쏜살같이 달려와 요르의 앞에 섰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일 멋있는 정장을 찾고 있어!”

“제일 멋있는 정장이라…….”

직원은 잠깐 눈을 감고 고민하다가 이내 요르가 찾고 있는 정장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이 정장은 어떠십니까?”

살짝 연한 검은색 바탕.

안쪽에는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 넥타이, 그 위에 회색 조끼를 걸쳤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걸 데카드가 입었다고 상상해 보았다.

부르르-

요르의 몸이 절로 떨렸다.

“이걸로 줘!”

“알겠습니다!”

직원이 재빨리 마네킹의 옷을 벗겨 포장을 끝냈다.

“여깄습니다!”

“고마워!”

요르는 그 뒤로도 데카드가 평상시 입으면 좋을 것 같은 옷들을 많이 샀다.

그러다가 이쪽 주변으로 날아오는 짹짹이의 까마귀 분신과 눈이 마주쳤다.

“사고 안 친다니까!”

전혀 못 믿겠다는 듯 까마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천장에서 가만히 요르를 쳐다보았다.

요르는 여기서 혼자 성을 내봤자 사람들의 주목만 더 받을 거란 걸 알았다.

“에이! 마수왕님한테 다 이를 거야!”

[마수왕님이 한 명령이다. 멍청아.]

그렇게 그녀는 씩씩거리며 다음 코너로 움직였다.

* * *

고오른의 경우.

“마수왕님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내가 잘 알지!”

벌써부터 걱정을 태산처럼 쌓게 만드는 고오른의 대사.

그는 데카드와 마수계에서 어울렸던 1000년을 떠올려 보았다.

“일단 마수왕님은 자는 걸 제일 좋아하셨던 것 같고…… 또 먹는 거랑 노는 거.”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그 긴 시간 동안 참 단순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나도 단순하니까!

“그럼 제일 먼저 향해야 할 곳은 정해졌군!”

고오른은 저번에 데카드와 이 백화점에 오면서 봐두었던 코너로 이동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흐음…… 너무 느려.”

결국 자신의 급한 성질대로 움직이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의 계단을 성큼성큼 넘어갔다.

덩치가 산만 한 고오른이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니 위에 있던 사람들은 당황스러움에 벽 쪽으로 바짝 붙었다.

“흥! 흥! 나와라!”

콧김을 숭숭 뿜어내며 고오른이 도착한 곳은 가구 코너.

웬 가구 코너인가 하겠지만, 목적지는 그중에서도 침대 코너다.

“찾았다!”

망망대해를 헤매다가 섬을 발견한 선원들처럼 고오른은 활짝 웃었다.

웬 근육질 남자가 이렇게 웃으니 일반 사람들은 무서워 그의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

“이것이 마수왕께서 매일 위에 눕는 침대라는 거로군.”

여러 종류의 침대가 줄지어 있는 모습에 고오른은 자신의 인생에서 몇 안 되게 심도 깊은 고민을 해보았다.

이쪽 침대가 좋으려나…….

아니야, 이쪽 것이 조금 더 좋아 보이는데…….

“…….”

침대 사이사이를 종횡무진 움직이는 고오른의 모습에 직원은 감히 말을 걸 생각도 못 하고 불안함에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흐음…….”

고오른은 저기서 자신을 쳐다보는 직원이란 존재를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다.

저자에게 물어보면 일이 배로 쉬워질 거란 걸 알고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성이 없다! 정성이!’

자신이 하나하나 살펴보고 검토를 끝내야 비로소 자신의 왕에게 진상할 수 있다.

그렇게 고오른이 침대의 파도를 뚫어낸 지 20분이 지났을 때 드디어 눈에 드는 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다!!”

고오른은 비로소 자신의 조건에 만족하는 침대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조건은 오로지 하나.

바로 크기다.

“엄청 크군!”

이 정도 침대의 크기면 자신이 굴러다녀도 남는다.

“쿼드라플 킹 사이즈……? 어쨌든 크다는 뜻 같다!”

이제 침대를 골랐으니 이곳의 터줏대감을 부를 차례다.

고오른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를 부르기 위해 목을 조금 가다듬었다.

“큼큼.”

그리고 폐 속 깊숙이 공기를 끌어와 성대에 집중.

한 번에 발산시킨다.

“직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오른의 목소리에 짹짹이의 까마귀가 화들짝 놀라 이쪽으로 퍼덕거리며 날아왔다.

“네, 넵!!”

갑자기 호출당한 직원은 헐레벌떡 고오른에게 뛰어오다가 침대를 잘못 밟고 넘어졌다.

그러나 얼른 일어서서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급하게 달려왔다.

“차, 찾으셨습니까?”

“이 침대 포장해서 주시게!”

“아,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보러왔던 까마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다른 마수의 상황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 * *

티이라의 경우.

그녀는 데카드의 선물 사주자고 마수들끼리 얘기가 오갔을 때부터 이미 살 것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원래 생각을 많이 안 하는 그녀의 특성상 이번에도 특출 난 고민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티이라는 확신했다.

자신의 선물이 먹혀들 것이라고!

“이거는 누구나 좋아한다!”

티이라는 일행 중 유일하게 쇼핑 카트를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이게 없다면 양손에 다 들고 가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거운 건 아니었으나 시야도 가리고 무엇보다 불편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이 물건의 존재.

“인간 세상에는 참 신기한 게 많다!”

티이라는 카트의 바퀴 위에 올라타 슝슝 음식 코너를 돌아다녔다.

그렇다.

이번에 티이라가 데카드에게 선물할 것은 바로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은 누구나 좋아한다! 나도 좋아하고! 마수왕님도 좋아한다!”

단순한 이분법이지만 그렇기에 명쾌하고 간단한 해답이었다.

그녀가 고른 음식은 다양했다.

“마수왕님! 다 잘 먹는다! 아마 이것도 잘 먹을 것이다!”

그녀가 고른 음식 중에는 무언가 꾸물거리는 작은 벌레도 있었으나 티이라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면 식용이라고 적혀있었으니까!

티이라의 기준에서 식용이란 단어는 뭐든 먹어도 된다는 뜻이다.

“아아! 이것도 맛있겠다!”

잠시 티이라가 다른 음식을 가지러 카트에서 멀어진 사이 천장에 있던 까마귀가 조용히 그림자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고 아주 은밀하게 식용 벌레가 든 통을 밖으로 빼내었다.

[마수왕님은 벌레 안 드신다.]

통은 버리고 까마귀는 다시 천장으로 올라가 티이라를 지켜보았다.

사실 티이라가 제일 걱정스러웠는데 이 정도면 안심이다.

이제 마지막 마수를 향해 까마귀는 어둠 속으로 몸을 맡겼다.

* * *

레오의 경우.

“…….”

그는 마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뒤에도 몇 분간은 가만히 로비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깊이 있게 고민한 것이다.

자신의 왕이 무엇을 받아야 좋아할지.

“…….”

그 해답을 찾다가 이곳까지 다다랐다.

번쩍번쩍이는 빛이 인상적인 이곳은 백화점 내에 있는 카지노.

왜 이런 곳에 왔냐고 물을 혹자를 위해 말해주겠다.

“…….”

레오가 생각하기에 데카드는 돈이란 것을 좋아한다.

돈을 제외하고도 물질적인 것을 참 좋아하셨다.

그가 데카드와 인간 세상을 여행하면서 알게 된 카지노는 쉽게 돈을 벌고 또 잃을 수도 있는 곳.

“…….”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가.

드넓은 마수계에서도 서쪽의 지배자이자 천둥 사자 레오다.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도박판은 자신에겐 놀이터에 불과하다.

[쟤는 왜 저기로 들어가는 거야.]

카지노로 자신감 있게 들어가는 레오를 멍하니 바라보던 짹짹이는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급히 깨달았다.

빨리 저 사자를 밖으로 끌고 와야 한다.

짹짹이가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해 카지노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조용한 놈이 갑자기 이런 사고를 칠 줄이야.”

누가 선물을 카지노에서 고르나.

설마 레오가 이럴 줄은 몰랐던지라 짹짹이는 다른 마수들은 내팽개치고 레오를 찾기 위해 카지노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간 거야.”

레오 이놈이 자신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마나까지 잠재워버려 육안밖에는 찾을 수단이 없었다.

“그래 봐야 너의 금발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짹짹이는 까마귀를 조심스레 구석에다 풀어 카지노의 전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편 레오는 시끌시끌한 카지노 중앙에서 사람들이 형형 색깔의 동그란 것들로 베팅하는 것을 보았다.

“…….”

저것이 돈이랑 비슷한 건가?

왜 내가 알고 있는 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거지?

레오가 본 것은 카지노의 칩으로 여기선 돈과 같은 개념이다.

“…….”

일단 자신이 알고 있는 돈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저 동그란 것부터 얻어 보기로 했다.

어디 가서 얻을 수 있을까.

원래라면 카운터에서 직원에게 돈을 주면 그 돈만큼 칩으로 바꿔주는 형태지만 그걸 레오가 알 리 만무했다.

“크하하핫! 오늘 대박이구나!”

연신 입으로 대박을 외치는 사내 하나가 레오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술에 꽤나 취한 듯 제대로 중심을 못 잡던 남자는 결국 레오의 어깨를 툭 밀치고 지나갔다.

“…….”

우뚝 멈춰선 레오.

그리고 남자 또한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이! 멋대로 부딪쳐놓고 사과 한마디 없는 거냐?”

“…….”

사실 부딪친 것은 술에 취한 남자 쪽이었으나 레오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다시 칩을 찾기 위해 움직이려던 순간.

남자가 씩씩거리며 다가와 레오의 팔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돌려버렸다.

“사람 말 안 들리나? 사과하라고! 사과!”

돌려진 레오의 몸과 함께 돌아간 그의 시선이 남자가 들고 있는 상자에서 멈췄다.

“…….”

상자 안에 담긴 저 동그란 것들.

드디어 찾았다.

“어엉……?”

남자가 보기에 이 금발의 사내가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일까?

레오의 주먹이 남자의 얼굴을 부수려는 그때.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폭음이 들려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