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50화 (150/208)

150 그림자와 죽음의 만남

“…….”

후드를 쓰고 있는 남자는 말이 없다.

길고 얇은 흑색 도포를 몸에 걸친 남자.

은연중에 풍겨오는 미약한 살기는 그것만으로도 일반인이라면 버티지 못하고 질식할 정도다.

“암살단장을 뵙습니다.”

“암살단장을 뵙습니다. 크큭.”

이번에는 격식이나 예의를 차리는 건지 두 흑마법사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척이라도 했다.

여전히 까마귀 의자 위에 앉은 남자는 말이 없다.

그저 앞에 둘을 안내한 암살자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아, 네! 이 두 명이 단장님에게 꼭 전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하셔…….”

암살자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툭- 투둑-

그의 목이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덧없이 쓰러지는 암살자의 몸뚱어리는 피만 울컥울컥 뿜을 뿐 미동이 없었다.

“크크큭……. 꽤나 인상적이군.”

몇 안 되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미약한 빛이 허공에 있는 와이어를 비추었다.

“조금의 움직이는 기색도 없이 와이어를 이렇게 움직이다니. 과연 암살단장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처음으로 입을 연 남자.

수백을 죽인 암살자치곤 아름다운 미성이다.

후욱-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은 너희라는 듯 그의 주변에서 얇은 와이어가 넘실거렸다.

“우리는 그저 연락책입니다. 탑주의 전갈을 전달하러 온.”

“탑주라는 인물은 들어본 적 없다.”

암살 말고도 정보라는 부류에서 뛰어난 움직임을 보여주는 갈까마귀 암살단이 전혀 들어본 적 없다?

그것은 정보를 수집할 가치도 없는 자이거나.

암살단이나 세상도 그 누구도 모르게 힘을 키운 자이거나 둘 중 하나다.

“아무래도 너희는 후자에 가까워 보이는군.”

“여기 전갈을.”

흑마법사는 품에 담긴 낡은 스크롤을 건넸다.

“그 스크롤을 전갈이라고 어떻게 믿나.”

“크큭……. 저주라도 담겨있을 것 같수? 그런 유치한 짓은 안 하니 걱정 마슈.”

암살단장은 로브 안에서 두 흑마법사를 잠시 노려보더니 와이어로 스크롤을 잡아채 자신의 손으로 가져왔다.

방금까지는 무엇이듯 벨 것같이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던 와이어가 순한 양이 됐다.

무시무시한 컨트롤.

스르륵-

암살단장은 돌돌 말린 스크롤을 천천히 풀어보았다.

“이게 뭐냐.”

스크롤에는 저주가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황당한 것이 적혀 있었다.

단장은 손에 들린 스크롤을 흑마법사들에게로 던졌다.

힘없이 떨어진 스크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동맹 협정서]

“맘에 들지 않으십니까?”

“너 같으면 마음에 들 것 같으냐.”

갑자기 자신들의 성지에 들어온 침입자나 마찬가지인 놈들이 전혀 알려진 적 없는 자의 대리로 동맹 협정서를 내민다.

전혀 이해가 안 되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상황.

“그 탑주란 놈이 누구고 뭐 하는 자인지 난 전혀 알지 못한다.”

“곧 이 세상을 엎고…… 그 위에 군림하실 분이지요…!”

“웃기는 놈이구나.”

후우욱-!!

와이어들이 넘실넘실 파도처럼 움직이며 두 흑마법사의 목덜미로 날아갔다.

금방이라도 흑마법사들의 목이 하늘을 날 것 같을 때.

단단한 흑색 벽이 중간에 막아섰다.

터엉-! 카가가각-

와이어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흑색 벽을 베기 위해 안간힘을 내었다.

“저희 얘기를 들어보시죠. 오늘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내 성지를 멋대로 침범한 주제에 싸우러 온 게 아니다?”

“그건 좀 봐주시오. 워낙 숨어 계신 탓에 찾기가 어려웠소.”

흑마법사의 말을 들은 단장은 갑자기 머리가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 침입자들에 대한 의문점은 한둘이 아니다.

“이곳을 어떻게 찾은 것이냐.”

“그건 영업 비밀이니 알려줄 수 없수. 크큭…… 뭐 우리 쪽과 동맹을 맺는다면 혹시 모르지.”

단장은 천천히 옥좌의 팔걸이 위로 팔을 올렸다.

그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흑마법사들은 긴장하며 언제든 흑마력을 끌어올릴 준비를 했다.

어떠한 움직임 없이 일류 암살자를 죽이고 암살의 신이라고 추앙받는 남자다.

이 정도의 긴장은 전혀 과하지 않다.

“네놈들의 동맹 계획서. 아까 보니 계약 내용도 확실한 게 없더군. 너희가 원할 때 목표 대상을 암살해 줘라? 이걸 동맹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대신 우리가 해주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단장은 후드 속에서 입꼬리를 씨익 하고 올렸다.

“그래. 나중에 세계를 정복하면 어떤 지역의 어느 땅을 주고 관리하게 해줄지 상세하게 적혀있더군. 이 망상증 환자들아.”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단장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방출되는 거대하고 끔찍한 살기.

고오오오-

창문에 쩌저적 금이 가고 안에 있던 가구들이 부서져 갔으며 흑마법사들의 다리가 부들거렸다.

‘엄청난 살기로군.’

‘크큭……! 이 정도면 거의 군단급이잖아?’

거대 군단이 발산할 만한 양의 살기를 혼자서 내뿜고 있다.

가히 괴물이라고 칭할 만하다.

“죽을 준비는 되었길 바란다.”

단장이 손가락을 까딱하며 움직이고 실타래가 풀리듯 수많은 와이어가 흑마법사들을 난도질하려고 할 때.

그들의 품속에 있던 수정구가 검은빛을 뿜었다.

“허, 헉……!”

“엎드려……!”

깜짝 놀란 두 흑마법사는 수정구를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얼른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 모습에 잠깐 와이어를 멈춘 단장은 수정구에서 점점 나타나는 한 인형과 눈을 마주쳤다.

[안녕하신가. 갈까마귀 암살단장.]

“누구냐, 네놈은.”

[나는 탑주. 그 동맹 협정서를 보낸 자지.]

* * *

니다벨리로 가 한창 임무를 수행하던 사이 부원들이 원래 지내던 숙소는 말끔하게 고쳐졌다.

애초에 크게 무너진 것도 아니라 보수는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으으……!! 집이다!”

아스카는 기지개를 쭉 켜며 오랜만에 돌아온 숙소에 힘껏 소리를 질렀다.

고드윈은 도착하자마자 철푸덕 침대 위에 쓰러지고 카론과 벨린다는 짐부터 먼저 풀기 시작했다.

데카드와 엘리스도 집으로 귀환.

“데카드! 편지 왔어요!”

엘리스는 오자마자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우체통을 발견했다.

안에는 붉은 색깔의 편지지가 들어있었는데 그 밖에 보낸 이의 이니셜이 써 있었다.

-T.A-

“누가 보낸 거야?”

“트리스 같은데요?”

편지지에서 편지를 꺼내자마자 그녀의 냄새가 물씬 올라왔다.

곱게 말린 편지를 펼쳐본 데카드.

-선배에게-

선배, 최근에 니다벨리로 임무에 나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선배라면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몸조심하시고 다시 만날 때까지 언제나 건강하세요.

저는 언제나 바쁘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아, 그리고 궁금해 하실까 봐 말해 드리는데 렌달과 그 두 명은 교내 봉사로 한 달을 지새우고 있어요.

여기 사진도 보내드려요.

어쨌든 이 편지를 보시면 답장 부탁해요.

-트리스 아드리안-

그녀가 보내온 사진에는 열심히 양손에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1층부터 99층까지 왕복하는 삼인조가 담겨있었다.

“이런 건 또 언제 찍는 거야.”

자신한테 마법을 날린 것이 좀 괘씸하긴 했으나 이런 벌이라면 살짝 불쌍해진다.

“트리스가 뭐래요?”

“자긴 잘 지내고 있고 보면 답장해 주래.”

“다 건강한 것 같아 다행이네요.”

엘리스는 짐을 풀러 방으로 올라갔고 데카드는 방에 있는 편지지와 깃펜을 찾았다.

“편지 써보는 건 엄청 오랜만인데.”

[으응? 마수왕님! 편지도 쓴다?]

“……뭐야. 그 무시하는 듯한 말은.”

[마수왕님! 저한테도 편지 써주세요!]

요르는 이 편지라는 것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녀가 이런 네모난 종이에 글이란 것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달한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너는 바로 옆에 있는데 굳이 왜 편지를 써.”

[그래도 써주세요!]

“알았어.”

그녀의 성화에 못 이겨 데카드는 결국 요르에게도 편지를 써주기로 약속했다.

30분 동안 작은 편지지를 열심히 채운 데카드는 그것을 봉투에 넣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마도 우체국으로 가야겠네.”

마지아 섬은 그냥 평범한 배달부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 마도 우체국을 이용해야 했다.

“엘리스! 잠깐 나 우체국 갔다 올게!”

“다녀오세요!”

데카드가 짹짹이를 가볍게 걸치며 루비아 시내에 있는 마도 우체국까지 설렁설렁 걸어갔다.

“여긴 언제나 평화롭네.”

이곳 루비아도 암흑시대 때는 절반이 피바다, 나머지 절반은 불 바다였다.

그 시절을 온전히 겪은 세대는 아닌지라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루비아는 굉장히 빠르게 재건을 완료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데카드는 천천히 마도 우체국까지 도착했다.

“마지아 섬의 마탑이라고 쓰면 알아서 가겠지?”

마탑의 우편번호나 도로 번호는 알지 못한다.

받는 이가 트리스 아드리안이라고까지 적었으니 아마 잘 갈 것이다.

자신의 이름까지 적는 것을 끝으로 우편함 안에 넣었다.

그날 하루 쌓인 우체통은 그 다음 날 완벽히 비워진다.

배달부가 그만큼 빠르게 편지를 배달하기 때문이다.

“빨리 가라.”

데카드는 꽤나 길었던 임무 기간 동안 자신을 걱정했을 트리스를 위해 편지가 빨리 갔으면 했다.

편지까지 보내고 이제 다시 집을 향하려고 할 때 마수들이 불쑥 말을 걸어왔다.

[마수왕님! 저희 잠깐 백화점에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백화점? 왜?’

[그, 그냥 살 게 있어서 그렇다!]

[…….]

데카드는 의아했지만, 딱히 안 갈 이유도 없으니 백화점으로 발을 옮기려고 했다.

[아, 아니! 마수왕님은 집에 들어가시고 저희만요!]

‘……너희만?’

[네!]

마수들만 밖에 나가서 뭔가를 한다?

불안하다.

마수들의 사회성은 그냥 없는 수준이라 누가 말을 걸어오면 크게 당황하거나 죽일지도 모른다.

죽이는 건 물론 마수들도 안 된다고 인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사실이다.

[걱정 마세요! 저희 잘 갔다 올게요!]

[뭣 하면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줄래?”

짹짹이가 있다면 안심이다.

웬만한 사고는 그가 다 처리하고 마수들이 엇나가지 않게 잘 관리해 줄 것이다.

데카드는 잠깐 골목 안으로 들어가 마수들을 밖으로 꺼냈다.

코트로 있던 짹짹이도 마찬가지.

“진짜 걱정 마세요! 마수왕님! 사고 같은 거 안친다니까요?”

데카드의 염려가 가득 담긴 눈을 봤는지 요르가 자신의 가슴을 팡팡 쳤다.

“맞다! 우리 애! 아니다!”

“애는 아니지.”

세상에 몇 만 살 먹은 애가 어디 있겠나.

다만 이들의 정신 연령이 그만큼 낮은 것 같아 문제다.

“그럼 갔다 와라.”

“알겠습니다!”

“…….”

마수들이 저 멀리 높게 서 있는 백화점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그걸 바라보는 데카드의 불안한 눈빛.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다.

“에이……. 짹짹이가 잘 해주겠지.”

데카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겨우 집으로 갔다.

* * *

“근데 너희들. 백화점에는 왜 가려는 거냐.”

“당연히 마수왕님의 선물을 위해서지!”

“응응!”

저번에 부원들이 데카드에게 선물을 줄 때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마수들은 그 표정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그걸 위에서 없는 물건이 없다고 알려진 루비아의 만물 백화점에 온 것이다.

“사람! 진짜 많다!”

“그, 그러게.”

매일 데카드의 안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봐 왔지만 역시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달랐다.

마수들은 백화점 로비에서 작전을 짰다.

“그럼 여기서 각자 선물을 사오는 거야!”

“각자 말이냐?”

“그래!”

각자 사오는 거라면 자신이 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진다.

“나는 반대…….”

“그럼 모이자! 나중에!”

반대표를 채 던지기도 전에 마수들은 이미 쏜살같이 어딘가로 움직인 후였다.

“하아…….”

짹짹이의 깊은 한숨과 함께 마수들의 쇼핑은 시작됐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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