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49화 (149/208)

149 후련하다!

“어……. 어?”

갑자기 저돌적으로 나오는 엘리스의 행동에 당황한 건 오히려 데카드였다.

얼빵한 표정으로 대답도 아직 다 끝마치지 못했는데 그녀는 데카드의 손을 잡고 마법부 건물 바깥으로 끌고 가다시피 했다.

“어디 가는 건데?”

“그냥 잠깐 좀 걸어요.”

마법부의 정문을 나와 아사이드의 시내로 나온 둘.

두 남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 가며 차츰 대화할 준비를 갖춰나갔다.

한 명은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거야……! 할 수 있어!’

다른 한 명은 요르를 진정시킬 준비를 했다.

‘만약에 정말 그렇게 된다면……. 마수들, 아니 요르가 엘리스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데…….’

저번에는 요르도 매우 당황해서 그냥 넘어갔다지만 이제는 다르다.

지금도 데카드의 안에서 질투 욕을 활활 불태우는 요르의 뜨끈한 살기가 느껴진다.

“후우…….”

준비가 끝났는지 엘리스는 시끄러운 아사이드에서 비교적 조용한 골목으로 그를 데려왔다.

좁은 골목 안에서 마주 보고 선 둘.

잠시간 괴로운 침묵이 이어지다가 결국 엘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데카드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계속 들어주었다.

“기본적인 사람들의 문화도 잘 모르고 그냥 사람만 죽이면서 살아왔어요.”

피와 시체 썩는 냄새로 점철돼 있던 지난날.

“그때 데카드가 저를 구해 주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엘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흘러넘칠 것 같은 눈물을 삼켜내었다.

그녀의 훌쩍이는 소리에 데카드의 마음까지 심란해지는 듯했다.

[놔 봐!! 내가 저거 지금 죽이러 갈 거니까!!]

[가만있어라! 요르!]

[그래! 지금 중요한 타이밍인 거 모르겠나?]

[…….]

안에서 워낙 시끄러운 탓에 데카드의 고막이 다 따끔 따끔거렸다.

[잠시 저희들의 말이 들리지 않게 해드리죠.]

다행히 짹짹이의 배려로 고막이 파열되는 일은 없어졌다.

그사이 엘리스는 조금 진정이 됐는지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데카드를 만나고 살아왔던 모든 날이 저한테는 꿈만 같았어요. 매일매일 동경하며 살아왔던 삶이 눈앞에 왔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줬다니 고맙네.”

“저에게 이런 꿈만 같은 삶을 준 데카드에게 이런 마음을 품어선 안 될 것 같은데……. 도저히 제 마음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의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귀에까지 들려왔다.

“저……. 데카드를 좋아하나 봐요.”

* * *

“지금쯤 했으려나?”

“고백?”

고드윈의 혼잣말에 아스카가 대답했다.

“응.”

“고백이 아니라 술김에 그랬다고도 할 수 있잖아.”

“아마 아닐걸?”

고드윈은 확신하는 듯 그녀의 말에 살살 고개를 저었다.

거의 확신조로 말하는 그의 자신감에 벨린다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글쎄? 연애 고수의 감이랄까?”

순간 아스카는 못 참고 고드윈의 뺨으로 직행할 뻔한 오른손을 겨우 내려놓았다.

얘는 입만 다물면 참 괜찮은데 그 입을 가만히 못 둔다.

“그럼 언니의 고백이 통할 것 같아? 연. 애. 고. 수. 님?”

“확률은 반반이지.”

아스카는 잠시 그의 말을 생각해 줘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뭐 받아준다 안 받아준다로 나눠서 반반이라는 얘기는 아니지?”

“어? 어떻게 알았냐.”

결국 아스카가 참지 못하고 고드윈을 얼려버리려고 할 때 저 멀리 데카드와 엘리스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멀리서 보이는 둘은 꽤나 정다운 모습이었는데 전에 있던 어색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토, 통한 건가?”

“그럼 이제부터 엘리스를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카론이 잠시 호칭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둘은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우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가. 배고파 죽겠네. 나가서 샌드위치 좀 사가지고 올게.”

“네! 다녀오세요!”

활기차게 대답하는 엘리스를 보면 언뜻 고백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데카드의 표정이나 눈빛은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연인을 보는 듯한 그런 눈이 아니었다.

“언니! 어떻게 된 거야!”

“성공했어?”

데카드가 샌드위치를 사러 나가자마자 아스카가 번개와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조용히 따라붙은 벨린다.

그녀도 내심 궁금했다.

엘리스의 용기가 통했는지.

“사모님이라…… 사모님…….”

계속 사모님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는 카론의 목소리가 이쪽의 침묵을 채웠다.

그에 반응하며 슬며시 올라가는 엘리스의 입꼬리.

“성공했구나!”

그녀의 반응에 아스카는 무조건 성공했다고 짐작했다.

왜냐하면 고백에 실패한 사람이 이렇게 들떠있을 수…….

“차였어! 헤헤.”

“어……?”

벨린다가 멍한 한마디를 내뱉고.

“아니……. 차인 건 아닌가?”

계속 말을 번복하는 엘리스의 어깨를 아스카가 콱 하고 잡았다.

“빨리 제. 대. 로 설명해봐.”

“으, 응.”

오늘따라 아스카의 얼굴이 무섭다.

어쨌든 설명을 위해 엘리스는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며 얘기해 주었다.

“저……. 데카드를 좋아하나 봐요.”

이 말을 들은 데카드의 반응.

사실 그는 엘리스가 저번 만찬장에서 취중 고백을 했을 때부터 쭉 답변을 생각해 왔다.

검을 휘두르면서 잡생각을 떨쳐내고 지금까지 계속 고민해 보았으나 자신의 답은 이것이다.

“미안.”

“아…….”

푸욱 고개를 떨어트린 엘리스.

그녀의 축 처진 어깨에서 드러난 실망감과 좌절이 데카드의 어깨까지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다.

“아직 내 마음에는 누군가 들어올 여유가 없어.”

자신이 생각해도 참 변명 같은 이유들에 그는 차라리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마음 가는 대로 움직였다.

와락-

“흐윽……?!”

좁은 골목이 순간 넓게 보일 만큼 데카드는 엘리스의 작은 몸을 품에 안았다.

곧이어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이 이상 감정이 깊어지면 훗날 너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져.”

“그, 그게 무슨…….”

암흑시대.

머지않은 미래에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그림자의 시대가 온다.

전에는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일랑 존재하지 않았기에 잃을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원들, 마수들, 트리스, 엘리스, 필립.

입이 아플 만큼 나열할 수 있다.

자신은 이 사실이 두렵다.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 사람들이 어둠의 손에 끌려갈까 봐.

“그러니까 지금은 참아 줘.”

“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적어도 데카드와의 사이가 다시 회복되지 않았는가?

이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래서 이게 끝이야?”

“응. 뭐가 더 있어야 해?”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엘리스의 이야기를 다 들은 부원들은 모두 턱에 손을 괴며 고민에 빠졌다.

데카드가 말한 너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은 뭘까?

이건 차인 건가? 아니면 나중에 기회가 또 있다는 걸까?

“다 애매하고 두루뭉술하군.”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카론은 그저 사모님이라고 안 불러도 되는 상황에 감사하기로 했다.

“얘들아! 샌드위치 사왔어!”

“뭐든 어때. 어쨌든 다시 화목해지고 좋네.”

양손 가득 샌드위치 봉투를 들고 해맑게 휴게실 안으로 들어오는 데카드를 보며 고드윈이 중얼거렸다.

“맞아. 다시 평소 같고 좋네.”

“응응.”

고드윈도 벨린다도 카론도.

심지어 당사자인 엘리스도 만족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아스카만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나만 불편한 건가? 그래서 사귀는 거야, 뭐야?”

* * *

“발을 더 빠르게 움직이고 단검은 절대 멈추지 마라.”

네-!!

한 남자의 말에 따라 어린아이들이 크게 대답하며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분명 나이가 많지 않을 텐데도 꽤나 숙련된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은 곧 암살자가 될 이들이다.

“누가 왔습니다.”

“그런 것 같군.”

아이들에게 단검술을 가르치던 남자가 그늘진 공터 입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휘잉-

싸늘한 바람과 함께 등장한 두 명의 로브인.

새까만 색깔의 로브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불길하다.

물론 같은 계열 색깔의 옷을 즐겨 입는 자신들이 할 말은 아니지만.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탑주님의 전갈을 전하러 왔다.”

“탑주……?”

처음 들어보는 이명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를 너희 단장에게 안내해라.”

“너 같은 잔챙이하고는 할 말이 없어.”

갑작스러운 잔챙이 취급에 남자가 비릿하게 웃으며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댔다.

소리 소문 없이 뽑혀 나오는 두 개의 단검.

“죽고 싶나?”

로브인중 한 명이 로브 자락에 감추어진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마법이라도 날아올까 싶었으나 앙상한 팔은 느릿느릿 허공을 휘저었다.

슈우우욱-!

그 손동작에 따라 그림자가 움직이며 한 아이를 순식간에 잡아 로브인의 앞으로 데려왔다.

“어으아…….”

너무 큰 공포에 침만 입에서 뚝뚝 흘리고 있는 남자아이를 한 손으로 잡아 올린 로브인.

잠시 아이의 이곳저곳을 쳐다보던 그는 로브 안에서 눈을 번뜩였다.

“트랜스 스켈레톤.”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로브인의 입에서 영창이 흘러나왔다.

쩌저적-! 쩌적-!

“으으……!! 으아아아아악!!!”

아이의 생살이 산 채로 썩어가기 시작했다.

썩어가는 피부는 하나둘 떨어져 내려 바닥에 철퍼덕 하고 떨어졌고.

힘을 잃은 가죽은 자연스레 벗겨졌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하얀 뼈만 남은 남자아이.

“칼을 들어라.”

달그락- 달그락-

남자아이, 아니 스켈레톤은 들고 있던 단검을 날카롭게 쳐들며 방금까지 같이 단검을 휘둘렀던 동료들을 위협했다.

“꺄아아아!”

“도망쳐!”

자신도 저렇게 될까 그동안의 훈련도 잊어버리고 아이들은 공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렸다.

순식간에 암살자 두 명과 흑마법사 두 명만 남게 된 공터.

그곳에 스켈레톤도 추가.

총 다섯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단장에게 데려다 주지.”

“옳은 판단이다. 갈까마귀의 암살자야.”

결국 남자는 이 일이 자신이 감당할 사이즈가 아니란 것을 알아채고 조용히 발을 뺐다.

갈까마귀 암살단의 성지, 레이븐.

지금까지 그 어떤 세력도 이 성지를 발견해내지 못했고 또 뚫어내지 못했다.

성지에 들어온 외부인에 암살자들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크큭…… 우릴 꽤나 환대해 주는군.”

“우린 할 일만 하고 가는 거다. 입 열지 말고 따라오기만 해라.”

달그락- 달그락-

흑마법사들의 옆을 좋다고 따라가는 스켈레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도 오래 살았다면 이곳에 왔을지도 몰랐는데 말이야. 크큭.”

스켈레톤은 계속 달그락거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길을 안내하던 암살자는 흑마법사들의 악취미에 고개를 저었다.

얼마 안 가 성지 중앙에 있는 단장의 거처에 도착한 셋.

“단장을 뵈러 온 자들이 있다.”

앞에서 경계를 서던 암살자에게 남자가 상황을 설명했다.

“뒤에 있는 두 명인가?”

“그렇다.”

“그럼 스켈레톤은 아니라는 얘기군.”

콰직-!!

경비를 서던 암살자가 살짝 손가락을 움직였을 뿐인데 스켈레톤의 머리뼈가 산산조각이 나 바닥으로 흩어졌다.

스켈레톤은 털썩 쓰러지며 행동을 멈췄다.

“안으로 들어가라.”

두 흑마법사는 생각보다 단장의 거처로 들어가는데 절차가 별로 없다는 것에 놀랐다.

“죽음과 그림자가 낳았다고 전해지는 갈까마귀 암살단장을 뵈러 가는 게 이렇게 쉬울 줄이야.”

남자는 한숨을 푸욱 쉬며 경고 아닌 조언을 했다.

“지금부터는 그 입 함부로 놀리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우우우웅-

대문이 열리고 까마귀 옥좌에 앉은 검은 인형이 드러났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