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강화 성공
“으으……. 불길해……. 매우 불길한 꿈이에요.”
“그래서 이게 예지몽인 거야?”
“저는 불문명한 꿈의 내용을 조금 더 정확히 풀어 드릴 뿐 꿈의 종류를 알 수는 없어요.”
꽤나 김빠지는 소리에 데카드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베리는 점점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은 데카드의 눈치를 몇 번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꿈은 본래 단편적인 것. 데카드 님처럼 한 편의 영화같이 잘 이어진 꿈은 보지 못했어요. 그러니 그 꿈은 아마…… 예지몽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가……. 후우…….”
베리의 의견까지 받아내자 정말 확실해졌다.
자신은 훗날 있을 대전쟁의 파편을 보고야 만 것이다.
“만약 데카드 님의 꿈이 미래로 다가온다면…… 정말 큰일이네요…….”
“큰일 수준이 아니야.”
인간을 비롯한 이종족이 모두 멸종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테고 흑마법사들이 살아남은 약자들을 노예로 부릴 것이다.
오랜 세월 일궈내고 발전한 문명이 며칠 만에 쑥대밭이 되어버린다.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랐던 제2의 암흑시대.
데카드의 꿈대로라면 그것은 멀지 않았다.
“암흑시대라…….”
데카드는 옛날 그 참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가 애써 지워버렸다.
“이 꿈의 내용은 준비가 확실히 될 때까지 절대로 발설하지 마.”
“네, 넵! 물론이죠!”
베리는 오른쪽 손을 날렵하게 세우고 이마에 갖다대며 충성 표시를 했다.
볼수록 웃긴 환술사에 데카드는 피식 하며 웃고 방을 나왔다.
[흑마법사건 뭐건! 저희가 다 때려눕히겠습니다!]
[맞아요! 마수왕님이 원래 힘만 되찾으면 그딴 것들 전부 쓸어버릴 수 있어요!]
[맞다! 맞다!]
[…….]
“나의 원래 힘…….”
9서클의 힘으로 모든 지배자 마수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내고 또 사용하며 싸웠던 마수계에서의 데카드.
이 다섯 마리의 지배자 마수들을 본래의 모습으로 인간계에 현신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이 보았던 미래는 절대 오지 않는다.
데카드는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젠킨스의 방까지 올라갔다.
“으응? 생각보다 빨리 왔군. 그래서 답은 얻었나?”
“서클을 올려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답을 찾았군. 이 층으로 가서 내 이름을 대게. 그러면 들여보내 줄 거야.”
젠킨스는 씨익 웃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층의 숫자와 제품 번호 같은 것이 써 있었다.
“이건….”
“꽤나 유용한 것이니 자네 마음대로 써도 좋지만, 몸에 무리는 그대로 가네. 그러니 너무 남용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데카드는 이 번호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에 알아챘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르게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마법부의 마법사들이 서클을 편하게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소였다.
이곳에는 안정화 마법진이 치밀하게 짜여있고 원한다면 선배 마법사의 도움까지 합쳐서 비교적 안전하게 서클을 올릴 수 있다.
데카드도 이제 5서클에서 6서클로 진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 구간부터는 맨몸으로 버틸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어서 오십쇼. 예약하셨습니까?”
마법진을 관리하는 마법사가 친절히 데카드를 맞아주었다.
“여기로 안내해 주십쇼.”
쪽지를 내밀고 그것에 적힌 글씨에 필체, 번호를 확인한 마법사의 표정이 굳어갔다.
“이, 이쪽으로 따라오십쇼.”
마법사를 따라가면서 옆을 둘러보자 푸르른 마법진들이 자신의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데카드가 안내받은 곳은 이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곳입니다.”
“……넓군요.”
방 안에 또 다른 방.
사람 수십 명이 들어가도 남을 것 같이 커다란 이 방은 매우 인상적인 바닥을 갖고 있었다.
“설마 이것이 다…….”
“예. 단 한 명을 위한 마법진이지요.”
커다란 방바닥을 가득 메꾼 마법진.
이 커다란 마법진은 작은 마법진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마법진의 정교한 문양에서 그동안 담당 룬 마법사들이 흘렸을 땀과 눈물이 전해졌다.
“작동 방법은 알고 계십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자신의 시대에도 이런 비슷한 게 있었기에 작동 방법이 바뀌지 않았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서클을 올린다는 건 한계의 벽을 허물게 해줌과 동시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
잘못 마나를 움직였다간 그대로 심장이 터져버린다.
그걸 이 마법진이 막아주길 바랄 뿐이다.
“잘 부탁한다.”
마법진을 손으로 한 번 툭툭 건드리고 데카드는 중앙으로 걸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양손은 편안히 양 무릎 위에.
허리와 목은 곧게 핀다.
데카드의 안에 있던 마수들은 서클을 올리는 것에 방해되지 않게 밖으로 나가 있었다.
“이건 언제 봐도 떨린다……!”
“마수왕님을 믿어야지.”
“이럴 때마다 무력감이 느껴지는군. 마수왕님은 저렇게 열심이신데, 나는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
마수들은 마법진 밖에 서서 기감을 이용해 데카드의 마나 운용을 살펴보았다.
그의 마나가 몸의 파괴를 위해 곳곳으로 돌고 있었고 곧 자리를 잡았다.
눈앞에 있는 게 무엇이든 때려 부술 준비가 끝난 마나.
“후우…….”
데카드는 시작하기 전에 심호흡으로 감정과 잡생각을 다스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나와 자신.
이 둘뿐이어야 한다.
‘시작하자.’
쿠구구구구궁-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데카드의 고막을 웅웅 하고 울려댔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빛을 내뿜는 거대 마법진.
“크으윽…….”
데카드가 고통에 이를 악물고 있을 때 다행히 마법진이 제때 효과를 발휘해 주었다.
온화한 마법진의 마나가 데카드의 안으로 들어오고 일종의 마취제를 놓아주었다.
이 마취 효과가 몸에서 돌 동안 그는 서클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게 된다.
“…….”
훨씬 편안해진 데카드의 표정.
아프지 않으니까 더욱더 서클 올리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건 확실한 사실.
‘고통만 없을 뿐 내 몸은 지금 엉망진창.’
마나의 파괴로 인해 원래라면 고통에 앓아누워야 하지만 마법진의 마취 효과는 대단했다.
‘이래서 몸의 무리는 간다고 했던 건가.’
순간 이 마법진을 이용해 단숨에 9서클까지 뚫어버릴 거라는 상상도 해보았으나 어쩔 수 없이 기각.
이 마법진은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뿐 몸 상태는 과거에 서클을 올렸을 때와 똑같다.
‘마법진의 불이 꺼지는 순간이 무서워지네.’
그때는 밀려있던 고통이 한 번에 들이닥쳐서 손가락 하나 까딱 움직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몸의 파괴가 끝이 났다.
드디어 심장에 마나가 도달하고 도달한 마나는 원을 이루어낸다.
스르르르-
심장에 감기기 시작하는 여섯 번째 고리.
데카드가 6서클에 올랐다는 증거다.
“후우…….”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하는 몸.
데카드는 고통 속에 쌓여있던 깊은숨을 밖으로 빼내었다.
마법진의 불도 차츰 약해지기 시작하고 점점 밀려오기 시작하는 고통.
“으으으…….”
그대로 드러누워 고통을 조금이라도 분산시킨다.
“마수왕님!”
“성공하신 겁니까?”
“보면 모르냐! 멍청아! 헤헷! 마수왕님! 저 왔어요!”
“…….”
걱정스러움에 손톱이 닳을 만큼 깨물다가 마침내 데카드의 마나가 잠잠해지자 헐레벌떡 그에게 달려갔다.
데카드도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마수들을 반기고 싶었으나 고통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오오오! 몸이 엄청 강해졌다!”
“점점 본신에 가까워져요!”
“드디어 우리도 본체로 현신해서 인간계 공기 좀 마셔보는 건가?”
“…….”
마수들이 전보다 훨씬 강해진 힘에 좋아하고 있을 때 짹짹이가 그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주인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버틸 만해.”
짹짹이의 도움으로 겨우 일어난 그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보았다.
고통에는 나름 익숙한지라 이 마법진의 고통도 차츰 익숙해졌다.
“이제 애들한테 가자.”
* * *
이곳은 마법부의 휴게실.
마법부의 직원들이 오면 커피를 마시거나 밀린 점심을 먹기도 하는 곳이다.
지금 이곳에 다섯 명의 퇴마부원들이 한 줄로 의자에 앉아있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이곳에서 산 커피가 쥐어져 있다.
쪼로록-
커피를 빨대로 마시는 소리 말고는 이 다섯 명에게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
카론과 벨린다, 엘리스야 원체 말이 잘 없어 그러려니 하지만 아스카와 고드윈까지 말을 안 하는 건 조금 이상했다.
“그래서 언니.”
침묵을 깨고 아스카가 입을 열었다.
“아까 했던 말이 정말이야?”
“응…….”
엘리스는 데카드가 없는 이때 모두에게 조언을 구해 보고자 마음을 터놓고 만찬장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부원들은 단체로 얼어붙었고 지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그래서 부장님이 뭐래?”
“내, 내가 계속 피하고 있어.”
“그래서 아까 우리한테 가려 달라 한 거구나?”
엘리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아스카는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거칠게 쓸어내렸다.
“나는 잘 모르겠네. 딱히 남자랑 연애 같은 걸 안 해봐서.”
“슬프지만 나도.”
아스카와 벨린다 모두 각자의 목적을 쫓느라 이성과의 연애는 해볼 틈이 없었다.
그때 세 여자 사이를 뚫고 고드윈이 불쑥 들어왔다.
“이런, 이런.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나 같은 연애 고수의 조언이 필요하겠군.”
“네가?”
아스카가 피식 웃으며 낄 때 끼라는 듯 그를 밀어내려고 할 때 고드윈은 자신 있게 웃었다.
“내가 백염을 발현하기 전까지는 엄청 놀러 다녔거든? 그때 만난 여자도 많다고. 너희의 조언보단 내가 낫지 않겠어?”
“이, 이런……! 고드윈이 여자를 만나봤다니……!”
아스카는 충격에 들고 있던 커피를 쏟을 뻔하고 벨린다는 조용히 엘리스의 옆자리를 비켜주었다.
“고마워, 벨린다.”
그 자리에 스윽 들어온 고드윈은 빠르게 상황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네 말을 조합해 보면. 술김에 부장님한테 고백을 한 거네?”
“마, 맞아.”
“그리고 아직 대답을 못들은 상황에다가 네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고.”
“응…….”
고드윈은 눈을 감고 조금 고민하다가 곧 답을 내놓았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
“뭐, 뭔데?”
손가락을 하나씩 펴가며 고드윈이 설명에 들어갔다.
“첫 번째. 어제 만찬장에서의 일은 다 내가 술 때문에 헛소리를 한 것이었다고 둘러댄다. 그러면 다시 부장님과는 어색하지 않게 옛날처럼 지낼 수 있을 거야.”
“두 번째 방법은?”
“두 번째. 부장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거지.”
조용히 옆에서 고드윈의 답을 듣고 있던 아스카가 왁왁 소리쳤다.
“야!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럼 왜 안 했는데?”
“그, 그거야 너무 간단하니까……?”
고드윈은 뭘 모른다는 듯 검지를 아스카 앞에서 좌우로 흔들어댔다.
“진심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아. 아스카의 말대로 엘리스, 지금 네가 놓인 상황은 간단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엘리스는 생각의 정리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고드윈. 덕분에 머리가 깔끔해졌어.”
“나중에 밥이나 한번 사줘.”
“어? 저기 부장님 온다.”
멀리서 이쪽 휴게실로 오는 데카드가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엘리스는 그가 휴게실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나가 데카드를 맞이했다.
“데카드. 잠깐 저 좀 봐요.”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