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꿈 풀이
성채 앞에 모인 부원들은 전부 짐을 챙기고 떠날 준비가 완료돼 있었다.
데카드는 부원 사이에 몸을 숨긴 엘리스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녀도 시선을 느꼈는지 더욱 아스카와 벨린다 뒤에 숨어들었다.
“응? 왜 그래 언니?”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이대로 있어줘.”
“흐음…….”
데카드는 잠깐 숨을 짧게 내쉬며 부원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돌아가 볼까?”
“네!”
“여긴 너무 춥습니다.”
설산보다야 따뜻했지만, 살을 에는 추위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아스카는 그 말에 백번 공감하며 고드윈 옆에 붙었다.
“야. 백염 좀 꺼내봐.”
“……내 백염이 네 난로용으로 있는 게 아니거든?”
“쳇. 쪼잔하구만.”
부원들은 또 티격태격하며 가깝게 모여들었고 서로의 손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데카드가 스크롤을 찢자 텔레포트가 발동되었다.
텔레포트는 키른으로 이어져 있었고 부원들은 거기서 텔레포트 기계를 이용해 한 번 더 이동했다.
“으음! 역시 아사이드가 좋다니까요?”
“그냥 이곳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 없게 말할 거야? 카론?”
부원들의 고향과도 같은 아사이드.
이곳으로 온 이유는 생포한 두 고들링을 마법부에 넘기기 위해서다.
원래 흑마법사 생포는 잘 있지 않은 일이라 이번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뽑아내야 할 것이다.
“무슨 용무이십니까?”
옆에 트리스가 없으니 마법부의 정문 앞에서 경계를 서던 마법사가 그를 멈추게 했다.
“업무 보고하러 왔습니다.”
“신분을 밝혀주십쇼.”
자신의 신분은 퇴마부장.
마법부의 여러 부서 중 부장이라는 높은 직책을 맡고 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 부서이기 때문이다.
“…….”
데카드가 뭐라고 둘러댈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이쪽으로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뛰어온 누군가는 어딘가 낯이 좀 익었는데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다.
“죄, 죄송합니다! 신분은 확인되었으니 어서 들어가십쇼!”
오자마자 사과부터 시작한 또 다른 마법사는 허리를 90도로 숙이곤 길을 비켜주었다.
당연히 데카드의 출입을 막은 마법사는 어안이 벙벙.
멍한 얼굴로 데카드 일행이 마법부로 들어가는 것을 봐야만 했다.
“저, 저 사람들이 누구길래 이렇게 막 들여보내 주는 겁니까?”
원래 마법부는 그 소속 마법사라도 건물 안에 들어가는 절차가 까다롭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위치가 아니라면 이렇게 마법부의 입구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 인생 종 칠 뻔한 거 내가 막아준 거니까 조용히 해. 너 없을 때 저분은 트리스 총장님이랑 마법부를 들락날락거렸어. 그러면 당연히 신분 확인이 된 거 아니야?”
“그, 그렇네요. 후우…….”
정말 실수할 뻔했다.
그 무섭다는 철혈의 트리스와 가까운 사이라니.
마법사가 졸인 가슴을 추스르고 있는 동안 일행은 마법부의 장관실로 올라갔다.
장관실로 올라가려면 층 버튼을 누르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비밀번호 아세요?”
당연히 원래라면 모르는 게 정상이나 데카드라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었다.
“저번에 트리스가 누르던 걸 본적이 있어. 내 기억이 맞다면……. 이제 올라갈 거야.”
다섯 자리 수의 비밀번호를 차례대로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 올라간다!”
“장관님도 오랜만에 보는군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여전히 일에 치여 사는 젠킨스가 보였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신의 친구들이나 젠킨스나 항상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해 보였다.
“오래간만이구먼. 퇴마부장.”
이미 그와 퇴마부원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마나로 알아챈 젠킨스는 굳이 고개를 들어 확인하지 않고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장관님.”
“뒷방 늙은이한테 장관은 무슨. 그냥 젠킨스라고 부르게.”
젠킨스는 잠시 문서 작업을 멈추고 찻장 위에 올려진 컵을 정리하며 숨을 돌렸다.
“커피는 다 떨어져서 차밖에 없군.”
의도치 않게 7인분의 차를 타게 된 젠킨스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책상 위에 올려주었다.
“마시게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부원들은 향긋한 차향에 한 번 놀라고 그 뛰어난 맛에 두 번 놀랐다.
데카드는 원래 한 번 마셔본 적이 있어서 맛을 편안하게 즐겼다.
“소식은 켈른에게서 들었네. 두 흑마법사를 생포했다지?”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 안에 들어있죠.”
데카드는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젠킨스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흡족한 얼굴로 주머니를 바라본 젠킨스.
역시 집행관의 전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흰머리가 형형한 중년이 너무 뚫어지라 바라보자 이쪽이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자네가 마법부에 온 이후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서 말이네.”
“다행이네요.”
이것도 자신에 대한 칭찬이니 데카드는 좋게 좋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젠킨스에게는 이것 말고도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그리고 ‘따로’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따로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한 데카드.
“크흠……. 우린 나가 있는 게 좋겠군.”
“동감이다.”
눈치 좋은 카론과 벨린다가 나머지 부원들을 일으키고 엘리베이터로 몰아넣었다.
“왜, 왜? 왜 나가 있어야 하는데?”
“나중에 말해 주겠다.”
그렇게 부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젠킨스는 씨익 웃었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얘기인가? 팀원들을 물리면서?”
“비밀스러운 건 아니지만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은 얘기도 아닙니다.”
데카드는 아까 오전에 자신이 꾼 꿈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나날.
그러다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하늘.
사방에서 몰려드는 수만 마리 해골 군대.
그것을 조종하는 칠흑 색깔의 로브인.
로브인에게서 느껴지던 끔찍한 흑마력.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동료, 나아가 평범한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꿈.
“흐음…… 단순한 악몽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현실 같고 또…….”
“두려웠나?”
데카드는 입을 꾸욱 다물고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우리 마수왕님은 없다! 무서운 거!]
[그래! 늙은이! 우리 마수왕님이 어떤 존재신데!]
[…….]
[저 노인이 마수왕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분명합니다!]
[다들 조용히 해라.]
짹짹이가 마수들을 조용히 시켜 데카드가 생각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수들이 조용해지고 데카드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젠킨스는 느긋하고 인내심 있게 그를 기다려 주었다.
“예. 꿈속의 놈에게 공포를 느꼈습니다. 처음으로 이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했네. 내면의 공포를 인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훌륭해.”
“아닙니다. 하아…….”
“그래서 그 꿈이 현실이 될까 봐 걱정하는 건가?”
데카드는 다시 한번 망설이다가 옛날 문헌에서 보았던 전설을 얘기했다.
“기록을 보면 마나를 오랫동안 다룬 마법사에게 아주 적은 확률로 마나가 미래를 꿈의 형태로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예지몽이로군.”
“맞습니다.”
그 전설이 맞다는 확신은 없고 그냥 더러운 악몽일지도 모르나 데카드는 마나를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뤄왔다.
마나를 정말 오랫동안 다뤄왔기에 완전히 이 전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자네의 꿈대로라면 우린 그 검은 로브인에게 몰살당하는 건가?”
“아마 그럴 겁니다.”
“좋은 미래는 아니구먼.”
젠킨스는 입으론 그렇게 말했지만, 행동은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 추욱 늘어져 천하태평이었다.
정녕 이런 자가 세계 마법의 정점이라 불리는 마법부 장관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걱정이 별로 없으신가 봅니다.”
“아니? 지금 나는 걱정이 태산이라네. 어떻게 해야 그 로브인을 막을지 구상 중이야.”
다리는 꼬고 등받이에 완전히 몸을 맡긴 게 전혀 그런 자세가 아니지만, 이 사람 또한 인류의 희망 중 하나다.
“일단 꿈 풀이를 받아보는 게 어떤가?”
“꿈 풀이……요?”
“그래. 여기 마법부 건물 안에 환술사가 있는데 그 사람이 꿈 풀이도 참 기가 막히게 해.”
데카드는 딱히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그 환술사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어딨습니까? 그 사람.”
* * *
데카드는 젠킨스가 일러준 층으로 내려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그러자 안에서 들리는 시크하고 도도한 여성의 목소리.
안에서 들린 말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처음 보는 데카드의 얼굴에 환술사의 표정에서 경계가 드러났다.
“누구야 당신?”
“데카드 아르마다. 장관님이 당신의 꿈 풀이가 기가 막히다고 해서 왔어.”
“하아…… 그 영감탱이.”
환술사는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한 번 부여잡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장관의 말을 듣고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 환술사는 자리를 안내했다.
“거기 아무 데나 앉아.”
“그러지.”
책상에서 도구를 가져오려던 환술사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근데. 너 왜 나한테 반말이냐?”
“네가 먼저 반말 썼잖아.”
“…….”
환술사는 뒤돈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피식 웃었다.
“내가 장관님의 손님이라고 함부로 못 대할 거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환술사의 눈이 초록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일렁이는 주변 공간.
잠깐 눈을 감았다 뜨자 자신의 몸을 검은 뱀이 휘감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환술……인가.”
몸을 죄여오는 감각이나 소리를 비롯한 모든 오감이 제어 당하는 것이 꽤나 뛰어난 환술사 같다.
이 정도 실력이면 꿈 풀이도 믿어볼 만하다.
“장난은 여기까지.”
데카드는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딱-
그 소리는 각성을 유도하는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환술사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이것이 가장 확실하고 또 어려우면서 실전에서 활용하기 까다롭다.
“크헉……!”
환술이 대상에게 강제적으로 깨진 환술사는 큰 내상.
운이 안 좋으면 폐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물론 이번 환술은 저 환술사도 위협 삼아 펼친 것이기에 깨져도 큰 위해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 어떻게…… 내 환술을……?”
“지금 나는 기분이 안 좋거든?”
후욱-!! 쩌저적-
마수들이 내뿜고 있던 살기를 단숨에 방출하자 유리창이 깨져나가고 벽면에 금이 갔다.
“그러니까 이런 장난은 또 안 쳤으면 좋겠군. 다음번엔 죽인다.”
환술이 깨짐으로써 오는 반발보다 방금 그 살기의 영향이 더욱 몸에 무리를 주었다.
환술사는 다리를 비틀거리고 입에서 흘러나온 피를 닦으며 데카드의 반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 제 이름은 베리라고 합니다. 나대서 죄송했습니다…….”
갑자기 저자세로 들어가는 환술사 베리의 행동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괜찮으니 꿈 풀이나 부탁해.”
“네, 넵.”
데카드는 베리에게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해 젠킨스에게 한 것과 똑같이 설명해 나갔다.
그의 꿈을 들을수록 베리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살짝 입꼬리를 올리기도, 살짝 애매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슬픈 듯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너의 생각은 이게 예지몽 같아?”
“자, 잠시만요. 흐윽…… 너무 슬픈 꿈이라…….”
생각보다 마음이 여린지 베리는 데카드의 꿈에 쉽게 공감해 줬다.
베리는 눈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그가 말한 꿈의 결과를 종합해 보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