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고들링의 비전
[놓쳐버렸습니다.]
[쳇! 쥐 같은 놈이다!]
짹짹이가 서쪽 전역으로 까마귀들을 풀어보았으나 고들링 흑마법사의 흔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미 어떤 모종의 경로를 통해 니다벨리를 빠져나간 것이 틀림없다.
“흐음…….”
데카드는 바닥에 묻은 가스 가루를 스윽 손으로 쓸어보았다.
이 하늘색 가루들은 아주 잠깐 코를 스쳤는데도 정신이 핑 돌아갈 만큼 아주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색깔의 가루들도 마찬가지.
“방독면을 주문한 건 잘한 일이었네.”
아무리 바람 마법을 빨리 사용한다 해도 한 번은 반드시 이 가스를 마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순간?
전투는 패배하고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데카드가 지붕에서 내려오자 갑자기 시내에서 일어난 소란에 놀라 급하게 달려온 경비병들이 모여 있었다.
“무, 무슨 일이오!”
“이 건물 지붕에 그 흑마법사가 있길래 잡으려 했지만, 놈이 워낙 재빠르더군요.”
“어디로 도망쳤는지는 봤소?!”
“서쪽입니다.”
마수들의 감지를 마지막으로 벗어난 곳이 서쪽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드워프 경비병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서쪽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이미 도망쳤을 텐데…….”
데카드가 이 말을 해주려고 했을 때 드워프들은 이미 뒤통수만 보일 정도로 멀어진 지 오래였다.
“놈들은 한 번에 많은 수의 드워프들을 납치해 갔는데……. 왜 한 놈밖에 안 보이지?”
[까마귀들을 다시 한번 풀어볼까요?]
“이번에는 니다벨리 전체를 대상으로.”
다시 한번 까마귀들이 하늘로 비상했다.
방심하고 아까 그놈처럼 지붕 위에 퍼질러 있다면 짹짹이가 무조건 발견해 낼 것이다.
“부장님 오셨어요?”
“어.”
데카드가 들어오자마자 카론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그 고들링과 만나셨군요.”
“어떻게 알았어?”
“연금술 가루의 냄새가 납니다.”
카론은 실험으로 탄생한 마법사.
흑마법사들은 연금술까지 기용하며 카론을 괴롭혔기에 그는 이런 냄새에 예민했다.
카론이 맡기에도 아주 독한 성질의 가루.
“혹시 잡으셨나요?”
고드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데카드의 대답은 부정.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드러운 흔들의자에 몸을 맡겼다.
의자는 다행히 인간 맞춤이라 불편한 점은 없었다.
“부장님마저 놓쳤다니…….”
“놈이 쓰는 가스들은 엄청나게 독하다. 부장님 정도 되니까 대응하신 거다.”
카론은 데카드에게서 나는 가스의 잔향에도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저 잔향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농도 짙은 가스를 전면으로 받았을 텐데도 데카드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었다.
자신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양 주먹을 꽈악 쥐며 카론은 다시 한번 전의를 불태웠다.
깡-! 카앙-!
잠깐 흔들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이 성채 밑에서 강철의 파열음이 계속 들려왔다.
대장간에서 나는 소리인가 했지만, 이것은 냉병기끼리 서로 부딪치는 소리다.
“이건 무슨 소리야?”
“아까 벨린다가 드워프 기사들과 싸워보고 싶다며 친선 결투를 신청했거든요.”
“그래?”
데카드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 아래로 보이는 연무장을 눈에 담았다.
그곳에서는 활짝 웃으며 드워프 기사의 창대를 반으로 쪼개버리고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벨린다가 있었다.
짝짝짝-
벨린다가 기사를 한 번씩 쓰러뜨릴 때마다 주변에 몰려온 구경꾼들은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누굽니까.”
“나, 코일이 상대해 주지!”
기사들은 이제부터 자존심 싸움이라는 듯 창대를 부서져라 잡았다.
“원래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 법이지.”
데카드는 벨린다의 실력도 한 번 보고 시간도 때울 겸 연무장으로 내려갔다.
밑에는 이미 모여서 구경 중인 엘리스와 아스카가 있었다.
“재밌어 보이네?”
“아! 데카드! 어디 갔다 오는…… 윽…….”
감각이 예민한 엘리스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려다가 그에게서 나는 연금술 약품 냄새에 코를 싸쥐었다.
“그렇게 심해?”
“……설마 그 흑마법사와 싸우고 오신 거예요?”
“비록 놓쳤지만 말이야.”
데카드는 옷을 탁탁 털며 드워프 사이에 끼어 관전에 들어갔다.
드워프들의 키가 그의 키 절반밖에 오지 않아 굳이 앞으로 가지 않더라도 잘 보였다.
챙-! 챙-!
칼과 창이 서로의 예기를 더욱 드높이며 상대를 찌르기 위해 열중한다.
원래 창과 검은 길이 차이가 심해 창이 훨씬 유리한 싸움.
그러나 벨린다는 팔과 다리의 길이가 압도적으로 긴 것을 이용해 그 단점을 메꾸어나갔다.
“이게 대체 무슨 검술이란 말이오!”
드워프 기사는 자신의 방어를 뚫고 수염 몇 가닥을 잘라간 검날에 뒷걸음질 쳤다.
“공격은 전부 막히고……. 아니, 이건 막히는 것도 아니오.”
공격을 막는 게 아니라 흘려버린다.
상대가 막기라도 한다면 힘과 힘의 충돌로 서로 반반 싸움이 가능하다.
그러나 흘려버린다면?
공격한 쪽의 체력만 빠지는 것이다.
“어때, 레오?”
[…….]
레오는 데카드의 말에 대답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벨린다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잘못된 점은 꼼꼼히 체크.
하지만 이 점들은 전부 굳이 따졌을 때 나온 것들이다.
그냥 보자면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검술을 숙련의 단계까지 빠르게 끌어올렸다.
커다란 동작들은 이제 건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이 성장했다.
“근데 벨린다는 지치지도 않나? 지금만 해도 벌써 네 명째인데 땀도 안 흘렸네.”
“그게 레오의 검술의 무서운 점이지.”
상대의 힘을 이용하기에 자신은 절대 지치지 않는다.
체력 싸움에서 무조건 이득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검술 구조.
“열 명이 넘어가도 벨린다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네요.”
“정신도 육체도 한 단계 나아간 거지.”
처음 유물을 같이 찾으러 나갈 때는 흑마법사의 공격 한 방에 떨어져 나가는 풋내기 집행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산전수전을 다 겪어오며 훌륭하게 성장한 한 명의 마검사.
자신의 등을 맡겨도 될 정도로 믿음직했다.
“심지어 벨린다는 지금 오직 검술로만 상대하고 있다고.”
“엇? 정말이네요?”
워낙 잘 싸우고 있다 보니 그녀의 장기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원래라면 벼락을 두른 검날이 드워프 기사의 수염을 바싹 태우고도 남았다.
“으억!”
결국 벨린다의 속공을 받아내지 못한 네 번째 기사는 연무장 바닥으로 쿵하고 넘어졌다.
그 모습을 성채 최상층에서 보고 있던 켈른.
그는 벨린다의 검술에 눈을 빼앗겼다.
“여자의 몸으로 대단하군.”
자신의 유능한 기사들을 벌써 넷이나 때려눕혔는데 검에는 아직 힘이 남아있었다.
태생이 드워프인지라 검에 계속 눈동자가 가는 켈른.
꽤나 좋아 보이는 마력검이지만 자신의 눈에는 많이 부족했다.
“검이 검사의 실력을 따라가지 못하면 쓰나.”
켈른은 그대로 바깥에 있는 기사 한 명을 불렀다.
“여봐라.”
“넵! 켈른님!”
“대장간에 인간이 쓸 검 하나만 괜찮게 만들어두라고 얘기해라.”
“알겠습니다!”
기사는 그렇게 대장간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한편 여기 기사처럼 두 발로 달리고 있진 않지만 두 날개로 열심히 하늘을 비행 중인 까마귀가 있었다.
이 까마귀는 짹짹이의 분신.
지금은 주인의 명령대로 고들링 흑마법사의 체취나 흔적을 찾고 있다.
벌써 몇 시간째 찾고 있는데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까악-?
그렇게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던 체취가 드디어 코에 잡혔다.
까마귀는 그대로 급강하해 그 체취에 정체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곧바로 짹짹이에게 전송.
[주인님. 고들링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걸 흔적…… 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요.]
‘뭔데 그래?’
[고들링이 펼쳐놓고 간 덫을 발견했습니다.]
‘덫?’
짹짹이는 긴말 하지 않고 데카드의 한쪽 눈을 까마귀와 공유시켰다.
까마귀는 난간에 앉아 골목 바닥에 설치된 함정을 보고 있었다.
데카드는 단번에 함정의 원리를 파악하고 입 꼬리를 올렸다.
‘머리 좀 썼는데? 이래서 납치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군.’
[까마귀로 함정을 밟아보겠습니다.]
까마귀가 난간에서 함정이 있는 바닥으로 내려앉자 위에 숨겨져 있던 수면탄이 곧바로 떨어졌다.
펑-
푸른 가스가 골목에 퍼지고 까마귀는 풀썩 쓰러졌다.
곧이어 쓰러진 까마귀를 감싸 안는 포대 자루.
‘이러면 발동된 함정에 가서 드워프를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 방식인가.’
고들링은 자기네들 친척들처럼 전부 멍청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머리를 굴렸을 줄은 몰랐다.
‘까마귀들은 계속 풀어놓자. 왠지 이놈들 또 올 것 같거든.’
* * *
“젠장! 젠장!!”
“응? 너 왜 이렇게 일찍 왔냐.”
카키는 로브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모닥불을 거칠게 걷어찼다.
불똥이 화르륵 공중에서 타올랐다가 사라지고 다른 진회색 로브의 고들링, 휴고는 노란 눈을 치켜떴다.
“들켰냐?”
“마법부에서 인간 마법사가 새로 파견 왔어.”
“죽이면 되지.”
속 편한 소리만 하는 휴고의 뺨을 순간 날리고 싶어진 카키였지만 여기선 먼저 설명이 필요했다.
“나도 죽이려고 했지. 그런데 말이야? 그놈, 말도 안 되게 강해.”
“그 정도야? 가스들은?”
“가스를 써서 겨우 도망쳐온 거야.”
휴고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지며 어조가 낮아졌다.
“설마 꼬리를 달고 온 건 아니겠지?”
“내가 너냐?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까 괜찮아.”
“함정은 회수했어?”
“그럴 겨를이 어딨냐. 살기 바빴지.”
카키는 가죽 침대 위에 털썩 누워 오늘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풀었다.
그런 카키를 보면서 휴고는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었다.
“하아…… 아직 우리 목표량 못 채운 거 알지?”
“…….”
목표량이라는 말에 뒤돌아 누운 카키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분에게 받은 목표량.
이걸 채우지 못하면 자신들의 목숨으로 나머지를 채우게 될지도 몰랐다.
“무조건 이틀 내로 채워야 해.”
“……나도 알아!”
카키는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나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장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장비의 정체들은 간이 연금술 도구들.
“뭐하게?”
“뭐하긴. 가스 만들지.”
카키가 만들고 있는 가스를 본 휴고가 땀을 삐칠 흘리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야. 이것까지 쓸 정도야?”
“딱 한 번. 놈은 그 한 호흡조차 허용하지 않을 거야.”
지금 카키가 만들고 있는 가스는 고들링의 연금술 중에서도 비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카키는 이것이 없다면 자신들은 무조건 그 마법사에게 당한다고 확신했다.
“넌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걸? 이게 네 목숨을 살릴 거니까.”
“그렇게 위험한 놈이라고?”
“만날 일 없는 게 좋을 거다.”
카키가 비전 독가스를 제조 중일 때 휴고의 품 안에 있던 수정구가 빛을 뿜었다.
한순간에 사색이 된 두 고들링.
“젠장……!”
“빨리 무릎 꿇어!”
곧 수정구 위로 옥좌에 앉은 어떤 이의 형상이 불쑥 떠올랐다.
[보고해라.]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불쾌한 목소리.
그러나 지금은 오금을 저리게 할 정도로 무서웠다.
“이틀 안에 적정량을 채울 수 있습니다!”
“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쇼!”
탑주는 손가락으로 옥좌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더니 입을 열었다.
[하루 주겠다.]
슈욱-
그대로 꺼져버린 수정구.
“X됐다…….”
“뭐 해. 빨리 가스 만드는 거나 도와줘.”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