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고들링 흑마법사
데카드가 발견한 흑마법사의 특징.
그 첫 번째.
놈들은 뭉쳐 다니지 않는다.
범죄 기록을 보면 동시다발적으로 납치가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추적 병력을 나눠야 해서 도망치기도 유리하다.
그리고 두 번째.
대상을 납치할 때는 항상 수면 가스를 사용한다.
데카드는 범죄 현장에 가자마자 차가운 나무에 묻어있는 가스의 냄새를 맡았다.
집행관으로 일할 때 수면 가스, 마비 가스 등 온갖 가스란 가스는 다 맞아보니 이제는 구별이 확실히 되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세 번째.
“그 새끼들은 인간이 아니야.”
“네……?”
“말 그대로야.”
데카드가 발견한 세 번째 특징은 흑마법사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놈들은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야. 어떤 종족인지는 차차 알아낼 거지만.”
“이종족
흑마법사…….”
이종족은 보통 자연에 기대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 흑마법을 혐오하고 배척한다.
그러나 그들 중 소수는 흑마법의 길로 돌아서는데 보통의 인간 흑마법사보다 훨씬 강력하다.
타고난 자연 친화력을 흑마력으로 전환시키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면 가스를 쓰는 이종족이라면…… 생각나는 게 없네.”
자신이 이종족
박사도 아니고 모든 이종족을 꿰뚫고 다니진 않는다.
가장 유명한 엘프나 드워프 말고도 세상에는 수십 가지의 이종족이 있다.
“저기…….”
회의 도중 드물게 엘리스가 손을 들었다.
“왜 그래?”
“짐작 가는 이종족이 있어요.”
“정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 엘리스는 임무를 위해 순도 높은 수면탄을 찾고 있었는데 암살단이 소개해 준 인물이 하나 있었다.
“이것 하나면 최소 한 시간은 깊은 잠에 빠지지.”
라고 말한 그 음침한 느낌의 괴인은 가죽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들을 건넸다.
휘이잉-
그때 강한 바람이 불고 괴인의 얼굴을 보호해 주던 후드가 훌렁 넘어갔다.
“어이쿠 이런…….”
괴인은 재빨리 후드를 뒤집어썼지만, 일류 암살자의 동체시력보단 빠르지 않았다.
“그 괴인의 키는 저보다 작았어요. 드러난 얼굴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기다란 코.”
“기다란 코라…….”
“또 진한 녹색 피부였어요.”
고드윈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그냥 고블린 아닌가요?”
“아니야.”
고블린은 어느 정도 지성이 있으나 취급은 몬스터.
오크와 같이 이종족으로 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고블린과 매우 비슷한 이종족이 하나 있다.
원래는 가물가물했었지만, 엘리스의 말을 듣고 확실히 떠올랐다.
“백 퍼센트 고들링이야.”
“고들링……?”
고들링은 고블린의 먼 친척 같은 이종족으로 그들과 비슷한 외모를 지녔다.
그들은 천부적인 연금술 실력을 갖췄는데 그 능력으로 여러 대인용 무기들을 만들곤 한다.
수면 가스는 그중 하나.
“걔들하고는 안면을 텄지.”
데카드가 집행부에 있을 때 딱 한 번, 고들링의 부족
하나와 합동 작전을 펼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여러 가스와 폭탄을 통해 마법 없이도 화려한 전투를 펼쳤었다.
데카드도 고들링이 만든 가스탄을 몇 번 몬스터들에게 던져봤는데 가스에 닿자마자 살살 녹는 게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그럼 이 특징들을 조합해서 작전을 짤 거야. 그동안은 준비를 해줘.”
“알겠습니다!”
“네.”
똑똑-
바깥에서 들려오는 문 두들기는 소리.
카론이 나가보자 그곳에는 아까 일행을 방까지 안내했던 드워프가 서 있었다.
“아까 켈른 님이 전해 주지 못한 것을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인장이군요.”
켈른의 인장.
이것이 있다면 니다벨리에서 파는 모든 것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대장간에 한해서 마음껏 이용해 주십쇼.”
“감사합니다.”
작전 수행이 훨씬 매끄러워졌다.
카론에게서 인장을 받아든 데카드는 이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벌떡 일어섰다.
“또 어디 가시게요?”
“대장간. 만들어 둘 게 있어.”
데카드는 성채를 나와 니다벨리의 도심으로 들어갔다.
깡깡깡-
어딜 가도 모루에 망치 내려치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 외에는 전부 술집.
간혹 가다가 식료품점이 있을 뿐이었다.
데카드는 제일 커다란 대장간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문도 드워프 키에 맞춘 거라 데카드가 두드리려면 허리를 굽혀야 했다.
“누구쇼?”
“의뢰를 하러 왔습니다.”
“아, 그 인간 손님이구만. 들어오시게.”
드워프는 그 손재주를 이용해서 인간과의 교류를 많이 했기에 엘프처럼 인간을 차별하는 경향은 일절 없었다.
이곳 니다벨리도 아마 키른과 여러 차례 무역을 했을 터.
한마디로 믿음직한 대장간이다.
“검이나 방어구 말고도 다른 물건을 만들 수 있습니까?”
“허! 그럼 당연하지! 우리 니다벨리의 대장장이들은 마법부의 기계 회로도 만들어준다고!”
“그럼 믿을 만하겠군요.”
데카드는 자신이 만드려고 하는 것을 대장장이에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대장장이 드워프는 자신의 긴 수염을 손으로 스윽 쓸어내리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한마디로 방독면이 필요하시다. 이 말이지?”
“맞습니다.”
데카드가 주문한 것은 방독면.
고들링의 수면가스를 들이마셔도 중독되지 않기 위해 작전에 있어서 꼭 필요한 물건이다.
고들링들이 쓰는 가스는 수면 가스뿐만이 아닐 터.
독이나 마비 등등.
온갖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가스들을 준비해 뒀을 것이다.
“몇 명분이 필요한가?”
“여섯 개면 충분합니다.”
“이틀 후에 찾아가시게.”
“감사합니다.”
데카드는 그렇게 방독면 주문까지 마치고 다시 니다벨리의 시내로 나왔다.
니다벨리의 시민들은 계속 멈추지 않고 일어나는 납치 사건에 낮에도 조심스럽게 도심을 돌아다녔다.
어두운 뒷길을 걸어가는 것은 꿈에도 못 꾼다.
모두가 햇빛이 비치는 밝은 대로를 이용 중이었다.
“하여간 민폐만 끼치는 놈들이라니까.”
데카드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성채로 돌아갔다.
* * *
니다벨리에서 멀지 않은 설산 어딘가.
꽤나 커다란 동굴 안에서 두 명의 고들링이 모닥불 앞에 앉아있었다.
모닥불 위에는 방금 잡아왔는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토끼가 구워지고 있었다.
“토끼는 내가 잡았으니까 오늘은 네가 뛰어라.”
“……야. 그러는 게 어딨어.”
“그리고 어제도 내가 했잖아.”
더 이상 반박할 수 없는 논리에 진녹색 로브의 고들링은 입을 쩝 하고 다시며 일어섰다.
니다벨리까지는 그래도 거리가 어느 정도 있으니 지금 슬슬 출발해야 했다.
고들링은 품속으로 수면탄 몇 개를 집어넣고 아공간 주머니에는덫들을 넣었다.
“그럼 갔다 온다.”
“죽지 마라.”
“헹. 뇌에 근육만 찬 드워프들이 날 어떻게 잡겠어.”
동굴에서 출발한 고들링, 카키는 눈을 푹푹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놈의 눈은 왜 그치질 않는 건지 항상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눈의 높이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그래도 내일까지만 참자.”
내일이면 목표한 드워프의 수를 다 채울 수 있다.
드디어 길었던 임무의 끝을 보고 따뜻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카키는 니다벨리에 미리 뚫어둔 개구멍으로 성채를 지나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왔다.
“겁쟁이 놈들. 이러면 나야 좋지.”
드워프들이 두려움에 뒷길로 다니지 않게 되자 오히려 카키는 눈치 볼 것 없이 니다벨리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후우…… 오늘도 열심히 해 보자고.”
쓸데없이 직업 정신이 투철한 카키는 점 찍어 두었던 포인트에 덫을 설치했다.
한 명임에도 여러 명이서 납치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것.
이 덫을 밟는 순간 위에 설치된 수면탄이 떨어지고 그 즉시 기절한다.
또 기절하게 되면 발동하는 후속 함정이 있다.
이 함정은 기절한 드워프를 순식간에 묶고 포대기에 넣어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누가 짠 함정인지 참 잘 짰구만.”
카키는 킬킬 하고 웃으며 세 개의 함정 설치를 완료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
그때 동안은 어디 지붕 위에라도 올라가서 편안하게 휴식을 즐기면 된다.
“참…… 드워프들은 왜 저렇게 못생긴 건지.”
덫이 발동됐다는 신호가 올 동안 카키는 높은 건물 지붕에 올라가 지나가는 드워프들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다른 드워프들과 달리 키가 멀대같이 큰 존재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인……간? 마법사로군.”
저번에 마법부에서 파견 온 마법사들은 몇 번 주물렀는데 금방 죽어버렸다.
그때 별 재미도 못 느끼고 상심한 자신을 위해 하늘이 내려준 선물인 걸까?
카키는 드워프 사이를 지나가는 인간을 보며 흘러나오는 침을 삼켰다.
“저놈이 덫을 밟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느껴지는 기운만 봐서는 5서클밖에 안 돼 보이지만 야생의 감각은 다른 의견을 냈다.
저놈은 강하다고.
이런 적은 또 처음이기에 카키는 더욱더 검은 머리 인간 마법사에게 흥미를 느꼈다.
인간 마법사는 그렇게 카키가 있는 건물을 지나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우뚝-
갑자기 카키가 있는 건물 앞에서 멈춰선 인간 마법사.
그는 지붕으로 고개를 화악 틀었다.
‘뭐, 뭐지?’
카키는 순간 깜짝 놀라 지붕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들킨 건가? 기척을 완전히 감췄는데……!’
마법사가 흑마법사의 기운을 감지할 순 없을 테고 고들링인 자신은 은신에도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한낱 인간 따위가 이 몸의 은신을 알아챘다고?
‘갔나?’
갑자기 느껴지지 않는 마법사의 기운.
카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점점 바깥으로 내밀며 아까 마법사가 있던 곳을 내려다보았다.
“어, 어디 간 거지?”
밑을 보았을 때는 마법사가 사라진 후였다.
기감을 최대한 넓게 펼쳐본다.
그러나 잡히는 마나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눈까지 감으며 카키는 오로지 감각에 집중했다.
점점 잡혀가는 아주 실낱같은 마나.
‘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벼락처럼 떨어지고 있는 인간 마법사가 눈에 들어왔다.
“크으으……!!”
카키는 고들링 특유의 유연함으로 허리를 꺾고 다리를 비틀며 인간 마법사의 공격을 피했다.
떨어지면서 생긴 가속도를 등에 돋은 검은 날개를 한 번 펄럭이는 걸로 없앤 검은 머리 마법사.
카키는 그의 손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붉은 건틀릿을 잠시 흘겨보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마나군. 뭐냐 네놈은. 인간이 맞긴 한가?”
“…….”
인간 마법사는 대답 대신 양 주먹을 빠르게 휘둘러왔다.
아래에서 위로.
옆에서 반대로.
연속된 공격은 카키가 흑마법을 쓸 틈을 주지 않았다.
‘젠장……! 흑마법사와의 싸움이 익숙한 놈이다……!’
자신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를 꿰뚫고 있으며 입을 한 번 달싹이는 것조차 주의를 기울이는 놈.
그러면서 공격할 타이밍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으윽……!!”
횡으로 날아오는 건틀릿을 피하며 카키는 결국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깍지에 하나씩 딸려오는 비상용 가스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펑-! 펑-! 펑-!
조금이라도 들이마시면 전신이 마비되는 위험한 가스다.
역시 저놈도 이것까지는 무리인지 한쪽 팔로 입과 코를 막으며 주춤거렸다.
이때가 자신에겐 기회.
‘도망친다……!!’
카키는 지붕에서 뛰어내려 뒷골목을 냅다 달렸다.
데카드는 다시 짹짹이의 날개를 펼쳐 크게 펄럭였다.
그를 옥죄여오던 가스는 풍압에 못 이겨 저 멀리 날아가 사라졌다.
“젠장.”
아까 그 고들링이 얼마나 빠른지 벌써 마수들의 감지 범위를 벗어났다.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
[마지막 방향은 서쪽이었어요!]
[짹짹이! 까마귀를 날려봐라!]
[…….]
[……나는 너의 명령을 들으려고 있는 게 아니다.]
짹짹이의 까마귀가 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