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니다벨리
10분이 흘렀다.
분명 짧은 시간이었으나 예티들은 단 한 마리도 살아가지 못했다.
마지막 예티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눈 위로 풀썩 쓰러졌다.
“재밌어!”
예티는 물론 재미없었겠지만 데카드는 아주 재밌기 그지없었다.
설원 지대라 땀이 흘러도 금방금방 말라서 이곳이라면 오랫동안 수련해도 옷이 젖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깨끗해서 좋네.”
예티의 시체들은 빠르게 쌓여가는 눈 속으로 파묻혀 사라졌다.
설원 속에서 죽은 시체는 영하의 온도와 거의 없는 사람의 발길 탓에 오랫동안 보존된다.
와삭- 와삭-
뜨거운 예티의 피가 얼어서 만들어진 붉은 얼음 위를 밟아가며 데카드는 다시 이글루로 돌아왔다.
“어으, 따뜻해.”
처음 지어봐서 허점도 많은 이글루였는데도 안과 바깥에 온도 차이는 확실했다.
데카드는 따뜻한 이글루 안에서 더 따뜻한 침대 안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역시 몸을 한 번 강하게 움직였더니 눈은 금세 감겼다.
[크어어…….]
[드르릉…….]
마수들의 코골이를 자장가 삼아 데카드도 잠이 들었다.
* * *
“부장님! 저희 이제 얼마나 남았습니까?”
“조금만 더 가면 돼!”
“……아까도 그 말 하셨지 말입니다!”
[마수왕님! 또 거짓말한다!]
고드윈이 야크 위에서 높게 쌓인 눈을 걷어찼다.
엉덩이도 아프고 계속 똑같은 하얀색만 보다 보니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
그리고 제일 성가신 점은…….
“아우……! 눈 아파.”
바로 설맹이었다.
눈이 햇빛을 무차별적으로 반사해서 눈이 다 안 떠질 지경이다.
계속 눈으로 들어오는 강한 빛에 아스카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래도 이동 속도는 빠르네.”
엉덩이도 아프고 눈도 아팠지만, 다행히 드워프 마을까지는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데카드의 조금만이라는 희망 고문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을 때 저 멀리 눈 말고 다른 것이 보였다.
“어? 찾았다!”
“드디어!!”
차가운 강철들을 두드리고 산을 깎아 만든 드워프의 마을.
거의 요새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정도로 그 섬세함과 정교함이 뛰어났다.
역시 신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종족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푸르르-
야크들의 방향을 돌려 요새의 문으로 다가가자 경계를 서던 드워프들이 일제히 경계 상태로 들어갔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우린 마법부 장관이 보내서 온 사람들이다.”
“증거를 보여라!”
데카드는 그 증거로 지도에 붙어있는 마법부 장관, 젠킨스의 증표를 높이 쳐들었다.
햇빛에 밝게 빛나는 증표에 드워프들은 겨누었던 석궁을 치웠다.
“성문을 열어라!”
드르르르륵-
철창문과 성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드워프들의 마을이 보였다.
“들어가자.”
엘프의 마을에 이어 드워프의 마을까지.
유명한 이종족의 마을은 전부 다녀본 것 같은 느낌이다.
성문을 넘어가자 야크 정도 크기의 드워프들이 건물 밖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가 신기한가 봐요?”
“이런 오지까지 찾아오는 인간을 보기란 쉽지 않겠지.”
이제 마을 안에 왔으니 일행은 야크에서 내리고 데카드는 야크를역소환했다.
마을의 입구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자 성문에 있던 드워프 중 하나가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이쪽으로 내려왔다.
[마수왕님! 얘네 되게 작다!]
[으으…… 맥주 냄새.]
[으음! 향긋하군!]
[…….]
“반갑소. 내 이름은 아이른. 이 마을의 경비병이오.”
“일행의 대장을 맡고 있는 데카드라고 합니다.”
데카드는 허리를 살짝 숙이고 아이른은 자신의 손을 머리끝까지 들어 올렸다.
그제야 마주 잡히는 두 사람의 손.
“니다벨리에 온 것을 환영하오.”
“영광입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게.”
아이른은 일행에게 길을 안내했다.
니다벨리의 모습은 역시 바깥에서 보이는 성문처럼 정교하고 단단해 보였다.
강철이라는 광물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한계까지 표현한 극한의 손재주.
“인간의 마을과는 조금 다를 거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른데……?”
아스카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릴 만큼 건축 양식이나 문양에서 확연한 차이가 났다.
카론은 가로등의 기둥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려보았다.
“대단하군.”
티이라를 따라 강철 속성의 마법을 배우면서 카론 본인도 강철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력이 생겼다고 자부했다.
이 가로등만 보아도 추위에 강한 상급의 강철을 사용했고 동파를 피하기 위한 종족의 노하우도 엿볼 수 있었다.
“이곳이오.”
아이른을 따라 도착한 곳은 흑철로 이루어진 성채.
대포를 뻥뻥 쏴대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함이 느껴진다.
“손님이니 문을 열어주시오.”
“알겠소.”
성채의 정문에 있던 경비병 두 명이 문을 열고 자리를 비켜서 주었다.
아이른 또한 지금부턴 더 움직일 생각이 없는지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나의 안내는 여기까지요.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이가 있을 것이오.”
“반가웠습니다.”
“나도 반가웠소.”
아이른이 다시 뚜벅뚜벅 성문으로 걸어갔다.
“우리도 가자.”
성채 안쪽은 경비병들과 본인의 업무를 하고 있는 드워프들이 돌아다니는 바쁜 곳이었다.
아이른의 말과는 달리 자신들을 안내해줄 이는 보이지 않았다.
“흐음…… 그냥 올라가 볼까?”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꽤나 층이 많아 보였는데, 보통 가장 위층에 지도자가 있기 마련.
경비병들은 일행이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눈길만 줄 뿐 건드리지 않았다.
“계단이 뭔가……. 불편하네요.”
드워프의 보폭에 맞춰 만들어진 계단은 인간이 다니기엔 여러모로 불편했다.
잘못 발을 디디면 낮은 팔걸이 때문에 낙사할 것 같다.
“드워프에도 마법사가 있나?”
“왜 그러세요?”
“뭔가 인간과는 다른 마나가 느껴져서.”
엘프의 마나, 인간의 마나는 둘 다 마나라는 자연의 성질을 사용하지만 그때 나는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다.
데카드도 드워프의 마나는 경험해본 적이 없어 지금 기감에 잡히는 마나를 쉽사리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최상층.
최상층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기합이 제대로 들어갔네.’
이 앞을 지키는 드워프들은 경비병이 아닌 기사.
착용한 무구들의 빛깔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강해 보입니다.”
“저희를 엄청 경계하네요.”
일행이 드워프 기사들의 따가운 눈빛을 넘어 최상층의 방 앞까지 도착했을 때 안에서 위엄 있고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보내거라.”
끼이이익-
강철의 문이 열리고 그렇게 높지 않은 단상 위.
흑색 의자에 앉아있는 한 드워프가 있었다.
“들어오시오.”
“실례하겠습니다.”
데카드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부원들이 따랐다.
강철같이 단단한 눈의 드워프는 손으로 방에 놓인 의자들을 가리켰다.
일행 모두가 의자에 앉자 드워프는 자신의 소개를 했다.
“나는 이 니다벨리의 수장, 켈른이라고 하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켈른은 일행을 보자마자 누가 가장 강한지 대번에 파악했다.
흔치않은 흑발의 남자.
언뜻 보이는 모습은 가볍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그 실력은 범상치 않다.
“데카드 아르마다라고 합니다.”
“기억해 두겠소.”
켈른은 손바닥을 짝짝 부딪쳤다.
그러자 방의 문이 열리고 두꺼운 책 하나가 책상 위에 놓였다.
“그것은 그동안 납치당한 드워프들의 신변이오. 납치 장소와 특징 또한 그곳에 적혀있지.”
켈른의 말대로라면 이번 수사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일 책이다.
데카드는 책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첫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납치당한 드워프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주지, 옷, 평소 자주 가는 가게 등등.
그 드워프에 대한 것이라면 사소한 정보도 빼놓지 않고 적혀있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정보는 거기 모두 담겨있다네.”
“그런 것 같군요.”
데카드는 책을 몇 번 훑어보다가 다시 덮었다.
“그럼 켈른은 이것이 어떤 이들의 소행 같습니까?”
“당연히 흑마법사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켈른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책에 적혀있는 모든 특징들은 흑마법사를 가리키고 있네.”
“맞습니다. 저도 범인은 흑마법사라고 거의 확정을 지어놓은 상태이고요.”
“그럼 조금 전에 그 질문의 의도는 뭐였나?”
데카드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저 적을 확실히 하고 싶었을 뿐.”
데카드는 그 말을 끝으로 책을 아공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그대로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켈른에게 짧게 목례했다.
“걱정 마십쇼. 그 흑마법사들을 잡아서 무릎을 꿇려오겠습니다.”
“생포할 생각인가?”
생포가 가장 좋은 결과이지만 반대로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데카드는 자신 있었다.
“그렇습니다.”
몇 장 넘기지도 않았거늘 이 흑마법사들에게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모든 사건마다 균일하게 보이는 이 세 가지 특징.
데카드라서 알아볼 수 있었던 특징.
흑마법사의 목을 실시간으로 죄여줄 이 특징.
데카드는 일행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당신들을 숙소까지 안내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일행은 성채 안.
꽤나 넓은 방 두 개를 받을 수 있었다.
남녀로 갈라진 일행은 각자 가져온 짐을 풀었다.
짐이라 봐야 간단한 옷들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오랜 파견 임무 생활로 다져진 데카드는 항상 짐을 최소화하고 다녔기에 남들보다 더 빨리 짐 정리를 끝냈다.
“벌써 끝내셨습니까?”
“어.”
고드윈과 카론이 짐을 마저 풀 동안 데카드는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니다벨리를 눈에 담았다.
성벽 안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춥고 눈은 마를 날 없이 내려왔다.
‘그럼 바로 일을 시작해 볼까.’
방금 자신이 잡아낸 특징을 잘만 이용하면 흑마법사를 자신들 쪽으로 유인할 수 있다.
자신들 꾀에 자기들이 넘어가는 꼴.
데카드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 순간이 빨리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마수왕님! 사악하다!]
* * *
“데카드 어디 갔어?”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하시던데?”
엘리스가 방에 없는 데카드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릴 때 고드윈이 바깥을 가리켰다.
데카드는 납치 현장을 보기 위해 먼저 성채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흐음…….”
강철 사슬들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막지 못했다.
눈이 쌓여 발자국은커녕 바닥도 보이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흔적이 전혀 없네.”
납치한 자가 흑마법사라고만 추측할 수 있을 뿐 추적이 가능한 흔적은 없었다.
생각보다 용의주도한 놈들이다.
“결국 그 특징으로밖에 잡을 수 없는 건가?”
특징을 이용하려면 시간이라는 요소가 필요하기에 데카드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방법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데카드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도 먹음직스럽게 양념을 뿌려줄 순 있지.”
매력적인 덫을 놓기 위해 그는 다시 성채로 돌아갔다.
“데카드! 어디 갔다 왔어요?”
“납치 현장.”
“뭐 걸리는 게 있던가요?”
“전혀.”
별다른 수입이 없었다는 것에 엘리스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입이 전혀 없었다는 것치곤 데카드의 얼굴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뭔가 방법이 있으시죠?”
“없진 않지. 가서 부원들을 모아줄래?”
데카드는 일행을 불러 모으고 자신의 유인 작전을 설명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