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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37화 (137/208)

137 헤파이 산맥

“이게 뭐야?”

아스카가 조심스럽게 꺼내 든 것은 푸른 보석이 박힌 목걸이.

보석에서는 무언가 청량한 마나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저희가 바닷가에 갔을 때 부장님이 생각나서 기념품으로 사왔습니다.”

“오 진짜?”

데카드도 선물에는 조금 낯선 터라 아스카에게서 목걸이를 받고는 살짝 손이 떨렸다.

[흥! 마수왕님! 다음에는 제가 저것보다 비교도 안 되는 목걸이를 드릴게요!]

[생각해 보니 우리 마수들도 왕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군. 흐음…….]

[…….]

[우리도 할까? 선물!]

마수들끼리 안에서 속닥속닥 작전 회의를 할 때 데카드는 부원들이 준 목걸이를 걸어보았다.

데카드와 잘 어울리는 듯한 푸른색 돌은 보고 있으면 마음마저 편해지는 것 같았다.

“고마워, 얘들…….”

위용위용-!!

감사 인사를 하려던 찰나 대문에 걸어두었던 경비 마법이 요란스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침입자인가요?”

벨린다가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들려던 그때 짹짹이가 고개를 저었다.

[침입자는 아닌 듯하군요.]

짹짹이가 까마귀를 이용해 곧바로 확인해 보았으나 대문 앞에 서 있는 자는 테러 조직원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고급스러운 튜닉에 귀족들이 즐겨 입는 가죽 바지를 받쳐 입은 이 멋쟁이 신사는 굉장히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은 퍽 안쓰러웠다.

“내가 나가 볼게.”

“저희도……!”

아스카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데카드는 짹짹이의 날개를 활짝 피고 날아올랐다.

“우리도 가자!”

“응!”

부원들도 뒷마당에서 저택을 지나 앞마당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대문까지 달려갔다.

하늘이라는 루트를 이용해 대문까지 순식간에 도착한 데카드.

그는 아직도 시끄럽게 귀청을 울리는 경비 마법을 해제하고 대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크흠…… 저는 마법부 소속의 배달부입니다. 여기 데카드 아르마다 씨께 편지가 왔습니다.”

“누구에게 온 거죠?”

“그건 직접 편지를 열어보시길.”

배달부는 편지를 건네주곤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사라졌다.

데카드는 배달부의 뒷모습을 잠깐 쳐다본 후 다시 편지에 집중했다.

편지의 앞면이나 뒷면을 모두 꼼꼼히 살펴보아도 누군가의 서명은 없었다.

“누가 보냈는지는 알겠네.”

서명은 없으나 누구인지를 쉽게 특정케 해주는 것이 있었다.

편지지가 열리지 않게 하기 위해 찍어두는 봉인 도장.

도장에 찍힌 문장은 마법부에서도 마법부 장관만이 쓸 수 있다.

“젠킨스가 보낸 거군.”

“무슨……! 허억…… 허억……. 일이었나요?”

아스카를 비롯한 부원들이 모두 앞마당에 도착했다.

그녀는 거친 숨소리 섞인 질문을 마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러니까 평소에 운동 좀 하라니까.”

고드윈이 준 핀잔에 아스카는 그를 한 번 노려보더니 다시 바닥에 고개를 숙였다.

“운동하면…… 나는…… 가슴부터 빠진단 말이야…… 허억…… 허억…….”

“…….”

아스카의 안쓰러운 이유를 뒤로하고 데카드는 봉인 도장을 뜯어 편지를 꺼냈다.

또 어떤 어렵고 이상한 임무인가 하는 마음으로 그는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퇴마부장에게-

봉인 도장에서 알아챘겠지만 젠킨스일세.

다름 아니라 이번에 자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 건 당연히 임무 때문이야.

북쪽 대산맥에 살고 있던 드워프들이 최근 흑의인들에게 납치당하고 있다는 정보야.

우리 마법부도 요원들을 몇 명 보내보았지만 모두 행방불명.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낼 수 없었어.

하지만 높은 확률로 흑마법사일 거라는 추정이네.

남겨진 흔적들은 모두 흑마법사의 특징들로 나타났으니까.

드워프들이 지금 마법부에 도움 요청을 보내온 바.

퇴마부는 빠른 시일 내로 드워프들이 살고 있는 헤파이 산맥에 가주길 바라네.

-젠킨스-

편지를 다 읽자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종이가 알아서 타올라 재가 되었다.

“귀찮게 됐군.”

“저희는 언제나 준비 완료입니다.”

“맞아요! 마법도 전보다 더욱더 강력해졌다고요!”

데카드는 이 믿음직스러운 부원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인생은 고생과 고난투성이지만 버티고 가다 보면 이런 보석들을 마주하게 된다.

보석을 잃어버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전원 무사 귀환 하자!”

“네!”

“알겠습니다!”

* * *

이른 아침부터 데카드와 부원들은 헤파이 산맥으로 가기 위해 먼저 근처 도시인 키른으로 갔다.

텔레포트 기계로 이동은 순식간에 했으나 무릎까지 느껴지는 차가운 무언가.

“눈이 엄청나게 쌓여있네요.”

“키른은 매일매일 눈이 엄청나게 쌓여. 그래서 제설 마법이 담긴 기계 없이는 살 수가 없대.”

고드윈은 키른에 오기 전 조사한 것들을 읊어주며 바닥에 쌓인 눈을 발로 헤쳐 나갔다.

제설 기계가 키른에는 많이 있고 지금도 눈을 치우고 있으나 눈은 그것보다 훨씬 많이 내렸다.

치우는 것보다 빠른 쌓이는 속도.

“소환.”

키른에 딱히 정은 없지만 이대로는 이동이 불가능하다.

카아악-!

거대한 키의 라바 지라프가 눈 더미 위에서 소환되자 그 열기만으로도 주변의 눈이 녹아내렸다.

“여기에 눈들을 전부 녹여줄래?”

라바 지라프는 어렵지 않다는 듯 긴 목을 구부려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길쭉한 다리를 쭉쭉 뻗어도 지라프의 다리에 차이는 눈은 일절 없었다.

눈들이 지라프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쭉쭉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카악-!

하지만 지라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양발을 힘껏 들어 올린 후 바닥을 향해 쿵 찧었다.

그러자 뜨거운 불길이 고르게 장판처럼 퍼져 나갔다.

불길은 빠르게 나아가며 광장을 비롯해 주변에 쌓인 모든 눈을 순식간에 녹여주었다.

“이제야 걸어갈 수 있겠네. 수고했어.”

지라프의 불길은 눈을 녹이다 못해 키른의 바닥을 여름날 돌바닥처럼 건조하게 만들었다.

불의 높은 열이 수분마저 증발시킨 것이다.

“바, 방금까지만 해도 엄청 쌓여있었는데?”

“눈들이 다 어디 간 거지?”

키른의 주민들은 분명 조금 전만 해도 무릎까지 쌓여있던 눈이 자취를 감추자 놀란 표정으로 하나둘 집 밖에 나왔다.

하늘에서 눈은 계속 내렸으나 당장에 이동은 편해졌다.

눈이 거의 다 녹았음을 확인한 시민들은 모두 바구니나 생활용품을 챙겨 들고 바삐 움직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분주해졌는데?”

“또 눈이 오면 집에서 나오질 못하니까 지금 식재료를 사두거나 해야 했던 바깥일들을 마치는 거야.”

“오올~ 조사 열심히 했네?”

아스카가 고드윈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시비 아닌 칭찬을 했다.

“그럼 이제 저희도 움직일까요?”

“그러자.”

헤파이 산맥은 키른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여기 광장 게시판 구석에 걸려있는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키른의 서문으로 나가 걸어가다 보면 헤파이 산맥의 입구가 보인다.

그러나 이 입구는 사람들이 등산용으로 만들어놓은 산책길.

드워프의 마을은 산맥 아주 깊숙한 곳에 만들어져 있다.

그곳까지 가는 것만 해도 아주 고역일 것이다.

[마수왕님! 근데 드워프가 뭐냐?]

[드워프도 모르냐? 그 있잖아! 키 작고 근육질에 수염 덥수룩한 애들.]

[고오른의 키 작은 버전이냐?]

[맞아! 그렇게 설명하니까 쉽네.]

[…….]

[…….]

이번에는 고드윈도 딱히 입을 열지 못하고 레오처럼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런 것에 반응해 주면 또 장난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근데 조금 춥네요.”

“아, 맞다. 이걸 까먹고 있었네.”

데카드는 레드 리자드를 인원수만큼 소환했다.

저번에 첫 번째 유물을 찾으러 갔을 때도 무척이나 추워 이 마수를 소환해 몸에 붙였던 기억이 있다.

“후우……. 한결 좋아졌습니다.”

“칼이 다 얼어붙을 뻔했어요.”

이런 추위에는 칼이 칼집과 함께 얼어붙어 버려 정작 중요한 때에 발검을 못하는 수가 있다.

그렇기에 아까부터 벨린다와 엘리스는 일정 시간마다 한 번씩 검을 뽑아 동결을 막았다.

“이쪽으로 가면 이제 마을이 나온다는 거지?”

젠킨스가 편지와 함께 보내준 지도에는 드워프 마을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질리지도 않고 엄청나게 내리는 폭설로 시시각각 변하는 산의 지형은 지도를 보기 어렵게 했다.

하지만 지금 믿어볼 건 이 지도뿐이다.

라바 지라프가 눈을 녹여준 길을 벗어나고 헤파이 산맥에 진입하자 다시 눈이 걸음을 방해했다.

이럴 때 제힘을 발휘하는 것이 유능한 소환사.

“소환!”

데카드는 레드 리자드에 이어 중형 크기의 마수, 여섯 마리를 소환했다.

푸르릉-

하얀 털에 대비되는 흑색의 뿔이 매력적인 마수.

마수계에서도 굉장히 추운 설원 지대에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 스노우 야크다.

“모두 올라타!”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부장님!”

동물 타기는 이제 낙타나 말로 벌써 익숙해졌다.

야크쯤이야 안장 없이도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었다.

“가자!”

데카드의 출발 명령에 스노우 야크는 콧김을 거칠게 내뿜으며 눈밭을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사람보다 훨씬 무거운 야크일 텐데 눈을 밟아도 전혀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눈을 평지처럼 달리는 중인 야크들.

“어우……! 눈 뜨기가 어려워요!”

하늘에서 내리는 강력한 폭설로 일행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야크의 뿔을 붙잡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야크의 두터운 속눈썹은 야크 자신의 눈을 가리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본래라면 엄청나게 오래 걸렸을 거리였으나 마수들을 타자 정말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으으윽…….”

“어우…….”

한 시간쯤 달렸을까?

뒤에 있는 부원들이 엉덩이를 계속 들썩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 소리를 바람결에 들은 데카드가 야크들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뒤에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무슨 일이 딱히 있는 건 아닌데…….”

데카드와 엘리스, 벨린다, 카론은 육체 단련을 끊임없이 해왔기 때문에 별다른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어도 이 둘은 아니다.

“그게……. 안장도 없이 계속 야크를 타다 보니까 다리가 너무 아파서…….”

“그래? 그럼 조금 쉬었다 가자.”

마침 이곳은 눈도 많이 안 쌓인 초원이다.

조그마한 잡초들이 숭숭 자라 있는 이곳은 잠깐 쉬었다 가기 좋아 보였다.

야크들을 한곳에 모으고 데카드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지금까진 지도대로 잘 가고 있는 중이다.

“내일쯤이면 도착하겠네.”

야크들이 생각보다 정말 제 일을 잘 해주고 있어서 본래라면 4일까지 일정이 하루로 팍 줄었다.

“데카드. 이거 먹을래요?”

“그래.”

엘리스가 준 육포는 살짝 얼어 있었지만 레드 리자드 위에 몇 초간 올려두자 다시 부드럽게 녹았다.

아스카와 고드윈은 굳은 허리와 알이 배긴 다리를 풀며 조금씩 걸었다.

“그보다 여기 경치 하나는 죽인다.”

“이 경치 하나 보려다가 죽은 사람도 많을걸?”

야크를 타고 산맥을 거슬러가다가 내려 본 밑은 절경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새하얗게 펼치진 눈.

깨끗한 하늘.

중간 중간 물감처럼 퍼져 있는 침엽수림.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거 한 번 해볼까?”

“뭘?”

“야-호!!”

양손을 입에 확성기처럼 갖다 댄 후 아스카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야-호 야-호

그러자 메아리쳐서 다시 들려오는 아스카의 목소리.

“오오! 신기해!”

쿠구구구구궁-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고드윈이 갑자기 메아리 말고도 들리는 불안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

새하얀 눈의 해일이 산맥을 타고 이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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