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밤나방의 배후
‘벌써 찾았다고?’
[주인님의 서클이 오름으로써 기감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마법사도 아닌 자들이니 찾는 게 어렵진 않았습니다.]
[유능하다! 짹짹이!]
“엘리스, 잠깐만.”
“네.”
데카드는 저택의 아무 방이나 열고 들어갔다.
‘시야 공유해 줘.’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데카드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나 차가운 마나가 흘러들어왔다.
“흐읍!”
짧은 기합과 함께 눈을 번쩍 뜨자 루비아 상공을 훨훨 날고 있는 까마귀의 시야로 바뀌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루비아를 내려다본 건 처음이라 그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찍을 수만 있으면 사진기라도 가져오고 싶네.’
[그건 제가 나중에 찍어 드릴 테니 지금은 저쪽 아래를 봐주십쇼.]
‘알겠어.’
짹짹이가 가리킨 곳은 선술집.
선술집이 잘 보이는 건물 지붕에 내려앉은 까마귀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크하하! 그래서 내가 돼지 삼형제의 집 문을 두드리는 늑대처럼! 똑똑 문을 두드렸지.”
“그래, 그래. 나도 다 아는 얘기이니 그만해라. 의뢰자가 최대한 비밀스럽게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뭘 어때! 어차피 슬레이로 숨으면 놈들은 우릴 못 찾아! 오히려 그 음침한 것들이 길거리 시체가 될걸?”
자세히 저들의 말을 들어보자 이제는 확실해졌다.
‘그런데 슬레이라고?’
슬레이라면 데카드가 텔레포트 담당 마법사의 오해로 고생만 엄청하고 왔던 빌어먹을 쓰레기 도시다.
그 도시를 굉장히 친숙한 듯 입에 담는 저들을 보면 테러 조직은 슬레이의 갱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바이퍼? 아니면 썩은 쥐?’
이 두 개 말고도 여러 거대 조직이 있지만 그들에 대한 정보는 데카드가 아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음침한 놈들이라…….’
음침한 놈이야 세상 어디든 있고 누구를 지칭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은 흑마법사를 가리키고 있다.
흑마법사가 슬레이의 갱단과 손을 잡았다는 건가?
아직은 확정 지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기습할까요?]
‘잠깐만 기다려 봐.’
데카드는 까마귀의 시야로 테러 조직원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보통 가슴팍이나 허리춤 아니면 문신으로 자신이 어디 갱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려주는 표식이 있는데 놈들은 그게 없었다.
하긴, 정신머리가 있다면 숨겨 놓았겠지.
‘기습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잠깐 다녀오도록 하지요.]
‘지금 날아가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낮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초저녁.]
슬슬 해가 지는 시간인 지금은 짹짹이의 활동 무대다.
곧 루비아의 구석지고 어두운 건물 틈새에서 그림자가 쑤욱 올라왔다.
사람의 모양을 한 이것에 짹짹이는 자신의 까마귀들을 불러 모아 그에게 타닥타닥 붙였다.
그러자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까마귀 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우……. 너무 무서운데?’
[테러 조직의 정신 건강까지 생각해줄 여유는 없습니다.]
짹짹이는 최대한 빛을 피해 선술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갑자기 출몰한 까마귀 괴인에 들고 있던 것을 놓치고 바닥에 엎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괴물이야!”
“도, 도망쳐!”
‘……이거 맞냐? 짹짹아?’
짹짹이는 입을 꾸욱 다물며 결국 선술집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잠시간 이어지는 침묵.
선술집의 사람들이 모두 취해서 그런지 상황파악이 너무 늦었다.
“어어? 뭐지…… 내가 지금 취해서 헛것을 보고 있나…….”
손님 중 한 명이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나 까마귀 괴인, 짹짹이에게 다가갔다.
툭-
손가락이 짹짹이의 몸을 건드리자 주변에 있던 까마귀가 손을 왁 하고 물었다.
“으억!!”
손님은 깜짝 놀라 나자빠지고 갑작스러운 소란에 바깥으로 나온 점주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으아악!! 괴물이다!!”
“괴, 괴물?”
“도망쳐!”
이제야 짹짹이를 똑바로 보기 시작한 손님들이 서로 앞 다투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중에는 물론 조직원 두 명도 있었다.
[너희는 보내줄 수 없다.]
“에잇! 저리 비켜!”
깔끔하게 사람이 전부 빠진 선술집에서 짹짹이는 두 조직원의 목을 잡고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우당탕-!
“으악!!”
“뭐, 뭐야! 저놈은!”
그냥 시꺼먼 그림자에 까마귀를 들이부은 것 같이 생긴 괴인은 뭔가 자신들에게 용건이 있어 보였다.
“어, 어디서 너를 보냈느냐!”
[너희가 알 바 아니다.]
짹짹이가 손을 뻗자 까마귀가 울긋불긋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떼를 지으며 불어난 까마귀들은 원형으로 선술집 안을 돌며 미친 듯이 울어댔다.
까악-! 까아악-! 까악-!
수십 마리 까마귀들의 합창소리는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이 커다랗고 시끄러웠다.
“으으아악!”
“그, 그만해!! 뭘 원하는 거냐!!”
드디어 원하던 말이 나오자 짹짹이는 폈던 손바닥을 쥐었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울음을 멈춘 까마귀들.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에게 테러를 의뢰한 자들의 정보다.]
‘쟤들 소속도 알아야 해.’
[또 너희의 소속을 대라.]
데카드의 명령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짹짹이가 심문을 이어나갔다.
두 명의 조직원은 조금씩 뒤로 주춤거렸으나 두꺼운 벽이 막았다.
“머, 먼저 우리의 소속은 슬레이의 거대 갱, 밤 나방이다!”
[밤 나방?]
괴인 짹짹이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오히려 쓰러져있는 둘이 더 놀랐다.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모른다.]
“허……! 같은 뒷골목 사람 같은데 어떻게 밤 나방을 모를 수 있어!”
밤나방은 썩은 쥐, 바이퍼와 마찬가지로 슬레이의 거대 갱단 중 하나다.
갈까마귀 암살단처럼 배후 암살이나 정보 수집이 특기이다.
갱단 가입에 아무런 조건이 없기 때문에 갱단 중 가장 많은 조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딴 쓰레기 조직, 알고 싶지 않다. 어서 내 다음 질문에 대답이나 해라. 그 여하에 따라 너희의 목숨이 달려있으니 신중하게 말하도록.]
짹짹이는 데카드가 저들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당장에라도 까마귀밥으로 만들 준비를 끝냈다.
“어, 어떻게 하지……?”
“뭘 어떡해! 말해야지!”
“하, 하지만 이건 비밀이라고…….”
망설이는 동료를 보며 옆에 있던 조직원은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을 팡팡 쳤다.
“지금 그게 중요해? 우리가 당장 죽게 생겼다고!”
“아, 알았어…….”
[의견 교환이 끝났으면 얼른 입을 열어라.]
지금 선술집 주변의 까마귀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경비병과 기사들을 발견했다.
늦어도 5분이면 이곳에 도착하리라.
“우, 우리는 퇴마부의 숙소를 습격해 그 부원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소.”
[숙소는 너희들이 알아낸 것인가?]
“그, 그렇지 않소. 임무지에 주소가 적혀있었을 뿐이오.”
“흐음…….”
방에서 가만히 저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 데카드는 신음을 작게 내뱉었다.
생각보다 흑마법사의 정보력이 강하다.
원래 흑마법사는 세상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정세에 어두웠는데 이제는 정보전까지 능해졌다.
더 골치 아파진 적의 능력에 데카드는 한숨을 쉬었다.
“옛날처럼 앞뒤 안 재고 때려 부술 때가 좋았는데.”
그때는 건물이 부서지건 뭐가 어떻건 흑마법사만 죽이면 됐다.
딱히 머리 같은 것은 안 써도 힘만 세면 그만이었다.
“짹짹아. 그놈들에게 밤 나방이 흑마법사와 손을 잡은 거냐고 물어봐.”
[밤 나방이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나?]
이 질문이 핵심을 찔렀는지 조직원들의 몸이 순간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 맞소. 우리에게 임무지를 준 이들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악취가 심하게 났었소.”
[따로 무슨 말은 안 하던가?]
“그렇진 않았소……. 임무지를 건네곤 바람처럼 사라지더군.”
아는 것은 전부 말한 듯 조직원들이 고개를 푸욱 숙였다.
짹짹이는 아직 뻗은 손을 거두지 않고 데카드의 명령을 기다렸다.
“기사들이 연행해 가게 묶어둬.”
데카드의 말대로 짹짹이는 까마귀들을 빠르게 움직여 검은 사슬을 만들고 커다란 기둥이랑 같이 묶어버렸다.
곧 귀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
“이곳이다!”
“괴인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경비병과 기사들이 문을 박차며 들어왔을 땐 이미 짹짹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난 뒤였다.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데카드는 그만 방에서 나왔다.
“슬레이의 갱단과 흑마법사가 손을 잡았다라…….”
[쓰레기와 쓰레기가 손을 잡았군요.]
“그런 셈이지.”
쓰레기들이 모여 봤자 어차피 쓰레기통에 지나지 않는다.
치울 양이 늘어났을 뿐 더러운 놈들이란 건 똑같았다.
“데카드!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잠깐 뭐 좀 확인하느라. 애들은?”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뒷마당에서 받은 것들을 바로 써보고 있어요.”
“다행이네.”
머리가 아파질 정도로 열심히 골랐는데 다행히 부원들의 마음에 맞은 것 같다.
데카드는 엘리스와 같이 부원들이 있는 뒷마당으로 움직였다.
집이 워낙 넓어 이렇게 가는 것만 해도 조깅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 부장님! 선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아스카는 새로 받은 옷을 입고는 달빛 아래서 빙그르르 돌았다.
얼굴도 전보다 확연히 좋아진 것이 직원의 추천이 옳았나 보다.
“저도 항상 고민하던 거였는데 이런 해결법이 있었군요.”
고드윈은 뒷마당 벤치에 앉아서 지갑에 돈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몇 번 잘 나오던 돈은 어느 순간부터 지갑 안에 손을 아무리 휘저어 보아도 돈이 나오질 않았다.
하루 적정 지출액을 넘었다고 지갑이 인식한 것이다.
“오오!”
고드윈은 정말 돈이 사라진 듯 만져지지 않자 신기한 듯 지갑의 여러 곳을 살펴보았다.
한편 카론은 항마력 갑옷을 입고 조금씩 움직여 보는 중이었다.
“가볍군.”
경량화 마법 덕분에 가죽 갑옷처럼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상등급의 마도 갑옷은 입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의 상승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장비, 장비 이러는 건가.”
평소 자신의 실력은 키우지 않고 좋은 장비만 찾는 이들을 한심하게 보았었다.
하지만 지금 이 갑옷을 보니 그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마음에 들어?”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가까이 다가온 데카드에게 카론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이 선물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너는 이미 그것에 어울리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죽지나 말라고.”
데카드는 그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고 뒷마당 한편에서 원반을 시험해 보는 벨린다를 보았다.
열 개의 원반에선 연습 상대 마미들이 차례차례 튀어나왔다.
“후우…….”
그들 앞에서 검을 편하게 늘어뜨리고 선 벨린다.
언뜻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선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마미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타다닷-!
건장한 성인 남성 정도 크기에 마미 열 개체가 한 번에 달려오는 모습은 퍽 긴장감 있었다.
10명의 마미와 검을 든 소녀.
만약 평범한 소녀였다면 집단 구타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자 탈춤.”
수사자가 낮잠에 깨서 오랜만에 먹이를 사냥하듯.
벨린다는 느긋하게 마미들 사이를 거닐며 검을 움직였다.
빠른 것 같지만 느리게.
급해 보이지만 여유롭게.
벨린다는 춤을 추듯 마미들을 일 검에 베어냈다.
“브라보.”
뒤에서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데카드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마수계에서 혼자 검을 휘두르는 레오가 생각나는 것 같다.
[…….]
레오도 벨린다의 성취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부장님! 잠깐 이리 와보실래요?”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