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선물 고르기
루비아의 만물 백화점에 도착한 데카드.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많은 사람과 그보다 더 많은 물건이 자신을 반겨주는 듯했다.
“그보다 걔들이 뭘 좋아할지 모르겠네.”
부원들과는 마음을 터놓고 지낸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임무로 바빠 이렇게 취향을 알아갈 일이 없었다.
데카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천천히 백화점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아스카는 저런 예쁜 옷을 좋아하지 않을까요?]
백화점을 돌아다니다가 나온 옷 코너에서 요르는 뭔가 느낌이 온 듯 아름다운 명품들을 가리켰다.
‘그걸 요르가 어떻게 알아?’
[그냥……. 아스카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고나 할까요?]
‘그래?’
마수들은 육체적 감각을 제외하고도 정신적의 감각 또한 인간과 궤를 달리하니, 요르의 말은 꽤나 신빙성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스카가 우리 중에 꾸미는 것에 가장 관심이 있었지.’
사막 한복판에서 트리스와 엘리스를 화장시켜주던 그 솜씨는 한두 번 해가지곤 절대 나올 수 없는 실력이다.
데카드는 그렇게 화장품 코너와 옷 코너로 가서 상품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런 것은 또 취향을 많이 타는 것들이기에 잘못 골랐다간 안 주느니만 못할 수 있다.
‘여기선 느낌 오는 거 없어?’
[으으음……. 여기부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데헷!]
요르는 귀엽게 혀를 빼고는 뒤로 스리슬쩍 빠졌고 결국 데카드만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려는 찰나, 구원자가 강림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만한 게 있을까요?”
“너무나도 많습니다.”
결국 데카드는 직원에게 묻고 물어가며 어떤 것이 아스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알 수 있었다.
“손님이 말씀하신 분의 얼굴처럼 희고 눈매가 순하신 분들은 이쪽 색상의 계열에서 이걸 추천 드려요. 이게 요즘 새로 나온 신상이거든요.”
“담아주십쇼.”
화장품 하나, 옷 하나를 가방에 담으며 데카드는 아스카의 선물을 전부 골랐다.
“그럼 다음은……. 고드윈 걸 사볼까?”
[제가 고드윈을 조금 지켜본 결과 그는 물건을 막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았어?’
[그냥 훈련하다가 고드윈에게서 나오는 푸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고드윈은 쉽게 말해 지름신.
이 지름신이 시도 때도 없이 몸에 들어온다.
본인의 돈이 얼마나 있든지 간에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다 써버리는 게 그다.
‘흐음……. 그러면 어떤 선물이 걔한테 유용할까.’
데카드는 백화점 복도에 서서 고민하다가 무릎을 탁 칠 만한 물건이 하나 떠올랐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그 물건을 파는 위층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어서 오세요!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지갑들이 여기에 있답니다.”
데카드가 온 곳은 지갑 코너.
그러나 그가 찾고 있는 지갑은 평범한 것이 아니다.
“여기가 지갑 마도구를 파는 곳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찾고 계시는 상품이 있나요?”
“있습니다.”
데카드가 생각하고 있는 지갑의 특징을 말하자 직원은 방긋 웃으며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찾으시는 상품은 저쪽에 있습니다.”
데카드가 사려고 했던 지갑은 바로 마도구 지갑이다.
이 지갑에 돈을 넣어 놓고 하루 쓸 수 있는 돈의 양을 설정하면 그 돈을 넘어선 지출은 지갑이 허용하지 않는다.
지갑이 돈을 놓아주지 않으니 당연히 무언가를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
고드윈 같은 지름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다음 선물은 카론 걸로 해볼까? 티이라. 너는 뭐 아는 거 없어?’
[카론? 카론은…….]
티이라는 그녀치곤 꽤나 오랫동안 고민하더니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다! 그냥 하나 사줘라! 방어구!]
‘방어구?’
[응! 그거 있으면! 카론! 안 죽는다!]
방어구가 있다고 안 죽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죽을 위험이 줄어들긴 한다.
데카드는 티이라의 조언을 따르기로 하고 방어구 코너로 갔다.
“방어구도 종류가 많단 말이지…….”
사람의 몸을 약점 없이 보호하기 위해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방어구가 개발되었다.
그것들 중에 카론에게 딱 맞는 방어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흑마법사와 싸우는 데 유용한 방어구…….”
흑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있어 제일 골칫덩이인 것은 바로 저주다.
저주는 몸을 썩게 하거나 피로하게 만들어 전투에 지장을 주곤 하는데 이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정도면 되려나?”
항마력 소재의 갑옷.
보통 항마력 소재의 갑옷은 보통 갑옷보다 무게가 훨씬 많이 나가는데 이 갑옷은 경량화 마법이 걸려있다.
한마디로 흑마법사를 비롯해서 다른 마법사를 상대할 때도 안성 맞춤이라는 뜻.
“이걸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직원에게서 결제를 마치고 데카드는 마지막 벨린다의 선물을 고르기 위해 백화점을 빙빙 돌았다.
[레오! 너는 뭐 아는 것 없냐?]
[…….]
레오는 묵묵부답.
평소처럼 입을 열지 않고 이번에는 별다른 몸짓도 없는 게 정말 떠오르는 것이 없나 보다.
보석류는 평소 근검절약하는 벨린다가 딱히 맘에 들어 할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아스카처럼 옷을 사주기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모른다.
[카론처럼 전투 쪽에 관련된 걸 사주는 게 어떠세요? 그 계집도 수련 말곤 관심이 없어 보이던데.]
‘수련이라…….’
데카드는 수련이란 단어에서 키워드를 찾았다.
감을 잡은 그가 바로 이동한 곳은 마도구 코너.
“여기에 아마 그게 있을 텐데…….”
마도구 코너를 뒤적거리며 데카드는 한 가지 물건을 찾아다녔다.
“아! 여깄다.”
데카드가 들어 올린 것은 언뜻 보기엔 그냥 동그란 접시 같았다.
하지만 이 접시 모양 원판에는 꽤나 엄청난 기능이 숨어있다.
“훨씬 업그레이드 됐나 보네? 나 때는 이런 게 시제품으로 나왔었는데.”
[그래서 이게 뭡니까?]
“전투 시뮬레이터지.”
원판을 바닥에 깔고 난이도를 설정하면 실체 홀로그램이 나와서 사용자를 공격한다.
그럼 사용자는 상대가 다칠 걱정은 전혀 없이 자신의 힘을 테스트해 볼 수 있다.
데카드는 원판을 10개 정도 구매한 후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모두 좋아하겠지?”
다들 취향에 맞는 선물들로 잘 고른 것 같아 데카드는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갔다.
* * *
주방에서 사진첩을 펼치고 바닷가에서 보낸 휴가 사진들을 펼쳐보던 아스카와 엘리스.
둘은 갑자기 현관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부장님 오셨나 본데?”
“데카드가 왔어요?”
“내가 나가볼게!”
오랜만에 만나는 데카드에게 휴가 때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잔뜩 말할 생각에 아스카는 벌써부터 입이 간지러웠다.
아스카가 총총 현관으로 걸어가는 사이 엘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데카드는 초인종을 누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드는 안 좋은 생각에 엘리스는 급하게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달려갔다.
“어서오세…….”
“아스카! 잠깐만!”
하지만 때는 늦었다.
아스카가 문을 열자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덩그러니 바닥에 물건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포, 폭탄……?!”
“엎드려!!”
엘리스가 몸을 날려 아스카를 바닥에 눕히자마자 현관에 놓인 폭탄이 불을 뿜었다.
콰아아아앙-!!
“무,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고드윈과 벨린다 카론이 하던 일을 전부 멈추고 현관으로 모였다.
폭발의 여파로 거의 뜯겨나가다시피 날아간 현관.
“으으…… 언니…… 괜찮아?”
“응. 조금 뻐근하긴 하네.”
제때 바닥에 엎드린 엘리스와 아스카도 다행히 귀가 먹먹한 것을 빼면 다친 데는 없었다.
둘이 바닥에서 일어나고 뻥 뚫린 현관 너머로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오는 데카드가 보였다.
“응? 여기 왜 이래?”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숙소의 입구가 갑자기 통째로 날아갔다.
“누가 마법이라도 잘못 썼어?”
“그런 거라면 마음이라도 편하겠는데…….”
“무슨 일인가. 설명해 봐라.”
카론이 아스카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 그게…… 초인종이 울려서 현관문을 열어봤더니 폭탄이…….”
“언제적 폭탄 테러야. 참나…….”
데카드는 한숨을 내쉬며 뚫린 집의 입구를 만져보았다.
다행히 겉면만 부서지고 속의 뼈대는 무사하다.
“오랜만에 오셨는데 이런 못난 모습만 보여 드려서 죄송해요.”
벨린다를 시작으로 부원들 모두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너희들만 무사하면 됐지. 이깟 집이야 고치면 되고. 그보다 누가 이런 급 낮은 짓을 한 거지?”
“흑마법사일까요?”
“걔네들이 직접 한 것 같지는 않은데.”
흑마법사들이 테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저주나 마법을 이용했을 것이다.
저런 폭탄을 사용하진 않았겠지.
“하지만 퇴마부의 존재를 흑마법사가 알게 된 건 확실해.”
최근 굵직한 흑마법사들과 여러 번 부딪힌 퇴마부.
그러다 보니 지금 이 숙소까지 들통 난 것 같다.
“숙소는 옮겨야겠네. 내가 너무 방심했어.”
최근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방심해 버렸다.
잠시 이 오물 같은 놈들의 습성을 잊은 것이다.
“어디로 숙소를 옮깁니까?”
“내 집으로 가야지.”
남은 거처는 그곳밖에 없다.
이번에는 비밀스럽고 조용하게 움직여야 한다.
테러 조직이 흑마법사가 아닌 것 같으니 지금은 몸을 빼서 정비하는 것이 옳다.
‘짹짹아.’
[알겠습니다.]
짹짹이의 코트 뒤편으로 까마귀들이 펄럭펄럭 하늘로 날아갔다.
이것들 모두가 데카드의 눈.
어딘가 음지에 숨어있을 테러 단체의 꼬리를 물어다 줄 것이다.
“지금 움직이자.”
“알겠습니다.”
“빨리 짐 싸고 내려올게요!”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이동하는 부원들.
꽤 오랫동안은 다시 짐을 쌀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숙소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캐리어를 꺼내 들었다.
짐도 몇 번 싸보자 이제는 익숙해져서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으로 다시 모였다.
“그럼 이제 가자.”
“네.”
“알겠습니다.”
어두운 밤.
짹짹이의 어둠을 커튼처럼 사용해 부원들의 몸을 덮었다.
가로등의 조명을 피해가며 어두운 골목길로 걸어가자 그림자들이 볼록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돼.”
대로로 가면 시간이 꽤나 걸리지만, 골목길을 통한다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굽이굽이 꼬인 뒷길을 지나 일행은 데카드의 집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는 방비 마법을 설치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어.’
짹짹이의 까마귀들에 더해 입구란 입구에 방비 마법을 모조리 설치했다.
이렇게 되면 마법사가 아닌 자의 침입은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봐도 된다.
“부장님의 집이 좋은지는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군요.”
“테러 조직한테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감사 인사는 주먹으로 해야겠군.”
데카드는 집에 도착하고 대문을 굳게 잠갔다.
“방은 다들 알아서 골라.”
데카드는 부원들을 올려 보내고 백화점에서 산 선물들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기분 좋게 숙소에서 꺼낼 계획이었는데 웬 눈치 없는 테러 단체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그 값이야 나중에 받는 걸로 하고…… 애들이 좋아하려나?’
“이게 그 선물들인가요?”
“응.”
엘리스는 선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의 선택에 감탄했다.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선물을 샀다는 것은 어지간히 상대를 잘 관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역시 데카드의 센스는 명불허전이네요!”
“그렇게 얼굴에 금칠 안 해도 돼.”
자신보단 마수들의 공이 컸으니 감사인사는 그들에게 돌려야 맞다.
[주인님, 찾았습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