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34화 (134/208)

134 내 학창 시절

[푸흡…….]

[크흡…….]

힙겹게 웃음을 참은 마수들.

그 엄청난 노력에도 소리가 찔끔찔끔 밖으로 새어나갔다.

그 웃음소리에 데카드가 뒤를 돌아보자 엘리스와 트리스도 입을 틀어막으며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하아! 이거 진짜 어이가 없네. 나 진짜 마탑 생활 잘했거든?”

“그, 그럼요! 저는 데카드를 믿…… 푸흡…….”

또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겨우 막은 엘리스는 허리를 숙이고 데카드가 안 보이게 끅끅 웃었다.

[솔직히 주인님의 평소 행실로 보아 믿음이 가지는 않습니다.]

“허어…….”

데카드는 이 억울한 마음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진저백이라도 무덤에서 일으켜 증명시키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모범생이었는지.

“진짜라니까 그러네? 내가 말이야. 역대 3학년 중에 톱이라고 입증되고 집행관 중에서도 동기 중엔 날 따라올 자가 없었어!”

“선배가 역대 3학년 톱이긴 하지만 전투력만 톱이지 않습니까?”

“크흠……. 내가 시험은 잘 못 봤어. 공부는 적당히만 했거든.”

트리스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공부를 하셨군요. 하긴, 마탑에서는 아무리 천재라도 머리를 싸매게 하는 문제들이 수두룩이니까요.”

“맞아.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필립 하는 거 보면 진짜 눈물 나더라.”

“집행부장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걔 나랑 집행관 동기잖아.”

집행부에서 만난 필립은 생각보다 범재였다.

거의 마탑 수준인 진급 시험에 데카드는 마탑 출신이니 그럭저럭 적응했으나 필립은 밤새 코피 흘려가며 공부했다.

그러다가 가끔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는데 그때는 룸메이트인 자신이 사제들에게 데려다줬어야 했다.

“어쨌든 난 모범생이었어.”

“선배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트리스는 말에 뜸을 들이며 자신이 들었던 데카드의 소문을 떠올렸다.

역대 3학년 전투력 톱이라는 이명 말고도 그에게는 다양한 별명이 있었다.

‘카사노바, 쓰레기, 왕재수, 미친 평민, 깡패 양아치.’

왜 다 별명들이 이 모양에 이 꼴인지 모르겠으나 데카드의 마탑 생활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 아니겠나?

“그래도 선배는 3학년 때 엄청 날라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래?”

“그냥……. 마탑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가게 주인들에게 들었습니다.”

마지아 섬의 도시에서 가게를 열고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은 데카드가 학생 시절일 때도 있었고 트리스가 학생 시절일 때도 있었다.

“크흠……. 3학년은 그래도 안전 빵이어서 많이 놀긴 했지.”

정확한 정보의 출처에 데카드는 발뺌하지 못하고 적당한 선에서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걸 아주 단단하게 이어버리는 엘리스.

“어떻게 많이 노셨는데요?”

“그러니까요.”

매년 수많은 학생이 오고 가는 마탑에서 두고두고 높은 악명으로 회자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러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아니…… 뭐……. 어떻게 놀긴, 재밌게 애들이랑 놀았지.”

“선배는 친구가 없으셨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가슴을 푸욱 찌르는 촌철살인에 심장이 아파왔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건 기분 탓일까?

[괜찮다! 마수왕님! 우리가 친구다!]

[맞아요! 저희가 항상 옆에 있어 드릴게요!]

[응응! 맞습니다!]

[…….]

‘고맙다.’

잠깐 슬퍼질 뻔했지만, 현재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나.

그때에 친구가 있었든 없었든 지금 행복하니 됐다.

“네? 그래서 어떻게 노셨는데요? 진짜 궁금해요.”

이어지던 자기 합리화 중에 엘리스가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질문했다.

데카드는 이걸 얘기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진심으로 고민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과거의 3학년이었던 자신은 양아치, 날라리가 맞았기 때문이다.

“으으음…….”

데카드는 신음을 길게 내뱉으며 학창 시절 이야기의 수위를 조절했다.

모든 사람에겐 비밀 얘기가 있지 않은가.

데카드에겐 그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을 뿐이다.

“3학년 때는 마수학을 제외하면 다른 수업들은 거의 다 빠졌었어.”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래도 되나요?”

“그럴 리가요.”

당연히 원래라면 어불성설이다.

암흑시대라는 배경과 그때의 데카드가 워낙 유망주로 각광 받고 있었기에 마탑도 어쩔 수 없이 눈 감아 주었을 뿐이다.

지금 같았으면 당연히 퇴학감.

“학교가 모른 체하고 넘어간다고 해도 교수들은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어.”

“그럴 만도 하지요.”

항상 정돈되고 자신의 통제 하에 있던 교실에서 이레귤러 한 마리가 날뛰기 시작했으니 당혹스럽고 화도 날 것이다.

그러던 중 밥 먹듯이 수업을 빠지고 놀러 다니는 데카드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한 교수가 그에게 마법을 날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싸우셨나요?”

“싸웠지.”

그때의 자신은 앞뒤를 재는 성격이 아니어서 걸어오는 싸움은 그게 누구든 전부 받아주었다.

그리고 절대 지지 않았다.

힘겨운 싸움인 건 확실했으나 데카드는 이미 교수급을 뛰어넘었다.

“그때 그 교수가 지고 나서부턴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지.”

“……정말 지금 같아선 상상도 못 할 일이군요.”

트리스는 지금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마탑에 데카드 같은 학생이 있다고 상상해 보았다.

수업은 전부 빠지고 교수와 전면 승부를 펼치는 문제아.

이 밖에도 여러 문제를 저지른다니.

머리가 다 지끈거리다.

“그때의 총장님에게 존경의 인사라도 하고 싶군요.”

트리스는 총장으로 살아오면서 데카드를 담당했던 총장의 마음에 십분 공감했다.

아마 매일매일 지뢰밭을 걷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1, 2학년 때는 모범생이었다고.”

“데카드가 생각하는 모범생이 뭔데요?”

“수업 잘 듣고…… 필기 잘하고 안 졸면 되는 거 아닌가?”

데카드가 말하는 건 그냥 학생의 기본 소양 같았으나 기준점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겠는가.

둘은 딱히 반박을 하지 못하고, 마수들은 그럼 자신들도 모범생이라며 깔깔댔다.

그렇게 떠들다 보니 어느새 디에고의 텔레포트 기계 앞까지 도착했다.

“그럼 저는 마탑으로 가보겠습니다.”

“이제 가는 거야?”

“네.”

트리스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데카드와 엘리스를 번갈아 보았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이 둘의 청첩장을 보게 될까 봐 등골이 오싹 거릴 정도로 무서웠다.

트리스는 숨을 짧게 내쉬며 엘리스에게 다가왔다.

“네?”

“잠시 귀 좀…….”

데카드는 듣지 못하게 트리스는 속닥속닥 작은 소리로 얘기했다.

“네, 네……?! 아, 아니에요! 저, 저, 저는 절대 안 그럴 거예요!”

“믿겠습니다.”

뭔 얘기를 했는지 엘리스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그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작 트리스의 얼굴은 태연한 것이 둘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선배.”

“응.”

트리스는 엘리스를 넘어 데카드의 앞으로 왔다.

“이제 오랫동안 못 볼 테니 참아주십쇼.”

“뭘?”

트리스는 데카드의 턱을 양손으로 잡고 까치발을 섰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포개지는 둘의 입술.

디에고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트리스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계속 밀어붙였다.

3분가량 숨도 못 쉬고 붙어 있던 둘은 겨우 떨어졌다.

“후우…… 사람들 다 보잖아.”

데카드는 입술을 손등으로 스윽 쓸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라죠.”

트리스는 싱긋 웃으며 기계 위로 올라갔다.

데카드의 얼굴을 보면 겨우 움직였던 발이 또 멈출까 봐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트리스가 사라지자 여운이 가시고, 왁왁 화내는 요르와 아직 얼굴이 빨간 엘리스가 보였다.

“아까 트리스가 무슨 얘길 한 거야?”

“네, 네?! 진짜 별거 아니에요!”

진짜 별거 같은데?

이런 거야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 데카드는 엘리스와 같이 기계 위로 올라갔다.

슈욱-!

잠깐 눈 감았다 뜨니 이제는 익숙한 왁자지껄한 도시의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다사다난했습니다!]

[쳇! 붉은 머리 계집! 다시 만나면 잡아먹을 거야!]

[…….]

[이제는 뭐 하나? 우리!]

티이라의 물음에 데카드는 잠깐 생각해 보았다.

아직까지 임무도 딱히 떨어진 게 없고 할 일도 딱히 정해진 게 없다.

다시 텅 빈 시간에 데카드가 고민하고 있을 때 엘리스가 저 멀리 저택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 데카드가 샀던 집 아닌가요?”

“맞아. 잠깐 애들 얼굴이나 보고 갈까?”

부원들과도 떨어진 지 꽤나 지났으니 슬슬 그리워졌다.

둘은 성큼성큼 새로운 퇴마부 숙소로 걸어가 대문을 열었다.

대문은 당연히 잠겨 있었지만, 집주인인 그에겐 당연히 열쇠가 있었다.

“수련은 열심히 하나 본데?”

깨끗하던 마당 군데군데가 파여 있고 마나의 잔향이 남아있는 게 최근까지도 수련을 했다.

데카드는 이렇게 수련도 열심히 하고 매일같이 정진하는 부원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엘리스 먼저 갈래?”

“왜 그러세요?”

“난 부원들 선물 사고 올게.”

“선물 좋죠! 다녀오세요!”

평생 선물이란 걸 받아본 경험이 전무하다 싶은 엘리스는 선물이라는 말에 유난히 기뻐했다.

그렇게 데카드가 선물을 사기 위해 다시 저택을 벗어나고 그녀는 마당 안쪽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똑똑-

“누구세요?”

안쪽에서 들리는 익숙하고 발랄한 목소리.

“엘리스야.”

“언니!”

아스카가 단박에 문을 열고 뛰쳐나오며 곰 인형 안듯 엘리스를 끌어안았다.

엘리스도 이제는 익숙해진 그녀의 포옹 방식에 같이 아스카를 안아주었다.

엘리스가 왔다는 소리에 계단에 있던 벨린다도 한달음에 내려왔다.

“언니. 오랜만이야.”

“벨린다. 잘 지냈어?”

“물론이지.”

“어서 들어와! 언니!”

엘리스는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선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는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근데 언니!”

“응?”

“향수 바꿨어?”

“향수……?”

엘리스는 애초에 향수를 쓰지 않는다.

냄새가 진하면 위치를 들킬 위험이 있어 암살자는 절대 향수 근처에도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뭔가 언니한테서 나는 냄새가 달라진 것 같아, 킁킁…….”

“그러게? 꽃향기가 나는 것 같은데.”

엘프의 마을에 오래는 아니지만 잠깐 어울리고 왔다 보니 그들의 냄새가 자신에게까지 베어버렸나 보다.

엘리스는 자신도 옷의 냄새를 맡아보았으나 딱히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부장님하고 총장님은?”

“트리스는 마탑으로 돌아갔고 데카드는 곧 올 거야.”

선물은 비밀로 해야 더욱 그 재미가 있으니 엘리스는 깊게 말하지 않았다.

“엘리스 왔어?”

“안녕. 고드윈.”

주방에서 고드윈은 카론과 같이 점심을 만드는 중이었다.

맨날 개별로 먹거나 캔 요리를 즐기는 그들이었지만 새로운 숙소에 오고 나서부턴 이렇게 함께 식사하는 게 익숙해졌다.

“그동안 뭐 하고 지냈나.”

카론이 닭 가슴살을 구우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냥 집에 있으면서 몸도 좀 풀고 휴가도 갔다 왔죠.”

“우리도 휴가 갔다 왔는데! 잠깐만!”

아스카는 위층으로 우당탕탕 뛰어 올라가며 사진첩을 가지고 내려왔다.

식탁에 올려놓으니 그것은 쿵하고 큰 소리를 내었다.

“어디 갔었는데?”

“우리는 바다.”

“맞아! 바다에 갔는데 카론이 수영을 못해서 허둥대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데! 언니도 봤어야 해!”

카론은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돌렸다.

“크흠……. 빨리 사진이나 보여줘라.”

“맞다! 지금 보여줄게.”

사진첩을 열자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과 노을을 등지며 부원들이 행복해하는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수련은 잊고 그들은 모래 위에서 뛰어도 보고 굴러도 보며 열심히 놀았다.

“여기 봐봐! 바다 진짜 예쁘지!”

푸르른 바다는 그 아래가 투명하게 비쳐 커다란 사파이어를 보는 듯했다.

“예쁘다.”

“그리고 여기 또…….”

아스카가 한창 사진을 보여주고 있을 때 숙소의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