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33화 (133/208)

133 작별

씨 엘리퍼트가 쏟아내는 얼음과 렌달의 불꽃이 충돌했다.

분명 전투력 측정 때만 해도 얼음과 물 속성밖에 사용하지 못했는데 그새 주 속성을 추가했나 보다.

“불 속성도 꽤나 잘하는데?”

“아주 나를 아랫것 다루듯이 하는구나!”

렌달은 데카드의 여유로운 말투에 더욱더 열불이 뻗쳤다.

“파이어 미스트!”

솨아아아-

붉은 알갱이들이 허공에 분사되기 시작했다.

저 알갱이들은 하나하나가 아주 뜨거운 불덩이.

조금만 피부에 닿더라도 맨살은 그냥 녹아버릴 것이다.

“소환!”

불 속성에 얼음 속성인 씨 엘리펀트로 밀어 붙기에는 불리하다.

지금 소환한 마수들은 역소환시키고 새로운 마수를 소환한다.

이번에는 물 속성으로.

“어떤 속성이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편리하다. 이것이 소환사의 장점이지!”

“갑자기 뭐라는 거냐!”

“그냥! 네가 소환사로 이적해 보면 어떨까 해서.”

이 렌달이라는 문제아는 소환사를 해도 꽤나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밝은 빛무리의 소환진이 여러 개 나타났다.

끼기긱-

아쿠아 돌핀 세 마리가 등장과 동시에 물보라를 일으켜 파이어 미스트를 중화해 주었다.

“흐음……. 이 정도가 아슬아슬하군.”

마수들의 마나 없이 데카드의 마나로만 승부에 임하려면 철저한 마나 관리가 필수다.

렌달과 싸우려면 높은 서클의 마수가 필요하고 아쿠아 돌핀은 데카드가 꺼낼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다.

“그딴 물고기 새끼들로 뭘 하겠단 거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단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아쿠아 돌핀은 물 속성 마수 중에서도 소환사들이 필수로 가져야 한다고 평가되는 뛰어난 마수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렌달에게 똑똑히 느끼게 해줄 것이다.

“파이어 랜스! 파이어 체인!”

기다란 파이어 랜스의 창대 부분을 파이어 체인이 잡아냈다.

그러자 원래는 사출기였을 파이어 랜스가 렌달의 조종에 자유롭게 방향을 틀며 움직였다.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

“역시 넌 소환사 감인데?”

“아가리 좀 닥쳐라!”

파이어 랜스 네 개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살이 익을 것 같은 열기를 방출했다.

“한 마리는 방어에만 집중. 나머지 두 마리는 때를 봐서 공격한다.”

키기긱-

알겠다는 듯 세 마리의 돌핀들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죽어라!!”

파이어 렌스가 데카드를 바비큐 꼬치로 만들기 위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돌핀은 기다란 꼬리로 허공에 글씨를 그리듯 움직여나가더니 곧 거센 물의 장벽이 만들어졌다.

“공격해!”

최선의 방어는 공격.

장벽이 조금이라도 공격을 막아줄 때 이쪽에서 페이스를 뺏어 와야 한다.

돌핀들이 입에서 총알 같은 물방울을 연속으로 뱉어냈다.

살상력은 없지만 맞게 되면 정신이 날아갈 것처럼 아프다.

“이런……!”

설마 반격을 해올 줄 몰랐던 렌달은 재빨리 바닥을 굴러 피했지만, 다리 쪽에 하나를 허용해줄 수밖에 없었다.

“크흑…!!”

“이런 게 경험의 차이지.”

아까 렌달과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전혀 다른 상황 판단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이끌어냈다.

렌달은 입술을 피가 날듯 깨물며 아까 맞은 다리를 붙잡았다.

고통을 억지로 떨쳐내고 부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서는 렌달은 위태로워 보였다.

“이제 그만 포기해라.”

“난 아직 내 비기를 꺼내지 않았어!”

“호오……. 그 나이에 벌써 오리지널이 있어?”

오리지널 마법은 마법사 본인의 철학과 세계관이 담긴 마법으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마법이다.

“밤낮없이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네놈을 죽일 수 있을까.”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뭔데?”

“크크큭……. 재촉하지 않아도 지금 보여주지.”

렌달은 조소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양팔을 반대쪽으로 교차하며 뻗었다.

쿠오오오오-

그러자 진동하기 시작하는 공터.

거대한 마나의 움직임에 일대의 땅이 버티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꽤나 기대감을 주는 연출인데?”

“그게 마지막 유언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건 두고 봐야지.”

렌달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내쉬며 호흡을 조절했다.

‘입김?’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여긴 따뜻한 남쪽 숲인데 렌달의 입에서 입김이 연신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쩌저저저적-

곧이어 고막을 때리는 얼어붙는 소리.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얼어붙은 것은 없었다.

“이건 피할 수 있는 기술 따위가 아니다. 무조건 적중하는 필살의 마법이지.”

렌달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영창을 완료했다.

“빅 프리즈.”

* * *

“데카드가 늦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릴없이 할렘 노부부의 집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둘은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데카드를 계속 기다렸다.

마음은 걱정돼서 죽겠지만 그가 자신을 믿으라 하였으니 어쩌겠나, 믿어야지.

“설마 렌달이 데카드를 이긴 건 아니겠죠?”

“제가 마탑에서 마지막으로 본 렌달의 실력이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트리스는 디에고에서 처음 삼인조와 마주쳤던 때를 떠올렸다.

자신의 감각을 툭툭 건드릴 정도로 거슬리던 렌달의 마나.

마탑의 총장인 자신에게 거슬릴 정도의 수준까지 학생이 올라섰다는 얘기다.

“마수님들이 있는 선배라면 렌달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이길 수 없겠지만…….”

데카드가 1000년의 세월이 준 힘을 버리고 싸우는 지금이라면…….

트리스도 감히 승패를 점칠 수 없었다.

잠시 트리스의 머릿속으로 안 좋은 상상이 들어차는 사이 누군가 다급하게 집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

엘리스가 문을 열자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은 키이라는 다른 손으로 열심히 한 곳을 가리켰다.

“키이라? 왜 그러세요?”

“올렌에게 방금 들은 것인데 귀인에게 일러준 공터에서 말도 안 되는 마나가 솟구쳤습니다! 어서 가봐야 해요!”

키이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쌩 하고 그녀를 지나치며 엘리스와 트리스가 전력으로 공터를 향해 뛰었다.

엘리스는 가면을 쓰고 흑무를 둘러 전력을 다해 뛰쳐나갔고 트리스는 헤이스트를 중첩으로 쌓아가며 달렸다.

그녀들이 뛰면서 생기는 돌풍에 엘프들이 빨랫줄에 걸어놓은 빨래들이 휘날리고 떨어졌다.

‘제발……! 데카드! 설마 아니겠죠?’

‘살아만 있어주십쇼.’

둘이 전력을 다해 공터로 뛰어왔을 때 상황은 이미 종료된 지 오래였다.

잔디와 들풀이 자라있던 공터는 새하얗게 얼어붙어 숨이 멎었다.

와작- 와작-

얼어붙은 풀들이 부서지며 마치 빙판 위를 걷는 듯이 미끄러웠다.

“누가 한 짓이죠?”

말을 할 때마다 엄청난 기온 차에 입김이 쉼 없이 나왔다.

“렌달의 마나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에게 이 정도의 역량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데카드! 어디 있어요!”

차가운 얼음 안개가 공터를 가득 메꾸고 있어서 이 공터 어딘가에 있을 데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렌달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둘 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도대체가 보이지 않았다.

“선배! 어디 계세요!”

“트리스! 나 여기 있어!”

메아리처럼 들리는 데카드의 목소리.

둘은 급하게 그곳으로 뛰어갔다.

“격렬한 싸움이었나 보군요.”

“생각보다 잘 싸우더라고.”

데카드는 마법의 여파로 하반신이 얼어붙어 땅에 붙어버렸다.

잘 녹이면 떼어낼 수 있지만 마나를 다 써버려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제가 녹여 드리죠.”

트리스가 조심스럽게 데카드의 하반신을 녹이기 시작하고 엘리스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설명하자면 긴데…….”

데카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빅 프리즈의 효과를 확실히 보았다.

빅 프리즈는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수분이란 수분은 전부 얼려버린다.

몸 겉에 있는 땀을 비롯한 아주 약간의 수분도 그 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남는 마나를 다 털어 넣어서 라바 지라프를 소환했었지.”

라바 지라프는 불속성 마수로 기린을 닮은 외형을 하고 있다.

지라프는 길쭉길쭉한 몸을 사용해 강력한 화력의 불기둥을 연신 뿜어냈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절반은 막았잖아? 그래도.”

지라프는 빅 프리즈를 절반 가까이 막아내고 역소환되었다.

아마 데카드가 5서클에 오르지 못했다거나 마나가 조금만 더 부족했더라면 렌달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그래서 렌달은 어디 있습니까?”

“저기 쓰러져 있어.”

데카드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지라프가 역소환되기 직전 커다란 화염구가 렌달에게 작렬했고 지금은 그 여파로 기절 중이다.

엘리스는 마음 같아선 산 채로 회를 떠주고 싶었으나 꾹꾹 눌러 참았다.

“이놈은 다시 감옥에 가두고 올게요.”

“같이 가. 나도 이제 움직일 수 있어.”

트리스가 섬세하게 녹여준 덕에 옷도 타지 않았고 다리도 다시 감각을 되찾았다.

렌달이 펼친 빅 프리즈에서 벗어나 다시 따뜻한 마을로 돌아오자 한결 살 것 같은 기분이다.

“여러분! 무사하신가요?”

“네. 다행히도요.”

“결국 그 침입자가 문제였군요!”

키이라가 화를 내며 얼굴을 붉히자 주변의 식물들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희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조금 참으십쇼.”

“후우……. 알겠어요.”

“그리고 이제 슬슬 떠나야 할 것 같아.”

“네? 왜요?”

데카드의 갑작스러운 작별 소식에 키이라의 눈가가 그렁그렁해졌다.

“혹시 저희들이 맘에 들지 않아서 그러신 건가요……?”

“아니,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그, 그럼 왜……?”

데카드는 싱긋 웃으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너무 오래 있는 것도 민폐고 시간이 지금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이곳, 시르가의 엘프들과 이제 친구가 되었으니 다음에 또 놀러 오면 그만이다.

거리도 멀고 종족도 다르지만 꽤나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다.

“다음에 또 오시는 거죠?”

“그렇다니까.”

데카드는 풀었던 짐을 다시 챙기고 마수들도 다시 데카드의 안으로 돌아왔다.

[마수왕님! 어디 갔다 이제 오세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크흠…… 저희 아침밥은 언제 먹을까요?]

[…….]

[티이라! 잘 잤다!]

마수들도 자연의 정기를 듬뿍 먹었더니 다들 마수계에서 있던 것처럼 활발해졌다.

시르가의 입구 앞에서 키아라는 무언가를 들고 서 있었다.

일행이 다가오자 키이라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데카드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엘프의 친구라는 증표예요.”

월계관 모양으로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모습의 반지.

가만히 들고만 있어도 레스펄 포레스트에 온 듯 숲의 냄새가 향긋하게 올라왔다.

“고마워.”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하죠. 귀인 덕분에 저는 과거를 되찾았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알게 됐어요. 나중에 저희의 힘이 필요하면 꼭! 말씀하세요.”

“말뿐이라도 고맙네.”

데카드는 기특한 키이라의 머리를 한 번 거칠게 쓰다듬곤 결계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저 삼 인방은 깨어나면 마탑으로 복귀하라고 전해 주십쇼.”

“네. 꼭 전할게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안녕히 가세요.”

엘리스를 마지막으로 결계를 나오자 그 뒤에는 뭐가 있었냐는 듯 나무가 그득한 숲만 보였다.

마치 좋은 꿈을 꾼 것처럼 한순간에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셋은 쳐두었던 텐트를 회수하고 디에고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아! 데카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데카드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엘리스는 아침부터 미뤄두었던 질문을 말했고 트리스도 궁금한 듯 귀를 쫑긋거렸다.

“내 학창 시절?”

데카드에겐 사실 너무 오래전 얘기라 기억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잠깐 기억을 되새기던 데카드는 입을 열었다.

“모범생.”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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