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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30화 (130/208)

130 축제

“내거는 여기 있다.”

[제가 저놈 콧대…… 아니 귀를 다 눌러 드릴게요!]

환한 빛무리가 데카드의 왼손으로 모이며 한 마리의 백사를 닮은 장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활에 모든 엘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 활은 뭐지?”

“엄청 신기하고 멋있게 생겼네요. 나도 하나 갖고 싶다.”

안타깝게도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요르의 녹색 활시위가 당겨졌다.

‘화살도 없이 시위를 당긴다고?’

라아가 의아한 눈으로 데카드의 기행을 쳐다보고 있을 때 곧 마나로 만든 화살이 시위에 걸렸다.

한계까지 당겨진 활시위.

팽팽해진 시위에 걸린 화살은 받을 수 있는 모든 힘을 전달받았다.

“후우…….”

몸 안에 공기를 빼서 최대한 떨림을 줄인다.

목표는 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

슈우우우우욱-!!

녹색 시위에 걸려있던 마나 화살이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잎까지 도착했다.

엘프들은 특유의 뛰어난 시력으로 결과를 확인.

그러고는 침음을 삼켰다.

“더 어려운 건 없나?”

나뭇잎의 정중앙이 정확히 관통된 채 아직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뭐라 입을 열지도 못했다.

인간이 엘프와의 궁술 싸움에서 동률을 보여주다니.

아마 역사에서도 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저를 따라오시죠.”

라아는 활의 손잡이를 꽈악 움켜쥐다가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수고했어, 요르.’

[아니에요! 저는 그저 마수왕님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쁠 따름이에요!]

요르가 활에서 다시 안으로 되돌아가고 데카드는 라아의 뒤를 따랐다.

트리스와 엘리스도 다시 간식을 집어넣으며 둘을 따라갔다.

“설마 라아를 이길 줄은…….”

키이라는 라아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데카드의 패배를 예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귀인은 아직 여유로웠다.

“여, 역시…… 귀인은 귀인인가…….”

키이라도 감탄에 마지않으며 얼른 데카드의 다음 시합을 보기 위해 나섰다.

라아가 다음 시합 장소로 선정한 곳은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야생의 숲.

“시합은 간단합니다. 달리기.”

“달리기?”

“그렇습니다. 이 방향으로 쭉 가다 보면 노란색 깃발이 하나 있는데 그걸 기점으로 제일 빨리 이곳에 다시 들어오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마법은 상관없는 건가?”

아마도 거절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라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마법보다 훨씬 뛰어난 카드 패를 가지고 있는 건지 라아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아까의 활쏘기 시합보다 더 많아진 관중들은 출발선 뒤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개중에는 트리스, 엘리스, 키이라도 있었다.

“그, 그래도! 이번에는 귀인에게 어렵지 않을까요? 엘프들은 태어날 때부터 숲에서 뛰어다니는 종족인데.”

“흐음…… 글쎄요. 보통 인간이 엘프와 달리기 시합을 한다고 하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선배는 뭔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키이라도 데카드와 다니다 보면 그게 뭔 뜻인지 아실 거예요.”

키이라가 계속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둘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시합은 시작됐다.

둘 모두 땅을 거칠게 박차며 뛰어나갔다.

데카드도 인간 축에선 굉장히 빨랐지만, 엘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슉-! 슈욱-!

라아는 가지들을 밟고 시원시원하게 앞으로 나아갔고 데카드는 시야를 가리는 잔가지를 헤쳐가야 했다.

“아주 입이 귀에 걸려있군.”

잠깐 달리면서 위를 보자 여유로운 표정과 함께 실실 웃고 있는 라아가 보였다.

그러나 아직 라아가 웃을 타이밍은 아니었다.

아직 데카드는 패를 꺼내 보이지 않았으니까.

[마수왕님! 준비 다 끝났습니다!]

[시킨 것! 다 끝냈다!]

‘오케이.’

마수들이 몸 곳곳에 퍼뜨려놓은 마법 한 가지.

“헤이스트 16연발.”

조용히 주문을 읊조리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후우우욱-!!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앞으로 치고 나가는 데카드를 멍하니 지켜보던 라아가 이를 악물었다.

‘이번엔 지지 않는다……!!’

길쭉한 다리를 최대한 넓게 벌리고 가지 사이사이를 넘나들자 조금씩 데카드와의 차이가 좁혀졌다.

도대체 어떻게 저 인간은 어떻게 한 건지 한 번 발이 움직일 때마다 몇 미터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된 거 나도 마법을 쓴다!’

라아도 데카드처럼 헤이스트 마법을 사용했다.

엘프가 인간보다 훨씬 유리한 달리기로 시합을 하면서 헤이스트까지 사용한다는 것에 자존심은 이미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패배까지 하게 된다면 올렌을 볼 낯이 없다.

“헤이스트!”

헤이스트를 사용한 라아는 아까보다 조금 더 데카드를 따라잡았다.

그러나 그를 앞질러간다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대체 왜! 같은 헤이스트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야!’

그건 중첩의 차이다.

중첩은 마법 위에 같은 마법을 다시 한번 더 쌓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중첩은 잘못하다간 술자에게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안정적으로 이 중첩만 하는 게 보통.

[16중첩을 한 헤이스트인데 같을 리가 없지!]

[어떻게든 되서 다행입니다!]

[…….]

[솔직히! 실패할 뻔했다! 아까! 나!]

마수들이 헤이스트를 4중첩을 쌓아서 보내준 것을 데카드가 합쳐 16중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러니 보통의 헤이스트와는 궤를 달리한다.

“깃발이다!”

정신없이 달리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깃발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이곳에서 한 바퀴 돌아 다시 출발점까지 가야 하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서 주체할 수 없다.

‘이러다간 튕겨져 나가겠어!’

너무 큰 속도에 저항하면 몸이 버티지 못하고 무리가 가거나 아니면 저 멀리 튕겨져 버린다.

[마수왕님! 저를 사용하십쇼!]

고오른이 커브를 돌아야 되기 직전 건틀렛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데카드는 순식간에 그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건틀렛을 낀 왼쪽 손을 땅바닥에 박아 넣었다.

단단한 지지대가 된 왼손을 믿으며 데카드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카가가가가각-!!

땅이 거칠게 파이는 소리와 함께 데카드가 날아갈 듯 크게 움찔거렸지만, 왼손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해주었다.

“좋았어!”

성공적으로 턴까지 마친 데카드는 다시 헤이스트를 사용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전부 똑똑히 본 라아는 입에서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방금 그 말도 안 되는 방향 회전은 뭐란 말인가.

라아도 깃발을 돌아 최대한 열심히 뛰어보았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와아아아아-!!

데카드가 출발선까지 다시 도착하자마자 엘프들의 뜨거운 환호성이 이어졌다.

시르가에 처음 왔을 때 받았던 눈빛이나 반응에 비하면 부담스러울 정도다.

“데카드! 여기 물이요!”

“수고하셨습니다.”

“응, 고마워. 후우…….”

숨을 한 번 돌리며 엘리스가 준 물을 들이켜는 사이 라아가 도착했다.

라아는 뭔가 분하거나 하는 표정이 아닌 뭔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데카드에게 다가왔다.

“인정하겠습니다. 저의 패배를.”

“다음 시합은 또 없나?”

막상 하다 보니 오랜만에 땀도 빼고 재밌었다.

밥 먹기 전에 이런 게 있다면 또 해보고 싶은데 라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다음은 없습니다.”

“그런가? 아쉽게 됐군.”

데카드는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키이라를 바라보았다.

아직 얼이 빠져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신비로움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저, 정말 놀라워요! 귀인!”

“달리기 시합 이긴 것 가지고 뭘.”

데카드의 말만 들어보면 확실히 그래 보이지만 이건 엘프와 인간의 달리기 시합이었다.

애초에 인간이 이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시합이었던 것이다.

“이제 마을의 주민들도 귀인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나를?”

“네. 주변을 둘러보십쇼.”

데카드는 키이라의 말대로 구경꾼들에게 눈을 돌렸다.

아까전만 해도 눈에 그득하게 들어차 있던 혐오와 불쾌감 대신 호기심과 자신을 신기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마을에서 험한 일을 당할 걱정은 조금 덜어도 되겠네요.”

“저희를 보는 시선은 아직 곱지 않습니다만 뭐,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다시 키이라를 따라 마을의 광장으로 나왔을 때는 아까 그녀가 일러두었던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집집마다 각자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가져와 커다란 식탁에 올려두었다.

“와아! 냄새가 엄청나요!”

“과일과 채소만으로 이런 냄새라니…….”

분명 엘프는 채식주의자라 고기는 식탁에 일절 없을 텐데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위를 괴롭히는 냄새에 정신이 팔렸을 때 키이라가 셋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데려왔다.

“제가 신기한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축제 때만 하는 것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키이라는 광장 중앙에 서서 합장을 하고 조용히 집중에 들어갔다.

그녀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푸른 입자가 조금씩 모여들었다.

입자들이 하나둘 모여 키이라의 손은 어느새 푸른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자연의 축복이여…… 시르가의 빛이 되어주소서.”

합장하던 양손이 천천히 떨어지더니 그녀의 양팔이 양쪽으로 화악 벌어졌다.

우우우우우웅-

그러면서 일어난 마나의 공명.

그것은 커다란 돔 형태로 주변에 퍼져 나가면서 마을 끝까지 뻗어 나갔다.

“이제 나무들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키이라가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닦으며 밝아진 얼굴로 주변에 가득한 식물들을 가리켰다.

“……대단하군요.”

“마수계보다 아름다운 자연은 처음이네.”

“꿈에 나올 것 같은 세상이에요.”

셋 모두 입을 벌리고 감탄할 정도로 시르가는 달라져 있었다.

공명이 식물을 감싸고 간 자리에는 모두 아름다운 꽃이 펴져 있었고 나무에는 맛있어 보이는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각양각색의 꽃들은 모두 자신을 뽐냈다.

커다란 꽃의 파도에 몸을 맡긴 것 같은 이 기분.

어디서도 느껴볼 수 없으며 오직 이곳에서만 알 수 있는 기분이다.

“후훗. 대단하죠?”

“이게 마법입니까?”

트리스는 이 마법과도 같은 일을 보고 머릿속으로 떠오른 질문들이 한 가득이었다.

키이라는 싱긋 웃으며 친절히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엄밀히 말하면 마법이지만 저희는 이것을 자연의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엘프 말고는 할 수 없는 마법이기에 인간의 눈과 머리론 이해할 수 없다.

트리스는 작은 노트와 펜을 꺼내 방금 본 마법의 특징과 효과를 자세히 적어갔다.

교수란 직책을 달고 있는 트리스는 이 중에서도 탐구욕이 엄청났다.

이대로 가다간 앉은 자리에서 논문 하나를 뚝딱 만들어낼 기세다.

“그럼 축제를 시작해볼까요?”

주민들은 서로가 해온 음식들을 맛보았고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과 인사도 하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

음악대는 신나는 춤곡들을 계속 연주했고 엘프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젊은 남녀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열정적으로 춤을 췄다.

늙은 노부부는 오랜만에 개최된 축제를 즐기며 느긋하게 서로의 허리를 잡고 몸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 나도 데카드랑…….”

키이라가 쓴 마법을 분석하느라 트리스의 정신이 팔린 사이 얼른 자신이 먼저 데카드에게 가야 했다.

“데카……!”

저기 구석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데카드를 부르려는 찰나 엘리스는 반갑게 들었던 손을 다시 내렸다.

“저랑 춤을 추실래요?”

“아니에요! 저랑 추시는 게 어때요?”

“저랑 추시면 후회 안 하실 거예요! 저는 춤을 아주 잘 춘답니다?”

데카드는 이미 젊은 엘프 여자들에게 춤 신청을 받느라 정신없었다.

주위에 갑자기 불어난 인원에 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후우…….”

엘리스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불어난 인파와 그 중앙에 있는 데카드에게 걸어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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