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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27화 (127/208)

127 엘프 소대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초, 초, 총장님……?!”

설마 디에고에서 마탑의 총장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3학년들에겐 가끔 마법 수업을 해주기도 해서 안면이 트인 셋과 트리스.

둘은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라 하는데 그중 렌달이 유일하게 떨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말했다.

“저희는 교외 임무 중이었습니다. 이곳 디에고에서 갱 조직이 자리 잡고 있고 그걸 격파하라는 임무입니다.”

교외 임무는 학생들이 섬 바깥으로 나가서 마탑으로 들어온 퀘스트를 해결하는 걸 말한다.

학생들은 이 교외 임무로 용돈도 벌고 자신의 스펙도 쌓을 수 있다.

“3학년이 맡을 임무치곤 초라해 보이는군요.”

“잠깐 용돈이 필요했는데 부모님의 손을 벌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트리스는 납득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렌달이 물었다.

“그런데 총장님은 디에고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휴가 중입니다.”

짧게 한마디로 끝낸 대화.

트리스는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곧바로 레스펄 포레스트로 이동했다.

옆에 있던 두 명은 아무 일 없이 상황이 지나가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진짜 위험했어.”

“그러니까. 하필 총장님이 여기 있을 줄은……. 렌달?”

안심해하는 둘과 달리 렌달은 트리스가 사라진 방향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왜 그래?”

“총장님이 사라진 방향으로 가면 뭐가 나오지?”

이 중에서 디에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던 카슨이 대꾸했다.

“레스펄 포레스트가 나올걸? 저 방향에는 딱히 디에고의 명물이 있진 않아.”

“레스펄 포레스트…….”

렌달은 잠시 눈을 감으며 고민했다

자신이 찾고 있는 그 망할 소환사 용병이 있는 곳과 총장이 휴가를 보내러 온 곳이 겹쳤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둘이 어쩌면 동행한 게 아닐까.

‘한낱 용병과 마탑의 총장이 어울려 다닌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마탑의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트리스와 데카드라는 용병은 서로를 굉장히 살갑게 대한다고 한다.

렌달은 도박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도 레스펄 포레스트로 간다.”

“진짜……?”

“거기 숲 엄청 험하고 넓어! 까딱하다간 길 잃어버린다니까?”

렌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숲 깊이는 아닐 거야. 초입과 가까울 거다. 따라와.”

“아아…….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

무라타의 작은 염려와 함께 렌달은 꾸물거리지 않고 트리스가 움직인 방향으로 걸어갔다.

* * *

“하아암….”

한편 렌달이 복수를 위해 죽도록 찾고 있는 남자는 이제 막 기지개를 켰다.

아직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마수들을 넘어 텐트 바깥으로 나오자 꺼진 모닥불이 데카드를 맞이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응.”

짹짹이는 한숨도 안 잔 건지 의자 옆에 쌓인 책만 한가득이었다.

밤새 책만 읽어도 짹짹이의 눈에는 일말의 피로가 보이지 않았다.

“안 졸려?”

“딱히 졸리진 않습니다.”

짹짹이는 그렇게 대답한 후 다시 데카드에게 코트로 돌아갔다.

데카드는 신발을 마저 신고 텐트 안에 있는 마수들을 자신의 안으로 불러들였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숲 안쪽으로.’

어젯밤 동안 계속 흑마법사가 이 숲에 있다는 사실이 걸려 잠을 설쳤다.

바퀴벌레와 동침하는 이 더러운 기분을 지우기 위해 데카드는 직접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 허당 엘프 아가씨가 일을 잘 처리했는지.

[벌써부터 사기가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파놓은 길을 벗어나 깊은 숲길에 들어서자 짹짹이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무들이 사라진 생기 대신 사기[死氣]를 내뿜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이게 애들이 말하던 죽은 나무로군.”

하얗게 질려버린 나무는 빠르게 부패하고 썩어갔다.

송송 뚫려버린 기둥의 구멍으로 구더기가 쏟아지는 장면은 빈속을 아리게 했다.

[이쪽은 아무래도 최근에 생기가 빨린 듯합니다. 아직 완전히 썩기까지 시간이 걸려 보이는군요.]

“그럼 이쪽 방향으로 쭉 가면 흑마법사가 있다는 거네.”

이제 정확한 방향을 잡았으니 속도를 낼 시간이다.

이런 숲에선 돌부리나 튀어나온 나무뿌리가 많아 뛰기가 어렵다.

그러니 최근 보았던 한 움직임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그 아가씨가 이렇게 했었나?”

적당히 두께가 되는 나뭇가지를 밟고 사이사이를 넘나드는 이동기술.

엘프족

레인저들이 사용하는 기술 같은데 운동 신경만 있으면 인간도 사용할 수 있었다.

“오오! 빠르다, 빨라!”

이 움직임에 익숙해지자 점점 속도를 높여보았다.

만화 속에서 보던 닌자처럼 잎들 사이에 숨자 위를 보지 않는다면 데카드를 찾을 수 없었다.

썩은 나무의 가지는 피하고 아직 멀쩡한 나무의 가지들만 밟아가자 곧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캬하하! 오늘 무슨 날인가? 이런 선물을 하늘이 다 주시네!”

“그러게 말입니다! 선배님! 아무래도 일에 지친 저희를 위해 그분께서 내리신 선물 아닐까요?”

“더이상 욕보이지 말고 죽여라!”

완전히 포박당한 엘프의 주위로 흑마법사들이 몰려들어 한껏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엘프의 얼굴은 슬프게도 데카드가 이전에 한 번 봤던 얼굴, 이리나였다.

상황이 좋게 흘러가진 않은 듯 몇몇 죽은 흑마법사의 시체가 보였지만 전부 죽이진 못했다.

“우리 동료를 이렇게 만든 죗값은 치르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엘프를 스켈레톤으로 만들긴 아까운데요?”

“흐음…… 그렇긴 하지.”

“해부해서 연구 자료로 쓰는 건 어떨까요?”

자기들끼리 섬뜩한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으며 이리나에 대한 처분을 정했다.

그들 가운데에 있는 이리나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자만심이 주는 교훈.

그것의 대가는 죽음이었으나 운이 좋게도 그녀는 살 것이다.

‘이제 반성도 많이 했을 테니 구해줘 볼…….’

데카드가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리려고 할 때 어디선가 숲을 진동시키는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피이이이이이-

“풀피리?”

작게 중얼거린 데카드는 이 피리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큰 키와 그에 걸맞은 커다란 장궁을 손에 쥔 엘프의 전투원들.

열 명의 엘프 소대가 바람을 타고 달려오더니 시위에 화살을 순식간에 메겼다.

“저, 전투 준비!!”

급하게 상황 판단을 끝낸 몇몇 흑마법사들은 스켈레톤들을 앞세워 방패 막을 만들었다.

피유우웅-!!

바람의 힘을 잔뜩 받은 화살들이 일제히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본 베리어를 만들어낸 흑마법사들은 살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화살에 쓰러져내렸다.

시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벌집이 된 흑마법사.

“젠장! 스켈레톤들을 조종해라!”

물량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조장 흑마법사는 기계를 돌리던 스켈레톤 100마리를 엘프 소대 쪽으로 돌렸다.

이런 숲에서 100명의 부대가 한꺼번에 움직이자 작은 파도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파도는 엘프 소대를 쓸어버릴 것 같았지만, 결과는 정 반대.

“일제 사격.”

그들의 활시위가 한 번씩 튕겨질 때마다 해골들의 머리가 단번에 부서졌다.

그러는 사이 소대 중 궁사가 아닌 검사들은 높은 기동력을 이용.

빠르게 흑마법사의 후방으로 돌았다.

“뒤, 뒤, 뒤에도 있다!”

“젠장!”

급하게 본 베리어를 세워보지만, 엘프의 기동력이 한 수 더 위.

엘프 검사가 아직 덜 만들어진 본 베리어를 넘나들어 흑마법사의 목을 썽둥 베어냈다.

흑마법사가 모두 쓰러지고 이리나는 그 중앙에 축 처진 채 앉아있었다.

“일어나라.”

검사가 묶인 밧줄을 제거해 주고 소대의 대장이 이리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걸 잡고 일어나는 이리나.

그녀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네…….”

“그보다…….”

엘프 소대장은 잠시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더니 어딘가로 휙 던졌다.

“……!!”

그 단도에 데카드가 몸을 숨기던 나뭇가지가 서걱 잘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물론 짹짹이가 날개를 펼쳐 꼴사납게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기척을 전부 감추고 있었는데…….’

오직 소대장만 데카드의 기척을 눈치챈 듯 그를 제외한 나머지 엘프는 전부 놀란 눈치였다.

“데카드?”

“아는 자인가?”

“잠깐 숲에서 만났었는데…… 잘 알지는 못합니다.”

데카드는 천천히 일어섰다.

전투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했고 엘프들의 키가 생각보다 커서 눈높이를 맞춰야 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데카드 아르마다.”

“이름은 됐고 그대의 신분을 밝혀라.”

자신의 신분은 비밀이기에 말할 수 없었지만 그 전에 확실히 해야 할 게 있다.

“내 신분을 묻는 너는 뭐지?”

데카드의 태도와 어조에 가까이 있던 엘프들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활시위를 매만졌다.

팽팽해진 긴장감.

그 사이를 뚫고 소대장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시르가 마을의 올렌. 경비대장이다.”

“루비아의 데카드. 마법사다.”

저쪽 인사법에 맞춰서 똑같이 인사를 해주었는데 아직도 마음에 안 드는 듯 엘프들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루비아의 데카드. 왜 우릴 염탐하고 있었지?”

“염탐이 아니라 구경이야. 원래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 거 몰라?”

데카드의 대꾸에 엘프 중 하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역시 인간은 폭력적이고 열등하군.”

“하하핫…… 선 넘네?”

고오오오오-

데카드의 마나룸, 마수들의 마나룸이 전력으로 개방되면서 숲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을 감싸 안는 푸른 오오라.

그것은 숲의 자연 마나와 동화되어 더욱더 강해져 갔다.

“여기서 전부 죽고 싶어?”

지금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마나는 조금씩 흉포해지고 살의를 품어갔다.

“…….”

“이, 인간이 어떻게 이런 마나를……!!”

“마, 말도 안 됩니다! 이런 건 마을의 하이 엘프에게서나 볼 수 있던 것인데……!!”

다른 엘프들이 너무나 하얗고 순수한 마나에 눈이 뒤집어질 것처럼 놀랐다.

올렌도 다른 보는 이만 없었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귀인을 몰라 뵈었군요.”

올렌이 고개를 숙이자 차츰 데카드의 마나가 잠잠해졌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올렌.

상급자가 저렇게 하는데 부하들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

“귀인을 몰라 뵈었습니다!”

단체로 90도 인사를 하는 사이 이리나만 멍하니 데카드를 쳐다보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마나의 순도에 얼이 빠진 것이다.

“이제라도 알아보았으니 되었다. 크흠…….”

순식간에 반전된 상황에 데카드는 뒷짐까지 지고 상전 행세를 했다.

아직 고개를 들지 않은 올렌이 입을 열었다.

“부하의 말은 잊어주십시오. 아직 철이 없어 지껄인 소리이니 귀인의 넓은 아량으로 품어주셨으면 합니다.”

“알았다.”

인간 중 몇몇은 엘프를 잡아다 노예로 부리니 그들의 혐오가 전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 혐오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 자신이 차별을 받으니까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성의를 봐서 봐주기로 했다.

“고개를 들어라.”

올렌이 먼저 고개를 들자 나머지 엘프들도 고개를 올렸다.

아까와는 데카드를 보는 엘프들의 눈이 완전 바뀌어있었다.

전에는 혐오와 불편함이 서린 눈이었다면 지금은 놀라움과 동경,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실례가 안 되신다면 저희 마을에 귀인을 모시고 싶습니다. 부디 저희가 제대로 된 사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쇼.”

“그래, 뭐. 허락한다.”

아침에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엘프 마을에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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