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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24화 (124/208)

124 빼앗긴 생기

“거기 짐 빨리 옮겨라.”

“네, 넵!”

“우리가 소풍 왔어?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고.”

“알겠습니다!”

맨 선두에 선 흑마법사의 말에 맞춰 뒤에 있던 열 명의 흑마법사가 줄지어 대답했다.

앞에서 떠들던 조장 흑마법사의 말마따나 이들은 놀러 온 게 아니다.

“자, 그럼 여기서부터 시작해 볼까? 장비 깔아라.”

조장 흑마법사의 명령대로 열 명의 흑마법사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 복잡해 보이는 기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기계는 사람의 절반만 한 크기로 검고 요사스러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은 그것들을 나무 옆에 두고 기계에 달린 마력 밧줄 하나를 나무 기둥에 묶었다.

“시작해라!”

“알겠습니다!”

“넵!”

구령에 맞춰 기계에 작동 버튼을 누르는 흑마법사들.

위이이이잉-

기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동에 들어갔고 마력 밧줄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그럴수록 나무는 점점 말라가고 파릇파릇했던 잎은 썩어갔으며 그 안에 살던 동식물들도 미라처럼 속이 텅 비어버렸다.

“역시 명성 높은 레스펄 포레스트인가. 생기가 아주 쫙쫙 빨리는구먼.”

“나무 하나당 이 정도 생기면 탑주님이 내렸다고 하는 명령을 빨리 수행할 수 있겠습니다!”

“야. 그래도 일주일은 촉박한 시간이야.”

탑주가 허용한 시간은 단 일주일.

그 안에 그분이 만족할 만한 생기를 뽑아내려면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

아마 이 숲 초입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의 씨를 말려야 간신히 적정량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자신의 상관의 목이 날아가고 그 전에 자신은 그 상관에게 죽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

순간 안 좋은 상상으로 등골에 땀이 잔뜩 맺힌 조장은 침을 퉤 뱉으며 자신도 기계를 작동시켰다.

원래라면 부하들을 시키고 자신은 놀았을 텐데 그러기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스켈레톤들은 일 잘하고 있냐?”

“물론입니다! 통제에서 벗어난 개체는 한 마리도 없고 명령도 잘 새겨 넣었습니다!”

“좋아.”

이들은 흑마법사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스켈레톤들로 기계를 조종했다.

버튼만 누르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 멍청한 스켈레톤도 어렵지 않게 나무의 생기를 채취할 수 있었다.

열 명의 흑마법사가 다루는 백 마리의 스켈레톤.

그 죽음의 병사들은 기계를 짊어지고 나무의 생기란 생기는 전부 빨아먹고 다녔다.

한편 이 레스펄 포레스트에 휴가차 놀러 온 데카드 일행은 저녁 준비에 한창이었다.

“아아. 심심하다. 티이라.”

“아까는 그렇게 재밌게 놀더니?”

“이제는 물웅덩이도 질렸다!”

티이라는 의자에 퍼질러 누워 자신의 심심함을 전력으로 표출 중이었다.

나머지 마수들도 내색은 안 했지만 저녁이 다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든 듯 타오르는 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얘들아! 여기서 그거 해 볼래?”

“그게 뭔가요?”

“‘그거’ 있잖아!”

“……?”

아무래도 자신 말고 아무도 기억 못 하는 듯하다.

이것은 마수계에서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놀이 중 하나로 여기서도 해 볼 수 있고 킬링타임으로 제격이다.

“사냥 말이야!”

“사냥이라면…… 아! 그걸 말씀하시는거군요!”

“그래!”

“확실히 재밌긴 했죠.”

“…….”

이 사냥 놀이는 숲에 마수들과 데카드가 들어와 어떤 수를 쓰든 목표로 정한 마수를 먼저 잡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지금 같은 장소에선 마수가 아닌 야생 동물로 바뀌겠지만.

“흐음…… 여기서 제일 위험한 동물이 뭐가 있을까?”

“끽해야 곰 정도입니다.”

곰은 평범한 이에겐 눈앞에서 만나면 곧바로 저승이 가까워지는 공포의 존재다.

그러나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 마법사.

곰 한 마리쯤이야 통구이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그럼 목표는 곰으로 하자.”

“좋아요!”

레오도 재밌겠다는 듯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마수왕님은 안 하시나요?”

“나는 저녁 준비해야 하니까 너희들끼리 갔다 와.”

“알겠습니다!”

마수들은 오랜만에 해 보는 사냥 놀이에 추억도 되살릴 겸 바닥에 선을 그었다.

이곳이 바로 출발 라인.

신호가 울리면 목표를 사냥하기 위해 달려간다.

“그럼 준비…… 출발!”

데카드가 출발 신호를 외치자마자 마수들이 우다다 숲의 중앙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워낙 신체 능력이 월등한지라 잠깐 눈 감았다 떴는데 벌써 뒷모습만 희미하게 보였다.

“정말 곰을 잡으러 가신 건가요?”

“그렇지?”

“……잡을 수 있을까요?”

데카드는 엘리스의 질문에 한 번 피식 웃고 약해져 가는 불에 장작을 던졌다.

“난 이 숲에 있는 곰들이 전부 잡혀 올까 봐 걱정인데?”

* * *

“우오오오!! 내가 먼저다!”

“저리 꺼져! 이 산양아!”

요르가 고오른이 딛고 있는 땅을 순간 얼어붙게 해 얇은 빙판을 만들었다.

그걸 밟은 고오른은 당연히 미끄덩하고 넘어져 바닥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

“우아악!”

“캬하하! 넌 거기 있어라! 곰은 내가 잡을……!”

물론 요르도 안전하지만은 않았다.

레오의 전격이 몸을 마비시켜 잠시간 동안 뛸 수 없게 만들었다.

“야, 이……! 비겁한 놈아!”

레오의 표정에서 먼저 갈게라는 말이 보였던 건 착각일까?

고오른도 다시 뛰기 시작하고 요르도 마나를 거칠게 회전시켜 마비를 떨쳐냈다.

선두 쪽에 있던 티이라와 레오.

둘은 열심히 달리면서도 한쪽 팔로 투닥투닥 서로를 방해했다.

“어엇! 발자국이다!”

티이라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녀의 눈이 향하는 곳을 빛과 같은 빠르기로 바라본 레오.

그의 신형이 순간 밝게 물들었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땅에 내려온 것만 같은 광휘와 함께 레오는 발자국의 앞으로 블링크 했다.

“젠장! 레오가 너무 유리하잖아!”

레오는 번개와 빛의 속성을 타고났다.

모두 속도와 변칙에 장점을 둔 속성들로 이런 속도전에선 레오가 확연히 유리하다.

“…….”

레오가 제일 먼저 곰의 발자국을 보고 그것이 향하는 방향과 깊이를 보았다.

대충 정보가 추려지자 곧바로 이어지는 흔적 제거.

이렇게 되면 뒤에서 오는 사람이 볼 수가 없다.

“레오! 정정당당하게 하자!”

“그래! 이 사자 놈아!”

“…….”

그러나 레오는 찰랑거리는 금발을 뒤로 넘기며 어깨를 으쓱할 뿐 별다른 타격이 없어 보였다.

흔적의 방향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 레오를 고오른과 요르, 티이라가 뒤쫓았다.

방향은 레오가 알고 있으니 그를 따라가면 또 다른 흔적을 볼 수 있으리라.

“야이 바보 고양아! 좀 같이 가자!”

어느새 사자 놈에서 호칭이 바보 고양이로 바뀌었다.

저 멀리에서 뛰어가던 레오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다른 마수들도 일단 레오의 옆에 서서 멈췄다.

“후우…… 진짜 기다려 준 거야? 이럴 줄은 몰랐는데.”

요르가 레오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다시 봤다는 듯 말하자 그는 검지로 앞을 가리켰다.

마수들의 앞에 펼쳐진 빼빼 마른 나무들.

나뭇잎은 다 바스러져 가고 땅에 떨어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신들이 딛고 있는 땅은 이렇게 푸른데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내디디면 곧바로 다른 세상이다.

“너희들도 느껴지나?”

“어.”

“…….”

“더러운 냄새!”

흑마법사들이 잔뜩 뿌리고 간 더러운 체취.

그것의 이름은 흑마력이라고 한다.

“나무들의 생기가 다 사라졌어.”

“그 벌레 같은 놈들……. 다시 만나면 꼭 뼈를 부숴 주겠다.”

자신의 고향인 마수계와 쏙 빼닮은 이 숲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죗값은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몸의 뼈를 잘근잘근 부수고 마지막엔 머리를 부수리라.

“흑마력의 향기가 연한 걸 보니 이곳에서 사라진 지는 오래전이야.”

“숲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나 보군.”

레오는 생기를 다 잃은 나무의 기둥을 스윽 쓸어가며 비쩍 마른 그 감촉을 손가락에서 느껴보았다.

남아 있는 생기가 하나도 없어서 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도 없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연한 나뭇가지처럼 으스러질 것이다.

“으으! 참을 수 없다! 당장 그놈들을 쫓는다!”

“좋다! 바로 그 정신이다! 이번 사냥의 목표는 곰에서 흑마법사로 변경이다!”

“그건 안 돼.”

달려가려는 티이라와 고오른의 뒷덜미를 잡으며 요르가 반대표를 던졌다.

“왜냐! 요르!”

“너무 독단적이고 상대의 수준도 몰라. 지금은 물러서서 마수왕님에게 보고를 해야 해.”

“으으으…….”

뭐라 반박하고 싶지만 요르의 말이 맞아 티이라는 다시 돌아섰다.

고오른도 요르의 말에 긍정하며 지금은 잠시 투기를 억눌렀다.

“…….”

레오는 손가락으로 데카드가 있는 쪽을 가리키고 뭔가 열심히 뛰는 것 같은 몸짓을 했다.

그 바디랭귀지를 유일하게 이해한 티이라.

“아아! 레오의 말은 이렇다! 먼저 텐트까지 간 사람이 이기는 거다! 맞나?”

끄덕끄덕-

“좋아! 이번에는 안 봐줄 거라고!”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레오가 발로 시작 라인을 그렸다.

달려갈 준비는 다 됐지만 출발 신호를 보내줄 다른 이가 없었다.

“클래식하게 이 나뭇가지로 해야겠군.”

고오른은 땅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가져와 허공에 던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공중을 몇 초간 날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지금 이 순간.

콰아아아앙-!!

마수들의 땅을 박차는 소리가 숲에 메아리쳤다.

산새들이 놀라서 퍼드덕 하늘로 날아오르고 다람쥐들은 도토리를 땅에 묻다 말고 나무로 호다닥 올라갔다.

마수들이 달릴 때마다 뒤에서 돌풍이 불어닥치고 나뭇잎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내가 일 등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

“흥! 저리 빠져!”

“…….”

이제 곧 가까워지는 처음 출발했던 라인.

그것이 도착 선이다.

“음? 마수님들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벌써?”

곰 잡으러 간 지 20분이 채 안 지난 것 같은데 나무 사이사이를 가르며 달려오는 마수들이 보였다.

아공간 주머니도 없을 텐데 양손이 가벼운 게 곰을 잡은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일 등……!”

티이라의 승리가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다리를 쭉 뻗은 레오가 도착 선을 밟았다.

“아! 뭐냐 레오!”

“…….”

결국 제1회 마수 달리기는 레오의 승리.

고오른은 아깝다는 듯 애꿎은 땅만 푹푹 찼고 요르는 데카드 옆 의자에 앉았다.

“뭐 할 얘기 있어?”

“그게…….”

요르는 아까 숲에서 자신들이 본 것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얘기가 진행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데카드의 얼굴.

처음에는 꽤나 심각한 표정이었다가 가면 갈수록 뭔가 체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습니까?”

요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좋지 않아 보이는 데카드의 표정에 트리스와 엘리스가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흑마법사가 레스펄 포레스트에 들어온 것 같아.”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뭔가 화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편해 보이는 것도 아닌, 그저 납득하고 받아들인 듯한 저 표정.

“그냥 이제는 받아들이려고.”

“뭘 말입니까?”

“나는 어딜 가든 문제의 중앙에 있고 그건 피할 수 없다는 것.”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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