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23화 (123/208)

123 레스펄 포레스트

편안한 오후.

며칠 내내 아주 만족스럽고 나른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데카드가 침대에 누워서 과자 봉지를 뜯고 있자 옆 의자에 짹짹이가 앉았다.

어디서 빌려 오는 건지 매일매일 새로운 책을 들고 나타난다.

“오늘은 또 무슨 책이야?”

“여행 책자입니다.”

대륙 전역에 있는 아름답고 볼 게 많은 여행 장소를 전부 모아둔 책.

데카드도 관심이 생겨 자신의 몸을 짹짹이 쪽으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어디 봐봐.”

짹짹이가 책 첫 장을 펼치자 넓고 에메랄드빛 바다가 인상적인 해안가가 나왔다.

하지만 데카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넘기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엇을 찾으시는 겁니까?”

“그냥. 이렇게 할 일도 없을 때 너희들이랑 어디 놀러 가면 좋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 여행지는 빠르게 넘기며 데카드가 대꾸했다.

책자의 절반을 지나왔을 때 그의 직감을 찌르르하게 울리는 여행 명소를 발견했다.

“여기다!”

“이 숲 말씀이십니까?”

“응. 너희들 숲 좋아하잖아.”

마수들이야 원래 숲에서 자라나고 숲에서 생활하기에 인간 세계에서도 특히 숲을 좋아했다.

데카드가 고른 이 숲은 책자의 설명을 따르면 면적이 루비아보다 훨씬 넓었다.

높게 솟은 나무들과 산짐승, 새소리로 가득할 저곳은 마수계와 닮았다.

“너희들이 오랫동안 마수계에 못 갔으니까 이렇게라도 그곳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려고.”

이렇게 자연의 산물이 널려있는 곳에선 공기 중의 마나 밀도가 특히 높다.

이 정도 크기의 숲이라면 마수계 정도의 마나 밀도와 비슷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숲의 이름이…… 레스펄 포레스트라.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지?”

“여기 경로가 나오는군요.”

데카드는 책자에 나오는 경로를 머릿속으로 외운 후 싱글벙글 웃었다.

루비아도 슬슬 추워지는 시기이니 남쪽 따뜻한 숲에 한 번 갔다 오면 힐링도 되고 좋을 것이다.

“짹짹이가 애들한테 말해 줄래? 나는 트리스하고 엘리스에게 갈게.”

“알겠습니다.”

여행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데카드는 방을 벗어나 먼저 제일 가까운 트리스의 방으로 움직였다.

똑똑-

“누구십니까?”

방 안에서 사무적으로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아아. 선배였군요.”

갑자기 봄날의 아침처럼 한없이 따뜻해지는 말투.

조금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 트리스가 문을 열고 나왔다.

“어쩐 일이십니까?”

“우리 여행가자!”

“여행…… 말입니까?”

데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과 짹짹이가 짠 여행 계획을 말해 주었다.

계획의 대부분이 먹는 것이긴 했지만, 그것이 또 캠핑의 묘미 아니겠는가.

“레스펄 포레스트라…… 소문으로 듣기에는 별도 아름답고 인적도 드물어서 휴가지로 좋다는 말은 들어봤습니다.”

“그래! 우리도 가서 힐링하는 휴가를 보내고 오자.”

최근 유적이나 도적단 처치 등.

굵직굵직한 사건만 처리해서 몸의 피로는 한계까지 쌓여있다.

물론 최근 띵가띵가 재밌게 놀아서 피로가 많이 날아가긴 했다.

그러나 이런 뻥 뚫린 자연 경관을 눈에 담으면 남아있던 피로도 저 멀리 사라질 것이다.

“언제쯤 가실 계획입니까?”

“내일!”

또 임무가 떨어지기 전에 데카드는 하루빨리 숲으로 출발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준비를 해놓고 있죠.”

“알았어!”

데카드는 엘리스의 방으로 넘어갔다.

그녀는 여행 계획을 듣고 트리스보단 풍부한 반응을 보여주었는데 그 모습이 산책 가서 좋아하는 강아지 같아 퍽 귀여웠다.

“여행이라니! 꼭 한 번 해보고 싶던 거였어요!”

“그래? 진작에 데려가 줄 걸 그랬네.”

엘리스와 함께 많은 곳을 같이 다니긴 했지만, 그것들은 전부 일이 목적이었다.

이렇게 마음 편히 놀러 가는 건 이번이 처음.

“그럼 저도 준비할게요!”

“그래, 그래.”

다시 방으로 돌아오자 여행이라는 소식에 들뜬 마수들이 있었다.

“와아! 마수왕님! 우리 정말 놀러 가나?”

“당연하지!”

“그 숲의 사진들을 한번 봤는데 마수계와 닮은 구석이 많더군요!”

“오랜만에 고향 가는 기분이네요!”

“…….”

마수들은 딱히 짐 쌀게 없으니 순수하게 기뻐하기만 했다.

그런 그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데카드는 뭔가 퍼뜩 생각난 듯 루비아 시내를 돌아보았다.

“캠핑 용품 사야겠다. 이걸 까먹고 있었네.”

숲의 나무로 집을 지을 수도 없고 집이 아닌 곳에서 여러 밤을 보내려면 장비는 많을수록 좋다.

데카드는 마수들과 함께 캠핑 용품을 사러 가기로 했다.

솔직히 캠핑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동안 숲이나 길바닥에서 노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물건을 골랐다.

이곳은 루비아의 백화점.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만물점이다.

[오오! 뭔가 엄청 많습니다!]

[여기 있는 게 전부 캠핑 용품인가 하는 것인가요?]

‘그런가 본데?’

캠핑 용품을 사고 싶다는 데카드의 요구에 직원이 안내한 곳으로 도착한 그는 진열돼 있는 수많은 용품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끽해야 텐트를 비롯한 의자나 침대 이런 것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브랜드와 종류가 나누어져 있다.

“어…… 음…….”

잠시 얼빠진 소리를 내며 침음을 삼키고 있을 때 이쪽 구역의 직원이 친절하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루비아 백화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 네.”

“혹시 캠핑 용품을 고르시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계신가요?”

“네, 그런 것 같네요.”

물건 몇 개 사려고 왔는데 뭐가 이렇게 많은지 눈이 다 아파올 지경이다.

직원은 이런 사람을 자주 본 듯 싱긋 웃으며 데카드를 도와주었다.

“혹시 어떤 곳에서 캠핑을 하시게 될지 여쭤 봐도 될까요?”

“레스펄 포레스트입니다.”

“그 숲이라면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을 따라 갈림길을 몇 번 넘어서자 아까보다 훨씬 장비들이 줄어들은 코너로 올 수 있었다.

아까는 장비의 파도에 휩쓸리는 느낌이었다면 이쪽은 커다란 개울 정도?

이제야 무언가를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레스펄 포레스트는 아시다시피 남쪽에 있어서 평균 기온이 따뜻한 편입니다. 그렇기에 두꺼운 텐트는 필요가 없으실 거예요.”

“으음…… 그렇군요.”

“또 아시다시피 레스펄 포레스트는 지금 우기라서 가랑비가 내리고 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방수 옵션은 필수시고요. 또…….”

계속 아시다시피라는 말을 붙여가는 직원이었으나 데카드는 그 숲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렇게 멍하니 설명을 듣고 있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손에는 영수증이 쥐어져 있었다.

“오늘 구매하신 것들은 어떻게 드릴까요? 자택까지 배달시켜 드릴까요?”

“아니요. 제가 지금 가져갈게요.”

“그럼 안녕히 가십쇼!”

텐트, 의자, 식탁, 침대 등등 구매한 물품들을 주머니에 담으며 데카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 직원 사실 흑마법사 아닐까?”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몇 번 코너를 슥슥 지나다녔는데 홀린 것 마냥 카드가 움직였다.

만약 저런 사람이 백화점 직원이 아니라 흑마법사가 되었다면 대성했을 것이다.

그렇게 물건을 전부 담고 백화점을 빠져나오자 하늘은 어둑어둑해졌다.

“내일 여덟 시 정도에 출발하자.”

[그때 일어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마…… 그럴걸?”

데카드도 혹시 몰라서 확답은 해주지 못했다.

* * *

“엄청 기대돼요!”

“저도 기대됩니다.”

표정만 봐선 전혀 그런 것 같아 보이지 않았으나 트리스의 눈꺼풀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기대 중인 것 같다.

오늘은 마수들도 데카드의 안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다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마수왕님! 우리 아침 뭐 먹나?”

“가서 먹자.”

“고오른! 고기 챙겼지?”

“물론이다!”

마수들은 냉장고를 다 털어왔을 만큼 많은 양의 음식들을 가지고 왔다.

그 넓던 아공간 주머니가 꽉 찰 정도.

걸어서 텔레포트 기계의 앞까지 도착한 일곱 명은 그 위로 올라탔다.

“어디로 가십니까?”

“디에고로 갑니다.”

레스펄 포레스트 근처 도시인 디에고 또한 책자에 소개된 유명한 관광 명소다.

자연 친화적인 건축 양식과 길거리는 걷기만 해도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눈을 감아주십쇼.”

푸른빛과 함께 갑자기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달라졌다.

남쪽 도시인 디에고는 사계절이 없고 따뜻한 봄만 있는 곳이라 이불을 덮고 있는 것처럼 포근했다.

“이제 여기서 마차를 타고 가면 돼!”

레스펄 포레스트는 워낙 유명해서 그쪽까지 데려다 주는 마차도 존재했다.

디에고 남문 앞에 쭈욱 대기하고 있는 마차 중 일곱이 탈 만큼 커다란 걸 고르고 모두 올라탔다.

“벌써 숨쉬기가 편해요!”

“마나 밀도가 엄청 높은 곳이군요!”

레스펄 포레스트에 가까워질수록 마수들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마수계와 비슷한 마나 밀도가 그들에게 친근감과 더불어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오오! 숲이 엄청 넓습니다!”

디에고에서 레스펄 포레스트로 내려가는 길.

그 밑으로 쭈욱 펼쳐진 광활한 숲은 사람 하나쯤 쉽게 삼켜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사진으로만 봤을 때보다 직접 눈으로 보니 과연 관광 명소다.

이렇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숲을 바라보는 일행을 마부가 허허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손님들은 어디서 오셨소?”

“루비아에서 왔습니다.”

그나마 여기서 제일 붙임성 좋은 데카드가 대답해 주자 마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과연…… 그런 대도시에서 왔으니 이런 숲은 낯설겠구먼.”

“뭐어…… 옛날에 이런 숲에서 오래 살아서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1000년 동안 자연 그 자체인 마수계에서 살아왔는데 이 정도 숲이야 익숙하다.

마부는 레스펄 포레스트 초입에 일행을 내려주고 다시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갔다.

“좋아! 이제 야영할 곳을 찾자!”

지금부턴 이 숲의 모든 곳이 일행의 놀이터고 집이다.

마수들은 숨을 연신 들이마시며 충만한 마나를 느꼈고 트리스는 가져온 사진기로 이 풍경을 조금이나마 담았다.

직원이 말했던 것처럼 현재 우기인 레스펄 포레스트는 땅이 조금 질척거렸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마수들은 즐거운 듯 물웅덩이를 찰박거리며 놀았다.

“야아! 이쪽에 튀기지 마!”

“하하하! 어차피 금방 깨끗해지면서 뭘 그러나!”

“그래도 기분 나쁘단 말이야!”

마수들이 저렇게 티격태격 놀고 있는 사이 데카드는 적당한 야영 장소를 찾았다.

나무가 적고 널찍한 공간은 텐트를 설치하기에 딱이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도요!”

트리스와 엘리스가 다가와 텐트 설치를 도와주었다.

둘 다 이런 훈련을 모두 받았기에 설치는 빠르게 끝이 났다.

역시 직원 추천대로 산 텐트라 그런가, 재질이나 두께, 그 크기가 이 숲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텐트가 두 개네요?”

“응. 나랑 마수들이 자고 다른 캠프는 트리스와 엘리스가 자면 돼.”

“알겠습니다.”

이제 둘은 서로가 편해질 만큼 편해져 같이 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럼 저희는 이제 뭘 하면 되나요?”

“즐겨. 이 평화를.”

데카드는 이미 지금의 평화로움을 의자에 눕듯이 앉아 만끽 중이었다.

곧 자신의 인생이 평화를 깨려고 할 텐데 지금 많이 누워두어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한다.

“하긴. 선배는 항상 트러블에 휘말리니 이런 일상도 흔치 않았겠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혹시 몰라? 이 숲에 흑마법사라도 들어와 있을지.”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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