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22화 (122/208)

122 다크 타워

“잠결에 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데카드는 어젯밤 잠깐 들렸던 사람의 비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난 데카드에게 짹짹이는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꿈이라도 꾸셨나 보군요.”

“그런가?”

아직 꿈나라인 마수들을 건너건너 복도로 나온 데카드.

이곳에서 데카드를 죽이러 온 암살자들이 모두 짹짹이에게 죽어나갔다.

그러나 피를 비롯한 시체들은 전부 짹짹이가 처리했기에 전투의 흔적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평화롭네.”

어제만 해도 엘리스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는 걸 전혀 알 턱이 없던 그는 하품을 길게 내뱉었다.

1층으로 내려가자 이제 막 밖에서 들어오는 것 같은 엘리스가 보였다.

“엘리스? 어디 갔다 왔어?”

“네?! 아, 아니 그게…….”

데카드와 마주치자 엘리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 그녀는 데카드가 모르도록 아침 일찍 사제에게 갔다 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이야.

“자, 잠깐 바람 좀 쐬려고 나갔다 왔어요!”

“그래?”

“네! 그럼 저는 다시 들어가 볼게요!”

엘리스는 그가 더 캐묻기 전에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고개를 갸웃한 데카드는 냉장고에 다가갔다.

“오늘 아침은 내가 요리사!”

“……주인님이 요리하실 겁니까?”

“응. 문제 있어?”

순간 짹짹이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마수계에서의 기억.

아직 짹짹이가 인간화도 하지 못했던 시절인 오래된 기억이다.

그때는 데카드가 낚시로 잡아 올린 생선을 요리하고 있었다.

“야아, 이게 얼마만의 생선이야.”

까악- 깍-

짹짹이도 자신의 주인이 기뻐하니 깍깍 신명 나게 울었다.

생선을 나뭇가지에 꽂고 막 피워 올린 불에 갖다 대자 지글지글 익어가기 시작했다.

“여기다가 이걸 넣어보자.”

데카드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과일들을 꺼내 즙을 짜서 생선에 뿌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과일즙을 뿌리면 생선의 잡내가 사라진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레몬의 한정.

지금 데카드가 뿌리고 있는 즙의 맛은 물론이고 그 과일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까악-?

짹짹이는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과일까진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번엔 또 이상한 풀들을 챙겨왔다.

“이것들이 생선에게 풍부한 향을 넣어줄 거야.”

만약 지금의 짹짹이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발톱으로 열심히 글을 쓸 것이다.

-지금 주인님이 고르신 건 향기 좋은 풀이지 향신료가 아닙니다.-

어쨌든 그렇게 완성된 데카드표 생선구이.

노릇노릇하고 탄 부분도 없는 게 나름 군침이 도는 비주얼이었다.

“역시 난 요리에 소질이 있어.”

집행관이 아니었으면 요리사를 했을 거라는 뒷말과 함께 데카드는 나뭇가지를 뽑았다.

그러자마자 코를 들쑤시는 기묘한 냄새.

풀 냄새와 함께 과일 특유의 신 내가 합쳐져 복잡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복잡한 건 이걸 먹어야 하는 짹짹이의 심경이었다.

까악-?

‘정말 먹어?’라는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완고했다.

“응! 먹어 봐!”

짹짹이는 입 앞에 들이밀어진 생선구이에 손만 있었다면 코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래도 주인이 하사한 음식이니 거를 순 없다.

결국 부리로 생선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맛은…….

“으윽…….”

지금 짹짹이의 몸이 한 차례 떨릴 정도였다.

그냥 구워도 되는 것에 굳이 뭘 추가해서 요리를 망쳐버린다.

짹짹이가 잠시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고 있었을 때 데카드는 벌써 요리에 들어갔다.

“흠흠~”

오랜만에 하는 요리는 꽤나 재미있다.

매일 피 튀기는 싸움만 하다가 이런 소박한 요리를 해보니 신이 났다.

오늘 그가 고른 재료는 고기.

어지간해선 실패하기 쉽지 않은 재료다.

“아! 그거 넣어야겠다!”

잘 고기를 굽던 데카드가 퍼뜩 어떤 재료가 생각난 듯 쫄래쫄래 냉장고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짹짹이의 불안감이 점점 상승했다.

창고만 한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잠시 돌아다니던 데카드는 곧 한 아름 식재료를 들고 왔다.

“……뭘 그렇게 많이 가지고 오셨습니까?”

“응? 그냥 사이드에 넣어 먹을 것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고.”

짹짹이는 데카드가 다시 고기에 집중하는 사이 그가 가지고 온 것 중 필요 없는 것은 전부 냉장고에 다시 갖다 놓았다.

고기를 먹는데 사과는 또 왜 가져왔는지 모르겠다.

“어디 갔다 왔어?”

“잠시 손을 씻고 왔습니다.”

짹짹이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트리스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그런 그녀의 눈에 띈 요리하는 데카드의 뒷모습.

한 손으로는 열심히 팬을 돌리고 다른 손으로는 뒤집개로 고기를 굽고 있다.

그것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트리스의 심장을 저리게 했다.

“…….”

콧대를 꽈악 잡아서 코피를 막은 트리스는 마저 계단을 내려왔다.

“요리하시는 겁니까?”

“응. 맨날 너희가 하니까 오늘은 내가 해볼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트리스는 요리하느라 바쁜 그의 등을 계속 보고 있으면 못 참고 끌어안을까 봐 주방에서 벗어났다.

프라이팬에 고기를 볶던 도중 채소를 넣은 데카드는 요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만약 짹짹이가 중간중간 그가 가져온 재료를 빼내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겠지만.

일정 시간 지지고 볶고 간까지 맞추자 아침 준비가 끝이 났다.

“제가 불러 모으죠.”

“부탁해.”

데카드가 식기를 놓는 동안 짹짹이는 각자 방에 있을 인원들을 불러 모았다.

마수들에겐 마나로 신호를 보내고 엘리스와 트리스의 방에는 직접 찾아갔다.

“아침 먹어라.”

아침을 데카드가 했다는 소식에 아직 상처가 아린 엘리스는 고통도 잊으며 주방으로 달려 나왔다.

“와아! 이거 데카드가 한 거예요?”

“먹어 봐! 맛있을진 모르겠네.”

한껏 기대 중인 두 명의 여자와 다르게 마수들은 비상사태였다.

그들은 데카드의 요리 실력이 어떤지 알기에 살짝 주춤거리는 것이다.

“짹짹이! 이거 괜찮나?”

“믿어도 된다.”

다름 아닌 자신도 요리에 관여했기에 이상한 맛을 낼 만한 것들은 전부 빼두었다.

이전에 읽었던 요리책에 근거해서 만든 고기볶음이니 신뢰해도 괜찮으리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제일 먼저 포크로 고기를 쿡 찍어 입으로 직행한 엘리스.

마수들은 먹기 전에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침은 음식이 맛있어 보여서가 아닌 긴장 때문에 넘어가는 침이다.

“데카드는 요리 배운 적 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디서 파는 음식 같군요.”

“으음!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연이은 호평에 데카드는 만족하고 마수들은 그럴 리가 없는 데라는 의심 반 기대 반으로 한 입씩 먹어보았다.

“뭐야! 이럴 리가 없다!”

“진짜 맛있네……?”

“마수왕님이 요리를 연습하셨나?”

“…….”

한 번 먹고 두 번 먹어보아도 혀는 맛있다고 춤을 췄다.

원래라면 맛의 아마겟돈에 직격으로 맞고 장렬하게 전사했을 테지만 말이다.

“뭔가 넣은 게 틀림없다……!”

티이라의 작은 의심과 함께 요란했던 아침 식사는 막을 내렸다.

* * *

대륙 어딘가.

나무들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낸 채 간신히 숨만 붙어있었다.

하늘은 뿌옇고 회색 구름에 가려진 태양.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다.

메마른 숲 중앙에 지어진 흑색의 탑 하나.

흑마법사들의 본거지로 그들은 이 탑을 다크 타워라고 부른다.

“탑주를 뵙습니다!”

“앉아라.”

단상 위에 앉고 흑마법사들에게 탑주라 불린 이 남자는 별명이 많다.

흑마법의 아버지, 흑마력의 끝, 살아있는 저주, 가장 가까운 죽음 등등.

여러 개가 있지만 가장 많이 불리는 호칭은 바로 ‘그분’.

“보고를 시작해라.”

묵직한 목소리로 탑주는 앞에 일렬로 선 다섯 명의 흑마법사에게 명령했다.

맨 왼쪽에 있던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 북쪽 극지대에 있던 미궁 중 35%를 저희 수중에 넣었고 몬스터들에게 넣을 복종 저주도 거의 끝나가는 중입니다.”

“35%라…….”

탑주는 성에 차지 않는지 끝말을 잇지 않았다.

“대, 대신! 수중에 넣은 미궁 중에선 위험도가 높은 미궁이 태반입니다! 손에 넣은 몬스터들을 보시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흐음…… 지켜보겠다.”

“감사합니다!”

하얀 수염의 노인은 바닥에 머리를 쿵 하고 찧으며 눈물까지 흘렸다.

오늘 이 보고에서 살아남은 노인을 부럽다는 눈으로 쳐다본 다른 노인들도 속히 보고를 진행했다.

“저희는 명령하신 대로 대륙 남쪽에 있는 레스펄 포레스트에 작업 팀을 보냈습니다.”

“그렇군.”

“넵! 작업 팀이 자리를 잡는 대로 숲의 생기를 모조리 빨아올 것입니다!”

“일주일 주겠다. 그 안에 성과를 보이도록.”

“아, 알겠습니다!”

일주일은 거대 숲인 레스펄 포레스트를 잡아먹기에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지만 탑주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 어떤 흑마법사도 그의 앞에서 반기를 들거나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면 산 채로 잡아먹힌다.

그 모습은 너무나 끔찍하고 현존하는 악몽, 그 자체였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흑마법사들은 어떤 무리한 요구라도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탑이 한산하더군.”

원래 흑마법사의 수는 많지 않고 이 탑은 고위 흑마법사만 올 수 있어 원래도 사람이 많진 않았다.

그러나 최근 7서클 흑마법사들이 대량 죽음으로써 사람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유적으로 보냈던 한스, 크론, 쉬엔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샤릴마 대사막의 유적으로 간 그놈들이군.”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외관적인 모습으로 셋을 떠올린 탑주가 혀를 끌끌 찼다.

“쯧쯧. 혀가 긴 놈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법이지.”

탑주는 전력을 잃었다는 것보다 유물을 얻지 못했다는 것에 더 큰 상실감을 느꼈다.

점점 줄어가는 유물의 수.

그중에서 자신이 손에 넣은 건 단 하나.

“벌써 두 개를 마법부에게 넘겨줬다. 내가 얼마나 더 실패를 용납해야 하는 거지.”

차갑게 타오르는 분노가 괜히 앞에 있는 노인들에게 튀겼다.

앉아있는 왕좌의 주위가 까맣게 부패하고 썩어가며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노인 다섯을 다 합쳐도 가볍게 웃도는 악마 수준의 흑마력이 점점 숨을 조여 왔다.

“커헉……!!”

“크흡…… 제발 탑주시여…… 사, 살려…….”

“흐헉…… 허억…… 헉…….”

앞에 있는 노인들의 목숨이 껄떡 껄떡 위태로워지자 탑주는 흑마력을 도로 잠재웠다.

아직 대업을 이루지 못한 작금의 상황에서 앞에 있는 쓰레기들은 쓸모가 많다.

아직은 살려둘 때다.

“마지막 남은 유물 하나의 소재는 어디 있지.”

“지, 지, 지금 찾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못했습니다…… 헉…… 허억…….”

숨을 헐떡이며 그나마 말을 할 수 있는 노인 하나가 간신히 대답했다.

“빨리 찾는 게 좋을 것이다.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지.”

탑주의 등 뒤로 벽면이 쩌적 하고 갈라지며 동면 중인 무장한 해골 병사 수만 마리가 나타났다.

해골 병사가 된 시체는 영혼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안에 갇힌다.

그 안에서 자신을 해골 병사로 만든 흑마법사가 죽을 때까지 영혼이 고통받는 것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고문.

“무, 물론입니다!”

“믿어주십쇼!”

탑주는 다시 벽면을 닫고 벌레를 쫓듯 손을 대충 휘저었다.

“물러가라.”

“알겠습니다!”

“탑주님의 앞날에 축복을!”

노인들이 방을 빠져나가고 탑주는 곧 자신의 발아래 들어올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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