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암살자들
달그락 달그락-
젓가락이 파스타 면을 집으면서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가 적막을 채워 주었다.
엘리스는 아까 집에 들어올 때부터 무언가 이상한 데카드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았다.
뭐라도 보일까 싶어 계속 들여다보았지만 잘생겼다는 것 말고는 딱히 더 알아낸 것이 없었다.
“아까 나가셨을 때 무슨 일 있으셨나요?”
결국 직접 물어보기로 한 엘리스.
그러나 데카드는 말없이 계속 파스타를 집어 먹었다.
이런 데카드는 처음이라 엘리스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나 하는 마음에 괜히 움츠러들었다.
“엘리스는…….”
데카드가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이 있는 이유가 뭐야?”
“네……?”
“듣고 싶어.”
갑작스러운 데카드의 질문에 엘리스의 얼굴이 달아오르고 이어 무릎을 오므렸다.
점점 두근거리는 심장은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도대체 이 질문의 의도가 뭐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통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우물쭈물 거리는 엘리스를 잠시 바라보던 데카드는 자신이 생각한 답을 말했다.
“맹약 때문이야?”
“그, 그건 아니에요! 절대로!”
엘리스는 맹약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빼액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처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절대로 아니……!”
그러다 자신이 너무 시끄러웠다는 사실을 깨닫자 헉 하고 놀라며 다시 시선을 파스타 접시에 고정시켰다.
“그럼 됐어.”
“네……?”
“그럼 됐다고.”
데카드는 그 말을 끝으로 파스타 접시를 싱크대에 넣어 놓았다.
“잘 먹었어!”
“네, 네!”
갑자기 올라간 데카드의 텐션에 당황한 엘리스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사라진 데카드의 뒷모습은 어딘가 기뻐 보였다
“역시 내가 맞았어.”
[다행입니다. 주인님의 생각이 맞아서.]
조장의 말은 틀렸다.
엘리스는 맹약 따위로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왜 있는 걸까…… 흐음…….”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은 다시 좋아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데카드가 다시 방으로 올라갔을 때 저택 주변으로 수상한 무리가 접근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은밀하고 조용해서 나무에 있는 새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엘리스만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를 보내라.”
“알겠습니다.”
라는 대화를 수화로 나누며 암살자들은 깃털 몇 개를 뿌렸다.
깃털은 바람을 타고 날아 엘리스의 방, 창문에 꽂혔다.
갈까마귀를 상징하는 검은 깃털.
암살 상대에게 미리 보내는 죽음의 예고이자 단원에겐 집합이라는 뜻을 가진다.
깃털이 살랑살랑 거리는 방 안으로 엘리스가 들어왔다.
“그래도 데카드의 기분이 다시 좋아진 것 같아.”
엘리스는 파스타를 정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다가 창문으로 눈이 돌아갔다.
창문에 걸린 그것을 보자 저절로 차분해지는 심장.
깃털은 그녀에게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칼날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사고뿐, 자신의 의견은 필요치 않았다.
그야말로 살인 기계.
덜컥-
엘리스는 창문을 열고 틀에 꽂혀 있는 깃털을 뽑았다.
꽂혀 있던 깃털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북쪽.
갈까마귀가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암살단이 데카드에게 다가간 게 틀림없어. 그래서 데카드가 나한테…….”
오늘 데카드의 기분이 안 좋아 보였던 것과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질문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암살단이 데카드와 접촉해서 어떤 얘기를 한 것이다.
그 얘기는 아마 암살단의 방식으로 생각해 봤을 때 협박일 확률이 높다.
“그때 분명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엘리스는 손에 들어있는 깃털을 꽈악 쥐었다.
연약한 새의 깃털은 금세 부러지고 볼품없어졌다.
살기가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분노로 눈꺼풀이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진다.
“이건 제가 해결할게요.”
엘리스는 데카드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어둡고 검은색의 암살용 복장들을 하나둘 갖춰 입었다.
오랜만에 덮어쓴 후드는 안정감을 주었다.
이 옷들 모두 데카드가 선물로 사준 것이다.
남에게서 처음으로 받아본 선물.
블랭슘 단검들을 허리에 찼다.
데카드를 목숨 걸고 지키기로 맹세하며 손에 쥐었던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품에 넣은 흑색 무면탈 가면.
데카드와의 추억이 서린 물건이다.
어느새 엘리스의 모든 부분은 데카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절대 뺏길 수 없어.”
엘리스는 소중한 사람과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열린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3층의 높이였으나 엘리스는 암살단의 낙법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바로 앞에 있는 담까지 순식간에 넘어갔다.
“후우…….”
아직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엘리스는 숨을 고르고 암살단이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움직였다.
* * *
슬슬 해가 저물어가는 초저녁.
하늘은 파란색과 붉은 노을의 색이 맞물려 아주 아름다웠다.
음유시인이 봤다면 한 줄기 노래의 악상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살자가 보기에는 곧 일을 시작할 시간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밖엔 되지 않았다.
“왔군.”
발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어두운 골목 너머 그렇게 넓지 않은 공터에 있던 암살조의 조장, 바인츠는 그녀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바인츠의 말대로 골목 너머에서 익숙한 모습의 암살자가 자신을 드러냈다.
“오랜만이구나, 엘리스.”
“그러게요. 바인츠.”
엘리스는 대답과 동시에 공터 주변을 힐끔 쳐다보았다.
“안심해도 된다. 숨어있는 암살자는 없으니.”
“그건 제가 판단합니다.”
“……많이 날카로워졌구나. 원래는 이렇게 시끄러운 아이가 아니었는데.”
엘리스는 후드 안에서 똑바로 바인츠의 눈을 쳐다보며 대꾸했다.
“이게 원래 저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쇼.”
“흐음…… 너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암살단에 귀환할 생각은 없는 것 같구나.”
“저는 이미 제 의견을 얘기했습니다. 똑바로 전달이 갔을 텐데요.”
이전에 찾아온 암살단원에게 엘리스는 자신의 선택을 말했고 그 단원도 잘못 알아들은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바인츠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너는 암살단에서 나간다고 했지만 누가 그걸 허락했지?”
“…….”
“엘리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암살단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다.”
바인츠는 심기가 불편해진 듯 조금씩 강압적인 어조로 바꾸어 나갔다.
그러나 엘리스도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어 지지 않고 대답했다.
“저는 이미 한 번 죽은 몸.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암살자의 맹약을 했지요. 이건 누구라도 깰 수 없습니다.”
“그래…… 그 암살자의 맹약.”
바인츠는 바로 그거라는 듯 후드 안에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암살자의 맹약은 당사자가 계약을 파기하거나 암살자가 당사자의 목숨을 구해 주어야 하지.”
“맞아요. 그리고 그 두 개의 조건 중 현재 어느 하나도 해당되는 것이 없지요.”
엘리스는 바인츠가 자신을 데려갈 명분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생각에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자신의 착각일까?
후드 안에 있는 바인츠의 얼굴에선 여전히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 맹약을 깰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지.”
엘리스는 점점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자신도 모르게 단검으로 손이 갔다.
바인츠는 그것을 보며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아까 네가 찾으려고 했던 암살자들…… 지금 어디 있을까?”
“……!!”
엘리스가 머릿속으로 퍼뜩 떠올린 암살단의 속셈에 당장 이 공터를 벗어나려고 하자 바인츠가 버튼 하나를 눌렀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을 감싸는 돔 모양의 결계.
푸른 색깔의 결계는 현재 상태론 아무리 때려도 금조차 가지 않았다.
“데카드 제발……!!”
바인츠를 제외한 암살조는 지금 데카드를 노리고 있었다.
배도 부르고 잠이 많은 데카드가 침대에 누웠을 지금 시각.
저택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자신이 멍청하고 아둔했다.
‘갈까마귀가 주변에 있다고 알았을 때부터 경계를 했어야 했는데……!!’
엘리스가 뼈에 사무친 후회를 하고 있을 때 바인츠는 작동 장치를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놈이 죽으면 암살자의 맹약은 깨질 테고 너는 다시 우리 암살단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지.”
“……당신을 죽이고 이곳을 빠져나가겠어.”
“오우, 그럴 수 있겠나?”
스릉-
대답은 암살자의 방식으로 한다.
어느새 뽑힌 두 사람의 단검은 서로를 향해 쏜살같이 뻗어 나갔다.
* * *
“커어어…….”
“크르릉…… 크르릉…….”
“…….”
“이히히…… 고기다 고기…….”
잠꼬대와 코골이로 가득한 이곳은 마수들이 현신해서 퍼질러 자고 있는 데카드의 방이다.
물론 이곳에는 데카드도 이들과 섞여 자고 있었다.
유일하게 짹짹이만이 의자에 앉아 램프를 켜고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은 마수계의 귀신 협곡과 닮았군.”
책을 보다 보면 가끔 그림에서 마수계와 닮은 곳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신의 고향이 생각나 그곳의 향기가 코를 간질이는 것 같다.
마수계 전역 곳곳을 쏘다니며 문제만 일으킨 데카드와의 추억을 잠시 회상하던 짹짹이가 책을 덮었다.
턱-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있군.”
잠시 데카드를 깨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런 걸로 주인의 단잠을 깨운단 건 종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짹짹이는 다시 책장에 원래대로 책을 갖다 놓으며 데카드가 발로 찬 이불을 다시 그에게 덮어주었다.
“감기 걸리십니다.”
그렇게 짹짹이는 거울로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손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
마법사는 아닌 듯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으나 발소리가 다 들린다.
사람의 청력으로는 감지하지 못하겠지만, 동물의 감각까지 속일 순 없다.
감히 자신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거늘.
짹짹이는 이들이 다가오고 있는 루트를 파악했다.
‘창문에 둘, 복도에 여섯이라…… 창문 쪽을 먼저 처리해 볼까.’
변수를 만들 가능성이 제일 높고 또 수도 적은 창문 루트를 짹짹이는 먼저 청소하기로 했다.
방에 벌레가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잡는 거다.
주인님이 불편해하시지 않도록.
짹짹이는 창문을 벌컥 열었다.
“……!!”
“……!”
그러자 화들짝 놀란 암살단원들이 급히 벽에 몸을 붙이며 자신을 숨기려 했다.
그냥 풍경을 보기 위해 창문을 열었으면 모르겠는데 지금 짹짹이는 암살자를 처리하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당연히 벽에 붙어있는 두 명의 암살자가 훤하게 보였다.
“그림자 칼날.”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한 줄기 칼날이 되어 급소를 꿰뚫었다.
위대한 갈까마귀 암살단원은 그렇게 절명.
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툭툭 떨어진 저들은 나중에 치우기로 했다.
‘지금은 복도가 먼저지.’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는 바퀴벌레들도 재빨리 정리해 줘야 집이 깔끔해진다.
짹짹이는 창문 때와 마찬가지로 방문을 활짝 열었다.
바퀴벌레가 불을 켜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처럼 여섯 명의 암살자도 각각 몸을 숨겼다.
‘숨바꼭질이 특기인 친구들인가 보군.’
데카드와 1000년을 살다 보니 이런 말장난만 느는 것 같다.
책에선 사람이 유머를 가지고 있으면 타인과 쉽게 어울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걸로 다른 인간과 친해질 수 있을진 모르겠다.
암살자들은 갑자기 방 밖으로 나온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을 관찰하고 있었다.
죽일까? 아니면 자연스럽게 보낼까?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갈팡질팡하던 암살자들의 고민을 끝내준 건 다름 아닌 짹짹이였다.
“숨어있지 말고 나와라. 오른쪽 벽과 책장, 천장에도 여럿 있군.”
자신들의 은신이 다 들통 나자 암살자들은 침음을 삼키며 단검을 뽑아들었다.
갈까마귀를 본 목격자에게 선택지는 없다.
저 검은 정장 사내를 죽이고 방 안에 있는 목표물까지 숨통을 끊는다.
파앗-!
암살자들이 짹짹이에게 달려들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