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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18화 (118/208)

118 오랜만에 보는 친우

햇살이 강한 아침이다.

열려있는 커튼으로 햇빛이 인정사정없이 들어와 눈을 따갑게 한다.

어제 부원들과 마수들이랑 같이 고깃집에 있는 고기는 전부 거덜 내고 더부룩한 속으로 집까지 왔다.

이곳은 퇴마부장이 되면서 마법부가 내어준 저택.

아직 하인도 없고 메이드도 없어 휑하지만, 사람이야 뽑으면 될 일.

“목말라…….”

커다란 침대에서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자 머리맡에 누군가 물 잔을 갖다놓는 소리가 들렸다.

물 잔을 준 자가 누구인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고마워, 짹짹아.”

“아닙니다. 조금 더 주무실 겁니까?”

“지금 몇 시인데?”

“오후 한 시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낮잠을 푹 잤다.

임무 때는 항상 여덟 시나 일곱 시에 일어나야 해서 여간 고통이 아니었다.

배도 부르고 할 일도 없겠다, 데카드는 눈치 볼 것 없이 침대에 몸을 맡겼었다.

“이제 일어나야겠네.”

사실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는 했으나 더 이상 눈도 감기지 않았다.

사람 다섯 명은 한꺼번에 재울 수 있을 듯한 크기의 침대에서 일어난 데카드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넓네.”

“그렇습니다.”

사람이 없어 잘 관리가 안 된 정원은 필립의 집처럼 아름답진 않았지만 나름 봐줄 만했다.

또 그것을 무마시켜 주는 커다란 마당.

상류층 귀족들의 파티라도 열 수 있을 만큼 여유 공간이 많았다.

이것도 새로 들어온 집주인에 대한 배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기 엘리스네.”

창문으로 정원을 눈에 담던 데카드에게 열심히 꽃에 물을 주는 엘리스가 보였다.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졸졸졸 뿌려주는 그녀의 모습은 햇살과 만나 퍽 아름다웠다.

“트리스도 여기 있나?”

“그렇습니다. 지금 주인님이 잠에서 깨신 걸 알고 아침밥을 만드는 중이지요.”

“그렇구나.”

데카드는 말하다가 문득 드는 가슴의 공허함에 마수들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들은?”

“각자의 방에서 자는 중입니다. 어제 새벽부터 방 가지고 싸우느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데카드는 자고 있어서 몰랐지만, 마수들끼리 원하는 방이 겹칠 때면 피 튀기는 신경전이 벌어졌었다.

평화로움에 흘려보내고 있던 데카드의 정신을 배꼽시계가 산산이 부쉈다.

꼬르륵-

“지금쯤 준비가 끝났을 겁니다. 내려가시죠.”

“그러자.”

짹짹이가 다시 코트로 변해 데카드에게 걸쳐지고, 그는 계단을 내려와 주방까지 왔다.

커다란 주방에 비견되는 커다란 냉장고는 웬만한 여관 1인실 크기와 맞먹었다.

고급스러운 대리석 식탁 위에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토스트가 올려져 있었다.

“일어나셨군요. 선배.”

“응. 잘 잤어?”

“물론입니다. 확실히 부장들에게 주는 집은 뭔가 다르군요.”

“총장은 이런 거 안 받아?”

데카드의 물음에 트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총장은 마탑에 있는 시간이 더 많기에 마지아 섬 안에 있는 고급 주택 하나를 받습니다만, 여기만큼 호화스런 대저택은 아닙니다.”

“일은 제일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데카드는 트리스가 얼마나 매일같이 열심히 일하는지 옆에서 보아왔기에 알 수 있었다.

총장 자리의 혜택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라는 의문에 빠질 때쯤 트리스가 덧붙였다.

“대신 ‘이걸’ 많이 줍니다.”

트리스는 검지와 엄지를 동글게 말아 보이며 말했다.

저 제스처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다.

그야말로 만국 공통어.

“얼마나 많이 받는데?”

“원래는 말하면 안 되는데 선배한테만 말씀드리자면…….”

트리스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데카드의 귀에 입을 갖다 대며 속삭였다.

“……진짜?”

“그렇습니다.”

자신의 집행관 월급…… 아니 연봉에 가까운 돈을 트리스는 매달 받고 있었다.

이 정도 페이면 굳이 이런 대저택을 받을 필요가 없다.

몇 년 모았다가 사면 되니까.

잠시 이런 상념에 빠지다 보니 토스트가 식어가고 있단 걸 잊고 있었다.

바삭한 빵 위에 올려진 계란의 노른자를 터뜨리며 데카드는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네.”

“다행입니다.”

토스트를 절반 정도 먹었을 때 꽃에 물을 다 줬는지 정문으로 들어오는 엘리스가 보였다.

“엘리스! 아침 먹어.”

“네!”

그녀는 물뿌리개를 잠시 옆에 내려놓고 식탁으로 와 앉았다.

트리스는 엘리스 몫의 토스트를 내어주었다.

“와아! 진짜 맛있는데요?”

“그렇습니까?”

엘리스의 칭찬에 트리스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드륵-

토스트를 다 먹은 데카드가 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그러면서 정문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엘리스가 외쳤다.

“어디 가세요?”

“친구네 집!”

마수들은 아직 자고 있으니 데카드와 짹짹이만 대저택을 벗어났다.

L시에 있는 대저택은 조금 외곽에 위치한 느낌이었으나 이런 크기의 집을 지으려면 부지가 많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다.

슬렁슬렁 걷던 데카드는 곧 시내로 나올 수 있었다.

오후 한 시라는 시간은 도시가 활력을 되찾기에 충분하다.

루비아의 도시는 여느 때처럼 활발하고 생기가 흘러넘쳤다.

요 며칠 계속 흑마법사의 사기를 몸에 쬐었으니 이런 활기로 가득 몸을 정화해야 한다.

[그보다 길은 알고 계십니까?]

“그럴걸?”

이래봬도 데카드는 루비아에 위치한 집행부에서 십 년 넘게 근무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익힌 루비아 모든 도시의 지리.

“근데 도시가 다들 많이 바뀌어가지고 좀 헤맬 것 같긴 해.”

데카드가 없어진 십 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무리 강산이 변할 시간이라고는 하나 강산도 이렇게는 안 변할 것이다.

최신 문명의 상용화가 제일 먼저 일어나는 곳이라 그런지 십 년의 공백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데카드는 L시를 넘어 필립의 집으로 가던 중 과일 가게를 보았다)

“요즘 뭐가 제일 잘 팔려요?”

“이런 가을에는 과일하고 옥수수가 제격입니다!”

“그걸로 한 박스씩 주세요.”

“어유! 큰손 오셨네!”

과일 가게 주인은 연신 손뼉을 치며 큰 상자 두 개를 가져와 과일들을 담았다.

[갑자기 과일은 왜 사시는 겁니까?]

‘원래라면 그냥 가는데 형수도 있으니까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니지.’

[주인님이 그런 것도 따지시는 분이었군요.]

‘고럼, 고럼.’

데카드는 사과 하나를 와작 씹어 먹으며 대답했다.

곧 과일 상자 두 개가 순식간에 완성되고 데카드는 그것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최근에 비싼 것만 연달아 사서 그런가? 돈 감각이 너무 무뎌진 것 같네.”

60실버는 적은 돈이 아니지만 갖고 있는 돈과 최근 씀씀이가 이것을 푼돈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어쨌든 과일 상자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 * *

아무 생각 없이 주변의 풍경만 보다 보니까 어느새 필립의 집 대문 앞에 도착했다.

경비원 두 명이 그곳을 지키는 모습은 자신의 친구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지 실감시켜 주었다.

데카드는 서슴없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정지. 신원을 밝혀주십쇼.”

“데카드 아르마다.”

“……그것뿐 입니까?”

“이거면 되니까요.”

이 집을 들어가는 데에는 이 이름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경비원들에겐 아니었는지 그들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선약을 잡아놓으신 게 있으십니까?”

“아니? 그런 거 없는데요.”

친구 집에 가는데 뭔 선약이 필요한가.

그냥 문 두드리면 그만이지.

지금 필립은 자신이 대문을 부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

“그럼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싫은데. 난 들어가야겠어.”

경비원들이 동시에 창의 날 끝을 위협적으로 내세웠다.

“저리 썩 꺼지거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여기가 어딘지는 당연히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집행부장 필립의 집 아니야. 알고 있으니까 비켜.”

“어허! 이놈이 기어코!”

대문에서 일어난 소란에 근처에 있던 경비대장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대, 대장님!”

“작은 소란입니다! 저희가 처리 하겠습니다.”

대장은 하품을 길게 내뱉으며 지루하단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인상착의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다.

“혹시…… 성함이 데카드 아르마다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의에는 예의로.

상대가 존대를 하니 데카드 자신도 존댓말을 사용했다.

대장은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자 당장 대문을 열며 깍듯하게 그를 모시듯 행동했다.

“이리 들어오십쇼. 그리고 너희 둘! 당장 내 방으로 와라!”

“네. 넵! 알겠습니다.”

경비병 둘은 발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부리나케 어딘가로 뛰어갔다.

“죄송합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들이라 한 번만 저들을 용서해 주십쇼.”

“괜찮습니다. 딱히 기분은 나쁘지 않았어요.”

물론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되었거나 저들이 창을 들이밀었으면 대문을 부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저의 이름을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필립님에게 이 이름을 대고 온 자에겐 무조건 문을 열어주고 대접하라는 명령이 있었거든요.”

나름 친구라고 배려를 해준 건가?

자신도 경비병이나 집사들을 뽑으면 미리 명령을 해야겠다.

‘필립의 이름을 대고 온 자는 한 번 내쫓았다가 다시 오면 들여보내 주라고.’

벌써부터 장난칠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한 데카드는 경비대장에게 집 안까지 안내를 받았다.

“그럼 저는 여기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저택 안에서 필립의 방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데카드는 헤매지 않고 곧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손은 주머니에 꽂고 발걸음은 느릿느릿 제집인 양 데카드는 편하게 걸어 다녔다.

친구의 집이 곧 자신의 집이 아니겠는가.

집이 좀 좁으면 모르겠는데 이렇게 넓으면 형수님과 마주칠 걱정도…….

“아, 안녕하세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복도에서 나오는 필립의 아내, 아리안과 만났다.

데카드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잠깐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데카드 님.”

“안에 필립 있나요?”

“그이는 방에 있습니다. 그럼 편하게 있으시길.”

아리안은 짧은 인사와 함께 다시 어딘가로 걸어갔고 그 모습은 분명 태생이 평민이었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부티가 흘렀다.

“어디에 반했는지 알겠네.”

데카드는 필립의 마음에 공감하며 그의 방문을 발로 뻥 걷어찼다.

콰앙-!!

부서진 게 아닐까 의심될 만큼 커다란 대포알 소리와 함께 데카드가 등장했다.

“오랜만이다!”

“……역시 너였냐?”

테러 단체인가 싶었는데 지금 들어온 존재보단 차라리 그게 더 나아 보였다.

속마음은 이래도 반가운 것은 서로 매한가지.

데카드는 곧바로 자신의 집 안방처럼 필립의 집무실 소파에 뻗었다.

“어으, 편하다.”

어째 퇴마부장이 되면서 받은 집의 침대보다 여기 소파가 더 편한 건 착각일까?

책상 위에 올려진 다과의 봉지를 뜯고 입에 밀어 넣자 달콤 쌉싸름한 향내가 진동했다.

“너는 오자마자 과자부터 처먹냐?”

“눈에 보이니까. 아, 맞다. 이거 받아라.”

데카드는 오는 길에 산 과일 박스 두 개를 그의 앞에 텅텅 던져놓았다.

“이게 뭐냐?”

“뭐긴 뭐야. 옥수수랑 사과지. 제철이라니까 먹어.”

“뭐어, 고맙다.”

그래도 친구가 자신을 생각해서 사온 물건인데 필립은 고맙게 받기로 했다.

그는 상자 안에 든 사과 하나를 베어 물며 막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이제 너 그러고 보니까 부장이라며?”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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