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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16화 (116/208)

116 금의환향

가면을 쓴 엘리스는 구태여 발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서 한스는 눈을 감은 채 손을 양쪽에 뻗고 흑마법을 시전 중이었다.

엘리스가 무엇을 하든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거의 무방비 상태라 해도 좋았으나 그럼에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저 흑마법이다.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썩게 만든다.

엘리스는 점점 넓어지는 아슬아슬한 범위 바깥에 서서 짹짹이의 신호를 기다렸다.

“할 수 있어.”

가면의 검은 기운이 발로 모여들고,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준비가 완료됐다.

한편 짹짹이는 어둠 속에 서서 한스의 흑마력을 억제하는 중이었다.

범위가 넓어지는 속도를 줄이긴 했으나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크흑…… 더욱더 줄여야 해.’

코피가 흘러서 땅에 뚝뚝 떨어질 정도로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한 짹짹이는 자신의 마나를 모조리 끌어왔다.

그러자 도저히 맞닿아지지 않던 양손이 합장하듯 짝 하고 부딪쳤다.

“까마귀 봉인.”

어둠 속을 유영하는 수천 마리의 까마귀.

그것들은 한스의 주위를 끝도 없이 공전했다.

다행히 마법의 효과는 발현되었다.

까마귀들이 부패의 기운을 대신 먹어 주어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위력으로 약해진 것이다.

“지금이다!”

“흐읍……!!”

드디어 떨어진 신호에 엘리스는 숨을 짧게 들이쉬고 땅을 박차며 내달렸다.

순간 소리가 귀에서 멀어질 정도로 달린 엘리스는 썩은 땅을 짓밟으며 허공을 뛰었다.

날아올랐다고 해도 좋을 만큼 높이 뛰어오른 엘리스.

“어둠 찢기.”

단검을 역수로 쥔 엘리스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떨어졌고 그러면서 생긴 충격을 이용해 그대로 한스의 목을 갈라버렸다.

촤하아아아악-!!

썩어서 검게 물든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후둑 후두둑 떨어진 피는 아직도 흑마력의 기운이 남아있는지 닿는 모든 것을 썩게 만들었다.

“수고했다.”

“아니에요. 저보단 짹짹이 님이 더 수고하셨죠.”

둘은 서로를 칭찬하며 어둠 속을 잠깐 걸었다.

“주인님은 바깥에 부원들과 계신다.”

“역시 성공하셨군요.”

“당연하지.”

짹짹이는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크게 놀라거나 감탄한 표정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이 신뢰의 표정.

엘리스와 짹짹이가 어둠 밖으로 빠져나오자 모두가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에 엘리스의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언니!”

“언니! 살아왔구나!”

엘리스를 보자마자 달려 나간 아스카와 벨린다.

둘은 그녀의 팔을 한쪽씩 잡고 늘어지며 다친 데가 없는지 확인했다.

“나, 나는 괜찮아.”

“그걸 언니가 어떻게 알아!”

입국 심사대에서 검사받듯 너무 꼼꼼한 둘의 검사에 피곤한 것 빼면 멀쩡한 엘리스가 다 무안해졌다.

“나머지 두 놈은 어디 갔나요?”

“최대한 생포를 노리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

데카드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베리어 안으로 그림자 밟기를 사용한 후 흑마법사들의 사지를 잘라놨었다.

여기서 추가로 자살을 막기 위한 입마개도 잘 박아놨으나 그들은 자력으로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했다.

“데카드! 오른쪽 팔이 왜 그래요?”

“아, 이거?”

붕대로 치료를 하긴 했지만, 그 붕대도 피로 빨갛게 물든 만큼 출혈이 심했다.

데카드는 애써 감추려고 했던 오른팔이 결국 드러나자 멋쩍게 웃었다.

“흑마법사들이 자기 몸을 시체 폭발의 재료로 써버려서 급하게 막긴 했는데 좀 어설펐나 봐.”

“응급치료는 했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으으! 감히! 감히!]

[이 고오른이 나서서 막아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마수왕님.]

[다음부턴 말리지 마세요! 이런 건 저희가 도와드려야 해요!]

[…….]

7서클 흑마법사 둘과 싸우는 데 마수들의 직접적인 도움을 안 받는다는 고집을 부리다가 얻은 상처이다.

데카드는 상처가 어떻든 결과가 좋으니 마수들의 잔소리에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제 나가자!”

드디어 이 칙칙한 유적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나가자 밖은 깜깜하지만, 하늘에서는 누군가 보석을 박아 넣은 듯이 아름다웠다.

샤릴마에서의 마지막 밤이니 데카드는 조금 더 고개를 꺾어 별을 바라보았다.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일행은 각각 방에 들어가 먼저 샤워부터 시작했다.

몸에 있는 자잘한 모래가 시원한 물줄기에 싸악 씻겨나가고 묵어있던 피로도 같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흠흠~”

먼저 샤워를 끝낸 아스카는 일행 전부가 먹을 수 있도록 인원수만큼 캔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방 곳곳으로 퍼지는 중독적인 향신료 냄새.

배고픈 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으킬 만큼 진한 냄새였다.

“땡큐.”

아스카가 준 캔 요리를 받아든 데카드는 일회용 숟가락의 비닐을 뜯고 캔 안에 내용물이 서로 잘 섞이도록 슥슥 비볐다.

이제 캔 요리는 너무 많이 먹었으니 루비아로 되돌아가면 마수들과 부원들끼리 회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저도 하나 주십쇼.”

“여기요!”

트리스가 옆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앞에서 쉼 없이 타오르는 불을 보며 잠시 멍을 때리던 트리스는 캔 요리를 한 숟갈 입에 넣으며 흘리듯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너도 수고했어.”

어떤 말을 덧붙이더라도 서로가 기울인 노력이나 겪었던 힘듦을 위로할 수는 없기에 둘은 짧은 인사로 모든 말을 대신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심한 남녀의 대화 같았지만.

캔 요리를 먹으며 따뜻한 불을 쬐고 있자 하나둘 샤워를 끝낸 일행이 모이기 시작했다.

“야, 그래서 내가 걔한테 백염을 날렸는데 꼼짝을 안 하더라고.”

“우리는 아직 모자라. 그러니까 더욱더 열심히 수련해야지.”

부원들은 흑마법사와 전투를 치르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많이 깨달았다.

이렇게 격이 높은 상대와 싸우다 보면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자연스럽게 알기 마련.

다음에는 꼭 자신들이 이기겠다고 다짐한 후 서로 열심히 떠들었다.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진 분위기.

“좋네.”

이 분위기에 휩쓸린다면 기분이 안 좋았다가도 금세 회복될 것 같다.

마수계에서 항상 그리워했던 가족

같은 일상이 매일매일 이루어지고 있었다.

데카드는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총장님은 어떤 남자 스타일이 좋으신가요? 전에 남자친구는 혹시 있으셨나요? 화장은 어떠셨어요?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하나만 물어보십쇼.”

아스카의 질문 세례에 당황해하는 트리스.

“오늘은 내가 이긴다!”

“흥. 어림도 없다.”

의자 위에 서로의 팔을 올려놓고 팔씨름을 벌이는 고드윈과 카론.

“루비아로 가면 내가 잘 아는 대장간 있는데 거기 가볼래?”

“좋아.”

루비아로 돌아가면 쇼핑할 계획을 세우는 벨린다와 엘리스.

전혀 친해지지 못할 것 같던 이들도 서로에게 녹아들며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샤릴마 대사막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 * *

“저와 퇴마부장은 마법부로 가서 보고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숙소에 가서 짐을 챙겨주세요.”

“알겠습니다.”

“넵!”

샤릴마의 텔레포트 기계로 순식간에 아사이드로 돌아온 일행과 함께 짹짹이의 겉모습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트리스와 데카드는 정말 오랜만에 오는 것 같은 아사이드의 거리를 걸었다.

“택시가 나오는 곳까지만 걸어가죠.”

“그래.”

오랜만에 본 아사이드가 반갑긴 했으나 오래 걷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택시를 타고 아사이드까지 도착한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젠킨스의 집무실까지 곧바로 올라갔다.

벌컥-!

갑자기 열어젖혀진 문에 젠킨스는 보지도 않았으나 들어온 이가 누군지 알고 씨익 웃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트리스와 데카드.

“성공했군.”

이들의 눈과 자신감 있는 몸짓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이미 예상한 부분이기도 했다.

어떤 장애물이 있건 이 둘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 안에 유물이 담겨 있습니다. 조심히 다뤄주십쇼.”

데카드는 젠킨스에게 유물이 담긴 주머니를 넘겨주었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든 젠킨스는 책상 위에 올려두곤 찻장으로 걸어갔다.

“커피? 차?”

“커피로 부탁드립니다.”

“전 차로 하죠.”

평소 미친 업무량 때문에 각성제인 커피를 즐겨 마시는 트리스는 커피를.

어린이 입맛 데카드는 쓴 커피가 맞지 않아 차를 선택했다.

갈아낸 원두에 뜨거운 물이 부어지자 커피가 똑똑 아래로 흘러내렸다.

차는 티백과 뜨거운 물로 간단히 만들어내었다.

“둘 다 이름난 브랜드의 것이니 맛은 믿어 봐도 좋아.”

젠킨스의 호언장담.

데카드는 차 맛이 뛰어나면 또 얼마나 뛰어나겠어 하는 마음으로 첫입을 식도로 넘겼다.

“……자신 있을 만하군요.”

“그렇지?”

녹차의 알싸한 향과 함께 특유의 시원한 냄새가 콧잔등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위로 내려갔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자연의 풍취에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래서 유적은 어땠나?”

“함정이 가득했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큰 문제는 흑마법사들이었죠.”

“결국 만났구먼.”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흑마법사들의 실력과 그들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트리스는 꼼꼼히 보고했다.

“흐음…… 그래서 팔이 그렇게 된 거군.”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뭘.”

젠킨스는 수정구의 버튼을 누르고 전속 비서에게 통화를 연결시켰다.

“내 방으로 사제 한 명만 보내.”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이 정도는 내 서비스라고 봐주게.”

젠킨스가 사제를 부르고 데카드가 차를 두 입 정도 더 마셨을 때 똑똑 하고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부르신 사제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빠르네요.”

“들어오게.”

사제가 장비들을 챙겨서 들어오고 데카드의 오른팔 치료를 시작했다.

“이제 다음 임무가 있을 때까지는 마음껏 쉬게. 퇴마부장.”

“알겠습니다.”

“트리스도 휴가 일주일을 줄 테니까 머리 좀 식히고.”

유적과 대사막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트리스를 위해 젠킨스는 작은 선물을 주었다.

데카드의 오른팔 치료는 빠르게 끝이 났다.

피가 굳은 붕대를 술술 풀자 새살이 뽀송하게 오른 데카드의 팔이 드러났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사제는 할 일을 마치자 빠르게 방을 나갔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어어. 수고했네.”

“그럼 이만.”

데카드와 트리스는 마법부를 빠져나와 퇴마부 숙소가 있는 곳으로 택시를 탔다.

숙소로 가까워질수록 안에서 일어나는 난리 통이 점점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동안 쌓아놓은 짐을 캐리어에 넣는 중인 부원들이 보였다.

“어어! 내 브래지어 어디 갔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어? 그렇네.”

고드윈한테 자신의 속옷의 행방을 물었던 아스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곤 방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동안 정리는 뒷전으로 미루고 수련만 했던 결과다.

옷들이 어디 처박혀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으음…… 괜히 들어왔나?”

“데카드 왔어요?”

숙소 안에선 이미 적응한 듯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 앉아 책을 펴고 있는 엘리스가 보였다.

그 옆에 붙어 앉은 데카드와 트리스.

그들의 앞으론 옷을 정리해서 캐리어에 쑤셔 박은 부원들이 보였다.

“후우! 정리 끝냈습니다!”

“이제 오케이예요!”

“근데 저희 루비아로 가면 어디에서 살죠?”

잠을 잘 집 같은 경우에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괜찮아. 나 집 두 채야.”

데카드가 사비로 산 집 하나.

퇴마부장이 되면서 마법부가 사준 집 하나.

둘 다 무척 넓고 방도 많은 집이기에 부원들이 잘 곳은 충분하다.

지금쯤 사비로 산 집의 인테리어도 다 끝났을 터.

들어가면 새집 느낌이 가득할 것이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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